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8화 (98/270)
  • 98화

    2팀 해체로 붕 뜨게 된 매주궤와도 말을 해야 했다. 여기서는 산박이 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산박은 아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말 그대로 이번 일의 가장 큰 피해자는 매주궤였다.

    거기에 매주궤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부류의 ‘착한 사람’이었다. 산박이 가장 좋아하는 인간 종류이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좋아하는 만큼 그들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 이들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일이 있어서 2팀은 공중분해가 되어 버렸습니다. 핵심 인력 한 명이 좀 뒤가 켕겨서 잠수를 탔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도 몸을 사려야 하고요. 제 부족함이 커서 생긴 일입니다. 죄송합니다.”

    산박은 매주궤에게 있는 그대로를 설명했다. 거짓말은 최대한 안 하는 게 좋았다. 특히 자존심을 세우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거짓말은 할 때가 있고 안 할 때가 있었다. 지금은 안 할 때였다.

    사타구니를 세우듯이 어디서나 세우고 싶어 하는 게 자존심이었다. 특히 약한 사람에게 자존심은 불룩하고 더 솟아나기 마련이었다. 이를 경계해야 했다. 왜냐하면 약자일수록 사과에 약하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사정을 말하고 사과하는 것만으로도 매주궤는 쩔쩔매고 있었다. 표정부터 불안불안했지만 산박을 욕하거나 화를 내지는 못했다.

    “그럼 1팀의 임시 팀원으로도 안 되나요?”

    “그건 됩니다. 당연히 되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던전 공략 기회가 적어지지 않습니까?”

    “다른 던전 팀에 속할 수는 없나요?”

    “하셔도 됩니다. 다만, 그렇게 해도 괜찮겠습니까? 이거 죄송해서…….”

    산박이 고개를 거듭 숙였다.

    “계속 사과하지 마세요. 전 정말 괜찮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죠. 팀장님 탓도 아니시고…….”

    매주궤도 고개를 연거푸 숙였다. 괜히 자신도 죄송스러워졌다.

    “임시 팀원이 되시면 나중에 꼭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2레벨이든, 3레벨이든…….”

    “괜찮아요. 그리고 전 2레벨 던전 공략을 할 생각이 없어요.”

    “아, 그럼 1레벨 정규직을 노리시는 겁니까?”

    “예. 뭔가 대단해지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냥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 보거나 그렇게 살고 싶고…….”

    산박은 고개를 절로 끄덕였다. 이런 사람이 보기 드물지는 않았다. 하지만 1레벨이 된 게 신기했다. 보통 이런 자들은 0레벨 던전에서 떨어져 나가기 마련이었다. 상당한 수련과 연습, 현실적인 기술 연마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다음에서야 1레벨로 올라서며 레벨 업 시스템의 보조를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매주궤는 이상한 놈이었다.

    “이거 실례가 될 수 있지만, 보통 그렇게 안전한 삶을 생각하면 던전 사용자는 되지 않지 않나요?”

    “할 땐 하는 거죠. 하하하. 또 익숙해지면 한 달에 세 번만 가면 되고요. 그럼 한 달에 15일은 쉰다는 소리인데, 그것만큼 좋은 직업이 어디 있겠어요? 수익은 좀 떨어지더라도, 전 많은 돈을 원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럴듯한 소리였지만 궤변이나 다름없었다. 리스크가 있기 때문이다.

    ‘신기한 사람이네.’

    어찌 되었든 산박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이야기를 조금 더 진행시켜 볼까.’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에게 꿈과 목표를 부여한다.

    “그럼 저랑 끝까지 가보시죠. 1레벨 1팀장, 아니, 과장은 어떻습니까? 그러면 오히려 일이 더 줄어들걸요.”

    “과장요? 팀 여럿 관리하는 거요?”

    “예.”

    그가 손사래를 쳤다. 사람 관리는 할 짓이 못 된다. 특히 집돌이인 그에게는 더더욱 스트레스고 ‘일’이었다.

    어찌 되었건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밖으로 나온 것뿐이었다. 시간당 페이를 최대한 쳐주는 직업을 찾은 결과 던전 사용자로서의 길을 선택했다. 고졸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기도 했다. 하지만 기술과 주문, 그런 것들을 통해서 몸의 피로도를 낮출 수 있다면 능히 집돌이 라이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차분한 조사 끝에 도달한 결과였다.

    개인의 사적인 이야기를 들은 산박은 나쁘지 않게 생각했다. 한마디로 벼랑 끝에 서보니 뭐라도 해야겠어서 하나 찍어서 달린 것에 불과했다. 달리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고, 밥벌이가 어느 정도 되자 정신을 차리고 1레벨에 잔류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택배가 아니라 던전 사용자로 달린 게 좀 황당하긴 하네.’

    세상 물정을 모르고 살았다기에는 나이가 스물네 살이었다. 알 거 다 아는 나이여야 했는데, 현실 감각이 좀 떨어지는 듯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호구라면 나한테는 좋지.’

    배신당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고, 그릇도 좁았기에 돈에도 넘어가지 않을 것이었다. 자신의 기반이 중요할 뿐이었다. 얇고 길게 사는 이들의 장점이었다. 먹고사는 게 바쁘니 일단 1레벨까지는 뚫어 놨는데 더 나아가는 건 무서운 놈들이었다. 산박의 좋은 먹잇감이기도 했다.

    “그럼 1레벨 1팀장은 괜찮죠?”

    “정확히 어떤 건데요?”

    산박은 곧바로 미래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이건 제법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몇 시간이나 걸리는 계약이었다.

    “1레벨 전담 팀이죠. 거기를 담당하시는 거예요. 스케줄도 본인이 정하시고, 1레벨 클리어만 꾸준히 내주시면 터치도 없어요.”

    “아하…….”

    “제가 해드리는 건 문서 처리나 부산물 판매 같은 귀찮은 것들이죠. 어떠세요?”

    “나쁘지 않은데요.”

    자신의 시간을 크게 아낄 수 있어 보이자 주궤가 흥미로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종류의 인간에게는 시간이 곧 금값이었다.

    “물론 먼 미래의 일입니다. 당장은 임시 팀원이죠.”

    “그건 그렇죠. 하지만 기대되는데요.”

    현실을 상기시켜 주기도 했다. 너무 미래의 일만 말하면 뭔가 동떨어져 보이고 실감이 잘 안 나기 때문이었다. 지금과 미래를 자꾸 이어주고 다리를 만들어 놓아야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진짜 일어날 일처럼 만들 수 있었다.

    특히 사람과 관계하기 싫어 하는 것처럼 보이는 주궤는 자신이 팀장이 되면 쪼이는 일도 적어질 것 같아서 희희낙락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되면 다시 계약서 짭시다.”

    산박은 거기에 살짝 함정을 설치하기도 했다. 으레 하는 ‘사람 시험’이었다. 그에게 선택지를 줌으로써 언제든지 도망칠 길을 만들어 줬다. 유혹에 혹한다면 거기서 그냥 끝이었다. 산박은 오래 유지할 사람을 원하는 거지, 이익에 대가리가 휙휙 돌아가는 물고기 새끼를 원하는 게 아니었다.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오래갈 인간이 걸리길 기도하는 것이 산박이었다.

    ‘지금까지는 승승장구 선택하는 대로 만났지만 앞으로는 어찌 될지 모르지.’

    피곤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시험을 통과하는 사람이야말로 진국이었다. 산박은 그런 진국을 원했다. 자신을 놓아주고 스스로 모든 죄를 짊어지고 가버린 신부님처럼, 그럼 사람을 원했다.

    매주궤와의 만남은 수월하게 끝났다. 오히려 생산적인 만남이었다. 사과하러 가서 사업 하나 따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던전 공략보다 다른 게 오히려 더 힘들단 말이지.’

    황당한 노릇이었다. 괴물보다 더 힘든 게 사회생활이라니…….

    * * *

    산박은 부정한 경찰에게서 얻은 CCTV 자료를 훑었다. 부동 지구의 몇몇 길목에 대한 CCTV였는데, 모형 CCTV로 지정된 곳에도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설치한 CCTV 같았다.

    ‘무서운데.’

    장 노인의 세월에서 오는 인맥은 실로 무서웠다. 꾸준히 용돈 주듯이 경찰과 깊은 연관을 맺어서 어디서든 편법이 가능해 보였다.

    유나는 밤에는 잘 나오지 않았다. 다른 일을 보러 갈 때는 점심 이후로 아직 날이 밝을 때 이동했다. 실종 전에 밤에 나간 건 딱 두 번뿐이었다. 한 번은 평상복 차림, 다른 한 번은 운동복 차림이었다.

    ‘흠……. 이걸로는 뭘 알 수가 없네.’

    그냥 사고에 휘말려서 실종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운이 안 좋았다고 해야 할지 몰랐지만, 중요한 건 유나가 또 선을 넘은 뭔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건 정보료 때문일 수도 있었고, 고레벨 던전 정보를 팔려고 했을지도 몰랐다. 다른 이들보다 자신의 수준이 낮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장비로 풀 세트를 맞추려면 돈이 필요했겠지…….’

    그럴듯한 추론이었다. 다만, 100%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 유나에 대한 소식이 더 들어온다면 모르겠지만…….’

    산박은 사건을 덮었다. 얇은 노트를 꺼내서 SUN이라고 굵은 네임 펜으로 쓰고 그곳에 자신의 현재 생각을 꼼꼼히 썼다. 나중에 펼쳐볼 때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다음에 던전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 2레벨이 되었어도 1레벨 던전은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2레벨 특성은 여전히 적용되지만 2레벨 주문과 기술은 1레벨 수준으로 효력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사용하는 힘도 1레벨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도 전보다는 쉬울 수밖에 없지.’

    두 배로 쉽지는 않겠지만 큰 이득을 본 건 맞았다. 능력치가 상승하고 특성을 하나 얻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1레벨로 하향 조정 되겠지만 능력치와 특성만은 여전했다.

    ‘저번에 못 간 탕만을 넣어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강합이었다.

    “여보세요?”

    ―네, 팀장님. 지금 통화 가능하십니까?

    “네네. 가능합니다. 무슨 일로 그러시는데요?”

    ―다음 던전 공략 때, 저도 가고 싶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예? 하지만 전에 물었을 때는 못 간다고 하셨지 않나요?”

    산박이 당황했다.

    ―네. 근데 오늘 0레벨 던전을 혼자 클리어했습니다. 트라우마도 확실하게 사라졌고요. 다시 갈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일단은 수긍했다. 망설임 하나 없었다. 순번으로 따지면 강합은 명분이 있었다. 또 강합은 탕만, 충호와 제법 인연이 있었다.

    통화를 끊은 산박은 턱을 톡톡 손가락으로 건들며 눈을 감았다. 예상외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거 곤란한데…….’

    산박, 시은, 충호, 탕만, 강합, 굉려, 주궤.

    총 일곱 명이었다. 그중 네 명이 임시 팀원인 상태였다. 시은과 충호는 한 번도 던전 공략에서 빠진 적이 없다. 실력이 있어서 뺄 이유도 없었다. 가장 안전하게 던전을 돌아야 하기 때문이다.

    ‘주궤를 내칠까?’

    가장 최근에 들어온 자였다. 그냥 계속 두면 다른 팀에 갈지도 몰랐다. 다만, 기술과 주문이 너무 편향적이라서 팀에 들어가는 게 어려울 듯했다. 무엇보다 1레벨 잔류를 원하는 던전 사용자가 그냥 굴러서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나중에 회사를 차릴 때 계속 같이하기 좋지.’

    그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2레벨로 가고 싶어 하고 있었다. 나중에 1레벨 잔류 던전 사용자를 뽑겠지만, 그 전에 한 명을 미리 키워놓는 건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팀장으로 놓고 맡기기 좋기 때문이었다.

    ‘그때가 되면 사무원도 있을 테니까.’

    자신이 소비할 시간을 남이 대신 소비해 준다. 많은 일을 할 때 필요한 게 사람이었다.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결국 포기했다. 새로운 팀을 만들 수는 없었다. 그들은 산박과 함께하고 싶은 것이지, 따로 팀을 새로 만들어서 소속되려는 게 아니었다. 오버시어의 경우에는 산박이 남들 쉴 때 한 탕을 더 뛰었으니 가능했다. 하지만 이것도 2레벨이 되면서 1레벨 제한이 걸리며 요원해졌다.

    ‘솔직해지자.’

    날것 그대로 말하자면 시은과 충호, 굉려 외에는 B급이었다. 그리고 굉려는 떠날 일이 없었다. 장 노인이 산박과의 연결 고리를 가지고 싶어 하기 때문이었다. 장 노인에게는 ‘던전 사용자 굉려’라는 지위가 필요했다. 던전에서의 산박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전사가 적었기에 탕만과 강합은 필요했지만 충호가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졌다.

    ‘주궤에게 연락해야겠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주궤를 최대한 키우는 게 필요했다.

    [주궤 씨, 수익금은 5만 원 고정으로 1레벨 던전에 갈 생각 있으신가요? 전투도 해야 합니다. 4명이서 가는 거 5명이서 갈려고요. 임시 팀원이 생각보다 많은 상태라, 주궤 씨를 밀어드려서 1레벨 1팀을 더 빨리 만들고 싶은데요.]

    [가겠습니다.]

    0레벨 혼자 돌아서 3만 원을 버나 1레벨 공략해서 카르마를 얻고 5만 원 버나. 뭘 선택할지는 뻔했다. 거기에 산박의 팀은 경험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중 세 명은 던전 클리어율도 높았다.

    산박은 탕만과 굉려에게 연락을 돌렸다. 둘 다 수긍했다. 수긍 안 하고는 못 배겼다.

    ‘겉으로는 뭔들 못 할까.’

    다른 길을 찾을지도 모른다. 그때가 오면 보내주면 된다. 산박에게 우선 팀원은 듀얼 클래스인 이시은, 체급 자체가 넘사벽인 서충호, 장 노인과 함께라면 배신 걱정 없고 공격력도 상당하며 사람 죽인 경험이 충분한 장굉려였다.

    ‘탕만과 강합의 마음이 가장 크게 흔들리겠지.’

    배신감도 제법 될 것이다. 1레벨 풀 세트를 만들었음에도 1레벨 던전에 나오지 못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던 산박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강합이 어떻게 장비를 맞췄지? 빚?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 세상의 금리는 살인적이다. 오죽하면 계 모임이 일반적인 세상이 되어 버렸을 지경이었다. 변호사가 대리해서 돈을 관리하는 편이고, 그 돈도 소수였으며 개인이 여러 개의 계 모임에 함께하지 못하는 국가 금융 조회 기관이 있는 등, 굉장히 계 모임이 발달해 있었다.

    강합이 다리를 라이트 랜스에 관통당했을 때 팀원을 제외하고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 자가 계 모임을 한다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음.’

    뭔가 서늘한 감촉이 목에 닿았다. 서늘함에 산박이 목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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