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3화 (123/270)
  • 123화

    산박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제대로 순중가를 쥐 잡듯이 잡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절 여기까지 부른 겁니까?”

    “죄송합니다.”

    그가 고개를 조아렸다. 산박은 젊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혈기가 넘치는 나이였다. 그런 놈이 사업을 시작했고, 자신을 나무라고 있었다. 최대한 조용히 보내는 게 상책이었다. 그걸 알기에 산박은 느긋하게 순중가에게 갑질을 해대었다.

    “트럭 타고 다니는 사람, 배 타고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

    “예. 맞습니다.”

    “이 사회라는 게 그렇습니다. 언제든지 대체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저도 그렇고요. 근데, 잔잔벼락의 무기는 상업적으로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내구력이 잘 닳거든요. 충전하는 데 한계가 있으면서 1레벨 던전에서는 든든한 무기입니다.”

    “예, 예……. 죄송합니다.”

    “그런 무기를 유통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아닙니까?”

    “당연하신 말씀입니다.”

    “빼앗기기 싫으면 알아서 잘하셔야 하는 건 제가 아니라 중가 씨입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믿겠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산박과 중가가 서로 잔을 부딪쳤다. 중가는 언제든지 자신이 버려질 수 있음을 인지했다. 그렇기에 산박은 당근을 제시했다.

    “전 던전 사용자입니다. 던전 공략에 집중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문제가 없다면 계속해서 중가 씨에게 상품을 내어줄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렇게 중가 씨가 요청했을 때 찾아온 겁니다.”

    산박이 잔을 들이켰다.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고, 믿고 맡기고 싶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문제가 없으면?”

    “…계속 함께한다…입니까?”

    산박이 웃었다. 역시 없는 놈들이 눈치는 빠르다. 채찍과 당근은 상대가 어떤 인간인지 명확하게 밝혀 주었다.

    거기에 그는 ‘힘없는 자’였고, ‘책임감’이 있는 아버지였다. 평온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모험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모험하기에는 그 손에 쥐어지는 돈이 제법이었다. 산박이 욕심을 부리지 않아서였다. 그만큼 돈을 안 가져가는 CEO는 없었다.

    ‘독립할 자금을 주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던전 상품에는 해당 사항이 없지.’

    돈 만지는 데 도가 튼 박조조에게 절반, 산박에게 강한 호감을 지닌 강합에게 절반의 레시피를 알려 주었다. 다른 이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겠지만, 비율까지는 까막눈이었다. 딱 보고 아 저건 몇 대 몇이구나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불안 요소는 있다.’

    그런데도 산박은 레시피의 일부를 숨기지 않았다. 독점하지 않았다. 만약 그러려면 한 주에 한 번은 직접 파쇄 작업을 해야 했다. 갈대 씨앗이든 뭐든 직접 기계로 빻아서 줘야 하는데 그것도 시간이다. 다른 직업에 비해서 전수할 게 없는 드루이드였기에 지닌 기술과 주문의 숙련도를 높이는 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산박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깨우치고 또 깨우쳐도 부족했다. 그는 혼자였고, 도움받을 드루이드는 없다. 다른 드루이드들은 세상을 등지고 자연인처럼 살아갈 뿐이었다. 가르쳐 달라고 해도 거절할 공산이 크고, 레벨이 높은 드루이드도 없었다.

    ‘무시해도 괜찮다.’

    거기에 더해서 산박이 지닌 평판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와 적이 되는 건 썩 좋은 기분은 아닐 것이었다. 뒤로는 욕해도 앞으로는 같이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수완이 있다는 건 그런 걸 가능하게 했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수완이 없으면 병신 머저리 취급 당하기 일쑤였다. 갑질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 한다.

    반면 산박은 언제든지 돈을 무기로 삼을 수 있었다. 그와 사업 관계를 맺는 이들은 산박의 기분을 맞춰줄 수밖에 없었고, 눈치를 보기 마련이었다. 틈틈이 사업에 대해서 언급을 하는 것도 베스트였다. 세뇌되듯이 산박을 떠올리면 그와 관련된 돈과 사업이 떠오르기 마련이었다.

    그런 방식으로 산박은 많은 로열티가 보장된 잔잔벼락 사업을 안정화시켰다. 이는 날이 갈수록 더 단단해질 것이었다. 관련자 중에 ‘리더’ 혹은 ‘보스’ 노릇을 할 놈이 없어서 내분이 일어날 조짐도 없었다. 완벽했다. 외부에서 수작질을 벌이지 않으면 괜찮았다. 그리고 대련에서의 일은 순중가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었다.

    ‘꼬리 자르기.’

    외부 세력이 잔잔벼락의 무기 사업을 노린다면 꼬리를 자르면 그만이었다. 서만주에서 세를 잡은 놈이 대한민국 내에서도 세를 가지고 있다? 그런 경우는 잘 없었다. 거기에 국제 기업이라면 더더욱 잔잔벼락 때문에 영향력과 돈을 사용하지 않을 터였다. 다른 알짜배기 산업이 많기 때문이었다.

    고로 산박의 잔잔벼락 산업이 타격을 받으려면 손에 꼽는 가능성의 괴물을 이겨야 했다. 현실에서는 언제나 뜬금없이 사건이 터지지만 동시에 이상하리만치 평화로울 때도 있었다.

    * * *

    팀 옥시모론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잔잔벼락 사업이 적정 궤도에 오르자 거기서 손을 떼고 관심을 돌린 산박 탓이었다.

    예정된 변화이기도 했다. 기존을 유지하면 돈을 벌기가 마땅찮기 때문이었다. 고로 팀의 수입에 변화를 꾀해야 했다. 산박은 돈을 벌어들이고 빚도 차분히 갚아 나가고 있지만 다른 이들의 수입은 고정된 상태였다.

    ‘2레벨 던전 가자고 돈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정도로 큰돈을 주기에는 그들과의 인간관계가 대단히 돈독하지 못했고, 관계가 깊다고 해도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상대에게 큰 위기가 봉착한 것도 아닌데 수천만 원을 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산박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산박, 시은, 충호, 탕만, 주궤, 강합까지 여섯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옥시모론의 임시 팀원은 탕만과 주궤, 둘뿐이었다. 강합이 웃는 낯으로 모두와 인사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머뭇거렸다. 강합이 던전 공략을 그만뒀다는 걸 본인 입으로 들어서였다.

    “1레벨 분할 팀으로 팀을 운영하겠습니다.”

    “나눠서 던전 공략을 하자는 건가요?”

    시은이 보충 질문을 했고, 산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시은은 훌륭한 비서였다. 이미 산박과 한 번 상의를 한 것임에도 처음 듣는 것처럼 굴었다. 아주 잘해주고 있었다. 괜히 A급 인재가 아니었다. 팀의 윤활유가 될 수 있었다.

    “예. 나누어질 팀원은 제가 짜놨습니다. 일단 충호 씨랑 시은 씨가 팀장이 될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모두 짐작할 수 있었다. 전사인 탕만은 시은에게, 주술사인 주궤는 충호에게 붙게 된다.

    “팀장님은요?”

    산박은 어깨를 으쓱했다.

    “전 저 나름대로 살길을 찾아야죠. 던전 수익을 생각하면 이렇게 하는 게 낫습니다.”

    “그러다가 팀장님만 3레벨 되시면 어쩌려고요.”

    그 말에 산박이 웃었다.

    “그럼 더 좋죠.”

    동시에 산박이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서 각자에게 건넸다.

    “이게 뭡니까?”

    충호가 묻자 산박이 대답해 줬다.

    “표준 근로 계약서입니다. 고용 노동부에서 바로 인쇄한 겁니다.”

    “진짜 사장님이 되는 거예요? 대박!”

    탕만이 호들갑을 떨었다. 그의 말대로 비로소 산박은 제대로 던전 사용자들을 기업이라는 이름으로 묶을 생각을 가졌다. 진작 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문서 작업을 할 사람을 고용할 돈이 없어서였다.

    ‘잔잔벼락으로 생기는 돈으로 사람 하나 고용하는 건 너무 쉽다.’

    그게 아니더라도 과수원 사업으로 들어오는 돈도 제법 됐다. 경리 하나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거기에 강합이 던전 공략을 은퇴했으니 사무실을 지킬 남자도 있었다.

    “던전 기업 이름 짓고, 사무실은 세종시에 놔둘 겁니다. 기업이 되면 6인승 이상 차량도 세금 지원 받아서 굴릴 수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은 언제나 진흥되어야 했다. 그리고 던전 사용자는 던전 상품을 토해내는 귀중한 인력이었다. 돈을 직접 벌기 때문에 자동차 기업이 눈독을 안 들일 수가 없었다. 그 돈을 어떻게든 쓰게 만들어야 했다. 거기에 한국에서는 잘 선호하지 않는 6인승 이상의 차량 판매에 지원금을 얹는 건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선택이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혜택이 존재하는 게 던전 기업이었다. 기업이 되어야 세금을 더 확실하게 걷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 위한 혜택이고, 그게 더 이득이었다. 서로 윈윈하는 셈이었다.

    “1레벨 풀 장비를 맞춘 팀원이 늘어났고, 거기에 던전을 둘 이상 돌게 되면 거기서부터는 기업으로 묶여야지 손해를 안 봅니다.”

    마지노선은 정해져 있었다. 이를 구분 못 하고 뻗대면 내년에 낼 세금 앞에서 눈물을 쏟게 된다. 그렇게 산박은 분위기를 한껏 업시켰다.

    “이제부터는 법인 카드로 최대한 경비 지출하세요. 식비는 무조건 법인으로 긁으셔야 합니다.”

    산박은 개개인의 이름이 쓰인 법인 카드를 나눠줬다. 모두 일련번호가 달랐고, 지출을 알 수 있었다.

    “네에!”

    모두 기분 좋게 소리를 냈다. 수익 배분부터 다시 정해야 했지만 무리 없이 산박의 말을 따랐다. 다들 잘 몰라서였고, 시은과는 이미 합의가 된 상태였다.

    “회사이기 때문에 수입은 주급으로 할 생각입니다. 모았다가, 나눠 줍니다. 그걸 도와줄 사람이 여기 강합 씨입니다. 다들 아는 얼굴이죠?”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탕만이 박수를 열렬하게 쳐주자 다른 이들도 박수를 쳤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비교적 평범하게 이 기회를 그냥 보내 버렸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산박이 음울한 것을 하나 끄집어냈다.

    “앞으로 우리들은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할 겁니다. 1레벨을 팀이 나뉘어서 공략하는 만큼 지급 소비 아이템도 몇 종 추가할 생각입니다. 그 외에 따로 팀원의 기여도에 따라서 활동금을 지급할 생각입니다.”

    “기준은 어떻게 됩니까.”

    산박은 손가락을 세 개 들어 올렸다.

    “간단합니다. 등급은 A, B, C고 기준은 제가 결정합니다.”

    “전 무슨 등급인가요?”

    “시은 씨는 A 등급입니다.”

    모두가 궁금해했고, 산박은 거침없이 말했다. 비밀로 해봤자 비밀이 아니게 될 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미리 말해서 자신에 대한 불만을 다른 이에 대한 열등감과 우월감으로 전환하는 게 좋았다.

    충호도 A급이었고, 탕만은 B급이었다.

    “저, 저는요, 팀장님?”

    매주궤가 기대심에 말했지만 산박은 눈을 감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매우 장난스러운 제스처였다. 하지만 현실은 매정했다.

    “C 등급입니다. 좀 더 노력을 하셔야겠습니다.”

    “나 혼자 C…….”

    주궤는 쇼크를 먹은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산박이 잔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매정하고 냉정한 평가입니다. 누구든지 등급 변경이 가능합니다. 그 기회를 잘 잡으셔야 할 겁니다. 상대적 평가이기 때문에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팀장님은 무슨 등급인데요?”

    “전 당연히 A죠. 전방에서도 활약하고 후방에서도 활약 가능하지 않습니까?”

    서로 때아닌 능력 자랑을 하고 나서 산박은 몸을 일으켜서 잔을 들어 올렸다. 잔이 비어있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술을 따라줬다.

    “곧 사무실도 가지게 될 겁니다. TDH 건설과 정부가 하는 임대 사업 때문에 손쉽게 가질 수 있죠. 그래도 돈이 들어가지만요. 이 경비는 빠르게 사라질 겁니다. 더 높은 레벨의, 더 많은 던전 사용자를 얻게 될 겁니다. 아닙니까?”

    “맞습니다!!”

    모두 소리를 지르며 서로 잔을 부딪쳤다. 술이 바닥 곳곳으로 튀었다.

    * * *

    던전 기업은 사람 장사다. 그렇기에 던전 기업을 이끄는 이들은 잔혹한 이들이 많았다. 서류 하나에 담겨있는 숫자 놀음에 사람 목숨을 쉽게 여기는 놈들이었다. 세종시에서 활동하는 한 회사는 그런 ‘던전 기업’을 노렸다.

    ‘하이얀 던전 사업’. 돈과 힘으로 신생 던전 기업의 고혈을 빨아먹고 척수의 골수까지 허겁지겁 빨아서 먹는 놈들이었다.

    그들의 사무실은 탁 트인 사거리에서 150m 떨어진 골목길에 있었다. 웅성거리는 사거리에 비해서 사람이 없고 주위가 한산한 곳이었다.

    주차하고 있는 차량만 가득한 곳에서 용아연이 계단을 올라갔다. 복도를 올라가며 자연스럽게 담배를 꺼내서 불을 지폈다.

    탕탕탕!

    용아연은 광택 하나 없는 철문을 두드렸다. CCTV가 설치된 곳이었음에도 철문은 꼼짝도 안 했다.

    스거겅, 텅!

    스거겅, 텅!

    묵직한 잠금장치를 여는 소리가 두 번 토해지고 나서야 철문이 열렸다. 철문의 굵기는 2cm. 무식했다.

    “아, 또 담배. 사장님, 진짜 미쳤습니까?”

    “그걸 말하는 네가 더 미쳤다.”

    용아연이 피우던 담배를 건네주자 그의 부하가 냉큼 한 입 빨았다. 그리고 바로 뒤따라서 사무실로 향했다.

    “이번 주 신생 던전 기업들입니다.”

    “작업 칠 만한 건 선별했고?”

    “예. 세 곳이 있습니다.”

    다리를 꼰 채로 소파에 앉은 용아연이 던전 기업 세 곳을 훑었다. 전부 공통적으로 자금이 후달리는 곳들이었다.

    “병신아, 이건 왜 집어넣었어? 가만히 놔둬도 사라지겠네.”

    하나는 볼 것도 없이 탈락했다. 팀장의 경력이 수준 낮았다. 팀장이 대단치 못하면 소규모는 금방 몰락한다. 돈도 세력도 없으면 실력이라도 있어야 했다.

    “이건 딱 봐도 뒤를 봐주는 곳이 있네. 신생 기업이 사무실을 제 돈 주고 임대해? 미쳤어? 이것도 확인 안 해?”

    “죄송합니다. 피드백 올리겠습니다.”

    마지막 한 장을 아연이 훑었다. 그녀가 긴 검지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돌돌 굴렸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딱이네. 팀장 경력에 비해서 세력 성장세가 뛰어나. 이런 경우 욕심이 있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