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하이얀 던전 투자사>
산박은 문자를 확인했다.
‘하이얀 던전 투자사?’
던전 사업에 한탕 뛰는 놈들의 문자였다.
[귀사의 개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세종시에서 개업하는 던전 기업들을 상대로 다양한 혜택과 커뮤니케이션의 증가를 도모하는……]
온갖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산박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입 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돈을 얼마나 썼느냐, 뭘 원하느냐, 진심을 무엇으로 보여 주느냐였다. 단순 문자 한 통은 진심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었고 돈을 많이 쓰는 것도 아니었으며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말 그대로 헛소리로 치부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냥 그렇게 지나치지는 않았다. 산박은 곧바로 정보를 검색했다.
‘쯧.’
투자사 회사 홈페이지가 있었지만 썩 괜찮은 정보는 없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의심스러웠다. 인터넷의 한계인 셈이었다.
‘송유나가 있었다면 정보꾼의 실력을 맛봤을 텐데.’
그녀는 살인 사건에 휘말려서 재수 없게 죽어 버렸다. 인터넷 곳곳을 조사해 봤지만 쓸 만한 건 나오지 않았다.
‘지나치게 깔끔한데.’
기업 차원에서 정보를 단단히 관리하는 듯했다. 이러면 뒤가 켕기는 놈들이 100%다. 개같은 기업일수록 아주 비밀스러운 법이었다.
‘봉사 활동 하는 것도 있지만…….’
그런 걸로는 이 회사가 좋은 회사인지 알 수 없었다.
의문의 투자사의 문자를 산박이 찾아보는 이유는 이들이 자신의 회사를 특정하여 접근해서였다. 어디서 장난질을 걸지 몰랐다. 혹은 ‘태산박’을 특정하여 저격하기 위해서 조사를 할지도 몰랐다.
그건 곤란했다. 산박은 드루이드 사과 과수원을 비롯하여 잔잔벼락의 작업장까지 운용하고 있었고 제법 돈이 들어오고 있었다. 돈 냄새를 풀풀 풍기는 게 산박이었다.
‘적당한 선에서 관심 끊게 만들어야겠어.’
산박은 캐주얼하고 추레한 옷을 입고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장단을 맞춰서 겁쟁이처럼 돈에 덜덜 떨며 아무것도 안 하고 현상 유지에 정신 나간 놈으로 보이면 그만이었다.
‘수십 개의 낚싯줄에서 나 하나만 건든 것도 아닐 테니.’
상대는 전화를 제법 늦게 받았다.
―예, 하이얀 던전 사업부 사장 용아연입니다.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제법 젊었다.
‘사장? 소규모인가?’
첫 전화부터 사장이라니, 황당했다.
―여보세요?
“아, 예. 투자 관련된 문자를 받아서요.”
―아~ 그러시구나. 담당자가 지금 없어서요.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예. 옥시모론 던전 공략 기업인데요.”
사락, 사락. 탁.
서류를 뒤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산박 씨, 맞나요?
“예. 접니다.”
―이렇게 연락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유, 아닙니다. 사장님께서 직접 받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통화로 할 게 아니라, 우리 사무실로 찾아오시는 건 어떠세요?
“예. 예. 위치가 어디시죠?”
위치를 받은 산박은 연신 굽신거렸다. 그리고 그건 용아연이 착각하기 쉽게 만들었다.
‘어지간히도 돈이 궁하구나.’
산박의 팀 공략률은 상당하다.
―실력 있는 분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까 제 마음이 많이 약해지네요.
“아닙니다. 하하.”
그 말에 산박은 저자세에서 살짝 고개를 들었다. 아무래도 자신을 고평가하는 듯해서였다. 그럼 전략을 수정해야 했다.
‘단순 낚시가 아니다. 나와 내 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다.’
사장이라는 놈이 일개 신생 기업의 팀장을 높게 쳐준다? 빈말이라도 우습다. 지위가 확실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고로 산박의 기업에 대해서 이미 보고도 받았다는 뜻이었다. 가벼운 낚시가 아니었다. 활시위로 자신을 겨누고 있었다.
‘그렇다면 형편없고 겁 많은 놈보다는 욕심 많은 놈이 좋겠지.’
욕심이 너무 많으면 저쪽도 손절할 수밖에 없다. 무이자로 3억 달라는 놈과 사업을 할 수는 없었다. 산박은 곧바로 움직였다.
전화를 끊자마자 용아연은 빙긋 웃었다.
“쉽게 되겠네. 박예준 불러.”
“예!”
상대 우두머리가 남자일 때 사장은 용아연이다. 반대로 상대 우두머리가 여자일 때는 박예준이다. 이번 먹잇감은 남자였기에 용아연이 사장이었다. 박예준은 사업부 과장이다.
소규모에 사장, 과장 거창했지만 소규모라도 투자 금액이 상당하다는 게 하이얀 던전 투자사의 특징이었다. 그리고 세간이 잘 주목하지 않는 중소 투자사였다. 상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들을 찾아올 것이고, 자신들은 그런 상대를 요리해서 집어삼키면 그만이었다.
박예준은 금방 내려왔다. 여자들과 신나게 놀아나면서 언제나 돈이 궁핍한 그였다. 여자 속옷에 돈을 끼워주고 싶어서 일감을 달라고 매일 칭얼댔다.
“온대?”
“그래. 돈이 궁한 놈이야. 하지만 던전 공략 실력은 상당하고, 단기간 내에 2레벨에 올랐어.”
“뒷배가 있는 건 아니고?”
“고아 새끼야. 거기에 활동지는 부동 지구고.”
“에미 애비 없는 병신 새끼를 왜 잡아 와? 돈이 되겠어?”
“소속해 있는 던전 사용자만 여섯 명이야. 목줄 채워서 팔면 돼.”
“올~ 최소 600만 원이네.”
“제대로 된 놈이면 두당 200이니까, 실력 좋은 놈이 끼어 있기를 빌어야지.”
박예준은 비비 크림을 바른 얼굴을 다시 점검하며 놈에 관해서 물었다.
“어떤 놈이야?”
“돈이 제법 궁한가 봐. 던전에 돈을 너무 부었겠지. 그래서 제법 저자세였어.”
“전화로 상대를 어떻게 다 알아? 그리고 또?”
“그거면 충분해. 고아 새끼니까, 계약서도 꼼꼼히 보지 않을 거야.”
“여자 하나 들여보내 줘. 못 배운 새끼들은 어디서든 사타구니를 세우거덩.”
“내가 들어갈 거야.”
“옷 갈아입는 게 어때?”
“사무실에서 무슨 창녀 콘셉트야? 미쳤어?”
“아! 못 배운 것들은 그런 거 상관없이 발딱 세운다니까.”
서로 의견이 부딪쳤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그냥 서로 하고 싶은 걸 할 뿐이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던전 사용자의 목에 목줄을 채워서 불법적으로 돈을 벌어 왔다. 해외 던전에 마구잡이로 들여보내서 불법적으로 던전 상품을 가져와 장물로 삼는 해외 불법 던전 공략 카르텔에 보내는 것이다.
‘처음에는 돈을 갚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겠지.’
그 뒤로는 마약과 여자에 현혹되고 카르텔의 일원이 되어서 범죄에 소모된다. 그 끝은 교도소였다.
“난 미국 애들이랑 거래하는 게 좋더라. 거기는 달러를 주잖아.”
교역품을 팔듯이 던전 사용자를 빚으로 묶어서 보낼 때는 어디에 보내는지도 중요했다. 환율은 현실이었다.
* * *
입었던 옷을 벗고 정장으로 다시 차려입은 산박은 왁스를 잔뜩 묻힌 머리를 빗으로 쫙 빗어 넘겼다. 올백 머리에 정장은 아주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었다.
‘모두 검은색으로.’
단번에 차려입고, 셔츠는 흰색으로 입었다. 와인색과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정석을 추구했다. 구두 굽은 조금 높은 걸 신었다. 오랜만에 신는 것이었지만 손질을 잘해 두었기에 반짝였다. 다시 한번 손질을 해주고 신었다. 그리고 곧바로 집 밖을 나섰다.
택시를 불러서 최대한 빨리 사무실로 향했다. 상대에게 자신이 급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놈들은 오랜만에 제대로 된 진상을 마주할 터였다. 쥐뿔도 없으면서 돈 쓰는 놈인 셈이다.
‘이것으로도 안 떨어져 나가면 어쩔 수 없지.’
다른 사람의 이목을 피하는 놈들이다. 죽어도 찾는 이 하나 없을 것이고, 같이 일하는 놈들은 돈 때문에 함께 하는 자들일 터였다. 그리고 그놈들도 결국에는 불법적인 일을 한다. 그런 놈들은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사람 죽는 게 어디 한둘인가? 평범한 사람과는 사고방식 자체가 달랐다.
산박은 벌써 불법적인 냄새를 맡았다. 그도 그쪽에 발을 깊게 담근 자였다. 그가 그들과 다르게 인간성을 같이 보유하고 있는 것은 모두 그의 죄악을 움켜쥐고 떠난 신부님 덕분이었다. 책임의 양도는 인간에게 너무나도 쉬웠다.
“반갑습니다. 박예준 과장이라고 합니다.”
“좁네요.”
“예?”
악수하면서 산박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예준이 되묻자 산박이 인상을 찌푸렸다.
“사무실이 좁다고요.”
“아…하하.”
예준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에 산박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뭐 하세요? 안내하세요.”
“예.”
그는 일단은 한 수 접어주며 산박을 접대했다.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산박은 거침없이 그곳에 앉았다.
“투자…받으려고 오신 거 맞으시죠?”
“예. 투자 안 해줍니까? 그러려고 부르신 거 아닙니까.”
“해드려야죠.”
‘뭔 놈의 새끼가 말투 싸가지가 이렇게 없어?’
박예준은 산박을 훑었다. 날카로운 인상은 아니다. 오히려 평범했다. 하지만 눈썹도 정리하고, 피부 잡티도 없었다. 스타일도 올백에 올 블랙 정장이다. 극한의 단련을 하는 던전 사용자답게 옷맵시도 살아 있었다.
‘향수. 돈 없다고 저자세라더니, 사장 앞에서만 그랬구나. 씹새끼가…….’
“어느 정도를 원하십니까?”
“초짭니까?”
“예?”
“초짜냐고요.”
“아뇨…….”
“그럼 제시를 해줘야죠. 이거 참……. 차도 한잔 안 주고, 엉망이네…….”
산박의 말에 예준의 목에 핏대가 서렸다.
“커피? 아니면 녹차?”
“커피.”
반말에도 산박은 쿨하게 넘어갔다. 그게 더 짜증 날 것이었다.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마시는 산박에게 예준이 여러 가지 예시를 들어줬다.
“저희 사업부에서 지원하는 아이템은 이렇습니다. 대부분 소비템인데, 신생 던전 기업에는 좀 부담스러운 것을 저희가 딱! 받쳐 드립니다. 그뿐만 아니라 1레벨 풀 장비를 대여해 드립니다. 3년 약정으로 1개월에 10만 원만 내시면 됩니다.”
10만 원. 제법 가볍게 들린다. 하지만 ×36을 하면 360만 원이었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산박은 대충 서류를 훑었다. 그 모습에 예준은 더욱 신이 났다. 진짜 계약서를 볼 줄 몰랐다. 받자마자 계약서를 대충 보면 삼류, 꼼꼼히 보면 이류, 바로 집어넣고 다음에 보자며 변호사 찾아가는 놈이 일류다. 산박은 삼류에 속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도 산박은 볼 거 다 보고 있었다.
‘파손 시 수리비 별도 청구. 매년 상황에 따라서 약정 금액 시세에 따라서 조정 가능.’
그 외에도 온갖 독소 조항이 가득했다.
‘진짜 한 놈만 걸리라는 식이네.’
소비 아이템은 더했다. 원할 때 주는 게 아니라 주는 족족 받아야 했다. 강제로 떠넘기는 셈이었다. 거기에 이자는 법정 이자율의 두 배였다.
‘막장 중의 막장이네.’
뭣도 모르는 사회 초년생, 운 좋게 던전 기업을 창업한 젊은 던전 사용자가 이들의 고객인 듯싶었다. 산박은 대충 보고 계약서를 덮었다. 더 볼 것도 없었다.
“뭐가 이렇게 어렵습니까? 장난칩니까?”
“예? 장난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투자하려면 제대로 투자해야지, 이거 무슨 다단계도 아니고…….”
“다단계라뇨. 말씀이 심하십니다.”
“됐고, 3억 무이자 5년으로 땅겨주쇼. 확실하게 갚아줄 테니까.”
“이거, 투자의 의미를 잘 모르시는 듯합니다.”
그 말에 산박이 손에 깍지를 끼며 다리를 꼬아서 책상 위로 올렸다.
“어허, 그쪽이야말로 투자의 의미를 모르는 것 같은데… 투자란 것은 말이야, 상대가 커지면 커질수록 좋은 거 아닌가? 3억 받는 대신에 기업 지분을 10% 정도 주면 돼. 5년 뒤에 대기업이 되어 있을지 누가 알아? 그럼 대박 터지는 거지. 아냐?”
“이런 미친놈이…….”
그 말에 산박이 다리로 테이블을 쾅 하고 걷어찼다.
“이 새끼가! 어디서 욕질이야!”
“이게 무슨 소란이에요!”
소란에 용아연이 개입했다. 신호를 보내야 할 예준이 신호가 없어서 뭔가 잘못 돌아간다고 느꼈는데 이 꼴이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산박은 그대로 쫓겨났다. 그는 씩씩거리며 길에서 고함을 몇 번 내지르다가 떠났다. 이를 창문을 통해서 본 아연은 인상을 썼다. 그녀에게 예준이 말했다.
“미친 새끼야, 저거. 죽여 버리겠어.”
“너도 진정해. 다 진정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냉수를 한 잔 마시고 예준이 있었던 일을 말해줬다.
“포기하는 게 나아. 저런 병신은 안 돼. 그냥 안 되는 새끼야.”
“뭔데 네가 그렇게 정해? 그리고 생각보다 돈 씀씀이가 큰 놈이야. 향수에 정장까지. 제대로야. 한 번만 뚫으면 돼.”
“왜 그렇게까지 집착하는 거야?”
그 말에 아연이 새로운 정보를 그에게 건네줬다. 파일을 확인한 예준의 표정이 확 변했다.
“드루이드? 드루이드라고?”
“슈트 입고 머리에 왁스 바르고 다니는 드루이드 봤어?”
“아니……. 다 벗고 자연을 외치는 미친놈은 봤어.”
“제대로 이용해볼 만해. 부채랑 함께 연구 시설에 넘기면 억이야, 억.”
‘돈에 묶인 드루이드라?’
“X나게 짜릿한데.”
“마트쟁이한테 연락해. 오랜만에 쇼핑 좀 해보자고.”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