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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화 (115/270)

115화

‘웃긴 놈이다.’

부장쯤 되면 달마다 들어오는 돈만 해도 제법이다. 한국 사회에서 사람 관리하는 관리직이 가지는 메리트는 엄청났다. 놈은 그게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모르는 듯했다.

‘자기 사리사욕을 챙길 줄이야?’

거기에 반말로 아주 자연스럽게 전환하는 모습을 보면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놈의 손에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자신의 일당을 뜯기고 있을지 상상조차도 되지 않았다.

그런 산박의 마음도 모르고 양귀문 부장은 이빨을 드러냈다. 박조조와 태산박과 알고 지낸 지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자신의 숨겨져 있던 ‘날것’을 드러냈다. 중소 회사의 선임이 춥다며 코트 하나 사달라고 대뜸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다른 건 양귀문 부장의 직위였다. 그는 그런 걸 요구할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딱 중간 관리직에 있기 때문이다. 아마 그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자도 양귀문처럼 노동자들과 상인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었다. 영업과 관리라는 명목으로 외근을 나가는 양귀문 부장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지금 이대로 위약금 물고 파토 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어? 드루이드 빛 무리 치료수 1.5L가 100만 원이야, 100만 원. 그런 알찬 단지를 깨부수는 건 말이 안 되겠지?”

“얼마를 원하십니까?”

산박이 경직된 채로 말했다. 몸이 딱딱하게 굳어있는 모습에 양귀문 부장의 눈이 히죽거렸다.

‘이놈, 초짜다.’

젊은 놈이 뭔가 있어 보이더니 한 번 물어뜯으니 반격도 못 했다. 얼마라고 묻기보다는 지랄을 떠는 게 먼저였다. 그래야 서로 한 대 맞고 박조조가 교통정리를 한다. 근데 그런 과정을 덮고, 돈부터 말했다.

‘병신 새끼구만.’

일이 이루어지는 순서를 몰랐다. 괜히 일에는 순서가 있다고 어른들이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의 리그에서 활동하려면 그 리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 했다.

하지 않으면? 사사건건 들이받는 놈이 수두룩했다. 당장 물건을 가져오고 가져가던 트럭 상인이 갑자기 오퍼를 안 받고, 다른 이에게 연락해도 씨알도 안 먹힌다. 손발이 잘린 채 며칠 지나고 나면 ‘그들만의 법’을 거역한 죄로 아예 퇴출당하듯이 도망치게 되고 만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상도덕이라는 게 있었다. 그걸 거부하려면 시장 자체를 엎어버릴 힘이 있어야 했다. 그렇지 못하면? 왕따당해서 그대로 문 닫기 쉽다. 시장에서 도박 한번 권유했는데 거절하면 한순간에 박살이 나는 것과 같았다. 가게 앞 지나가며 가래침 뱉고, 생선 손질한 오물을 실수처럼 땅에 뿌리기도 한다.

이처럼 일의 순서를 안 지키면 병신 꼴 나는 건 한순간이었다. 기업을 등에 업지 않은 소상공인은 더더욱 이를 지켜야 했다. 그걸 모르는 태산박의 행동은 양귀문 부장의 등에 날개를 달아줬다.

“으, 으하하하! 태 사장, 이거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거 같아서 내가 참으로 안타까워!!”

양귀문은 술이 절로 당기는지 소주를 자기 잔에 따랐다. 그 모습을 보며 산박은 속으로 웃었다.

‘통했다.’

기만술이 완벽하게 들어갔다. 이로써 양귀문 부장은 더더욱 산박을 옭아매려고 할 것이었다. 자신의 사업 수완 중 하나로 사용할 날이 오게 될 거였다. 산박을 부하처럼 쓰는 것이다.

사회적 위치가 있기에 뒷배 없는 던전 사용자는 양귀문 부장보다 한참 아래에 있는 놈에 불과했다. 기업을 등에 업은 양귀문 부장은 그만큼 대단해 보였다.

소주를 마신 양귀문 부장이 손을 들어 올렸다.

“10만 원. 전체 수익의 1할에 불과하지. 말 그대로 그냥 용돈벌이 해주는 대신에 계약서를 새로 해주겠다. 이건 내가 크게 마음먹고 도와주는 거야. 아니면 100만 원짜리 상품 하나 그냥 사라지는 거지.”

양귀문 부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는 비웃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던전 대전 상인 공회한테는 100만 원? 하이고, 우습다, 우스워. 근데 그쪽들한테는 큰돈이잖아? 왜 말들이 없어? 고맙다고 해야지!”

양귀문 부장이 소주잔으로 테이블을 땅 쳤다.

“끄응…….”

산박이 소리를 내어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얼굴을 문댔다. 그 모습을 박조조는 착잡하게 바라보았다. 말 그대로 연달아서 원투 펀치 훅에 내리 처맞고 비틀거리는 모습이나 다름없었다.

‘젠장. 젠장. 젠장!’

박조조는 다리를 떨었다. 분명 자신이 가져갈 돈도 줄어들 것이었다.

‘그건 내 돈이라고!’

받기 전까지는 자신의 돈이 아니라 산박의 돈이었지만 납품할 때마다 들어오는 돈은 이미 자기 돈이었다. 그 돈을! 그 귀중한 돈을 빼앗기게 생겼다. 산박이라는 놈에게 다시 빼앗긴다! 양귀문 저 호로 상놈의 새끼에게 빼앗긴다! 분명 그렇다!

그렇게 여겼지만 박조조는 속으로 분노를 꾹꾹 누르기 바빴다. 여기서 가장 영향력이 없는 놈이 박조조라는 트럭 상인이었다. 그가 가진 힘은 자신의 시간을 소비해서 운반하는 것. 그거 하나뿐이었다.

태산박이 저렇게 괴로워하는데 박조조는 가만히 있자 양귀문은 박조조도 공격했다. 기름이 묻은 입으로 나불거렸다. 튀긴 만두를 삼키고 냉큼 혀를 굴렸다.

“태 사장, 돈이 급하면 내가 잘 아는 트럭 상인 하나 추천해 주지. 아마 만 원만 줘도 열심히 납품할 거야.”

“무무무슨! 그 무슨 말이십니까!”

박조조가 벌떡 일어났다. 양귀문은 그걸 보고 잔뜩 인상을 썼다.

“박조조, 미쳤어? 네가 감히 일어나? 일어나서 어쩌려고? 치려고?”

“…….”

박조조가 고개를 숙였다. 허나 양귀문 부장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천하게 운전대 잡고 밥 빌어먹는 새끼가 돌았나?’

“미친 짓을 했으면 개처럼 짖든가, 사람 새끼라면 사죄라도 하든가 해야지? 엉?”

“죄, 죄송합니다…….”

박조조는 벌벌 기었다. 상차, 하차하는 곳 모두 던전 대전 상회에서 지랄을 하면 박조조는 아무런 물건도 트럭에 못 실었다. 트럭 상인 눈치 보는 것보다 대전 쪽의 강력한 기업 중 하나의 편을 드는 게 이치에도 맞았다.

“별빛 물약은 병당 7만 원에 받고 있는데, 별빛수로 개칭만 해서 주는 건데 가격을 그대로 해도 됩니까?”

산박의 말에 양귀문 부장이 웃었다. 자연스럽게 돈 얘기로 옮겨 갔다. 이미 그는 패배를 시인했고, 생산적인 이야기로 옮겨 가고 싶은 듯했다.

‘더 갑질 해서 짓눌러 주고 싶지만 역효과가 날지도 모르니까.’

양귀문 부장은 몸을 새로이 단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잔잔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까 보였던 깡패 같은 모습은 싹 사라졌다.

“드루이드 빛 무리 치료수 그리고 별빛 물약. 별빛 물약은 주문 피해를 높이는 강화 물약인데, 후방 직업에 1레벨 주문을 쓰는 던전 사용자는 숫자가 많은 반면 던전 공략에는 많이 투입되지 않습니다.”

살 사람은 많지만 사용할 데가 마땅찮았다. 양귀문 부장이 손에 깍지를 끼고 상체를 조금 숙였다.

“그러니 차라리 별빛수로 상품명을 바꿔서 팔자는 건 나쁘지 않은 생각인 거죠.”

“별빛 피해 물약 계약은 파기를 하고요?”

“예. 하지만 파기를 하면 회사에서도 파악될 수밖에 없죠. 그러니 하루에 한 병 혹은 며칠에 한 병으로 수익을 대충 내고 유지하면서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아하.”

산박이 고개를 끄덕였다. 편법이지만 양귀문 부장이 직접 할 수 있기에 할 수 있는 편법이었다.

“그리고… 사실 빛 무리나 별빛이나 생긴 건 큰 차이가 안 납니다. 치료수의 힘을 담을 수는 없습니까?”

“예.”

양귀문 부장은 되도록 상품명은 바뀌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산박으로서는 작은 별의 힘에 치료의 힘까지 담을 수는 없었다. 별빛의 힘을 담고 대장삵을 통해서 치료수까지 힘을 소비해서 넣으면? 이중으로 힘을 소비하는 꼴이었다. 작은 별의 힘은 기술이고, 확실하게 산박의 힘을 소비했다.

“그럼 별빛수로 하겠습니다.”

“양은 저번과 같습니다.”

1.5L. 100만 원. 양귀문 10만 원, 박조조 25만 원, 산박은 65만 원이었다.

계약서는 금방 작성했다. 양귀문의 이름으로 재계약이 이루어졌다. 위약금은 피할 수 있었지만 전과 달리 격년으로 2년마다 갱신할 수 있고 장기 계약으로 10년을 묶이는 계약이 되었다. 엄청난 피해를 본 것 같았다. 실제로 산박은 개털렸다.

‘양귀문 부장은 생각보다 더 이용 가치가 높다.’

놈은 탐관오리였다. 그리고 탐관오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자원을 빼돌릴 수 있는 악독한 기생충이었다. 즉, 그와 친해진다면 던전 대전 상인 공회의 영향력과 자원을 싸게 빼돌릴 수 있었다.

산박의 눈이 박조조에게로 향했다.

‘박조조라는 다리를 쓴다면 나는 안전하게 위법을 저지를 수 있지.’

나쁘지 않았다. 뒷돈만 쥐여 주면 대전 던전 상인 공회의 자잘한 것들을 이용할 수 있을 터였다. 이는 현재 산박에게 중요하게 적용될 수 있었다.

양귀문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산박은 일정을 마무리했다. 매일 하던 것을 하고, 과수원도 들러 나무 생육 주문을 주입했다. 매달마다 들어오는 로열티는 이제 겨우 3만 원에 불과했지만 나무가 많아질수록 꾸준히 증가할 것이었다.

산박은 어두워진 창고 방에 불을 켜고 책상에 앉았다. 전에 썼던 노트를 꺼낸 채 궁리했다. 시은에 관한 판단 그리고 처우는 며칠 동안 고민해야 하는 중대 사안이었다.

‘그녀에게는 야심이 있다.’

인천 네크로맨서의 심처(深處), 포스코 타워. 그곳의 일원이 되어서 네크로맨서 지식 탐구에 열을 올리고 돈도 헌납하며 높은 지식에 도달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매일같이 주고받는 문자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시은은 산박에게 중요한 인물이 되고 싶어 했고, 자신의 가치를 항상 말하고 있었다. 듀얼 클래스, 향상심과 팀장을 생각하고 팀을 고려하는 마음을 만들어서 연기하고 있었다. 그 덕에 시은이 ‘야망가’라는 걸 쉽게 추론 가능했다. 거기서 뿌리를 내는 판단은 계속 이어졌다.

‘내가 그녀를 크게 견제한다면 그녀가 팀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리스크지.’

A급 주문 사용자다. 사격 솜씨도 준수하고 여성인데 석궁까지 다룬다. 해골을 사용하며 마녀이기까지 하다. 근접전을 능숙하게 해내기까지 해서 지켜줄 필요도 없었다. 그렇기에 다른 팀에 속하기도 쉽다. 지금은 산박에게 몸담고 있지만 이해관계가 틀어지면 떠나기 쉬웠다.

‘그 이시은이 자신의 가치를 모를 리는 없다.’

선을 밟았지만 산박이 지나칠 정도로 그녀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아주 단순하게 이시은의 가치는 높다. 그렇기에 선택을 한다면 빨리해야 했고, 가차 없이 진행해야 하면서도 신중히 모든 걸 고려해야 했다.

‘언제 또 이런 팀원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만나더라도 다른 곳에 속해 있을 공산이 컸다. 이를 알고서도 산박은 그녀와 부딪쳐야 함을 깨달았다. 마음이 절로 무거워졌다. 그만큼 이시은이 독단적으로 탕만과 강합에게 돈을 지급한 건 산박에게 매우, 자극적이며 격렬한 반란이었다.

‘반골 기질은 아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의도를 알 수가 없다.’

야망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기에는 너무 상대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산박은 점점 뒤엉키는 사고를 정리했다. 오늘은 여기까지였다.

사각, 사각…….

산박은 노트에 글을 써 내려갔다.

[이시은은 나 몰래 팀의 영향력 특히나 전사 쪽을 포섭하려고 했다.]

[시은의 가치는 높다. 동시에 그녀의 야망가적 태도는 기만술일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렇게 쓰자 산박은 눈이 뜨였다.

‘전사 계급 두 명을 포섭……. 서충호인가!’

A급 그림자 기사 서충호. 이시은의 목적은 그일지도 몰랐다. 그는 산박을 제외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팀원이었다. 라이벌로 생각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럴싸했다. 아니, 혁명적일 정도로 그럴싸했다. 가능성이 매우 컸다. 이건 전방 직업과 후방 직업의 싸움이었으며 A급끼리의 의자 쟁탈전이었다. 누가 2등인지 구분 짓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주문 사용자 이시은은 충호에게 힘을 실어줄 탕만과 강합을 돈으로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왔다.

‘나쁘지 않은 구도야. 하지만 아직도 부족해.’

모든 퍼즐이 맞는다. 하지만 그게 진짜로 맞는다고는 볼 수 없었다. 산박의 높은 지혜는 다른 것을 더 유추하기를 요구했다.

‘돌다리를 한 번 더 두드리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지.’

산박은 장 노인에게 찾아갈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색다른 정보와 새로운 나뭇가지를 얹어줄지 몰랐다. 그 나뭇가지가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그건 산박도 모를 일이었다.

동시에 산박은 인터넷을 통해서 던전 연구소를 검색했다. 전의 던전에서 얻은 검의 감정 때문이었다.

‘별빛수의 수익이 10만 원 떨어졌다.’

이제 납품할 때마다 65만 원이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다른 이들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알짜배기 사업이었지만 산박은 부족함을 느꼈다. 그런 상황에서 여기 이 검이 새로운 돈줄이 될 수 있었다. 그러길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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