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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화 (125/270)
  • 125화

    마트쟁이 좌침성(左砧惺). 제법 단단한 곳을 뚫는 데 사용되는 도구였다. 용아연과 박예준을 마주한 그는 껄껄 웃기 바빴다.

    “아이고, 이렇게 오랜만에 보네. 내 아들 돌잔치에는 오지도 않더니.”

    “미안하다고 하잖아.”

    “여기 약소하지만…….”

    박예준이 흰 봉투를 건네줬다. 남 등쳐 먹기로는 1등인 놈들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비틀린 범죄자들이었다. ‘기분’을 내기 위해서 결혼식 등에는 참여하지만 진심으로 부럽다거나 축하하지는 않았다. 그저 무엇에 홀린 것처럼 살아간다.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냥 귀신이었다.

    봉투를 챙긴 침성은 안을 훑어보더니 이내 품에 챙겼다.

    “이번에 작업 치는 놈은 누구길래 날 부른 거야? 이제는 나 필요 없다며?”

    “아, 진짜. 그만 좀 하라니까.”

    “하하하. 알았다. 알았어.”

    그들은 태산박과 옥시모론 신생 던전 기업에 관해서 설명했다.

    “이름부터 깐지 나네. 옥시모론? 뭔 뜻이야.”

    “몰라. 가격은 예전이랑 똑같아?”

    “그래. 10%.”

    “크, 언제나 신용 있게 사네.”

    서로 히히덕거리며 근황을 나눴다. 대부분 마트쟁이의 기분을 띄워 주려는 모습이었다. 그는 팔불출이었으며 자식 하면 죽고 못 살았다. 남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한 것만큼 ‘피’를 지닌 자식을 대단히 여겼다. 저놈은 다르겠지. 내 자식은 다르게 키워야지. 속이 텅 빈 허물. 거기서 삐져나온 사랑이었다. 똑같은 사랑이었지만 그 내면에 존재하는 뭔가가 달랐다. 이를 깨닫지는 못했다.

    “흐음…….”

    “어때?”

    끄적거린 마트쟁이 좌침성이 그 물음에 가볍게 답했다.

    “쉽겠는데? 일단 작업 친다.”

    “오케이.”

    투자로 안 되면 다른 걸로 연을 이어 나가서 묶으면 된다. 전단지가 새로 단장한 산박의 사무실에 붙었다. 의심을 피하려고 다른 곳에도 붙였지만 다른 점은 전화번호였다. 다른 곳에 붙은 전단지는 모든 게 똑같아 보이지만 전화번호가 딱 하나 달랐다. 수많은 정보를 보고 사는 현대인이 가장 잘 걸리는 수법이었다. 모든 전단지를 일일이 확인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나 상대가 나빴다. 언제나 근면 성실한 엘리트의 가면을 쓰고 다니는 이시은은 세종시에 마련된 사무실에 가장 먼저 출근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남들과 사고방식 자체가 달랐고, 다른 전단지에도 자연스럽게 손이 갔다. 층별로 세 장을 모아서 네 장을 가져왔다. 손으로 위에서부터 훑었고, 이내 전화번호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걸 산박에게 알리지는 않았다.

    ‘재밌겠어.’

    방치하지 않고, 되레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안녕하십니까.”

    시은은 운동하고 온 탕만에게 이를 펄럭이며 손짓했다. 탕만은 헤벌쭉해서 다가왔다. 시은은 예쁜 인간이었고, 그런 자는 언제나 우대받기 마련이었다. 남녀 불문 외모 지상주의가 가장 심각한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어때요?”

    “대박인데요. 최대 90% 할인이라니.”

    “이거 봐요. 방패 피부 물약이라고 한 병에 9,900원짜리를 900원에 팔고 있어요. 인당 제한이 있긴 해도 무조건 가볼 만한 가치가 있죠.”

    저가 용품 중 하나가 ‘방패 피부 물약’이었다. 충격을 모두 막지는 못하지만 감쇄할 수 있어서 돈 없는 1레벨 던전 공략 팀이 자주 사용하는 물품이었다. 이 품목만을 사러 가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

    “팀장님한테 사진 찍어서 보내 봐요.”

    그녀의 말에 탕만이 당장 움직였다. 산박은 금방 넘어왔다. 1레벨 던전 분산 공략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찾아온 좋은 기회였다. 팀원이 나뉘어서 1레벨 던전을 공략하는 만큼 추가 지급 아이템을 구매해야 하는데 이런 기회가 찾아왔다. 팀원들의 인사와 함께 산박이 자리에 앉아서 전단지를 확인했다.

    “세종시 밖에 있네요.”

    “이렇게 장사하는데 밖에 있어야죠.”

    시은의 말에 모두 수긍하는 눈치였다.

    “곧 망할 것 같아서 다 처분하는 것 같은데, 가서 싹 쓸어 오죠.”

    산박은 그 말에도 가만히 있었다. 다른 팀원들은 서로 이게 더 좋다, 이게 더 가성비다라고 노래를 불렀지만 시은은 조용히 산박의 모습을 지켜봤다.

    ‘뭔가 켕기는 게 있어.’

    평범한 반응은 아니었다. 너무 진지했다. 분명 전에 뭔 일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걸 알고 싶었지만 알려고 한다면 산박은 시은을 보게 된다. 그건 썩 좋은 일이 아니었다. 알아야 할 일, 몰라야 할 일. 물어도 될 일, 묻지 말아야 할 일. 모두 시은은 공부처럼 습득한 상태였다.

    산박과 시은의 눈이 마주쳤다. 시은은 동요하지 않고 눈웃음을 지어줬다. 산박이 다시 전단지로 시선을 옮겼다. 시은의 외모는 치명적이었다.

    “가죠. 싸게 준다는데. 충호 씨랑 시은 씨가 합의해서 목록 올리세요. 이번 주에 다 같이 가서 인당 제한된 것도 최대한 쓸어 옵시다.”

    “거기 바로 옆에 감성 저수지라고 있거든요. 거기서 낚시도 하고 야외 바비큐도 해 먹어요.”

    시은이 의견을 내자 모두가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산박은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런 휴식도 필요하다고 여겼다. 무엇보다 A급 전력인 이시은이 발의한 좋은 의견이었다. 거부할 생각은 없었다.

    * * *

    여섯 명이 모두 한차에서 내렸다. 검은색의 6인용 차량은 거대하기도 거대했으며 안전성도 뛰어났다. 차량의 위에는 밧줄까지 엮어져서 잘 묶여 있었는데, 여차하면 차 위에 짐을 묶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운전대는 강합이 잡았다. 던전을 공략하는 것에 비해서 하는 일이 적다고 느껴서 그는 부채감을 지니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매장은 정말 한산했다. 사장으로 보이는 이 혼자서 가게를 보고 있었다. 시은이 산박의 팔을 살짝 잡아당기면서 귀에 얼굴을 대고 속삭였다.

    “진짜 곧 망할 것 같은 곳이네요. 전단지만 돌리는 거 봐서는 홍보를 전혀 하지 않는 것 같아요.”

    “떨어져요.”

    촉촉하고 부드러운 시은의 볼이 목에 닿은 걸 산박이 밀어냈다. 향수 향기가 맡아졌지만, 산박은 매정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이들은 서로 눈치를 나눴다. 시은의 대시는 날이 갈수록 자극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벌써 넘어가고도 남았다. 그만큼 시은의 섹시미는 뛰어났다.

    이들은 가장 먼저 방패 피부 물약부터 샀다. 1인당 단 한 개! 총 여섯 개를 챙겼다. 9,900원 미만으로 가격이 정해져 있는 걸 900원에 산다는 건 정말이지 기분 째지는 일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미리 점해둔 것도 장바구니에 넣었다.

    ‘요정의 반쪽 날개 가루.’

    10g이 정량이고, 19,900원이나 한다. 그런데도 구매하는 이유는 1+1 행사를 하고 있어서였다. 빚이 있어도 이걸 사는 데 돈을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 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곳에서 사비를 턴다면 팀원들이 산박의 많은 돈에 의심을 할 것이었다. 돈 많은 놈은 시기받기 마련이었다. 인성 좋은 이도 언제 태도를 바꿀지 모를 노릇이었다.

    ‘혼자서 사러 왔다면 모르겠지만.’

    그렇기에 산박은 법인 카드를 긁는 오늘의 쇼핑에서는 몸을 사렸다. 내일 다시 와서 싹 쓸어 갈 생각을 지녔다. 개인 낚시터의 컨테이너 창고에 쑤셔 박아놓고 필요할 때 꺼내 쓰면 행복할 것이었다.

    부담 없이 쓰기 좋지만 효력이 좋지 않은 방패 피부 물약은 보너스인 셈이었다. 공격 쪽에 쓰기 좋은 요정의 반쪽 날개 가루는 서른 개 구매해서 예순 개를 갖췄다. 이마저도 팀 두 개를 굴리니까 그리 많은 건 아니었다.

    “너무 크게 지르시는 거 아닙니까?”

    “공격 아이템이잖아요.”

    산박이 충호의 말에 대답하며 단번에 장바구니에 가죽 주머니를 담았다. 그다음에는 치료 쪽으로 눈을 돌렸다.

    ‘이제는 생존율을 확실하게 높여야지.’

    없는 놈들을 팀원으로 영입하는 시기는 지났다. 이제는 키울 놈을 키워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도움의 손길 물약은 좋은 선택이었다.

    ‘내상 치료에 효과적이다.’

    출혈에 대한 강력한 대항력을 갖출 수 있었다. 그걸 아직도 구매하지 않은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펑펑 쓰는 사장만큼 호구도 없었다. 그런 사장이 자신의 상관이라면 많은 이들이 심장이라도 뺄 것처럼 굴지만 실제로는 그냥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통수 맞기도 좋았다. 착한 사람은 얕잡아 보기 쉽다.

    “아주 좋은 상품입니다! 하지만 이걸 구매하시면 조금 번거로운 일을 하셔야 합니다.”

    “번거롭다뇨?”

    “다른 투자사의 도움을 받아서 하는 거라서요. 신생 던전 기업에 꾸준히 도움을 주면서 함께하는 투자사입니다. 그 회사의 미팅에 참석을 하셔야 합니다.”

    “강매 같은 건 아니죠? 계약서라든가 그런 거 있잖아요.”

    주궤가 입을 함부로 놀렸다. 산박이 눈치를 주자 그가 한 걸음 물러섰다. 마음속에 담고만 있어야 할 것과 그냥 뱉어도 될 것도 구분 못 하는 모습이었다.

    ‘1레벨 던전에 잔류할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봐준다.’

    그는 2레벨이 되면 안 되지 않나요? 1레벨 기술과 주문을 많이 보유하면 산박의 기업에서 1레벨 던전 뺑뺑이를 돌 인원이었다. 산박의 눈총에 바로 물러서서는 소심하게 죄송하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실로 나약한 놈이고, 형편없는 사내였다. 그렇기에 이용 가치가 있는 남자였다.

    “미팅 참가하겠습니다. 그럼 66% 세일 맞죠?”

    “그럼요! 깔끔하게 모시겠습니다.”

    11,000원! 산박은 거침없이 쓸어 담았다. 그렇게 담아도 될 정도인가 싶었다. 진열되어 있는 서른 개를 싹 쓸었다.

    “다른 재고는 없습니까?”

    “네. 인기가 많은 거라……. 그게 전부입니다.”

    산박은 입맛은 다셨다. 그래도 알짜배기들을 싸게 살 수 있었다. 산박은 더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현재 회사의 사정이 그러했다. 산박은 부자지만 회사 자금은 적었다.

    크게 싹 긁었다. 그 절반은 산박의 사비를 털 정도였다. 산박은 아무런 말도 안 했지만 눈치 있고 사회생활 좀 해본 사람이라면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절로 저자세였고, 침묵을 지켰다.

    “여기, 미팅 관련한 팸플릿입니다. 읽어 보십시오.”

    산박은 사장이 주는 걸 하나 받아서 챙겼다. 그러고는 하던 일을 멈췄다. 팸플릿에 단단히 박혀있는 주체 투자사의 이름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하이얀 던전 투자사.’

    “귀찮은 일이 되어 버렸네.”

    “가위바위보 해서 한 명만 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

    산박의 말에 다른 이들이 시시덕거리며 농담을 던져 대었다. 산박 또한 대충 대답했다.

    차에 타자마자 강합이 단번에 신나는 노래를 틀며 외쳤다.

    “바비큐 갑시다아아아!!”

    “예에에에!!”

    모두 소리를 내질렀다. 대부분이 20대 초중반이었기에 분위기가 단번에 올랐다. 시은이 아주 살짝 뒤늦게 소리를 낸 걸 파악한 이는 없었다.

    가는 내내 시은은 산박의 눈치를 살짝살짝 살폈다. 제3자가 보면 첫사랑을 앓는 매력적인 여성으로 보였지만 실상 그녀의 눈은 그가 가만히 보고 있는 팸플릿에 꽂혀 있었다.

    ‘사건이야.’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걸 모른다? 거기에 산박이 움직인다. 가만히 있는 그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폭발적인 감정이 숨겨져 있는 것이 느껴졌다.

    ‘보고 싶다. 봐야 해.’

    “뭘 그렇게 뚱하게 보고 있어요? 그렇게 싫으면 미팅에 제가 나갈게요.”

    시은이 그렇게 말하며 단번에 산박이 쥔 팸플릿을 낚아챘다. 산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모습에 시은이 움찔했다. 순간적임에도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그건 찰나에 불과했다. 산박이 웃으며 말했다.

    “돌려주세요. 사장인 제가 해결을 해야지, 무슨 그런 데 다른 사람을 씁니까.”

    산박이 손을 뻗었고, 시은은 이를 돌려줬다. 하지만 ‘하이얀 던전 투자사’라는 이름만은 그녀의 눈에 단단히 박혔다.

    “아니, 무슨 자릿세를 받아요.”

    저수지에 도착한 그들을 반긴 것은 헐레벌떡 달려오는 웬 노인네였다. 그가 땍땍거리면서 난리를 쳤다.

    “어린 노무 쉐끼덜이……! 누군 땅 파서 돈 버는 줄 알어!”

    차에서 충호가 내리자 그렇게 소리를 지르던 노인이 갑자기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기 국유지인데 무슨 돈을 받습니까?”

    충호가 다가가자 노인네가 한 걸음 물러서며 쯧쯧거렸다.

    “내는 사람도 있다는 거지…….”

    노인은 허둥지둥 딴 곳으로 향했다.

    낚싯대는 시은이 가져왔다. 그런 취미를 가지고 있었던 때가 있었다.

    “다 중고지만요.”

    “시은 씨는 취미가 정말 많으시네요.”

    서로 하나씩 쥐고, 떡밥을 낚싯대에 꾹꾹 뭉쳐서 저수지에 던졌다. 능숙하게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영 엉망인 사람도 있었지만, 가장 큰 물고기를 낚은 건 엉망인 사람이었다.

    “우화아아아악!”

    무려 60cm가 넘는 붕어를 낚은 주궤가 펄쩍펄쩍 뛰었다. 그의 인생에 몇 없는 1등 자리였다.

    손질은 강합이 하고, 라면에 넣었다. 바비큐에 해물라면 그리고 술까지. 시간이 금방 흘렀다. 강합은 혼자서 술을 안 마셨다.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거짓말이다. 딱 한 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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