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2화 (112/270)
  • 112화

    <작업장>

    “카르마를 남겨둔다.”

    더는 성장이 필요 없었다. 필요한 건 2레벨 던전 공략과 2레벨 주문과 기술들이었다. 나무 생육은 사업에 필요했지만 그걸 위해서 레벨 업 성장을 둔하게 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이는 추측일 뿐이었다. 그저 힘의 총량에 따라서 결정한 것뿐이었다. 정말로 1레벨을 두 번 클리어해서 얻는 카르마가 2레벨을 한 번 클리어해서 얻는 카르마와 같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단지 레벨 업을 했을 때 가진 힘이 두 배로 늘어났기에 가능한 추측이었다.

    ‘아니면 아닌 거지.’

    지금의 산박은 1레벨에 쓸데없이 카르마를 쓰고 싶지 않았다.

    [야만신의 석상이 당신에게 들러붙었습니다.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야만신이었네. 이 새끼…….’

    신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치사했다.

    “거부?”

    [거부하면 석상은 파괴되어 카르마로 전환됩니다. 하지만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불만을 품는다는 거겠지?”

    [그렇습니다.]

    “받아들이면 어떻게 되나?”

    [빛의 신 팔라딘이 하사한 기도의 제단이 회수됩니다. 팔라딘 신은 당신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볼 것이고, ‘기회’가 된다면 죽이려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추천하지 않습니다.]

    야만신의 석상을 파괴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동시에 그걸 받아들이는 것도 추천하지 않는다.

    ‘미칠 노릇이네.’

    [야만신의 석상은 ‘마력 충전의 혈석’을 제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야만의 오른팔, 문명의 왼팔’과 공명이 가능하며 서로 연결되기 때문에 그 효과는 증폭되어 적용됩니다.]

    ‘응?’

    “그럼 전에 얻은 것도 효과가 증폭된다는 소리인가?”

    [그렇습니다. 신체의 소폭 강화가 근력 능력치 1 증가로 변경되며 1레벨 주문 4회 혹은 2레벨 주문 2회의 추가 힘을 획득합니다.]

    “미쳤네.”

    말도 안 되는 혜택이었다.

    “근데 왜 야만신을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믿지 않지?”

    레벨 업 시스템은 그 물음에는 답하지 않았다. 답을 말하지 않아도 산박은 알아서 이해하고 있었다.

    ‘나 같아도 입 다문다.’

    꿀을 빠는 건 절대적 가치로 매겨질 수 없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누군가가 2천 원짜리 짜장면집을 안다면 그는 자신의 지인에게만 알리고 입을 다물 것이다. 누구나 2천 원짜리 짜장면을 먹게 되면 큰 우월감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거기에 자신이 못 먹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야만신의 혜택은 은폐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저 호구 신이라 불리는 것과 실질적으로 그에 대한 혜택 정보가 있는 건 별개였다. 이토록 대단하다는 사실이 잘 알려졌다면 호구 신이라기보다는 필수 신이라 불렸을 터였다.

    ‘인간의 이기심.’

    그건 야만신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산박의 눈에 들어왔다. 폭로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리고 남이 입 다물 때 혼자서 나불거리는 놈은 가장 먼저 표적이 된다. 내부 고발자가 가장 먼저 파멸한다. 사회는 바뀌어도 그가 돌아올 곳은 없었다.

    씨익.

    그에게는 목표가 있었다. 야만신은 산박이 그 목표에 빨리 도달하게 해줄 것이었다.

    “받아들인다.”

    산박의 말에 야만의 오른팔, 문명의 왼팔이라 불리는 흉악한 척추뼈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건 서로 뒤엉켜서 굳어가며 거미줄이 되었고, 이내 바닥에서 솟아난 석상과 칭칭 연결되었다.

    그건 산박에게로도 연결되었다. 고통은 없었다. 피의 거미줄을 통해서 지식이 전수되었다. ‘마력 충전의 혈석 제조법’에 대한 지식이었다.

    ‘또 다른 돈벌이가 생겼다.’

    나쁘지 않았다. 목돈을 모으는 속도가 느리고 빚까지 있는 산박이었다. 순수하게 그는 기뻐했다.

    던전에서 나온 산박은 가장 먼저 박조조에게 전화했다.

    ―예! 태 사장님!

    그는 제법 깍듯했다.

    오늘 이렇게 전화를 한 이유는 다름 아닌 던전 자원을 팔기 위해서였다. 산박이 유통까지 건드리기에는 손이 부족했고, 박조조는 이를 보조해 주며 돈을 빨아먹고 있었다. 던전 자원이 아니라 그가 판매하는 물약을 통해서 상당한 마진을 먹고 있었다.

    그게 용인된 이유는 일종의 시험이기 때문이었고, 지금처럼 팀원에게 최대한 수익을 주기 위해서였다. 박조조는 몇 번이나 던전 자원에 대한 마진을 최소한으로 가져갔다.

    “트럭 큰 거 하나 끌고 오세요. 시체 좀 운반해야겠습니다.”

    부산물을 적출하지 않았다는 것. 그 말에 박조조가 제법 흥분했다.

    ―새로운 놈입니까?

    “예. 적어도 제가 아는 던전 정보에는 없었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박조조가 전화를 끊기 전에 산박이 그를 목소리로 붙잡았다.

    “잠시만요. 아직 끊지 마세요.”

    ―더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하나는 대전 쪽에 팔겠지만, 다른 건 아예 다른 곳에 팔고 싶어서요.”

    ―어디를 말씀하시는 것인지……?

    “대전 상회만 아니면 됩니다. 박 사장님께서 뚫고 싶은 거래처가 있다면 거기로 하세요.”

    ―아……. 예. 알겠습니다.

    ‘굽혀진 아가리 괴물’. 임시지만 ‘구더기 기생체’라 이름 지은 보스 몬스터.

    ‘둘은 따로 팔아야 한다.’

    던전 대전 상인 공회는 대전을 주름잡는 유통 기업 중 하나였다. 그 개수를 생각하면 톱급이라고 할 수 없었지만 대기업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너무 의존하면 안 돼.’

    박조조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는 최대한 분산해서 팔아야 했다. 관리당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낌새 하나도 싫었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고로 산박은 1레벨 던전에서 대박 하나 터트린 걸 숨기고 싶었다. 단순히 클리어만으로도 충분했다.

    또한, 이것은 장기적으로도 보기 좋았다. 던전 대전 상인 공회와 마찰이 생기면 다른 쪽에 팔면 그만이었다.

    ‘그때가 되면 양귀문 부장은 간이 쓰리겠지만, 이미 늦지.’

    이것은 선수를 먼저 치는 것과 같았다. 산박은 검은 슬라임 액체가 든 배낭을 짊어지고 올라왔고, 팀원들도 속속 도착했다.

    강합은 가장 마지막에 나왔다. 그는 조금은 정신을 차린 것처럼 보였지만 끔찍한 소모를 겪어서 탈진한 듯했다. 팀원들이 강합을 부축해서 물을 먹여줬다. 하지만 바로 토해냈다. 결국 119를 불러서 바로 근처 종합 병원으로 보냈다. 곧바로 정신 병원으로 보낼 수는 없었는데, 그 또한 자존심이 있어서였다.

    한국에는 정신 질환에 대해서 엄청날 정도로 큰 편견이 존재했다. 그건 동일화에 대한 광활한 감각 때문이기도 했다. 미국에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는 게 말이 안 되는 것과는 다르게 한국은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는 게 가능할 정도로 영토가 작았고, 그만큼 전 민족이 주변인들을 자신과 같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다른 예로는 결혼하는 나이가 정해져 있다는 것도 외국인이 들으면 쇼킹할 일이었다. 그만큼 동질화된 사회였기에 정신 질환자에 대한 경계가 끔찍할 정도로 높았다. 가족 중에 그런 자가 있으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떻게 될까요.”

    충호가 착잡한 눈을 하며 산박에게 물었다.

    “다시 회복될 겁니다.”

    거짓말이다. 강합은 이대로 끝이었다. 하지만 해도 될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될 말이 있었다. 게다가 산박은 그렇다고 강합을 버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의지하고 있고 믿고 있다.’

    0레벨 던전을 클리어하는 모습을 보이고 나서야 산박에게 1레벨에 다시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만큼 산박을 크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를 얕잡아 보거나 수단으로 삼았다면 이제 괜찮으니까 1레벨 던전 공략에 끼워 달라고 찡찡거렸겠지. 굳이 귀찮은 짓거리를 하지 않았을 터였다.

    ‘상대가 나빴어.’

    없는 돈으로 산 강합의 장비는 그의 단점을 보호해 주지 않았다. 그저 ‘전사 직업’을 강화해 주고 장점만 극대화시키는 1레벨 던전 장비였다. 거기에 신경을 쓰지 않은 이유는 강합이 돈이 없기 때문이었다.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자꾸 태클을 걸고 있다.’

    산박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은 강합의 1레벨 풀 장비는 형편없었다. 그저 조건을 턱걸이하기 위한 장비 구성이었다. 당장 던전을 공략하고 싶어 하는 강합의 열의 때문에 이를 막을 수 없었다. 사건이 터지지 않았으면 산박이 수습할 수 있었겠지만, 보스 몬스터에 의해서 강합은 다시 한번 부상을 입었다. 축구 선수가 다치고 난 다음 다시 회복해서 첫 경기를 했는데 거기서 또 크게 다친 격이었다.

    ‘강합이 내 손을 뿌리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던전 공략을 그만두고 다른 분야에서 자신을 도와 달라고 했을 때, 강합은 어떻게 나올까? 이를 위해서 미리 약을 치는 과정이 필요할지 몰랐다.

    그건 당연하게도 시간과 노력을 잡아먹는 일이었다. 산박이 움직이는 건 당연하고 탕만까지 움직여야 하는 일이었다. 그 설득을 위해서 계획을 말삭제하는 것조차도 시간을 쏟는 일이었다. 거기서 잘 안된다면 충호까지 써먹어야 했다.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강합이 이렇게 준비 없이 던전에 내몰리게 한 그 새끼를 잡아야 했다. 허나 이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숨길 게 뻔했다.

    ‘강합은 인정하지 않겠지.’

    다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서 수백만 원을 준 이가 자신의 명줄을 자른 놈이라고 납득하지 않을 것이었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만큼 음흉하고 가장 까다로운 음모였다.

    “안녕하십니까!!”

    박조조는 일용직 세 명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그들은 곧장 움직였다. 트럭에 시체를 쌓아 올렸다. 트럭이 단번에 꽉 찼다.

    “잭팟을 터트린 것을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박조조가 크게 웃었다. 이 정도라면 자신이 숟가락을 얹어도 될 정도로 큰 쾌거였다. 다른 자들도 웃으면서 기십만 원 정도 마진으로 가져가라 할 것이었다. 금일봉은 쉽게 탕진하기 좋았다. 사람을 넉넉하게 만들어서 부드럽게 만들기도 했다.

    ‘이런 날은… 지갑 열기 좋은 날이다.’

    박조조가 돈맛을 느끼며 기분 좋아 했다. 희희낙락해 했다.

    “작은 금화네요.”

    무게를 확인한 박조조는 나쁘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쭉 내밀었다.

    “여덟 돈이네요. 30만 원입니다.”

    던전에서 나오는 금은보화 때문에 금값은 많이 내려간 상태였다.

    “검은 슬라임 점액은 상당히 많네요.”

    300개가 넘었다. 착실하게 쌓아뒀다. 허나 다 합쳐도 40만 원에 불과했다. 원래 이 바닥이 그랬다. 많이 얻을 수 있는 건 더럽게 싸게 넘겨줘야 했다. 대형 폐기물을 수거해서 300만 원을 회사에 가져다 바쳐도 자기 손으로 들어오는 건 100만 원에 불과한 판타지 쇼크 이전의 사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나마 던전 사용자가 위안을 가지는 건 고레벨이 되었을 때 얻을 수 있는 사회적 혜택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만 믿고 던전에 덤비는 이들이 많았다. 비전이 없는 막노동과는 다르게 적어도 미래가 보이니까, 곡괭이 하나 들고 던전으로 들어가는 광부가 될 수 있었다.

    “굽혀진 아가리 괴물은 270만 원에 퉁칩시다.”

    박조조가 제법 욕심을 부렸다. 팀원들도 금일봉을 받는데 자기도 받고 싶다는 심보였다. 이를 거부하면 박조조는 불만을 품을 게 분명했다. 너희들은 되는데 난 왜 안 돼? 라는 심보였다. 인연이 닿은 이들끼리 가능한 거래이기도 했다. 불공정 거래 중 최악의 거래였다.

    ‘30만 원을 가져가는 셈이지.’

    다른 트럭 상인은 인부를 부르고 트럭을 끌고 온 삯까지 뺄 것이었다.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좋습니다.”

    산박과 박조조가 서로 웃었다.

    “구더기 기생체는 당진 쪽에서 처리를 해보고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일단 가진 것을 분배하고, 강합에게도 문자로 알려주고 입금을 진행했다. 주궤는 고정으로 받을 돈과 더불어서 산박이 개인적으로 웃돈을 얹어줬다. 모두가 어느 정도 만족하는 던전이 되었다.

    뒤풀이로는 소고기를 먹었다. 노래방을 가기까지 했다. 신나게 외치고 스트레스를 풀고 진탕 취했다. 이성을 유지한 건 산박과 시은뿐이었다. 시은은 자신이 지닌 충동과 본능을 억눌러야 했고, 산박은 당장 내일부터 할 일이 있었다. 그에게 시간은 금이었다. 그가 2차를 간 것만으로도 이들을 대우해 주는 것이었다.

    이시은이 몇 번 산박의 곁에서 이야기를 떠들었지만 큰 의미가 있지는 않았다. 서로의 관계가 돈독하다는 걸 재확인할 뿐이었다.

    * * *

    이시은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커피를 진하게 내려 마시면서 컴퓨터를 켰다. 몇 가지 검색 사이트를 열고, 우회 프로그램을 돌렸다. 살인 사건을 조사했다. 기사는 많았다.

    ‘캐리어 케이스…….’

    그녀는 붉은 혀를 내밀어서 입술을 핥았다. 모든 기사를 훑었다. 경찰 사이트까지 접근해서 눈팅을 진행했다. 세상에 드러난 이시은의 본능이 어떤 반응을 끌어냈는지 보는 건 재미있었다.

    세상은 역시, 이시은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꽃피우지 못하고 죽은 열아홉 살의 여성을 추모하기 바빴다. 흉측한 살인 사건을 가십거리로 씹기 바빴다.

    동분서주하는 경찰을 신나게 욕하기도 했다. 그들이 발에 땀이 나도록 돌아다닌 것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무능한 형사들.

    시은은 그 모든 걸 탐닉하고 캡처해서 집에 있는 프린트로 인쇄했다. 그리고 그간 그녀가 살인을 저지르고 들키고 조사한 과정을 빼곡하게 기록한 책을 꺼내 들어서 그곳에 담았다.

    오랜만에 과거에 저지른 살인들도 훑었다. 지금도 생생했다. 아니, 현재가 너무나도 무의미했기에 추억이 오히려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해가 뜨고 나서야 이시은은 책을 덮고 은폐를 진행한 뒤에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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