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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화 (121/270)
  • 121화

    * * *

    이시은은 강력계 형사라는 놈들을 잘 알았다. 그놈들은 세 부류로 나뉘었다. 경력을 위해서 혹은 덩치가 커서, 그냥 떠밀려서 1년 혹은 2년 단기로 온 놈들. 뒷돈을 먹기 위해서 제대로 한탕 하려고 온 놈들. 그리고 그 두 부류에 속하지 않은 놈들이 있었다. 이시은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며, 가장 싫어하는 부류였다.

    “어서 오십쇼!!”

    한반도의 국제적 던전 시장과 수많은 기업이 모여 있는 당진 도시. 그곳의 골목길의 좁은 곳에 테이블 하나 두고 앉아서 카드놀이를 즐기던 이가 시은을 보고 냉큼 고개를 숙였다. 사람을 기억하는 데 제법인 놈이었다. 거기에 젊다. 흥신소의 막내로 끝날 놈이 아니었다.

    시은은 웃어 보였다. 머리 스타일도 화장법도 모두 달랐다. 네일도 하고 손목에 간단한 스티커 문신도 했다. 남자와는 현격히 질과 양이 다른 변장법이었다.

    “사장님은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올라가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하며 막내가 단파 무전기의 스위치를 눌렀다가 떼기를 반복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신호가 갔다.

    당진에 있는데 흥신소 이름은 엉뚱하다. ‘서초 아파트 흥신소’. 서울의 불륜을 주름잡던 사설탐정의 사무실이 여기까지 흘러들어 왔다. 용케도 판타지 쇼크의 여파를 피했다. 알 만한 사람은 모르고, 제법 알아야지만 이곳에 올 수 있었다. 나이가 들다 보니 돈맛을 안 흥신소 사장은 양을 줄이고 질을 추구했다.

    서류를 받아 든 시은은 그 자리에서 확인했다. 상대는 거리낌 없이 이를 기다렸다. 하품하고, 술을 마시기도 했다. ‘일’이 끝났으니 해이해진 모습이었다. 평상시 모습만으로도 ‘위험한 일’은 맡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권력자나 기업의 뒤꽁무니는 쳐다도 안 보는 흥신소였다.

    서류는 형사 두 명의 한 달간 행보를 보여주고 있었다.

    “사장님이 보기에 송헐기 경장과 송포변 순경은 어떤 형사인가요?”

    그 말에 이름 모를 탐정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고객에게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기회로 삼을 만한 이야깃거리였다.

    “고객님, 이 흥신소라는 게 경찰과 가장 자주 부딪치는 곳입니다. 한국은 더해요. 자격 없는 것들이 뭘 하려고 하는 걸 정말 싫어합니다. 주제를 알라는 겁니다. 그중에서도 형사, 강력계 형사를 우리 사이에서는 진또배기, 신토불이라고 부르길 좋아합니다.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니지만, 한국에 특히나 많거든요. 박봉인데 조용히 이 바닥에 목숨 거는 놈들 말입니다.”

    그는 술을 단숨에 들이켜고 그대로 담배를 피웠다. 흥신소 운영하는 사람이 형사를 입에 담으면 절로 술과 담배가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대한민국은 대한 제국 시절부터 사설탐정을 쥐 잡듯이 잡았다.

    “총 안 들고 깡패 새끼들, 위험한 미친놈들 잡으러 나가는 정신 나간 것들이 형사입니다. 대답이 되었습니까?”

    시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모습은 그를 자극하기에 좋았다.

    “흐흐흐. 기분 나쁠 겁니다. 사회 정의, 가장 잘 구현하는 게 강력계 형사 아닙니까?”

    세상에는, 사회에는 생각 이상으로 악질인 놈들이 많았다. 그런 놈들은 어디에서나 나타난다. 흥신소 또한 불법을 자행하는 범죄 단체에 불과했다. 이제 불륜은 국가가 상관해야 할 일도 아니었다.

    “고객님, 고객님도 저처럼 이것저것 검은 거 손에 좀 묻히고 살게 되면 이 형사란 새끼들이 더 무서울 겁니다. 이 새끼들은, 죽어야지만 멈추거든요.”

    “죽어야지만 멈춘다…….”

    “예. 총 없이 범죄자랑 싸우는 새끼들인데 다친다고 뭐가 바뀌겠습니까?”

    그가 일어나더니 서류철을 하나 건넸다. 시은이 이를 열어봤다.

    “매년 공상(公傷) 경찰 공무원들 숫자입니다. 항상 공개하고 있죠. 누구나 열람할 수 있습니다.”

    교통사고, 안전사고……. 사망자까지 특별히 출력되어 있었다.

    “매년 수백 명이 크게 부상을 입고, 심하면 죽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 새끼들은 그래도 안 멈춰요. 불도저예요, 불도저. 하루 열여덟 시간 사건 해결하는 데 목숨 거는 괴물 새끼들이죠.”

    그건 도박과 다른 게 없었다. 단지 결과만 다를 뿐이었다. 돈이라는 이름 앞에 불구덩이 속으로 내달리는 도박꾼처럼 정의라는 이름 앞에 불구덩이 속으로 내달렸다.

    “물론 모든 형사가 이렇진 않죠. 근데 고객님이 조사해 달라고 말한 이 두 명의 형사는 진또배기들입니다. 돈 안 줘도 사건에 매달리고 시간 쏟아붓는 놈들입니다. 미친놈들이죠.”

    공무원이 성과를 추구하는 게 나쁘다는 뜻이 아니었다. 공무원 주제에 커리어에 목숨 거는 게 나쁘단 소리였다. 그럴 거면 차라리 변호사나 주식을 하는 게 나았다. 그건 시간을 쏟는 만큼 성공 가능성이라도 커진다. 상위 1%의 커리어를 향한 질주를 박봉 형사 짓 하는 데 꼴아 처박는 짓이니, 황당할 노릇이었다.

    “그런 걸 괴물이라고 부릅니다.”

    시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헌데, 그 형사 두 사람은 왜 조사합니까? 한 달 동안 지켜봐도 건질 게 없던데요.”

    “그래서 의뢰한 겁니다. 깨끗한 사람인지 확인해야 해서요.”

    시은은 그가 착각하게 하고 난 다음에 흥신소를 떠났다. 사장은 그녀의 뒷모습을 창문으로 확인했다. 아래에 있던 막내가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무전을 보내왔다.

    “어땠냐?”

    ―예, 형님. 너무 무덤덤합니다.

    “X발, 아무래도 이상한 년 만난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몰라.”

    ―예?

    “모른다고, 이 새끼야.”

    이시은은 15분이나 먼 곳에 차량을 주차해 놓았다. 어지럽게 움직이고 다시 사거리를 한 바퀴 돌기도 하며 미행이 있는지 확인한 후에 유료 주차장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며 시은은 결국 한 명을 더 죽여야 함을 깨달았다. 한 달 평균 주 90시간을 형사 일에 몰두하고 있는 형사 두 놈은 결국 노력과 운으로 자신에게 닿을 가능성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들을 죽이는 건 하수.’

    시은에게 닿았기에 미뤄둬야 한다. 고로, 전혀 엉뚱한 자를 죽여야 했다. 그녀와 관계없는 자를 세종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죽여야 했다. 다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살인자가 완벽한 살인을 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사람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노력이 필요했다. 온종일 차를 타고 ‘목표’를 ‘때’에 맞춰서 딱 맞아떨어져야 살인을 할 수 있었다. 엄청난, 범인(凡人)들은 감히 맨정신에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리스크를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평범한 놈은 안 돼.’

    이미 캐리어 케이스라고 거창한 이명까지 생겼다. 전담 팀이 만들어져 있을 것이었다. 거기서 두 사람을 손 떼게 하는 건 평범한 희생자로는 불가능했다.

    잔잔히 고민하던 시은은 곧 한 명의 표적을 찾아냈다.

    ‘박서후.’

    자신에게 제법 치근거렸지만 다른 이에게도 치근거리는 놈이었다. 시은이 워낙 철벽을 두르자 이제는 연락도 안 했다. 매력적이면서도 쉽게 살을 섞는 다른 여자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적패 네크로맨서라면 그런 게 가능했다. 파란만장하고 유복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다.

    ‘당장 죽일 수 있다.’

    시은의 곁에 확 들어올 것 같은 무서운 추진력과 멍청함을 지닌 자였기에 언제든지 죽일 수 있도록 조사를 마친 상태였다. 시은은 세 번의 현장 검증을 다시 마치고 나서 범행을 시작했다.

    ‘리스크는 희미하다.’

    던전 사용자라도 현대 사회에서는 방심하고 산다. 이곳은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평화롭고 안전해 보였다. 특히 대한민국의 치안은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이곳에서 젊은 남자로, 거기에 성공 가도를 달리는 자로 살아간다? 세상에 위험이 없는 것처럼 여겨질 터였다.

    침대에서 곤히 자는 박서후의 얼굴은 화려했다. 똑 부러지는 이목구비만으로도 얼마나 이 세상이 쉬워 보일지 알 수 있었다.

    이시은은 막힘없이 다가갔다. 유나를 죽일 때처럼 목에 단검을 박지는 않았다. 그건 상대가 활동하고 있기에 입을 틀어막기 위해서 한 위험한 행동이었다.

    숨을 내뱉는 모습을 보자마자 칼을 움직였다. 귀밑의 옴폭하게 들어가며 목의 근육이 매만져지는 곳에 칼을 박아놓고 그대로 목을 지나 반대편 귀까지 베어냈다.

    퍽.

    발작을 일으키듯이 일어난 서후가 시은을 둔탁하게 때렸지만, 곧 앞으로 쓰러졌다. 숨을 내뱉으면서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목을 갈랐다. 숨 하나 쉬어지지 않았다. 그는 질식사했다. 유나가 버둥거린 시간을 생각하면 정말 빨리 상황이 끝났다. 출혈보다는 질식. 그게 인간을 가장 빨리 죽이는 방법이었다.

    처리는 간단했다. 화장실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화장실의 하수구 구멍 위에 캐리어를 올려놓았다. 마지막으로 락스를 여러 통 써서 방 곳곳이 락스 냄새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도록 만들었다.

    이시은은 귀신처럼 빠져나갔다. 그녀의 배낭은 오기 전보다 불룩해져 있었다.

    발각되는 건 누구보다도 빨랐다. 그렇게 활동적으로 돌아다닌 박서후였다. 단 3일 만에 집의 문이 부서지고 소방관과 경찰이 들이닥쳤다. 적패 신분을 지닌 네크로맨서였기에 특수한 능력을 지닌 자들도 있었다.

    캐리어 안에는 머리가 없는 박서후의 시체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 알맞게 들어가 있었다. 그걸 본 네크로맨서가 욕을 날렸다. 모두가 욕을 하는 그를 쳐다본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나이 먹고 욕을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모습은 실로 천박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뜬금없었다.

    “빌어먹을.”

    뇌가 없으면 언데드로 부활시켜도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다분히 현실적인 이유였다.

    이 소식은 송헐기 경장과 송포변 순경에게도 찾아왔다.

    “손을 떼라는 게 무슨 소리입니까, 반장님? 돈 먹었습니까?”

    “뭐, 이 미친 새끼야?”

    반장이 역정을 내자 헐기 경장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눈만은 반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확실한 답을 원했다.

    “쯧. 새끼, 눈까리 하고는. 안 깔어? 안 깔어?”

    반장은 샤프로 위협을 했지만 곧 그 샤프까지 던져 버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인천 쪽으로 옮겨졌다. 너희 둘은 전에 하던 일로 복귀하면 돼.”

    “말이 됩니까? 전담 팀 아닙니까. 세종 경찰청은 뭐 합니까?”

    “인천에서 네크로맨서가 캐리어 케이스에게 죽었다.”

    “X부랄……. X같은 세상.”

    “욕 좀 그만해, 이 새끼야. 아무튼, 이걸로 알았겠지? 인천에서 네크로맨서들에게 한턱 뽑아 먹는 경찰들이 알아서 잘 찾아줄 거다. 신경 쓰지 마.”

    “피해자는 어떻게 죽었습니까? 단서는요?”

    그 말에 반장이 사진 하나를 보여줬다. 머리가 없는 박서후의 모습이었다.

    “신원 파악도 할 수 있게 친절하게 적패랑 지갑을 목구멍에 쑤셔 넣었다.”

    “미친놈이구만……. 용의자는요?”

    “용의자고 자시고, 클럽 죽돌이에 어디든지 돌아다니는 놈이라 용의자를 가릴 수가 없다. 바람둥이가 죽어서 좋아하는 여자들이 그렇게 많다.”

    의심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손대는 게 무서울 지경인 셈이었다.

    “가서 일 봐.”

    “예.”

    둘은 그대로 담배를 한 대 피우러 갔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 이런 일은 종종 있었다. 잊어버리는 게 최선이었다. 만성 인력 부족인 강력계에서 지나간 사건을 다시 보는 건 사치였다. 피가 마르지도 않은 사건이 수두룩했다.

    두 사람은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리고 신경질적으로 밟아서 비빈 다음에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범죄자에 대해서는 한없이 강하지만 평범한 사람과 상사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공무원이었다.

    * * *

    서천의 텅 빈 창고에 트럭 한 대가 슬슬 후진하며 들어왔다. 매허망이 후진하는 걸 돕고 안에 있는 걸 박조조와 함께 끌어냈다. 양은 냄비에 적당히 담겨 있는 액체는 뚜껑을 테이프로 붙여 잘 밀봉되어 있었다.

    “닿기만 해도 파괴의 속성이 스며든다고 맨살에 닿으면 안 된다더라.”

    “조심, 조심.”

    십여 통을 옮기고 이를 미리 가져다 놓은 대형 양은 냄비에 담았다. 그곳에 환도를 담그고, 혹시나 싶어서 비닐봉지로 밀봉했다. 증발이 되면 아깝다고 생각해서였다.

    “흐흐흐.”

    매허망이 실실 웃었다. 그는 투잡을 뛰고 있었고 그 때문에 머리털마저 요즘 많이 빠지고 있었는데 편한 일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가 박조조에게 턱짓했다.

    “팔 곳은 마련해 뒀어?”

    “인천에 마련해 뒀어. 거기다가 옮기면 돼.”

    “어엉? 그러다가 들키면 어쩌려고?”

    “이 자식이 말이 많아. 걱정 마, 한국인한테는 안 파니까.”

    “엉? 그럼 어디에 파는 건데?”

    “트럭 상인이 얼마나 힘드냐? 만주족 형님 하나 안다. 그분이 받아서 서만주 자치국으로 옮길 거다.”

    “서만주라면… 대련(다롄)?”

    “항구 도시라면 거기뿐이니까. 옮기자마자 바로 팔 수 있는 게 편하겠지.”

    “그 사람, 입이 무거운 건 확실하겠지?”

    “입이 무겁고 나발이고, 가족 입에 풀칠도 못 하는 행님이다.”

    “여기도 저기도 젠장할, 먹고살기 힘들구만…….”

    “술이나 한잔하자. 이것만 제대로 팔아 치우면 너도 숨통이 트일 거다.”

    “안 돼. 돈 벌러 가야 해.”

    “쩝, 친구보단 가족이다 이거냐?”

    “그래, 이 새끼야. 미술 하고 싶다는 딸 있어 봐. 술 냄새 나는 대머리가 주는 돈도 고맙다.”

    “그래, 가라, 가!”

    친구는 매정하게 그를 버리고 서둘러 돈 벌러 차를 몰고 정말로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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