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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화 (114/270)

1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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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박은 개인 낚시터로 향했다. 낚시터 쪽은 벌써 대부분의 공사가 끝나 있었다. 정자와 창고 그리고 조립식 오두막이 건설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땅은 다 파여 있었고 정자가 놓일 작은 섬은 돌로 둘러쳐서 제법 그럴싸했다. 음풍농월(吟風弄月)하기 좋았다.

작업하던 인부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통나무를 쌓아놓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제대로 된 원목 오두막이었다. 돈을 처바른 만큼 확실하게 하는 듯했다. 돈을 조금이라도 벌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고 동시에 던전 경제 때문에 불황은 아닌 매우 기형적인 경제 구조로 되어 있는 세계 속에서 2천만 원은 그 값을 하고 있었다.

“감독하러 오셨습니까?”

“감독은 무슨.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산박은 장 노인의 입김이 닿은 장마겸과 적당히 대화를 나누며 진행 상황을 들었다. 공사는 생각보다 빨리 끝나는 듯했다. 세종시는 대전과 비슷하게 위와 아래를 연결하는 곳이었기에 모든 걸 빨리빨리 진행할 수 있었다.

‘투자를 받지 못했을 뿐, 부동 지구는 크게 될 수 있다.’

도시가 지닌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지 않고 이곳까지 도착한다는 뜻이었다. 부동 지구가 지닌 가치가 제법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 증거였다. 부동 지구를 개발하고 장 노인으로부터 땅을 사들이는 일을 점진적으로 진행해야 했다.

“그냥 현황을 보려고 왔습니다. 공사가 예정일보다 3일이나 일찍 끝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안 오고 배기겠습니까? 대단합니다.”

박수라고 쳐주고 싶을 정도였다. 생각 이상으로 공사장 장마겸의 건축 노하우는 뛰어났다. 그와 함께하는 인부들도 그와 호흡을 맞추고 기술을 익혔기에 재빠른 베테랑들이었다.

“호흡이 이렇게 잘 맞으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웃돈을 주십니까?”

“예? 하하하! 저기 저 사람, 마카오 공화국에 집만 일곱 채가 넘게 있습니다. 여기서 벌어서 환전하면 떼돈이 되는 셈입니다.”

그 말에 산박은 깜짝 놀랐다. 그 정도일 줄은 몰라서였다.

“물론 한국의 부동산 투기를 제법 배워서 흉내를 낼 줄 아니까 그렇게 한 겁니다.”

“대단하군요.”

순수하게 감탄이 나왔다. 아무리 못사는 곳이라고 해도 집 일곱 채면 이야기가 다르다.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남들만큼 돈을 주니까 독하게 하는 겁니다. 제 말에 거역도 안 하고요. 요즘 그런 사람들 잘 없지 않습니까.”

“그렇죠.”

산박이 크게 동의했다.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으면 금방 등 돌리는 게 현대인의 특징이었다.

“대한민국은 제국 시절부터 땀 흘리는 직업을 싫어하지 않습니까.”

“선비들도 말 타고 활쏘기를 연마했는데 유독 먼지 뒤집어쓰는 일은 싫어한다는 게 웃기긴 합니다.”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그 덕에 저도 장 어르신에게 귀한 대접을 못 받는 겁니다.”

그가 혀를 찼다. 많은 돈을 장씨 가문에 집어넣고 있었지만, 그에 비해서 대우는 마땅찮았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건 자신이 죽고 나면 위패를 사원에 넣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가문이 없는 이들은 무덤 관리조차도 제대로 하지 않고 납골당의 보관 기간이 만료되어 폐기 처분 되기 일쑤였다. 그런 건 믿을 게 안 된다.

전국에 분포하는 수천 개가 넘는 사원은 현대에 와서도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제법 졸부들도 자기 씨족의 사원을 건설하지만, 고꾸라지면 끝이다. 족보를 통해서 그리고 웃어르신의 넓은 발로 관리되는 사원을 만드는 건 오로지 세월, 세월이었다.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거랑은 완전 딴판이죠.”

나이가 들면 체면이라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산박도 늙으면 어찌 될지 몰랐다. 열 살의 산박은 모든 세상이 그저 굶주림과 괴로움으로 가득했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의 산박은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내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누구도 모르지.’

인간은 계속 변화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던 게 순식간에 싫어하는 것으로 변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하나에만 집착하면 안 됐다. 간잽이처럼 하나씩 다 입에 물고 다니는 게 리스크 관리에 좋았다. 물론 말은 쉽다.

공사 하나만으로도 당산의 가치를 재확인한 산박은 무리해서라도 공사를 빨리 끝내려고 노력하는 장마겸을 뒤로하고 곧바로 박조조에게 연락했다.

‘더는 빛 무리 치료수를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지.’

팔라딘이 주던 혜택이 사라졌다. 그렇기에 산박은 드루이드 빛 무리 치료수의 생산 중단을 알려야 했고, 별빛의 힘을 담아서 새롭게 납품 제품을 바꿔야 했다.

빛 무리나 별빛이나 비슷하지만 결국 다르다. 미묘한 차이가 모든 걸 결정하는 게 소비 시장이었다. 멋대로 바꾸면 나중에 문제가 될 공산이 컸다. 고정 수입이 끊기거나 재협상으로 인해서 돈을 적게 받아도 감수해야 했다. 사기를 치는 것보다는 던전 대전 상인 공회에 굽신거리는 게 형편이 좋았다.

그는 실리를 추구하지 체면을 찾지 않았다. 으스대기 위해서 사기 치는 병신들을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고개를 숙여서 일이 쉽게 넘어간다면 땡큐고 안 돼도 그저 제값을 받는 것에 불과했다. 짜증을 낼 필요가 없었다.

산박은 팔라딘을 저버렸고, 그 대신 야만신을 택했다. 현실에서의 돈보다는 던전에서의 강함을 추구했다. 그리고 그 강함은 다시 현실로 되돌아왔다. 피로 이어진 거미줄에 엮인 ‘야만신의 석상’이 강화되었고, ‘야만의 오른팔, 문명의 왼팔’ 또한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산박은 이를 통해서 더 많은 힘을 휘두를 수 있었다. 그 여분의 힘은 새로운 상품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여기서 또 선택지가 갈렸다.

‘마력 충전의 혈석의 판매 루트.’

대전 쪽에 넘길지 다른 루트를 개척할지를 정해야 했다. 그렇게 하면 박조조의 일이 많아진다. 고로 박조조의 위상이 높아지고 그것은 가치로 이어지며 그에게 지급되는 돈을 더 높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양귀문 부장의 태도에 따라 달라지겠지.’

던전 대전 상인 공회는 직접적으로 산박과 얽혀있지 않았다. 양귀문 부장과 트럭 상인 박조조를 통해서 산박과 얽혀 있었다. 곧, 양귀문 부장의 태도가 산박의 결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한 솔직함이기도 했다. 굳이 ‘빛의 신 팔라딘’의 ‘빛의 제단’에서 나오는 치유 효과를 대장삵의 힘을 통해서 물약으로 만들어 건네주는 걸 폭로하는 이유는 솔직함과 동시에 양귀문 부장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새로운 협상에서는 그가 갑이다.’

허나 그 이면에 있는 ‘마력 충전의 혈석’에 대한 결정에서 양귀문 부장은 철저한 을이었다.

‘갑이냐, 을이냐.’

갑을 자처한다면 혈석은 다른 회사의 손에 들어갈 것이다. 을을 자처한다면 혈석 루트를 손에 쥘 수 있을 것이었다.

던전 대전 상인 공회의 덩치를 생각하면 새 발의 피, 그저 수많은 거래처 중 하나, 그저 부장 하나에게 떨어지는 일감의 일부일 뿐이었다. 하지만 산박은 거기에 전력을 다했다. 그거 하나, 하나가 모여서 산박이라는 존재를 노출하게 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지닌 사업 수완은 레벨이 높아질수록 커져갈 것이 분명했다. 지금부터 조심조심 숲을 걷는 호랑이처럼 조용히 걸어야 했다. 굳은살이 박인 발바닥이 소리 없이 나뭇잎을 밟듯이 산박 또한 모든 것으로부터 툭 튀어나와서는 안 됐다.

“예, 태 사장님. 무슨 일입니까?”

―양귀문 부장과 자리를 주선해 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산박이 사정을 말하자 박조조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폰으로 대화하고 있었기에 그 표정은 산박에게 보이지 않았다.

‘니미 X발, 그냥 돈을 버리는 거 아냐?’

상대로서는 재계약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위약금을 내놓으라고 할 수 있었고, 그 어떤 추가 조건 없이 계약을 변경하는 것으로 수익을 반토막 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산박을 위협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너무 성급하신 것 아닙니까? 빛 무리나 별빛이나 저한테는 그게 그거인데요.”

―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리고, 박 사장도 제가 돈거래가 확실하니 도와주는 거 아닙니까? 던전 마진 적게 가져가고 대신 이걸로 수익을 올리지 않습니까. 저희 사이에도 중요한 것이니 더러운 거 하나 묻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일을 벌이면 안 된다고!’

박조조는 최고가에 매입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드루이드 빛 무리 치료수 때문이었다. 유통만 하는데도 수십만 원을 가져간다. 더럽게 많이 가져가는 셈이었다. 이 정도의 오퍼가 들어오면 모든 트럭 상인들이 눈이 돌아가서 덤빌 정도였다.

그런데 거기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그로서는 열고 싶지 않은 궤짝인 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산박은 정론으로 답하고 있었고, 명분도 가지고 있었다. 청렴하지 못하면 개욕 처먹고 따돌림당하는 게 한민족의 사회였다. 깨끗함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민족이었다. 단점으로 들리지만 그건 실로 강력한 힘이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좋은 소리는 못 들을 겁니다. 수익이 반토막 날지도 모르고, 위약금도…….”

―예. 모두 감수하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박 사장님, 이거 실망입니다.

“예? 실망요?”

―제가 제 사람의 수익을 망가뜨릴 것 같습니까? 절 너무 과소평가하고 계신 거 아닙니까?

산박의 말에 박조조가 깜빡이를 넣으며 갓길에 트럭을 정차했다. 등골이 서늘했다.

“…….”

침을 삼켰는데 어느새 목이 말라 있었다.

“크흠! 콜록!”

기침을 하자 눈물이 찔끔 나왔다. 박조조는 서둘러 물을 찾았다. 돈을 좇으며 내달리는 트럭 상인은 길게는 열 시간을 달리기도 하기 때문에 물을 자주 마시지 않는 게 중요했다. 오줌을 갈길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의 목마름은 산박 때문이었다. 박조조는 겁이 덜컥 났다. 산박에게서 받는 돈이 아쉬웠다.

꿀꺽! 꿀꺽!

그 아쉬움이 갈증으로 나타났다. 그는 거침없이 물을 마셨다.

산박은 느긋하게 기다렸다. 언제나 좋은 파트너는 긴장감이 없다. 긴장감 없는 관계는 늘어지기 쉽다. 나무늘보처럼 늘어져서는 더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건 산박이 원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기회를 낚아챈 산박이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약간 분노마저 담아서 말하자 박조조는 정신을 못 차렸다.

―죄송합니다. 전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닙니다.

‘바로 사과를 해? 이건… 좋네.’

“그래도 바로 사과하셔서 다행입니다. 이래서 제가 박 사장을 좋아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 은퇴까지 같이 사업하셔야죠?”

―그럼요! 하하하!

서로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박조조는 앞으로 태산박을 대할 때 자신도 모르게 조금 더 고개를 숙일 것이었다. 간단한 논리였다. 패배자는 위축되기 마련이었다. 그게 계속되면 박조조를 마치 부하처럼 부릴 수 있을 것이었다.

대전의 던전 유통과 소비를 잡고 있는 상회 중 하나에 속해 있는 양귀문 부장을 만나기 위해서 태산박은 박조조와 함께 대전으로 향했다. 박조조가 렌트한 차로 빠르게 대전으로 내려갔다. 렌터카를 아낌없이 굴리는 것을 보니 제법 돈에 숨통이 트인 듯했다. 트럭 상인으로 버는 수익에 산박과의 인연으로 연결된 고정 수입까지 합쳐지니 살맛 날 것이었다.

만남은 홍콩 요리점의 일종인 딤섬집에서 이루어졌다.

“오랜만입니다.”

“다시 뵙습니다.”

탕이 세 개 내어 와지고 만두도 차곡차곡 쌓였다. 기름진 만두에 아삭한 오이 반찬은 상당한 풍미를 보여줬다. 탕은 조금 비린내가 났기에 손에서 놓은 지 오래였다. 다만 술과 곁들이면 탕도 먹기 좋았다.

“다름이 아니라…….”

사정을 이야기하자 양귀문 부장은 탄식부터 했다. 술을 따라서 냉큼 마셨다. 사람을 상대하는 양귀문 부장이었다. 산박의 솔직한 면보다는 손익을 먼저 쟀고, 자신에게 굴러들어 온 것들을 살피고 행동에 나섰다.

“이거, 참……. 서로 신뢰 관계에 있는데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물론 솔직하게 말해준 건 고맙지만……. 아시다시피 이 소비 시장이라는 게 작은 거로도 확 바뀝니다. 아닌가?”

마지막의 반말. 그 말에 산박이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찾아온 것 아닙니까. 이게 별빛을 담은 물입니다. 다른 곳에 첨가하기에 좋습니다.”

“조금 다른데?”

꺼내자마자 양귀문 부장이 단호박처럼 말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본론을 뱉어냈다.

“회사 사정이라는 게 있지만 내가 눈을 딱 감으면 그냥 지나갈 때도 있는 법, 아니겠어?”

그 말에 담긴 의도를 산박이 모를 리가 없었다.

‘이 새끼.’

별빛으로 잘 변경하는 대신에 자신에게도 떡을 하나 달라는 소리였다. 별빛 물로 교체되는 대신 받는 돈 일부를 상납하라는 뜻이었다. 양귀문 부장, 개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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