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화 (103/270)
  • 103화

    섬광 단검 세 자루가 내는 빛은 암흑 던전에서도 화려하게 빛났다. 본래라면 벌써 여섯 개의 눈에 모두 화살과 볼트가 박혀도 시원찮았지만, 횃불조차도 음침한 암흑 던전에서는 세 개가 고작이었다.

    ‘지금 어떻게든 놈에게 최대한 피해를 줘야 한다!’

    눈의 기능이 완전히 상실된 지금이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산박, 충호, 강합 세 사람은 다가가기는커녕 뒤로 빠졌다.

    “크아아아아아!!”

    보이지 않는 두려움에 휩싸인 ‘굽혀진 아가리 괴물’이 미친 듯이 발광했다. 특히 앞발이라는 게 퇴화되어서 귀엽고 짜리몽땅했기에 더더욱 예측할 수 없었다. 미쳐 날뛰는 멧돼지에게 다가가는 인간은 없었다. 하물며 저런 3m짜리 높이를 지닌 공룡 놈에게 덤벼들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거 써야 하는 거 아닙니까?”

    눈을 멀게 했지만 시은과 주궤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아직 산박의 팀에는 강력한 원거리 수단이 하나 존재했다.

    “걱정 마세요.”

    하루 일당의 세 배에 달하는 놈이 나타났다. 힘을 아낄 필요가 없었다. 던전 공략은 레벨 업을 통한 쾌감도 있지만 돈도 챙겨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놈이 나타난 건 팀에게 큰 행운이었다.

    ‘던전에 들어와서 한 시간도 안 걸었지만, 여기서 하루를 끝낸다.’

    꿀꺽, 꿀꺽!

    산박은 별빛 물약을 단숨에 삼켰다. 체내에 별의 힘이 스며들며 산박이 지닌 힘과 뒤섞여서 형질이 변화했다. 이는 주문에 녹아들어 더 큰 피해를 일으킬 터였다. 산박의 눈에서 광채가 번쩍 흘러나왔다.

    드루이드는 자연을 숭배하지만 기본적으로 수행자이며 구도자의 속성을 지닌다. 그들은 모든 종교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들이었으며 진리 탐구에는 1만 가지가 넘는 길이 있다고 믿는 수도사였다. 이는 영혼에도 닿아있다. 영혼 자극 기술은 그러한 드루이드를 가장 잘 표현하는 독특한 기술이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레벨이 하향되긴 했지만, 산박은 소나무 향기 외뿔 주문을 사용했다. 인간인 상태에서 사용하면 지혜가 상승하고 자연스럽게 주문 피해력도 증가한다.

    우두둑.

    마치 물렁뼈를 씹었을 때 나는 소리가 골을 울렸다. 뼈가 돋아나며 고통이 산박을 괴롭혔다.

    “크으으…….”

    산박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만큼 강렬한 신체 변화였다. 단순히 뼈가 늘어나서 생기는 고통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전신이 변화되는 동물 변화는 고통이 엄청나야 정상이다. 뼈가 전부 바뀌어야 하니까.

    ‘뿔에서 거친 맥동이 느껴진다.’

    푸르륵!

    큼지막한 수사슴의 숨결이 귓가로 들려왔다. 아니, 머리로 직접 느껴졌다. ‘신비’하기 짝이 없는 주문이었다. 마치 산박이라는 인간의 위에 수사슴이 덧칠된 기분에 휩싸였다.

    그 상태에서 산박은 작은 별의 힘을 모았다. 양손으로 작은 별들이 오밀조밀 모이며 띠를 이루었다. 전보다 확연하게 많이 모였다. 아무래도 지혜 능력치가 증가하면서 ‘별의 수련자 기술’ 또한 영향을 받은 듯했다.

    ‘이거라면 별빛탄 주문을 하나 더 쓸 수 있다.’

    별빛탄 주문이 여섯 개가 사용돼 하나가 되어 응축되었다. 강화된 집중성탄이 완성되었을 때, 산박은 거대한 탈력감을 느꼈다. 평범한 드루이드였다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불가해의 피로감. 하지만 산박은 단번에 그 탈력감의 원인을 깨달았다.

    ‘영혼 자극으로 자극되어 극소량의 영혼과 외뿔에 깃든 수사슴의 숨결이 서로 뒤섞였다. 내 정신력이 빠르게 소모된다.’

    구토감이 몰려왔다. 산박의 눈에 굽혀진 아가리 괴물이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당황했지만 금방 몸을 추스른 모습이었다.

    지체하지 않고 집중성탄을 발사했다. 소나무 향기 외뿔 주문의 알고리즘과 영혼 자극 기술의 방식은 산박에게 독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쐐액!

    빛살처럼 뻗어 나간 집중성탄이 너덜너덜한 놈의 머리를 그대로 관통했다.

    …쿵!

    사지에 힘이 그대로 풀린 것처럼 놈이 꼴사납게 널브러졌다.

    “헉헉.”

    산박은 현기증을 느꼈다. 소나무 향기 외뿔은 그대로 사라졌다. 다른 이들은 코를 비볐다. 강렬한 소나무 향기에 콧물이 찔끔 나왔기 때문이었다.

    “우웨에에엑!”

    산박이 안에 것을 게워냈다. 손발이 덜덜 떨렸다. 모두가 서둘러 달려왔다.

    “괘, 괜찮으세요?”

    시은이 크게 당황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예. 예. 괜찮습니다.”

    산박은 물로 입을 몇 번이나 헹궜다. 하지만 토사물 냄새는 입 안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굉장했다.’

    소나무 향기 외뿔과 영혼 자극의 상성은 산박이 건드리면 위험할 정도로 궁합이 좋았다. 이건 큰 무기였다. 특히 중형 괴물을 죽이기 좋았다. 정신력을 앗아 가는 게 너무 컸지만, 중형 괴물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사격 궤도에 따라서 몸 전체를 관통시킬 수도 있다.’

    다른 이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한 방에 중형 괴물을 침묵시켰다. 1레벨 던전에 나오는 만큼 형편없는 놈이지만 체중으로 던전 사용자를 압살하기에 충분한 스펙을 지닌 괴물이었다. 방심하면 한순간에 죽는 치명적인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쉽게 해결할 수 있으면 엄청난 가치를 지닌 던전 사용자였다.

    들뜬 팀원들에게 산박이 손사래를 쳤다.

    “정신력 소모가 커서 안 돼요.”

    밥 먹듯이 사용할 수 없었다.

    “일단 부산물을 추려 내겠습니다.”

    움직이기 싫은 걸 억지로 움직이며 산박은 부산물을 획득할 준비를 했다. 다른 팀원들도 재빨리 움직였다. 산박은 식은땀을 흘리며 가다가 우물쭈물하고 있는 주궤를 볼 수 있었다.

    ‘아, 맞다. 모르지, 참…….’

    “주궤 씨는 절 도와주세요.”

    “아, 예!”

    산박이 그를 챙겼다. 충호는 강합과 같이 다니고 있었고, 시은은 주궤에게 흥미가 없었다. 그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게 없다고 여기고 있어서였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주궤가 나약한 존재라는 것이었다.

    일행은 머리로 향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다 밧줄을 들고 있었다.

    “이놈은 버릴 게 없어요. 자주 나오지도 않는 놈이라 기업끼리 경쟁이 붙은 몇 없는 것 중에 하나라서 금일봉도 가능해요.”

    한 달 치 수익을 한 번에 얻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 말에 주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엄청난 행운이 첫 1레벨 던전에서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산박은 웃으면서 그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 줬다.

    “초심자 버프죠.”

    “그 정도는 아닙니다. 하하하.”

    주궤가 쑥스러워하며 웃었다. 은근히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듯했지만, 찰나에 불과했다. 산박이 주제를 다시 돌려서였다.

    “‘굽혀진 아가리 괴물’의 뼈에는 능력 흡수의 잔재가 존재하는데 이 뼈를 녹여서 물약으로 만들어 다른 장비의 공정에 사용합니다. 고레벨 던전 사용자들의 장비 중에 손꼽히는 장비인 ‘융합 장비’의 핵심 소재입니다.”

    능력 흡수의 뼈! 바로 쓸 수는 없고 뼈 자체를 녹이고 고급 이상의 연금술로 제련해야 했기에 취급할 수 있는 기업도 소수에 불과했다. 문제는 그런 기업의 숫자보다 뼈의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그럼 천만 원도 가능합니까?”

    “하하하.”

    산박은 자신도 모르게 크게 웃었다.

    “기업이 바보도 아니고, 가격이 그렇게 높아지면 사겠습니까? 고레벨 던전 사용자도 가진 돈이 한정되어 있고, 결국 그 구매력에 맞춰서 상품을 내야 합니다.”

    기업 자체에 마진도 남아야 하고, 고급 연금술을 사용하는 일류 연금술사에게 월급도 줘야 한다. 일손이 부족한 기업은 의뢰를 하기도 한다. 유통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손을 대기 귀찮아하는 연금술사는 대부분 기업에 속해 있지만 그렇지 않은 프리랜서 연금술사도 있었다. 그들은 일이 바쁠 때 거드는 정도였고 기업에 속한 것보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다. 일감을 얻는 게 힘들기 때문이었다. 개인보다는 브랜드 가치가 있는 기업이 더 신뢰 있기 마련이었다.

    “그럼 얼마에 팔립니까?”

    “저 한 마리에 300만 원입니다.”

    “와우.”

    4인 팀 기준 시 두당 75만 원이다. 입이 떡 벌어졌다. 거기에 자기 몫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산박이 속삭였다. 은혜를 입힐 때가 왔다. 이 소시민적이지만 벼랑 끝에 몰리면 달리는 남자는 쓰기 좋았다.

    “나중에 제 몫을 떼어 드릴게요.”

    몰래 속삭이면서 ‘비밀’처럼 굴었다.

    “가, 감사합니다.”

    “일단 일을 시작하죠. 밧줄을 이렇게 자르면 여러 개로 나뉘잖아요? 이 실 같은 걸 계속 엮으세요. 그래서 이놈을 칭칭 묶으면 던전이 붕괴할 때 통째로 나옵니다.”

    “그런 방법이…….”

    밧줄을 잘라 가만을 최대한 길게 엮어서 배낭처럼 만들어 버리는 셈이었다. 이 작업은 여덟 시간이나 소모하는 것이었고 그 이후에는 모두 샤워를 했다. 대장삵의 물의 마법으로 땀을 씻어냈다.

    꿀꺽꿀꺽.

    “캬아아아아!”

    ‘물의 연어’가 빈 생수통에 물을 채웠고, 서로 돌아가며 마셨다. 계곡수처럼 시원했다. 물의 연어가 팀에 투입되고 나서는 보급이 널널했다. 그 덕에 버너까지 가져온 상황이었다.

    “크으. 후후, 크어어.”

    짬뽕 라면 수프를 세 개 넣고 어묵과 마른 낙지 등을 잘라서 끓여 마시는 것만으로도 천국이었다. 절로 크어어거리는 소리가 났다. 마지막에는 짬뽕 라면 수프에 있던 건더기와 조금 남은 국물에 누룽지 간식을 넣어서 푹 묵혀 죽처럼 마시는 걸로 끝냈다. 공사판 스타일이었지만 누구도 싫어하지 않았다. 일품 중 상품의 자극적인 맛이었다.

    대장삵만이 노동에 동원되지 않고 경계를 섰다. 그는 오징어를 질겅질겅 개껌처럼 물고 있었다. 흙이 묻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고 산박이 팀원들을 모았다. 복기를 하기 위함이었다.

    * * *

    부산 사상구 사상역. 굉려가 기차에서 내려 역 밖으로 나왔다. 추운 날씨였지만 군밤을 파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한 봉지 주세요.”

    “오천 원만 줘.”

    세 주먹 넣어주고 오천 원. 개짓거리였지만 굉려는 불만 없이 만 원을 건넸다. 손에 피 묻은 사람치고 자신의 죄를 조금이라도 덜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것도 작은 선행이라 여겼다. 딱 봐도 없어서 못사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굉려는 캐리어를 하나 끌고 걸어서 동장 여관에 들어갔다. 노래방의 둥둥거리는 소리가 지하에서 들려왔다.

    “며칠 지내려고?”

    기가 세 보이는 파마한 아줌마가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10일요.”

    “허이고. 제대로 마음먹고 여행 왔나 보네.”

    “가장 높은 층으로 주세요. 노래방 노래 때문에…….”

    “까다로운 청년이네. 그러면 여자들이 안 좋아해. 알았어? 근데 얼굴이 좋아서 주는 거여.”

    굉려는 키를 받아 들고 올라갔다. 501호에서 짐을 풀었다.

    ‘종휼간.’

    그놈은 제법 생각해서 도망쳤지만, 오히려 머리로 생각하고 도망쳐서 추적에 성공할 수 있었다.

    부산 사상구에는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었고 현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게 없었다. 서울이 있었다면 수원역이나 수원 고등동 쪽의 조선족을 통해서 잠수를 탔겠지만 지금은 서울이 없는 상황이었다. 부산 쪽으로 내려가서 외국인과 거래해 잠수를 타는 게 낫겠다고 여긴 듯했다.

    ‘머리를 굴렸지만,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몇 개 없지.’

    잠수를 타라고 하면 일반인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 면에서 휼간은 제법 머리를 썼다. 그렇지만 굉려 같은 인간 백정에게서 도망칠 정도는 아니었다.

    굉려는 캐리어를 열었다. 검은색 일색의 복장과 비닐봉지 여럿. 평범한 복장도 눈에 들어왔다. 과하지도 너무 무난하지도 않은 옷이었다. 이번에는 약간 세미 정장 쪽으로 구했다.

    검날이 없는 단검. 검날이 있는 단검. 혁대에는 전기 충격기가 들어가기 쉽게 되어 있었고, 그 외에도 다양한 도구들이 즐비했다.

    계획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었다. 다른 명의로 차를 렌트하고, 놈을 위협해서 납치한다. 그게 전부였다.

    ‘돈으로 얻은 은신처는 돈으로 빼앗기기 마련이지.’

    간단한 이치였다. 그가 준 것보다 더 많은 돈이면 심부름을 하며 잠수 타게 도와주는 놈들의 손에서 손쉽게 휼간을 건네받을 수 있었다.

    * * *

    러시아인 아담 코발레프(Adam Kovalev)는 러시아에서 여자를 공수해 와서 한국에 매춘으로 팔아 버리는 놈이었다. 친구 몇 명을 동료로 삼아 세 명이서 다니기를 즐겼다. 러시아 소도시에서 여자 데려오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바나나 몽키 새끼들은 서양인이라면 사족을 못 써서 수요도 엄청났다.

    그런 그는 요즘 재미난 부업을 하고 있었다. 한 놈에게 방 하나 빌려주는 것만으로도 월 30만 원씩 두둑하게 받고 있었다.

    “세어 보세요.”

    그는 술집에서 거침없이 합석한 미친 동양인을 보며 흰 봉투 안에 든 돈을 헤아렸다.

    “100만 원? 이걸 왜 나한테 주는 거야?”

    “데리고 있는 동양인을 다시 주인에게 돌려줘야 해서.”

    “아하. 주인에게서 도망친 노예 새끼구만.”

    “그간 데리고 있어 주셔서 드리는 감사의 표시입니다. 다만 여기서 더는 드릴 수 없습니다.”

    코발레프가 굉려를 훑었다. 그러고는 몸을 일으켰다. 싸우면 제법 피를 볼 것 같았다. 100만 원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것만 해도 큰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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