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1화 (111/270)
  • 111화

    * * *

    ‘X발, X발!’

    주궤는 속으로 욕을 했다. 1레벨에 잔류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까닥 잘못하면 죽는 곳이 이곳이었다. 주력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상대의 덩치는 충호보다 컸다.

    돼지 새끼 주제에 곰이라고 떵떵거리면서 헛바람 들이켜는 놈들은 봤어도 진짜 곰 같은 놈은 처음 본 주궤는 충호에게 말 한마디 걸지 못하고 쩔쩔맬 정도였다. 그런 곰 인간보다 큰 놈이 보스 몬스터였다. 입이 바짝 타들어 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아무리 문명인이라고 거드름 피워도 덩치 큰 놈에게는 눈 까는 정글이 현대 사회였다. 그러지 않는 인간은 권력이나 지위가 높은 놈들뿐이었다. 거기까지 올라가본 적이 없는 주궤는 보스 몬스터의 덩치에 압도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발을 묶어둔 것은 책임감과 이시은이었다. 그녀는 예뻤고 육감적이며 섹시했다. 그런 여자도 막힘없이 싸움에 나서는데 남자인 자신이 뒤로 물러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딱딱하게 굳어 있어서 도망도 못 치는 허수아비 같은 상황인 셈이었다.

    ‘해야 해. 해야 한다!’

    그는 무기를 꼬나들고 자기 최면을 걸듯이 지껄여 댔다. 그 마음속의 생각은 곧 중얼거림으로 나타났다. 땀이 주룩 흐르는 감각에 스스로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다. 온몸에서 땀이 쫙 나와서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가 빠르게 식어 갔다. 오한이 그를 엄습했다. 이미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그 속에서 옥시모론 팀은 확실하게 공략 준비를 했다. 강합의 손짓에 주궤가 고개를 지나칠 정도로 크게 끄덕였다. 그건 좋지 않은 신호였다. 하지만 그걸 돌봐줄 사람은 없었다. 보스 몬스터가 구더기를 토하고 먹으면서 점점 커진다는 기믹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산박이 이를 입에 담아서였다. 멀쩡한 다수에 비해서 혼자만 상태가 나쁜 주궤는 무시되어졌다.

    강합, 주궤, 시은이 놈의 진행 방향을 고려해 돌아가서 왼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적은 왼손잡이인 ‘구더기 기생체’의 왼팔을 무력화시키는 데 있었다. 암흑 던전이었기에 놈의 명중률도 낮겠지만, 더더욱 낮출 필요가 있었다.

    명중률이 낮아도 사람 상체만 한 돌덩이는 그저 스치는 것만으로 큰 충격을 줄 수 있었다. 충격이 몸을 타고 흐르며 전신을 꼼짝도 못 할 게 분명했다. 자동차에 스쳤을 뿐이라고 응급실에 안 갔다가 돌연사한 사람의 경우를 생각한다면 날아다니는 흉기 차나 다름없는 게 돌덩이였다.

    산박은 홀로 후방으로 이동했다. 놈의 꼬리를 밟듯이 뒤를 따라갔다. 질퍽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아야 했기에 체력이 빨리 소모되는 일이었다.

    ‘집중성탄을 한 발 쏘고, 바로 야수로 변해서 꼬리를 잡는다.’

    던전 정보를 통해서 놈의 대부분 공격 수단은 시작도 하기 전에 견제받는다. 그건 꼬리도 마찬가지였다. 휘두르기 좋고 길쭉한 꼬리는 너무 위험했다.

    무엇보다 이족 보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꼬리를 최대한 빨리 무력화시키거나 견제해야 했다. 산박이 꼬리에 집중한 이유도 그러했다. 집중성탄에 머리에 맞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암흑 던전의 강제 명중률 약화 탓이었다. 강한 공격일수록 강하게 적용될 공산이 컸다.

    괴물은 괜히 괴물은 아니다. 거기에 적은 보스 몬스터였다.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전력으로 덤벼야 했다.

    세 명이 왼팔. 한 명이 후방. 충호, 해골, 대장삵, 그들은 정면을 담당했다. 우측을 담당하지 않는 이유는 그렇게 하면 놈의 몸이 돌아가 좌측에 있는 이들이 왼팔을 공략하기 힘들어서였다. 왼쪽이 주공(主攻)이고, 중앙은 이를 보조하는 방어책인 셈이었다.

    보스 몬스터를 공략하는 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적의 공격력을 무력화시키는 것이었다. 위협적인 놈이므로 위협적인 부분을 자르고, 승리로 향한다. 산박다운 냉철한 작전이었다.

    깡깡깡!

    “우아아아악!”

    무기를 치는 소리가 울리며 고함 소리가 퍼져 나왔고, 구더기 기생체가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자연스럽게 화살, 재블린, 볼트가 왼팔에 틀어박혔다.

    “크오오오오!!”

    구더기 기생체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소란이 크게 일어나는 곳으로 돌진했다. 게임이었다면 팔에 대미지 데이터가 들어가게 한 원거리 딜러를 노렸겠지만, 현실에서는 더 소란스러운 놈에게로 향했다. 놈이 자신을 공격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리면서 흔들거린 시야가 원거리 투사체를 잡지 못한 것도 컸다. 기가 막힐 정도의 타이밍이었다. 당연히 평범하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뒤에 있는 산박이 타이밍에 맞춰 돌탑 꼭대기에서 손을 흔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놈이 앞으로 돌진하는 동안 후방에 있는 산박의 집중성탄이 쏘아졌다. 눈에서는 영혼이 빛나고 있었고 뿔까지 머리에 돋아나 있었다.

    전력을 다한 집중성탄은 본래 목표로 했던 머리에서 쑤욱 아래로 포물선을 그렸다. 암흑 던전이 강제로 비튼 것이었다. 궤도가 너무 극명하게 틀어졌는데, 워낙 위력이 강한 것이라 암흑 던전의 제약을 더 많이 받았다.

    콰앙!

    습기 때문에 물렁한 가죽이 뚫리며 집중성탄이 괴물의 어깨를 꿰뚫었다. 괴물은 그대로 앞으로 넘어졌다. 두 발로 달리면서 돌을 집으려는 순간에 들어온 공격에 단번에 균형을 잃어서였다.

    쐐애액!

    푸욱!

    재블린 하나가 쓰러진 놈의 목에 틀어박혔다. 하지만 끝부분에 박혀서 목구멍을 막지는 못했다.

    “끄어어어어어!”

    괴성을 내지르며 놈이 발악했다. 꼬리에 산박이 들러붙기 전에 몸을 크게 회전했다. 왼팔이 너덜너덜했기에 오른손에 바위를 잡아서 그대로 던졌다. 하지만 전혀 엉뚱한 곳에 떨어졌다.

    “흐이익!”

    주궤는 활을 쏘다 말고 움츠렸다. 바위가 옆에 떨어진 것만으로도 전신이 펄떡 뛰며 생존 본능이 바짝 올라왔다.

    “빨리 쏴!”

    강합이 쌍욕을 날리며 외쳤다. 1초도 아까웠다.

    “큭!”

    주궤는 벌떡 일어났지만 너무 무리했다. 강합의 욕에 발작하는 것처럼 움직인 대가로 주르륵 미끄러져서는 다시 시야가 확보되는 곳까지 돌을 타고 올라와야 했다. 온몸에 상처가 그득했다. 울퉁불퉁하고 뾰족한 돌길에서 미끄러졌으니 그대로 쓸렸다. 가죽 장비와 옷이 긁히고, 보호구가 보호하지 못한 곳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그런 상황 속에서 충호를 비롯한 해골과 대장삵은 근접전을 시작했다. 꼬리가 모든 걸 휩쓸고 지나간 다음에 덤빈 충호의 방패를 구더기 기생체가 물었다. 끔찍한 힘에 충호는 방패를 그대로 놓아 버렸다.

    “크아아아아아아!”

    고갯짓을 하며 방패를 털어 찌그러뜨린 놈이 뒤로 엎어졌다. 왼쪽 어깨에 구멍이 뚫리고 상처를 많이 받아서 평소처럼 움직이면 균형이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불구가 된 자는 일어서는 것만으로도 한 세월을 소모해야 했다. 반면 이 괴물은 폭발적인 생명력과 힘으로 모든 걸 밀어 버렸다. 덩치는 충호보다 조금 더 클 뿐이지만 몸이 워낙 길쭉해서였다.

    “젠장!”

    돌에 얻어맞은 충호가 욕지거리를 날렸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된 그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되레 약이 바짝 올랐다. 허나 더욱 달려들지는 않았다. 대신 고함을 쳐서 시은에게 정보를 전달했다.

    “해골을 뒤로 물려요! 꼬리에 맞으면 한 방입니다!”

    해골이 주춤했다. 산박과 충호의 명령이 서로 상충되기 때문에 시은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커허허헝!”

    산박이 포효하며 그제야 보스 몬스터에게 닿았다. 몸과 꼬리가 연결되는 부분을 강하게 물었다.

    “크아아아!”

    ‘지금이다!’

    방금 했던 말과는 전혀 다르게 해골과 충호가 내달렸다. 대장삵도 기회를 보더니 함께 달렸다. 그사이에 강합은 마지막 재블린 하나를 바닥에 버렸다. 접근전이 되었기에 쓸 수 없었다. 바로 장창을 쥐고 거칠게 돌 언덕을 내려갔다. 날벌레가 눈을 스치고 지나가고 입으로 들어갔지만 확실하게 보스 몬스터를 주시하기 바빴다.

    동시에 진짜 위협을 느낀 구더기 기생체가 등에 있는 구멍에서 대형 구더기를 사출했다. 체액과 피가 뒤섞인 물이 찍 뿌려졌다. 네 마리에 불과한 대형 구더기였지만 길이가 제법이었다. 150cm는 넘어 보였고 굵직함도 사람 허벅지만 해서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달려오던 강합은 장창으로 한 놈을 단번에 꿰어 냈지만 그 순간 보스 몬스터에는 시선을 주지 못했다.

    “퉤!”

    보스 몬스터는 입에서도 대형 구더기 한 마리를 더 뱉어냈다. 보통 구더기랑 좀 뒤섞여 있었지만 확실하게 대형 구더기가 쏘아져서는 강합에게 그대로 들러붙었다.

    콰드드득!

    “끄, 끄아아아악!”

    대형 구더기는 어마어마한 턱 힘으로 가죽을 찢고 뼈를 부쉈다. 동시에 조이는 힘도 대단했다. 시은이 감히 석궁을 쏘지 못하고 달려와서 환도로 대형 구더기의 목을 쳤다. 그러나 강합의 상처는 너무 끔찍했다. 어깨가 완전히 박살 나서 전투 불능에 빠졌다.

    서둘러 응급 처치를 하는 사이에 주궤도 가까이 다가왔다. 시은은 그를 주궤에게 맡기고 서둘러 다시 뛰쳐나갔다. 말 한마디 안 했다. 그 정도로 급박했다. 특히 충호가 방패를 빼앗긴 게 컸다.

    해골은 대형 구더기와 뒤엉켜 있었다. 하나를 책임졌다는 게 중요했다.

    그사이에 구더기 기생체는 입에서 구더기를 토해내서 다시 집어삼키고 있었다. 상처가 난 곳에서 구더기가 튀어나와 변태를 하더니 생살이 되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콱!

    자신을 덮쳐 오는 놈을 피해서 앞발로 치고 땅에 쓰러진 대형 구더기의 목을 물어뜯은 산박은 그걸 보고 단번에 놈에게 달려들었다. 구더기를 쏟으면서 우걱우걱 다시 먹기 바쁜 놈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온몸의 피부에서 구더기가 스멀스멀 튀어나오고 있었다.

    단번에 놈의 등에 올라탄 산박은 놈의 목을 물어뜯었다. 놈이 괴성을 지르며 팔을 휘적거려 산박을 쫓아냈다. 산박은 땅으로 사뿐하게 착지하고 다시 놈의 등판에 뛰어들었다.

    휘청!

    구더기 기생체는 거대한 호랑이의 무게에 휘청거렸고, 산박은 놈의 등짝을 물고 발로 걷어차며 다시 놈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 속에서 시은이 놈의 발목을 베고 지나갔다. 충호는 해골을 덮친 대형 구더기를 죽이고 자신에게 스멀스멀 빠르게 기어 오는 놈에게 단검을 투척해서 땅에 박아 버렸다. 그러고는 다가가서 발로 걷어차고 목을 베어냈다. 턱 힘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물어야 효과가 있었다.

    강합은 보스의 입에서 사출된 놈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나머지를 처리하고, 힘줄이 베인 구더기 기생체는 빠르게 죽어갔다. 지치게 만든 뒤에 갈비뼈에 장창을 박아 넣어서 심장까지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고 했지만 심장이 엉뚱한 곳에 있는지 죽지는 않았다. 결국 목을 완전히 베어내고 나서야 숨이 멎었다.

    “빨리 밧줄 주세요.”

    처음 만난 놈이기에 모조리 밧줄로 묶었다. 대충이라도 걸치게 하는 데 바빴고, 남은 배낭으로 덮어 놓기도 했다.

    그사이에 대장삵은 치료 마법으로 강합을 치료했다. 몸은 치유가 되었지만 강합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허벅지를 달달달 떨어댔다.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지, 진정하세요!”

    “그, 그르륵.”

    강합이 거품을 물자 대장삵이 산박을 불렀다.

    “이 인간 미쳐 버렸어! 빨리 와 봐!”

    그가 불렀지만 산박은 보스 몬스터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고 외쳤다.

    “빨리 진행하세요! 던전 붕괴합니다!! 주궤 씨가 거품이라도 계속 걷어 내세요!”

    “예!”

    주궤가 손가락을 강합의 입에 집어넣었다. 강합은 버둥거리다가 주먹으로 주궤의 턱을 쳐버렸다. 그대로 녹다운된 주궤가 그의 몸을 덮쳤다. 그걸 끝으로 강합은 기절해 버렸다.

    그 누구도 강합을 쳐다보지 않았다. 지금 죽인 보스 몬스터의 사체를 조금이라도 더 가져가려고 애를 썼다. 밧줄을 아래로 쑤셔 집어넣고 반대편에서는 그걸 잡아당겨 위로 올린 다음 배낭으로 덮고 밧줄로 고정해서 다시 내렸다.

    세상이 점점 새하얗게 물들어 갔다. 모두 피가 바짝 마를 정도로 움직였다. 누구는 숨 쉬는 것도 잊고 몰두했다. 돈이라는 괴물에 잠식당한 인간의 치킨 레이스가 끝났다. 강합?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돈이었다. 그것이 던전이 무너지는 과정 속에서 더더욱 극명하게 표현되었다.

    [레벨 업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사용자 태산박을 인식합니다. 필요한 정보를 출력합니다.]

    [던전 사용자 태산박의 존재를 특정합니다. 당신은 카르마의 선택을 받은 자입니다.]

    [1레벨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충분한 카르마를 획득했습니다. 레벨 업을 위해서 남겨놓을 수 있고, 자신의 수준에 맞는 1레벨의 새로운 주문과 기술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1레벨 던전에서는 1레벨만 가져갈 수 있지.’

    여기서 선택지가 갈린다. 카르마를 안 쓰고 그냥 남길지, 1레벨 주문과 기술을 얻을지.

    ‘2레벨로 오를 때 힘의 증가는 두 배.’

    2레벨 던전을 공략해서 얻는 카르마도 그와 비슷할 것으로 예상됐다. 두 번 2레벨을 공략하는 것보다는 사실 네 번 안전하게 1레벨 던전을 공략하는 게 이득인 셈이다.

    ‘1레벨 공략이 한 달에 두 번인 것도 이를 막기 위해서겠지.’

    산박의 눈이 빛났다. 결론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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