소설리스트

127화 (127/270)
  • 127화

    * * *

    고급진 오피스텔에서 사람을 죽이려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해야 하는가.

    그건 산박에게 답지를 내어주고 문제를 풀라는 소리와 같았다. 한국의 건축물은 살인자가 올 것을 생각하고 건물을 짓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CCTV가 있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가 없다. 대형 마트와는 다르게 오피스텔에 경비는 있어도 2교대였고, 그마저도 나이 든 이가 하는 일이었다. 인건비를 어떻게든 줄이기 위함이었다. 그래야지만 나머지 돈이 관리자에게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 살인적인 일정 속에서 자정이 넘어서도 맨정신을 유지하는 경비는 잘 없었다. 곤하게 잠자기 마련이었다. 그렇기에 산박은 CCTV에 거침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해당 경비원이 잠을 자고 있다는 걸 인지한 상태였다.

    그의 몸은 모든 것이 노출이 제한되어 있었다. CCTV로 감히 범죄자를 특징짓기 어려웠다. 물론 그렇게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평범한 돌로 CCTV의 렌즈를 단번에 깨뜨리고 지나갔다.

    그는 외곽부터 CCTV를 박살 내고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보안 검색대가 있었지만 무의미했다. 유리로 된 문을 도구를 사용해 단번에 원을 그리며 뚫어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목표물이 있는 층수로 대범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움직였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소리는 제법 크게 들렸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런 것에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는 걸 산박은 잘 알고 있었다.

    문은 디지털식이지만 그 장치는 여전히 아날로그식이었기에 잠금장치를 푸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간단한 기술만 있으면 수월했다.

    내부로 들어간 산박은 칠흑과도 같은 어둠 속에서 가만히 서있었다. 눈이 적응되기를 기다린 뒤에 복층 구조로 된 최상층 오피스텔의 거대함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계단 위로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용아연은 쥐 죽은 듯이 잠자고 있었다. 잠꼬대 하나 없었고, 침대 위에 있는 작은 창문에서 내려오는 달빛이 그녀의 얼굴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운치 있는 광경이었지만 산박은 석궁을 조준했다. 굳이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았다.

    푸슉!

    두개골은 둥글어서 목을 노렸다. 단번에 그녀의 목에 볼트가 그대로 틀어박혔다.

    “끄…….”

    버둥거리면서 일어난 아연은 우두커니 서있는 암살자를 보고 침대에서 쓰러졌다. 이불도 함께 쓸려 내려갔다. 산박은 그사이에 장전을 끝내고 다시 한번 석궁을 발사했다.

    퍼석!

    작은 탁상이 꿰뚫리며 그 위에 올려져 있는 스마트폰에 볼트가 박혔다. 뒤늦게 아연의 손이 올라와서 스마트폰을 잡았지만 동시에 볼트의 감촉도 느껴졌다. 파손된 스마트폰으로는 연락을 취할 수 없다. 전화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모든 걸 하는 그녀였다. 그렇게 그녀는 빠르게 질식해서 널브러졌다.

    산박은 볼트를 회수하고 그대로 떠났다. 집에 들어와서 그녀를 죽이는 데에는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즉석식품 하나를 준비하는 것보다도 빠르게 사람 하나를 죽였다.

    그가 작업을 치고 암살에 걸린 시간은 불과 7분. 완전히 빠져나갈 때 걸린 시간은 8분 58초. 10분도 안 되는 순간에 사람이 죽어 나자빠졌다. 강도처럼 꾸민다든가 그런 일도 없었다. 신속하고 정확했다. 우직함마저 느껴지는 암살 방법이었다.

    그대로 도용 신분을 이용해서 렌트한 차를 탄 산박은 다음 표적을 향해서 움직였다. 시은도 이를 그대로 따라갔다. 그녀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박예준은 세종시의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사무실에 거주하고 있었다. 술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대마초 또한 있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그저 구하려는 의지를 갖춘 이들이 적을 뿐이었다.

    “커어어억. 크으으으으…….”

    죽을 것 같은 코골이 소리가 미남의 코에서 흘러나왔다. 그 정수리에 석궁을 겨눈 산박이 방아쇠를 당겼다. 정수리를 노리기 쉬웠기에 즉사를 노렸다.

    푸걱!

    그대로 볼트가 박혔다. 움직임은 없었다. 그저 숨이 맥없이 흘러나온 게 전부였다. 박예준의 전신이 축 처졌다. 산박은 볼트를 단번에 뽑았다. 놈은 아연보다 더 쉽게 죽일 수 있었다.

    산박은 박예준의 스마트폰을 챙겼다. 살짝 빛으로 비추자 보안 패턴의 지문 흔적이 훤히 보였다. 이를 이용해서 해제를 한 번 해보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전과 다르게 산박은 사무실에서 많은 준비를 했다. 가장 먼저 렌터카로 돌아가서 보일러에 쓰이는 등유를 가져와서 잔뜩 뿌렸다. 방화를 하고 나서 곧바로 빠져나갔다.

    마트쟁이 또한 죽여야 했다. 하이얀 던전 사업이 태산박을 먹잇감으로 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였다.

    그는 단란한 가정에서 지내고 있었다. 매우 가정적인 남자였다. 15억대의 고급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었고, 평수만 해도 105평짜리였다. 좌침성은 작은 방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으음…….”

    그는 눈두덩이를 만지며 기지개를 켜고 문자를 확인했다. 박예준이었다.

    [추가 보너스가 생겼으니까, 빨리 내려와서 받고 가. 나도 자야 하니까.]

    ‘빌어먹을 놈, 지금 시간이 몇 신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는 돈이라는 얘기에 솔깃해져서는 잠옷 바람에 외투만 입고 아파트를 내려갔다.

    104동의 로비는 매우 넓었다. 내려오자마자 로비에 있던 경비원이 꾸벅, 꾸벅 졸다가 벌떡 일어나는 게 보였다. 좌침성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자. 자도 돼. 괜히 내가 깨운 게 아닌가?”

    “아, 아닙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경비원은 학비를 벌기 위해서 이곳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좌침성은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곧바로 아파트 단지에 조성된 넓은 트랙과 잘 정돈된 공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딨다는 거야.’

    푸슉.

    석궁에 그대로 목이 꿰뚫렸다. 좌침성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로비에 있는 경비원은 시선을 아래에 두고 있었다. 폰으로 뭔가를 보는 듯했다. 그렇기에 깨닫지 못했다. 너무나도 대범한 암살이었다.

    퍽!

    볼트가 쓰러진 좌침성의 눈을 그대로 뚫고 박혔다. 산박은 다가가서 단검을 좌침성의 귀에 박아 그대로 죽 베어서 반대편 귀까지 잘라내고 볼트를 회수한 뒤에 도망쳤다. 뒤늦게 쓰러져 있는 그를 보고 경비원이 달려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본 이시은은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샤워하고 침대에 누웠음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심장이 계속해서 거세게 뛰고 있었고 몸은 식을 줄을 몰랐다.

    ‘어쩌면 그도 나와 동류일지도 몰라.’

    살면서 그렇게 잔혹한 사람은 처음 봤다. 혹시 그는 자신을 이해해 줄지도 몰랐다. 죽여야만 하기에 죽였던 살인과는 명확하게 달랐다. 시은은 침대의 이불을 매만졌다.

    ‘재물을 탐하지도 않았지.’

    사람을 죽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들킬 위험은 커진다. 그렇기에 재물을 챙기는 시간을 과감하게 제외했다. 이건 시은의 충동 해소 살해와도 맥락이 비슷했다. 그녀는 희생자들의 돈을 탐하지 않았다. 그런 저열한 살인이 아님을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겸사겸사 남이 알아주면 더 좋았다.

    이시은은 점점 산박과 자신을 동일화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사고방식이 정상이 아니었다. 그녀와 비슷한 자를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만큼 독보적인 암살자는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이게 사랑일까? 그럴지도.’

    강한 애착심에 시은의 눈이 흔들렸다. 동시에 그의 소중한 것을 부수고 싶다는 흉측한 마음도 생겨났다.

    그녀는 몸을 웅크렸고, 억지로 눈을 감았다. 여동생이 소중히 대하는 인형을 갈기갈기 부술 때 느끼는 짜릿함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그 여동생은 이미 죽고 없었기에 더더욱 시은은 태아처럼 웅크렸다.

    ‘참아야 해…….’

    * * *

    “매주궤, 이 사람이 못 미덥습니다.”

    검은 비닐봉지에 술과 안줏거리를 가져온 충호가 소주를 한 잔 마시자마자 바로 본론을 이야기했다.

    던전 기업 옥시모론은 던전 분할 공략을 시작하고 있었고 그 준비는 거의 끝나 가는 상태였다. 충호는 혼자서 끙끙 앓다가 산박을 찾아왔다.

    ‘의외로 착하네.’

    사람을 모질게 대하지 못하는 모습에 산박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일입니까?”

    “에휴, 이게 사람 돈벌이가 연관되니까 매정해지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했는데 마땅찮아서…….”

    주궤에 대해서 나쁜 평가를 말하는 충호는 자신이 악덕 업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절로 술이 넘어갔다. 양심 있는 관리자가 되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고, 자신을 갉아먹는 행위였다.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충호는 물러도 너무 무른 인간이었다.

    ‘나보고 해결해 달라고 오다니. 이거 참…….’

    자신보고 쓴소리를 해달라는 소리다. 하지만 산박은 그런 태도를 보일 수가 없었다. 매주궤는 1레벨 전담 팀의 팀장이 될 사람이었다. 딱 그 정도의 그릇이기에 딱 그 정도의 대우를 해줘야 했다.

    “본론부터 말씀드리면, 주궤 씨를 내려보낼 생각은 없습니다. 그 사람은…….”

    산박이 말을 흐렸다. 충호에게 이런 부분까지 이야기해도 되겠느냐는 질문이 머릿속을 헤집어서였다.

    A급 전사라고는 하지만 전투 외적으로 충호가 두각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가르쳐 줘서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많을지도 몰랐다. 주궤 본인조차도 자신의 처지를 100% 확실하게 객관적으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손을 까딱이면서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나서 산박이 말을 다시 이어 나갔다.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겠죠. 스킬이 문제인가요?”

    “그것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적극적이지가 않습니다. 훈련에서도 근접전만 시작하면 뒤로 물러나기 급급합니다. 팀장님, 팀장님도 아시잖습니까.”

    산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 외로 1레벨 던전은 근접전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적의 머릿수가 많을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한 번 삐끗 잘못하면 큰 피해를 낳는다.

    ‘배부른 소리긴 하지만… 일리가 있다.’

    산박이나 시은은 A급이었다. 그런 사람이랑 비교하니 충호가 걱정을 할 만했다.

    ‘스트레스도 심하겠지.’

    평범한 기업 문화와 크게 다른 것이 던전 기업이었다. 사무실에 모이는 날은 손에 꼽고, 다들 자기 수련 하기 바빴다. 무위라는 걸 가지고 있어도 이를 활용할 육체를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혼자서 책임져야 할 것이 자연스럽게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기업이라는 이름 속에 숨을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던전을 공략해 나가야 한다. 남들과 다른 특별한 힘을 지니기 위해서 괴물과 싸워 나간다. 멋진 일이었다. 하지만 현실을 생각해야만 했다.

    ‘메주궤는 자격 미달이기도 하고.’

    산박이 있었을 때, 주궤는 추가 팀원에다가 임시 팀원의 신분이었다. 그런데 팀의 모습이 바뀌고 나서는 곧바로 1인분을 해야만 한다? 신용하기 어려웠다. 객관적 지표로도 함정으로 쓸 수 있는 토템은 썩… 좋은 주문은 아니었다. 다수의 주문과 기술을 배워서 1레벨 던전을 돌 수 있는 인력이 되기까지는 미달 팀원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었다.

    충호는 제법 단단히 준비했는지 매주궤가 지닌 기술과 주문이 적힌 종이를 건넸다. 산박은 숙지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받아 들었다.

    흙 발바닥 기술은 주문 강화를 도모할 수 있었다. 나무 타투 기초 기술은 나무와 관련된 타투 효력 증가를 노림과 동시에 녹색 도끼의 은총으로 소모되는 힘도 줄어든다. 아얄타의 나무 타투는 모두에게 좋았다. 신체 능력과 지구력 증가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공격력을 확보할 수 없었다. 불 잎 수풀 토템 주문도 마찬가지였다. 크기가 작아서 방심을 유도할 수 있다고는 해도 공격적인가? 의문이 드는 설치형 주문이었다.

    “어떻게 해드리면 좋겠습니까?”

    진지한 산박의 질문에 충호가 몸을 바로 했다.

    “빼주십시오. 차라리 우리 기업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면접자 중에서 가려내겠습니다.”

    톡톡톡.

    산박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솔직해져야 했다. 기업의 미래에 대해서 언급해야 했다.

    “오늘 말하는 건 다른 이에게는 말하지 마세요.”

    “예.”

    대답은 했지만 충호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산박이 매주궤를 위해서 변명을 할 것처럼 보여서였다. 하지만 산박은 변명을 늘어놓지 않았다. 변명하는 거. 그런 건 누구나 할 수 있었다. 그런 걸로는 설득하기가 힘들었다. 그저 짓눌러서 입 다물게 할 뿐이다.

    ‘A급 전사인 충호를 상대로 그딴 관리를 한다?’

    관리자로서 자격이 없었다.

    “매주궤 씨는 키워서 1레벨 전담 팀을 운용하는 데 쓸 인재입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가 욕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1레벨 던전에서 잔류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자기를 보신하는 경향이 심합니다.”

    충호는 그 말을 충분히 경청했다.

    “기업 차원에서 1레벨 던전 자원을 계속해서 수급이 가능하다면 나중에 따로 손 빌릴 구석도 사라지고, 기업 자체의 수익 증가를 노릴 수 있습니다. 그는 1레벨에서 계속 활동하기에 적합한 그릇을 가지고 있죠.”

    매주궤에 대한 비밀이 산박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왔다. 거기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었다. 산박이 팀원을 어찌 생각하는지 그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충호는 거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그렇기에 산박은 충호에게 매주궤에 대한 자신의 판단과 그가 맞이할 미래에 관해서 이야기해줄 수 있었다.

    “매주궤 씨는 제가 따로 불러서 계약서를 하나 또 따로 작성하겠습니다. 그 또한 자신의 처지를 알아야지 나중에 저희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충호를 위해서 매주궤를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겠다는 결정도 내렸다. 말만으로 끝내면 앙금이 남기 쉽다. 여기서는 충호의 편을 들어주고 확실하게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해야만 했다. 그러면 충호는 매주궤와의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기분을 느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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