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6화 (116/270)
  • 116화

    * * *

    또 하루가 시작되었지만 산박은 점심때가 되어서도 장 노인을 방문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선객이 있었다. 불청객이나 다름없었지만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먼저 전화드렸던 송헐기 경장입니다. 여긴…….”

    “송포변 순경이라 합니다!”

    산박은 경례를 짧게 하는 사내를 훑었다. 삶에 찌들어진 모습을 보면 그가 얼마나 자기 일에 자신이 가진 시간을 쏟아붓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둘 다 다크서클이 진했다.

    ‘까다롭다.’

    포변 순경이 검은 봉지를 들어 올리며 산박에게 건네줬다.

    “오면서 슈퍼가 있길래 안줏거리라도 사 왔습니다. 간식으로 좀 드십시오.”

    “들어오세요. 좁지만…….”

    창고 방에 남자 세 명이 들어찼다. 모두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기에 덩치가 있어서 방이 굉장히 좁았다. 답답하기에 문이 열린 채로 이야기가 진행됐다.

    헐기 경장은 메모장을 꺼내고 펜을 들었다. 요즘 보기 힘든 아날로그식이었다. 반면 포변 순경은 제법 큰 스마트폰을 옆에 두고 또 가방에서 태블릿 PC를 꺼내서 전원을 켰다.

    “연락을 드린 건 송유나 씨 때문입니다. 알고 계시죠?”

    “예.”

    송유나와 태산박의 연결 고리는 얇고 짧게 끝났다. 그렇기에 찾아올 수가 없었지만 이 성실한 형사는 이렇게 찾아왔다.

    ‘발품을 엄청나게 팔았겠지.’

    순수하게 존경심이 나왔다. 숲속에서 검은 깃털을 찾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쓸모없는 일이 될 수 있는데도 거기에 노력을 쏟아붓는다. 성과가 없어도 계속해서 달릴 수 있었다.

    ‘사명감.’

    열정을 불사르게 만들어 자신의 몸조차도 까맣게 태워 버리는 감정이었다.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말 그대로 그냥 문서에 언급되어 있는 것이라면 모조리 하나하나 짚으며 돌아다니는 것뿐이었다. 그 속에서 닿을 기회 하나와 만나기 위해서 발악하고 있었다.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실패를 향해 내달릴 용기는 산박에게 없었다. 그는 성공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다. 이들은 실패할 단서를 짚고, 밟고, 확인하고 있었다. 생각만 해도 절망적이었다.

    “어떻게 알게 된 사이입니까?”

    산박은 그 물음에 순순히 대답해 줬다.

    “던전 정보 때문에 알게 되었습니다. 저레벨 던전에 대한 정보는 기업보다는 정보꾼을 통해서 구입하는 게 좋아서요. 몇 사람…을 거쳐서 추천받았고, 닿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거리낌 없이 말했다.

    “귀찮게 굴었습니다. 자기도 던전 공략을 하고 싶다고 아주 난리를 피웠습니다.”

    “그래서 들어줬습니까?”

    “예. 2팀을 파고, 유나 씨가 데려온 사람 두 명을 업고 네 명이서 공략을 진행했습니다.”

    “서류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데요.”

    “조금 편법을 썼습니다. 유나 씨가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면서 팀장 자체를 다른 이로 바꿨습니다. 제가 팀장이지만 다른 사람을 팀장으로 올렸습니다.”

    조금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단서가 또 다른 단서를 물어 오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유나 씨가 왜 그렇게 조심했는지는 아십니까?”

    산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적으로 팀 공략을 마치고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른 팀원인 휼간 씨가 절 버리고 자기들끼리 팀을 만든 겁니다. 일종의 독립이죠. 유나 씨는 거기서 이도 저도 못 했습니다. 저와의 인연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 했고 중요한 정보를 내어 주려고 했습니다.”

    형사 두 명은 입을 다물고 그다음을 물었다.

    “고레벨 던전 정보입니다.”

    진실을 말하고, 그 속에 거짓을 담았다. 선후 과정이 달랐으며 그 의도도 변경되었다. 산박에게 유리한 이야기로 재구성되었다. 그 흐름은 정말 리얼했다.

    “사실입니까? 증거는요?”

    산박은 고개를 저었다. 손사래까지 홱홱 쳤다.

    “미쳤습니까, 형사님? 고레벨 정보 취급하는 정보꾼이랑 놀아나면 큰일 나는 거 모르십니까? 바로 끊어 버렸죠. 무슨 꼴을 당하려고요.”

    그러면서 산박은 조금 뜸을 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나서 휼간 씨가 다시 찾아왔더라고요.”

    “뭐라고 하던가요?”

    “던전 실패했다고, 자기를 받아 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거절했고, 그 뒤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저도 제 살길 찾기 바빴죠.”

    연관되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산박은 궁금한 듯이 말했다. 형사가 찾아온 시점부터 이미 유나의 죽음은 확실시되었지만 멍청하게 굴었다.

    “근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저도 말을 해줬으니 들어는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녀는 죽었습니다.”

    꿀꺽.

    산박은 입 한쪽에 몰래 모았던 침을 크게 삼켰다.

    “휴, 휼간 씨는요?”

    “행방불명입니다. 찾고 있지만, 인천 쪽에서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외국으로 간 것이라고 추정은 됩니다만…….”

    툭.

    포변 순경의 입을 헐기 경장이 팔을 건들며 다물게 했다. 그러고는 한숨을 크게 뱉으면서 일어났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생각이 더 나는 게 있으면 연락해 주십시오.”

    “예.”

    명함을 받았다. 그러고는 마당에 있는 마루에서 햇빛을 받는 대장삵의 배를 만지고는 두 명 다 창고에서 나갔다. 대장삵은 신경질을 부리며 배를 핥아 다시 손질했다.

    산박이 대장삵을 보며 말했다.

    “쫓아가 봐. 확실하게 가는지 확인하고 다시 나한테 와.”

    헐기 경장과 포변 순경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배율이 제법 높은 쌍안경으로 창고를 주시했다. 잠복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더 얻을 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듯했다.

    “생각했던 대로네.”

    산박은 장 노인에게 향하지 않았다. 대신 뒤로 미뤄 두었던 곳으로 향했다. 공주 교육 대학교 부설 공주 던전 감정 연구소가 목적지였다. 초중고, 나아가 대학교에 대학원까지 계단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공주 도시의 엘리트 교육 시설에 속한 곳이었다. 그런 질 좋은 시스템이 있으면서도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산박은 바로 그곳에서 팀이 얻은 검을 감정할 생각이었다.

    세종시 바로 옆에 있는 게 공주시였기에 접근도 용이했다. 산박이 그곳에서 활동하는 걸 보고, 형사들은 쉽게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이었다.

    ‘어찌할 건데?’

    그들은 아무 수확도 얻지 못할 것이었다. 장 노인과 만나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산박은 공주 던전 감정 연구소에 연락을 해서 금방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제법 한가한 듯했다.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 * *

    “안녕하세요.”

    이시은이 강합의 병문안을 왔다. 그 누구도 모르게, 갑작스럽게 방문해서 강합조차도 놀랐다. 그는 탕만과 함께 있는 상태였는데, 서둘러 맥심 잡지를 접고 서랍에 집어넣었다.

    맨즈 토크의 일등 공신. 아싸도 친구를 사귀게 해줄 정도로 이야기할 거리를 많이 제공하는 맥심은 인간관계의 증진에, 특히 남자들끼리의 대화에 탁월한 효과를 발하고 병원 생활에서도 활력소를 제공하기 좋았다.

    “뭘 그렇게 재밌게 보고 계세요?”

    “아뇨, 아뇨! 하하하. 그것보다 갑자기 찾아오시지 말고 통화라도 한 통화 해주시지.”

    “지나가는 길에 들렀어요. 이건 병문안 선물.”

    이시은이 와인을 선물해 줬다.

    “비싼 건 아니에요. 중저가 브랜드. 밤에 잠 안 오면 한잔하세요.”

    “아이고, 뭘 또 이런 걸 다…….”

    강합이 그렇게 와인을 받아 들며 덕담을 이어 나갔다.

    “팀장님이 뭘 또 좋은 걸 해주셨길래 저한테 이런 걸 주십니까?”

    “네?”

    “어? 아직 말 안 하셨나 보네요.”

    “무슨, 어떤 거요?”

    “저희들한테 돈 주신 거, 하도 고맙다고, 누군지 보답하고 싶으시다길래 말씀을 드렸거든요.”

    그 말에 시은이 크게 움찔했다.

    ‘들켰다. 의심할 거야!’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행동 자체가 급작스러웠다. 몸은 덜컥거리는데 표정은 딱딱하게 굳은 것처럼 보여서 강합과 탕만이 오히려 놀랐다.

    “아…….”

    서로 눈치를 살폈다. 실수했다는 걸 깨달아서였다.

    시은은 살짝 웃으며 빠르게 작별 인사를 하고 병원에서 도망치듯이 떠났다. 산박이 자신에 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재검토에 들어간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만큼 현재 산박을 잘 아는 존재는 없었다. 그는 냉철한 리더였다. 동시에 냉혹하기도 했다.

    싸늘한 검을 손으로 매만졌을 때 느낀 흥분이 아직도 생생했다. 구경하고 싶고 쓰고 싶은 마음이 강렬했지만 그런 무기가 자신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훑고 올라가는 감각은 섬뜩했다. 처음으로 느끼는 공포였지만 그것은 곧 쾌락으로 변해갔다.

    ‘그래도 비틀어야 해. 빨리 해결을 봐야 해.’

    이를 가만히 놔둔다면 결과는 뻔했다. 이시은은 생각보다 객관적으로 산박의 행동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구보다 그에게 집착하고 있어서였다. 그녀의 사회적 신분으로 닿을 수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회에서 생존하는 법을 연마하는 데 많은 세월을 써버렸기에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걸 지금에서야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회에서 인정받는 데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는 산박을 더더욱 귀중하게 여기고 고가치 인간으로 보고 있었다. 그 끝에 그를 죽여서 가장 큰 쾌락을 얻으려는 게 이시은이었다.

    탁!

    시은은 어디서든 보기 쉬운 평범한 차량의 운전대를 잡았다. 국민 중고차는 싸게 구입해서 몇 년 굴리기 좋았다. 외형만 깔끔하면 족했다. 인천과 세종시를 왔다 갔다 해야 했기에 과감하게 질렀다.

    “…….”

    하지만 그녀는 바로 시동을 걸고 난 뒤에도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날카롭고 차가운 검 끝이 온몸을 헤집으며 피를 내는 감각과 비슷한 파괴적인 쾌락에 더해서 성적 쾌락도 덧씌워 오랜만에 살인, 파괴, 고통의 충동을 해소했다.

    소모한 물티슈와 화장지를 차량에 비치해둔 작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시은은 자신의 계획을 재점검했다. 몇 번이나 해본 것이었다. 거짓말 하나를 만들면 두 개, 네 개, 여덟 개, 열여섯 개… 수십 개로 늘어난다. 이를 모두 관리해 보며 몇 번의 인간관계를 뿌리치고 도망친 결과 지금의 시은이 있었다. 그 덕에 그녀는 매우 치밀해질 수 있었다.

    ‘산박을 상대로 속전속결이 가장 중요하다는 건 맞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모든 요소를 확인하고 행동하는 자를 상대로는 그 전에 빨리 치고 들어가는 게 좋았다. 호랑이를 잡으러 스스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듯이 장점, 단점을 고려하지 않고 쳐들어가는 게 산박을 상대로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가볍게 들어가는 건 말도 안 돼.’

    산박은 몇 가지를 질문할 게 분명했다. 어떤 질문을 하는지가 중요했고, 거기에 대한 대처가 대충이라도 존재해야 했다. 횡설수설 거짓말을 하는 건 어리석다. 가장 거짓말을 못하는 거짓말쟁이들이 하는 실수였다. 구라를 치려면 인간 자체를 송두리째 바꿀 각오를 해야 하는 게 거짓말쟁이들의 진짜 세계였다. 그 어둠은 너무나도 깊고, 그렇기에 그 어둠을 보는 진짜 거짓말쟁이들의 숫자는 매우 적을 수밖에 없었다.

    시은은 스마트폰을 켜서 메모장을 불러와 당장의 매뉴얼을 적어 나갔다. 이시은이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가장 먼저 최악의 질문을 꼽았다.

    1. 살인자로 의심할 때.

    ‘증거가 없어. 잘해 봤자 떠보는 수준일 거야.’

    뒤처리는 완벽했다. 질문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송유나는 차라리 죽어서 사라지는 게 산박에게 좋은 여자였다. 선 넘기를 몇 번이나 하는 모습은 시은에게도 무자비하게 벌어졌다. 그런 인간은 대개 깊은 인간관계를 가지지 못한다. 고로 잘해 봤자 질문 하나 하는 게 고작이고, 쉽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아니, 애초에 모를지도 모르지.’

    사람 하나 죽은 것뿐이다. 만성 인력 부족인 경찰 인력이 송유나 살인 사건에 시간을 쏟을 수 있는 건 길어 봤자 고작 한 달이었다. 단서가 나오지 않으면 그마저도 2주 만에 종결시킬 수 있었다. 열과 성을 다하는 형사를 만날 확률은 복불복이었다.

    ‘산박에게 닿았다면 제대로 된 형사를 만난 것.’

    자신에게 연락 하나 오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실력은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헐기 경장은 베테랑이지만 포변 순경은 완숙된 형사라고 볼 수 없었다. 이시은은 포변 순경의 헐거운 거미줄에서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이를 통해서 이시은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다.

    2. 돈을 왜 줬는지에 대해서.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이시은은 서둘러 집에 돌아와서도 밤을 꼬박 새워서 매뉴얼을 세웠다.

    오전 아홉 시. 시은은 진한 커피를 마시고 또 머그컵 가득 가져와서 테이블에 놓았다. 차가운 테이블의 감촉이 그녀의 팔을 통해서 전해왔다.

    ‘운도 지지리도 없다.’

    조금, 오한이 왔다. 산박이 의심하기 전에 미리 강합과 탕만에게 돈을 지원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면 이렇게까지 꼬이지는 않았을 터였다. 불순한 의도가 있었기에 말할 수 없었고, 리스크를 짊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게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의심하고 있는 산박과 승부를 봐야 했다. 패배하면 퇴출 혹은 다시는 산박과 얽히는 일이 없을 터였다. 무승부가 된다면 던전에서 산박과 함께하는 일이 없게 된다. 이것도 피해야 했다.

    결국, 남은 건 승리뿐이었다. 그렇기에 두려웠다. 처음 맛보는 공포였다.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대상으로부터 내쳐질지도 모르는 상황을 마주한 이시은은 색다른 색깔을 지닌 공포를 마주했다. 그건 즐거웠지만 동시에 두려웠다. 기괴하게 모순되고 비틀린 감성을 지닌 이시은이었다.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시은은 산박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전화를 금방 받았다. A급 팀원의 전화다. 안 받을 수 없을 것이었다.

    ―여보세요? 시은 씨? 무슨 일입니까.

    전화 너머로 산박의 목소리는 평온한 듯했지만 벌써 그녀와 거리감을 두고 있는 게 느껴졌다.

    “강합 씨한테 들어서요.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좋습니다. 지금 공주에 있는데, 제가 갈까요?

    “제가 갈게요. 중고차 한 대 등록했거든요.”

    ―유지비가 장난이 아닐 텐데, 괜찮습니까?

    “네크로맨서 일로 인천에 자주 가게 되어서요.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죠.”

    ―그럼 공주 교육 대학교로 오세요.

    “예.”

    전화는 금방 끊겼다. 대단히 사무적이었다. 서로서로 감정을 숨긴 채 만나서 본론을 꺼내기로 마음먹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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