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9화 (109/270)
  • 109화

    * * *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올라왔다. 송헐기 경장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피우다가 담배를 땅에 버리고 짓밟았다. 사람이 부족해지며 쓰레기를 수거해 가는 사람이 적어졌고 쓰레기통의 숫자도 줄어들었다. 버릴 곳이 마땅찮았기에 그냥 버리는 게 상책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CCTV가 없어.’

    조직적으로 파괴된 흔적을 확인했다. 가로등 또한 먼지가 앉아있는 정도로 봤을 때 ‘최근’에 부서진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 의심하기에는 너무 많은 가로등이 기능을 상실한 채 방치되어 있었다. 의심할 수는 있었지만 확신할 수는 없는 셈이었다.

    다만 CCTV의 현황은 보고해야 할 정도로 악의가 느껴졌다. 전산 시스템으로 관리되는 CCTV는 교통 범죄 CCTV뿐이다. 이런 좁은 길의 CCTV는 필요할 때 확인하는 게 전부였다.

    성과를 내지 못한 송헐기 경장은 송포변 순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격자는?”

    ―찾아보고 있습니다.

    “계속 그쪽으로 움직여.”

    ―예. 하지만 벌써 기사가 터졌습니다. 연쇄 살인범이라면 재미나서 더 움직이지 않을까요?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냐. 그리고 잠복은 다른 팀에서 해주기로 했다.”

    말벌처럼 톡 쏘지만, 그래도 필요한 정보는 내어주는 게 송헐기 경장이었다.

    ―아, 예.

    송포변 순경은 곧바로 이해했다.

    전화를 끊은 송헐기 경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친하게 지내는 기자였다.

    “왜?”

    ―아! 왜 말을 안 했어? 나 조회 수에 미치는 꼴 보고 싶어?

    “CCTV 찾으러 좆 빠지게 다니는데 뭔 지랄이야?”

    ―CC의 진행 상태는 어때? 뭐라도 나왔어?

    “씨씨?”

    ―캐리어 케이스(Carrier Case) 말이야. 딱 들어맞지?

    “대학로에서는 쓸 수 없겠는데. 그것보다 조사를 좀 해줬으면 하는데.”

    ―미리 말도 안 해줘~ 사람 손은 빌리고 싶어~ 이게 몇 번째야?

    “아! 자꾸 신경질 나게 그럴 거야? 시끄럽고, 여기 사는 던전 사용자 정보 좀 긁어 와줘. 윗선에서는 자를 게 뻔하니까.”

    던전 사용자의 경제적 가치는 엄청나다. 특히 기름 한 방울도 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그들에 대한 경제 의존도는 비정상적이었다. 시민 위에 공권력이 있고, 공권력 위에 던전 사용자들이 있는 셈이었다. 약 먹은 검찰조차도 대기업이 빨아주는 던전 사용자는 건드리지 않았다.

    강력계 형사가 던전 사용자 지역 현황도를 요청한다? 주제를 알아야 했다. 결국 불법적으로 아는 수밖에 없었다. 던전 사용자에게 목줄을 채우고 싶어 하는 이들은 넘쳐났기 때문이다.

    ―근데, 이 사건을 던전 사용자가 했다는 증거가 있어?

    “없다는 증거도 없어. 그리고……. 아냐.”

    뒷말을 송헐기 경장은 줄였다. 순간 기자의 숨소리가 조금 거칠어지는 게 느껴졌다. 작은 빈틈에 기자의 본능이 달아올랐기 때문이었다.

    ―있네, 있어! 뭐야? 엉?

    “끊는다.”

    전화를 끊은 송헐기 경장은 먼 곳을 바라보았다. 담배가 절로 생각났다. 품에서 담배를 하나 꺼냈다. 줄담배는 가장 몸에 해로운 것이지만, 담배가 아니면 안 됐다. 순경에 오르고 1년 차에 불과했던 그 시절이 자신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놈이 돌아왔다.’

    수법은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성폭행의 흔적도, 잔혹성도 그 무엇도 없었다. 말 그대로 ‘죽이기 위한 행동’. 죽이는 게 목적이다. 보통의 살인 사건과 확연하게 달랐다.

    강간하기 위해서 살인한다. 내가 강하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강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참혹하게 때려죽인다. 엉망진창으로 대가리를 해머로 후려쳐서 잔혹성을 보여준다. 난 이 사회의 호랑이다!

    …하지만 이놈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죽이는 게 목적의 전부다. 어떻게 죽이는 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송헐기 경장이 이토록 그에 대해 잘 아는 건 다른 게 없었다. 그가 형사가 된 이유이기도 했다.

    평범한 교통경찰관에 불과했던 송헐기는 그날을 잊지 못했다. 어디에나 있는 큰 음식물 쓰레기통에 보이던 발바닥을, 결코 그는 잊지 못할 것이었다. 아마 범인을 잡아도 평생 떨쳐낼 수 없을 터였다.

    평범한 사람에게 살인 사건이란 그러한 종류의 것이었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고,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질 수 없다. 어느새 다가와 어둠 속에서 발바닥이 보인다. 새하얀… 발바닥이 그 두 눈에 끝없이 새겨지고 덧칠해진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날것 그대로의 살인 사건에 노출되었고 그 피비린내는 그를 강력계로 끌어내렸다. 성실한 그에게 거기에서 도망치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 담배도 그때부터 피우기 시작했지?’

    꾸깃.

    송헐기는 피우던 담배를 반으로 접고, 그대로 버렸다. 왠지 모르게 쓴맛이 났기 때문이었다.

    * * *

    모래 골렘과 검은 슬라임 다섯 마리는 함께 있었다. 검은 슬라임 다섯 마리는 천장에 들러붙어 있었는데, 바닥이 모래여서 자리를 천장으로 옮긴 듯했다. 쭉 늘어져서 들러붙어 있어서 슬라임이 천장에 있는 걸 좋아한다는 걸 모른다면 그냥 지나칠 수 있었다. 인간의 초점이 천장을 향하고 있는 것과 그러지 못한 것의 차이는 크다. 고로, 던전에서는 아는 게 힘이었다.

    작전은 간단했다. 대장삵과 충호가 모래 골렘을 상대하고, 나머지는 검은 슬라임을 빠르게 처리한다. 그리고 돕는다. 충호가 모래 골렘의 싸움에 먼저 임하게 된 건 한 방을 버텨야 하기 때문이었다.

    “후우!”

    긴장한 티가 역력한 충호가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 나갔다.

    “우오오오오!!”

    충호가 고함을 내질렀다. 그리고 대장삵과 함께 좌측 구석으로 향했다. 다른 이들은 천장에 달라붙은 채 쭉 늘어진 검은 슬라임을 공격했다.

    철퍽!

    산박의 슬링에 맞은 슬라임의 몸이 터져 나가며 두 쪽으로 나뉘더니 그대로 땅으로 추락했다. 화살에 맞은 슬라임은 화살을 따라서 주욱 늘어지다가 아래로 뚝 떨어졌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당한 검은 슬라임 세 마리를 사정없이 후려치고, 조각냈다. 형편없이 얻어맞는 검은 슬라임은 철저하게 ‘소수’였다. 합공을 받아서 빠르게 죽어 나갔고, 강합의 재블린과 장창 또한 큰 위력을 냈다. 쑤셔 박으면 부르르 떨기 바빴다.

    여유가 있는 놈들은 튀어 올랐지만 이시은과 해골이 이를 적절하게 쳐냈다. 쳐내면 전장에서 거리가 확 멀어졌고, 다시 오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준비된 전략을 찔러 넣었고, 통했다. 변수는 없었다.

    쏴아아아아!!

    파도와 모래가 부딪쳤다. 파도가 반으로 쩍 갈라졌지만 모래 또한 파도에 휩쓸려서 함께 지나갔다. 선제공격은 성공적이었다. 모래 골렘의 주먹 하나의 전투력을 반토막 냈다. 그럼에도 모래 골렘의 다른 주먹은 건재했다.

    쿠웅!

    “끄윽!”

    충호가 방패로 이를 막았지만 주르륵 미끄러졌다. 발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충격 때문에 옴짝달싹도 하지 못했다.

    쾅!

    한 걸음 내디딘 모래 골렘이 발로 충호의 방패를 그대로 걷어찼다. 충호가 처참하게 데굴데굴 굴렀다. 하지만 그사이에 대장삵의 파도에 모래 골렘의 한쪽 다리가 추가적으로 유실되어서 무릎이 꿇려졌다.

    충호가 모래 골렘의 공격을 두 번 받아줬고, 그사이에 대장삵이 온 힘을 다해서 물의 마법을 휘둘렀다. 파도에 휩쓸린 모래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하지만 동시에 모래 골렘은 끝없이 모래를 쏟아내고 있었다.

    부웅!

    무겁기에 느리다. 그런 개같은 소리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곰조차도 거친 길을 달리는 자동차와 대등하게 달릴 수 있다. 인간의 질투일 뿐이었다.

    대장삵이 물길을 조정해서 모래 골렘의 공격을 단번에 회피했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공세를 더 펼쳤다면 파도와 함께 곤죽이 났을 터였다.

    파도와 주먹이 정면으로 부딪쳤을 때, 파도가 반으로 갈라졌을 때, 이미 모래 골렘의 수준을 파악한 대장삵이었다. 두 번의 맹공을 퍼부은 대장삵에게도 한 번쯤 모래 골렘이 공격을 가할 것이었다. 특히나 충호가 널브러졌을 때는 더더욱.

    ‘더 이상은 공격이 불가능하다.’

    파도로 짜잘짜잘 갉아먹는 게 전부였다.

    여기서 검은 슬라임을 모두 처리한 다른 팀원들이 가담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라도 마땅하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산박의 등에 달라붙은 물의 연어는 물을 계속해서 생산했다. 대장삵의 부담을 적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다른 이들은 방패를 든 이들은 계속 건방지게 굴었다. 주궤는 가장 먼저 리타이어했는데, 모래 골렘이 쏜 눈먼 모래에 얻어맞고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어찌나 무식한 모래 덩어리인지 전신을 두들겨 맞아서 혼절해 버렸다.

    단단히 긴장하고 있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바짝 긴장하고 충격에 버틴다는 생각을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산박에게 주궤의 근접전에서의 능력치가 C 혹은 D 등급으로 규정되는 순간이었다. 마치 기습을 당한 것처럼 어이없게 기절해 버렸다. 그게 가장 큰 감점 요소였다.

    모래 주먹과 발차기를 맞고 나뒹군 충호가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퉤!”

    모래가 씹혔다. 언제 들어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거칠고 격렬하게 쏟아져 들어온 모래는 입에 자잘한 상처를 주기 충분했다.

    ‘웃.’

    일어서려고 했지만 허벅지의 근육이 충격 때문에 딱딱하게 굳었다. 잔뜩 힘이 들어가서 다른 동작을 할 수 없었다.

    “후우우우…….”

    충호는 긴장을 풀고 반대로 움직였다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아찔한 감각과 함께 단단하게 뭉친 근육이 삐걱거리며 움직였다. 한 걸음은 어려웠지만, 그 뒤는 그대로 달릴 수 있었다.

    방패를 앞세운 충호가 무기를 버렸다. 균형을 잡기가 힘들어서였다. 작전대로 하려면 이게 최고였다.

    꿀꺽, 꿀꺽!

    충호는 적당히 달리면서 산박에게서 받은 치료수를 잔뜩 마셨다. 가죽 주머니에서 치료수가 줄줄 목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최대한 잔뜩 마시고 거칠게 숨을 토해냈다.

    “간다아아아아아!!”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신호를 줬다. 결국 방패를 지닌 전사다운 충호만이 모래 골렘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었다. 단순히 대량의 모래에 처맞고 기절한 주궤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그건 재능이다. 산박조차도 가지지 못한 재능이었다.

    “으아아아!”

    강합이 장창을 거칠게 휘적거렸다. 모래 골렘의 몸이 돌려졌다. 강합의 척추가 펄떡 뛰었다. 모래 골렘을 정면으로 마주하자 밀려오는 공포감에 오금이 저렸다. 강합이 그대로 뒤로 물러났을 때, 충호가 골렘의 사정권 안에 확실하게 돌진했다.

    쿵!

    그 주먹이 충호를 후려쳤다. 이를 충호는 놀랍게도 버텨냈다. 몸을 그곳으로 돌리며 돌진력을 통해서 상쇄해 냈다. 충격이 몸을 후려쳐서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충호는 그대로 엎어졌다.

    모래 골렘의 발이 충호의 등을 아슬아슬하게 긁고 지나갔다. 골렘의 상체가 옆으로 기울었다.

    ‘지금이다!’

    다른 이들이 죄다 달라붙었다. 그 위로 대장삵이 껑충 오르며 물을 크게 쏟아냈다.

    콰직!

    모래 속에 숨겨져 있던 핵을 산박의 환도가 깨뜨렸다. 모래가 먼지를 일으키며 폭삭 주저앉았다.

    “헉헉, 헉!”

    강합이 헐떡거렸다. 공포를 겪었기에 몸의 컨디션이 무너졌고 호흡이 너무 쉽게 흐트러졌다. 다들 몸을 추스르기 바빴지만 산박은 충호에게 서둘러 다가가서 그를 치료했다.

    “아픈 곳은요?”

    뻐금뻐끔…….

    “허벅…지요.”

    숨을 못 쉬는 듯했지만 충호는 금방 숨통이 트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회복이 굉장히 빨랐다.

    산박은 충호의 갑옷을 벗겼다. 시은도 이를 도왔다. 넘어진 것 같은 상처가 온몸에 있었다. 모래가 쓸고 지나가서였다.

    인간을 상대로 모래 골렘은 강력한 괴물이었다. 작은 틈이라도 있으면 모래 알갱이들이 그 속으로 쑤욱 들어가서는 그대로 옷을 찢고 가죽을 상처 주고 살갗을 도려낸다.

    ‘모래 골렘. 기억해 둬야겠어.’

    산박은 위협적인 상대로 모래 골렘을 기억해 뒀다. 던전 사용자 중 마법사라면 모래 골렘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자잘한 놈들을 해치우는 데 모래 골렘만큼 효과적인 게 없어 보였다.

    산박은 출혈이 큰 충호의 안쪽 허벅지를 발견했다. 기이할 정도로 모래가 피와 많이 뒤섞여 있었는데, 모래 골렘이 가진 ‘기술’로 보였다. 치료하면서 산박은 가진 ‘힘’을 거의 모두 소비했다.

    다음으로 일행은 모래 진형의 중심에 있는 마법사의 제단으로 향했다. 아무것도 없는 삼각형의 계단형 제단이었고 그 크기는 작았다. 높이는 150cm에 불과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네요. 뭐가 있어 보이지만…….”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이 던전이 원하는 게 바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산박은 남들과는 다르게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뒤로 물러났다.

    “왜요? 뭐가 보이세요?”

    “네.”

    보일 듯 말 듯한 선들의 조합이 거리에 따라서 다르게 보였다. 3걸음……. 2.5걸음……. 다시 2.8걸음 정도 거리를 조정한 다음에 산박이 한 바퀴를 돌았다. 다른 이들은 산박의 주변에서 물러난 지 오래였다.

    ‘여기다.’

    산박은 돌고 돌다가 한 부분에서 선이 사각형을 만드는 것을 보고 그곳에 다가가 꾹 눌렀다. 사각형이 단번에 쑥 들어가더니 제단이 떡 벌어지며 쓰러졌다.

    쿵.

    내부에 있는 건 작은 석상이었다. 손을 쫙 폈을 때의 크기와 같았다.

    ‘이건…….’

    전에도 본 형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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