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굽혀진 아가리 괴물. 1레벨 던전에 등장하는 괴물 중에서 가장 버릴 게 없는 놈이었고, ‘대박’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괴물이었다. 아무 던전에나 무작위로 출현하기 때문에 대중없이 나타나는 놈이기도 했다. 종종 늪에 잡아먹힌 채 버둥거리다가 던전 사용자에게 발견되어서 그대로 죽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자신에게 맞지 않는 던전에도 등장하는 게 특징이었다. 워낙 개복치 같은 놈이라서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끄어어엉!”
쿵쿵! 후두두둑…….
짜증 내는 울음소리가 산박의 귀에 들려왔다. 다른 이들은 굳어 있었고, 시은은 무표정했다. 반면에 산박은 웃고 있었다.
“천장의 높이를 보세요. 놈은 제 몸 하나 간수하기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아!”
충호가 감탄하며 무릎을 쳤다. 굽혀진 아가리 괴물은 척추가 이리저리 기형적으로 뒤틀린 괴물이었다. 그 때문에 덩치는 상당하지만 1레벨 던전에 출몰하는 놈이었다. 그리고 이곳의 천장 높이는 3m 정도 되어 보였다. 굽혀진 아가리 괴물이 멀쩡히 운신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중형 괴물급이 1레벨 던전에 나오는 건 미친 소리였지만 이미 그런 덩치 크고 단점이 있는 괴물을 만난 적이 있어서 불합리하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공략할 방법이 확실하게 있기 때문이었다.
“놈의 덩치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섬광 단검으로 눈 여섯 개를 멀게 하고 눈부터 공격하겠습니다. 혹시 모르기 때문에 주궤 씨가 천장에 화염 토템을 소환해 주세요. 놈의 눈을 노리시면 됩니다.”
“예!”
주궤가 소리를 질렀다가 입을 턱 다물었다. 모두의 시선이 확 꽂혔다.
“괜찮습니다. 움직일 때마다 소리를 크게 내는 놈이라 못 들었을 겁니다.”
머리로 천장을 부수면서 오고 있는 놈이다. 크고 가까운 소리에 귀가 적응되어 있을 것이고, 작고 멀리서 나는 소리는 더더욱 듣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다른 이들이 주궤에게서 눈을 돌렸다. 주궤 또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산박에게 점수를 따고 싶고 다른 팀원들에게 자신이 그래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필하고 싶은 열정이 발생시킨 실수였다. 젊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했다.
“퇴로를 만드세요. 원거리 사격을 두 번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해요.”
뒤로 도망쳐야 했기에 퇴로에 흙을 덮기 시작했다. 통로에 있는 모든 물웅덩이를 흙으로 덮지 않아도 되었다. 일렬로 도망치면 되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는 스피드가 우선이었다.
“주궤 씨는 토템 설치하시고, 그 앞에 횃불을 두세 개 설치해 주세요. 열 걸음 간격으로요.”
“예.”
주궤는 함정을 설치하고 그 앞에 횃불을 켜 땅에 박아 넣었다. 적이 어느 정도 오는지 가늠하기 위해서였고, 실수하지 않고 타이밍을 완벽하게 맞추기 위해서였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놈을 맞히기보다는 한번 노출된 적을 맞히는 게 더 쉬웠다. 또한 원거리 사격이 가능하도록 열 걸음 간격으로 횃불을 세 개나 더 설치했다.
대장삵은 뚫어져라 통로의 저 너머를 보고 있었다. 암흑 던전이었기에 횃불의 불빛이 평소처럼 멀리까지 비쳤지만 막처럼 어둠이 끼어 있어서 집중을 잔뜩 하고 있었다.
대장삵의 귀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삵의 뒤통수를 보는 건 힐링되는 일임이 분명했지만 그런 걸 볼 여유는 없었다. 모두 습기와 물 때문에 물러진 흙을 퍼서 물웅덩이를 지우기 바빴다.
“그만해라! 온다!”
서둘러 일행이 모였다.
지금까지 오면서 유골 하나 보지 못했기에 시은은 언데드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현실에서 시체를 사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인천 네크로맨서들이 독점하고 있기에 비싼 편이었다.
언제 어디서 돈이 필요할지 모르는데 그런 거에 돈을 쓸 리가 만무했다. 1레벨 풀 장비를 하려면 최소 500만 원은 드는데 0레벨 던전으로 500만 원을 만드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충무김밥 가격처럼 미쳐버린 장빗값이었다.
그 때문에 시은은 탕만과 강합에게 돈을 빌려줬고, 수백만 원을 써버렸다. 아무리 화염 물약으로 수익을 얻는 그녀라 할지라도 목돈이 훅 깎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소비품이 될 수 있는 시체를 구매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었다. 당장 시은의 위치가 위태로운 것도 아니고, 하향 조정될 일도 없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주궤만 봐도 시은이 얼마나 A급 던전 사용자인지 알 수 있었다.
“충호 씨와 강합 씨는 혹시라도 일이 틀어질 것 같으면 화염 진득액을 무기나 방패에 바르세요.”
화염 진득액. 비싸디비싼 소비 아이템이었다. 옥시모론 팀의 조커 아이템이기도 했다. 1회에 불과하지만 강력한 화력을 낼 수 있었다. 점착이 가능한 불타는 액체라서 어디에서든지 상대에게 끔찍한 피해를 줄 수 있었다.
물에도 꺼지지 않으므로 취급에 매우 조심해야 했다. 철을 만나면 불타기 시작하고 그 뒤로는 꺼지지 않기 때문에 던전 사용자들에게 안성맞춤인 무기였다. 대충 철에 묻혀서 상대에게 묻혀 버리면 상대는 끝없는 고통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그걸 두 개나 쓰도록 허락했다. 던전 사용자들이 좋아하는 괴물이라고 해도 중형급 덩치를 지닌 놈이었다. 모든 경우의 수와 리스크를 생각해야 했다.
“눈을 멀게 하고 눈을 공략할 때까지는 도망치면서 원거리 싸움만 할 겁니다. 운 좋게 놈이 저희 앞에 당도하면 제가 집중성탄을 쓸 시간만 벌어 주시면 됩니다.”
부상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치료수와 대장삵의 수 속성 회복 마법으로 치료할 수 있기 때문에 즉사만 아니면 됐다. 강합은 불안해했지만, 충호는 그런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적과의 근접전이 어지간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는 듯했다.
산박의 작전에서 얻을 수 있는 이점만으로도 끝난 전투나 다름없었다. 싸우기 전에 이미 승패가 났다는 뜻이었다.
‘가장 먼저 천장 때문에 안 그래도 움직이기 불편한 놈을 섬광 단검으로 눈까지 멀어 버리게 한다.’
‘그다음에는 눈을 공략한다. 눈이 여섯 개라지만 능히 가능하다. 하나같이 원거리 수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렬로 도망쳐서 다시 사격도 가능했다.
‘눈 공략이 삐끗해도 화염 토템이 있지.’
천장에 붙어서 적을 기다리는 자그마한 묘목은 다시 한번 시력을 상실케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추가적인 횃불이 앞에 놓여 있기도 했다. 2중, 3중 시력 박살 대책이었다.
거기에 그게 상대 때문에 완벽하게 굴복되었을 시 화염 진득액을 바로 쓰도록 두 명에게 명령했다. 덩치가 큰 놈이라 방패에 화염 진득액을 묻혀서 한 번만 묻힐 수 있으면 전투는 쉽게 끝날 터였다.
화상의 고통은 생명체가 감당하기 힘들었다. 적을 공격하기보다는 고통에 지배되어서 버둥거리다가 죽는 선택지밖에 없었다. 부상은 피할 수 없겠지만 뼈 몇 개 부러지는 대신에 실패한 전술을 성공 궤도로 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생각이었다.
‘팀장님의 팀은 점점 더 높아지고 넓어질 것이다.’
충호 또한 듣는 것이 있었다. 특히 시은이 충호와 친밀해지기 위해서 조금씩 도움을 주곤 했는데, 산박이 유일하게 보유한 A급 전사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출셋길이 훤한 호랑이와 같은 사내인데 가만히 둔다? 사회생활 못 해본 놈이나 할 법한 일이었다. 귀찮아서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멍청해서 안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덕에 충호 또한 더욱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은이 제공한 정보 덕분이었다.
‘던전 기업을 만드시겠지.’
그 중추에서 떵떵거리며 살기 위해서는 산박의 눈에 제대로 들어야 했다. 산박은 분명 성공할 것처럼 보였고, 사업 수완도 있었다. 산박에게 차용증을 써서 1레벨 풀 장비를 얻은 게 충호였다. 돈줄이 될 산박이었기에 그에게 붙는 게 충호에게는 아주 편한 출셋길로 보였다. 그가 무리해도 희희낙락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반면 강합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해서 산박이 그를 다독이고 있었다. 그걸 충호는 굳이 막지 않았다. 오히려 부추기고 싶어서 자신도 다가가서 강합을 다독여 줬다.
“해보겠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합은 몇 번이나 그렇게 말했지만 산박은 멈추지 않고 용기를 부여해 줬다. 속으로는 혀를 쯧쯧 찼다. 주궤가 ‘아얄타의 나무 타투’를 새겼음에도 중형급 괴물과 한 번 부딪칠지도 모른다는 말에 불안해했기 때문이었다. ‘장창병’으로 쓰는 게 고작인 남자였다.
‘그것도 지금은 감지덕지하지만……. C급 전사로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어.’
많은 사람들이 2레벨 던전으로 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중형급 괴물과의 싸움 때문이었다. 1레벨 던전에도 종종 나오지만 하나같이 나사 빠진 것들뿐이었다. 강합은 저레벨 던전에 잔류할 가능성이 큰 전사였다.
“끄어어어엉!”
횃불의 불빛에 놈이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전체적으로 ‘공룡’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머리가 지나치게 컸고, 몸통의 1/3은 되어 보였다. 비대한 대가리를 지녔기에 제법 귀엽게 봐줄 수도 있어 보였다.
새까만 검은색의 뱀과도 같은 가죽은 횃불의 불빛과 음울한 암흑 던전의 흐린 시야 때문에 요사스럽게 보였다. 그리고 한 줄의 새하얀 비늘이 뒷머리부터 시작해서 꼬리까지 척추 선을 따라서 주욱 이어져 있었다. 관상용으로 써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지나치게 비대한 대가리가 특히나 인상적인 괴물이었다.
하지만 그건 멀쩡할 때나 가능했다. 눈앞의 괴물은 사람 머리통만 한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큰 공기 소리를 내고 있었고, 머리의 피부는 죄다 까지고 긁어져서 피와 상처로 가득했다. 가장 윗부분은 두개골이 보일 정도였다.
‘끔찍하네.’
덩치가 큰 놈답게 생명력 하나는 끝장났다. 거기에 눈에 깃든 광기가 굉장히 포악해 보였다. 그 포악한 눈이 여섯 개에 달했다. 아쉬운 건 제대로 위치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맞힐 수 있겠어요?”
“해봐야죠.”
“암흑 던전이라서 전략을 바꾸겠습니다. 섬광 단검은 가까이 오면 쓸게요.”
산박이 즉흥적으로 낸 전술을 수정했다. 그들 모두 산박이 말하기 전까지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섬광 단검이 활과 석궁이 닿는 곳까지 뻗어 나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직선형 통로를 길게 마주하고 있었기에 활과 석궁이 먼저 쏘아질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지형을 언급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없어서 생긴 촌극이었다. 군사학을 제대로 전공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기도 했다. 여기 있는 이들 모두 전공자가 아니었다. 혹은 천부적인 군사적 재능을 지닌 이들도 아니기도 했다. 다만 금방 수정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시은과 주궤가 공격을 시작했다.
푹! 푸푹!
쏘는 족족 박혔는데, 굽혀진 아가리 괴물은 얼굴 가죽이 크게 훼손되어 있어서 제대로 된 방어력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크아아아악!”
놈이 거칠게 발악하며 두 다리를 크게 앞으로 내디뎠지만 고개가 앞으로 쑥 기울었다. 앞다리가 없다시피 한 놈이라서 그대로 턱이 땅을 주르륵 긁었다. 가죽이 너덜너덜해졌다.
“이런 미친!”
이어지는 괴물의 행동에 강합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구경하는 입장이었기에 손에 힘만 잔뜩 들어갔다.
턱이 땅에 처박혔음에도 척추가 비틀려 있는 굽혀진 아가리 괴물은 그대로 뒷다리를 거칠게 움직였다. 물이 계속 떨어지는 던전 환경 특징상 흙도 물이 묻어서 물렁물렁했는데, 발을 움직일 때마다 퍽퍽 땅이 패어서 주르륵 미끄러졌다. 그런데도 놈은 놀라운 속도로 질주했다. 다치든 말든 상관없이 적을 향해서 돌진했다.
푸욱!
이시은의 석궁은 정확하게 놈의 눈을 세 개를 앗아 갔다. 회피하지 않고 맹렬하게 돌진하는 놈이라 더더욱 정확한 샷이 가능했다. 횃불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궤는 한 개가 고작이었다.
일행은 두 번 쏘고 도망쳤다. 거리를 벌리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불꽃 나뭇잎을 지닌 화염 토템이 후우욱 불꽃을 방사했다. 정확하게 눈이 있는 부분을 태웠다. 뒤이어서 등과 꼬리까지 태우고 그대로 힘을 잃었다. 모습은 유지되었지만 더는 불꽃을 토해내지 못했다.
“크아아아!”
눈썹이 타고 가죽이 새까맣게 탄 굽혀진 아가리 괴물이 휘청거리며 벽에 곤두박질쳤다.
쾅!
짧은 순간이었지만 시야가 불꽃 때문에 차단되었고, 단박에 균형을 잃었다. 눈을 여섯 개나 지니고 있었기에 시력을 잃으면서 오는 상실감이 균형마저도 무너뜨릴 정도로 컸다. 척추가 뒤틀려 있어서 더더욱 쉽게 균형을 잃었다. 굽혀진 아가리 괴물은 서둘러 일어났지만 그대로 반대편으로 쓰러졌다.
쿵!
꼬리를 퍼덕거리자 뒷다리의 근육이 출렁거렸다. 거대한 힘이 느껴졌다.
퍽! 퍽퍽!
화살과 석궁이 괴물에게 박히고 있을 때, 산박이 외쳤다.
“지금입니다! 전사들은 앞으로 나가서 섬광 단검 던질 준비 하세요!”
충호가 환도를 과감하게 버리고 섬광 단검을 쥐고 달려 나갔다. 미친 짓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화염 진득액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기에 방패 하나면 족했다. 거기에 적도 한 마리뿐이었다.
버둥거리고 있을 때 섬광 단검을 쓰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렇기에 산박은 ‘대기’하라고 했다. 강합은 장창을 등에 짊어지고 열다섯 걸음 앞으로 뒤늦게 따라가서 재블린을 한 자루 투척했다.
푸우욱!
살이 통통하게 오른 괴물의 오른쪽 볼에 재블린이 깊게 박혔다.
“크아아아아악!”
놈이 엄청난 고통에 단박에 일어났다. 재블린 공격은 확실한 실책이었다. 산박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공격을 넣었고, 볼트나 화살과는 다르게 관통상을 당하며 신경계가 크게 놀라 굽혀진 아가리 괴물이 더 빨리 몸을 수습하게 만들었다.
휘청! 쿵.
괴물의 몸이 벽에 다시 한번 부딪쳤고 천장에서 돌이 떨어져 내려서 상처를 더욱 괴롭혔지만 넘어지지는 않았다. 부딪치는 소리가 전과 다르게 약했다.
놈이 딱 한 걸음을 내딛기 전에 산박이 다급하게 외쳤다. 자리를 잡기 전에 놈이 일어섰기 때문에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갔다.
“지금!”
갑자기 외친 것이라 서로 간격이 조금 차이 났다.
버번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