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7화 (97/270)
  • 9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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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주궤와의 만남은 손쉬웠다. 함정같이 쓸 수 있는 토템과 버프 주문으로 취급받는 타투는 썩 좋은 것이 아녀서 그는 매우 협조적이었다. 다만 조금 평범했고 열정 있어 보이는 것처럼 행동했다. 조금 조용해지자 따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산박에게는 나쁘지 않은 팀원이었다.

    ‘미친놈보다는 열정적이지 않은 사람이 낫지.’

    문제를 일으키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관리자 입장에서는 사실 조금 수동적인 팀원이 더 좋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오직 ‘후방 직업’에 해당하는 사항이었다. 전사가 수동적이면 공격 한번 안 한다.

    적이 공격하지 않는 허수아비를 상대하는 일은 너무 쉬웠다. 적극성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도 X 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 상대만 X 되는 전투 상황에서는 온 힘을 다해서 공격만 하면 그만이다.

    그를 단번에 영입한 산박은 으레 그러듯이 정기적으로 연락을 돌렸다. 그와 인연을 계속 이어 가고 싶은 이들은 이에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간 제법 발 빠르게 대답했던 유나는 연락이 없었다.

    그걸 이상하게 여긴 건 그다음 날이 되어서였다. 산박은 곧장 행동에 임했다. 마치 이미 준비했던 것처럼 순서를 밟아 나갔다.

    가장 먼저 휼간을 찾는 얕은수는 쓰지 않았다. 휼간 또한 정보꾼 출신이었다. 유나가 데려온 사람이기도 했다. 이제 남은 정보꾼은 그 혼자뿐이었다. 쓸 수 있는 카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휼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다.

    ‘대단한 자는 아니지.’

    사실 유나가 가져온 정보를 되팔이 하는 되팔이 정보꾼이라 반편이나 다름없었다. ‘정보꾼’이라는 전력으로 칠 수 없는 얼치기였다. 고로 그를 이런 중요한 일에 쓰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분명 실패를 하고, 실수하고, 드러날 것이 분명했다.

    ‘납치? 살인?’

    산박은 턱을 두드리며 용의자를 추려냈다. 유나의 주변부터 살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휼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기 연락을 꾸준히 하고 유나에게 의존적인 모습을 보였다. 앞으로 2팀에서 활약한다면 유나와 잘 지내면 잘 지냈지 죽일 필요는 없었다.

    유나 또한 휼간과 크게 싸웠다면 산박에게 전했을 것이었다. 휼간이 마음에 안 들었다면 데려오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 이후에 심경 변화가 있었다고 쳐도 먼저 연락을 했을 터였다. 휼간에 대한 불만을 말할 기회는 언제든지 많았다.

    ‘그러지 않았다는 건, 휼간과 함께 던전 공략을 하겠다는 뜻이지.’

    고로 휼간이 유나를 죽이거나 납치할 이유는 없었다.

    ‘지인 중에서는 일어날 수가 없는데.’

    산박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저 운이 나빴나?’

    현실은 때때로 잔혹하다. 스무 살에 꽃을 피우지 못하고 죽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유나 또한 그중에 하나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산박이 움직이지 않을 이유는 되지 않았다.

    ‘휼간은 팀에서 방출한다.’

    계약서 하나 없는 관계였다. 손쉽게 이루어낼 수 있었다. 유나 때문이라고 말하면 그도 뭐라고 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자극받으면 낌새를 알아차릴지도 모르고. 그게 안 되더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2팀은 완전히 분열인가.’

    입맛이 썼다. 새로운 사람들로 오버시어의 팀 색을 다시 갖추려면 몇 달의 훈련 과정을 또 거쳐야 했다. 짜증 나는 일이었다. 유나의 갑작스러운 잠수는 산박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었다. 공략률 100%의 성공 신화를 만들려던 오버시어 팀이 황당하게 고꾸라지게 되는 셈이었다.

    ‘이익에 연연하면 안 돼.’

    그는 길게 가야 했다. 유나가 잠적을 하였건 죽었건 중요한 건 누군가가 오버시어 팀에 관심을 보였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 혹은 유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고레벨 정보 때문일 확률도 있다.’

    어쩌면 산박에게 마수를 뻗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2일이 지났는데도 조용했다. 유나는 ‘송유나’가 아니라 ‘고레벨 정보꾼’으로 죽은 듯했다. 그녀에 대한 신상 정보를 알면 그다음은 산박이나 휼간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런 낌새가 없었기에 송유나는 자신의 신분을 들키지 않고 화를 당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낙관적인 소리였다. 그래도 여기까지 시간이 지난 걸 보면 확실해 보였다.

    인간 백정 노릇을 했던 산박이었다. 시간을 끌면 병신이었다. 머리를 쳤으면 팔다리도 자르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살아남은 놈은 복수를 꿈꾼다. 혹은 다시는 노출되지 않는다. 한다면 하룻밤 만에 끝내는 게 베스트였다.

    ‘이시은?’

    유나와 관계를 지닌 모든 이들을 한 번씩은 생각해야 했다. 시은도 용의선상에 올려졌다.

    ‘이유가 없어.’

    지난 경험을 보아 사람을 죽이는 데 거리낌이 없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건 던전에서의 상황 때문이었다. 클리어와 실패를 반복하며 적당한 비율을 지닌 채 재미를 보는 살인자 놈들을 어쩔 수 없이 역으로 친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뒤로 물러날 곳이 없다. 강단이 있고 실행력이 높으며 결단력이 날카로우면 누구나 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시은은 대단히 부지런한 사람이고, 향상심도 컸다. 각오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살인을 즐겼다면 내 눈에 딱 들어왔겠지.’

    그런 낌새는 없었다. 조금 소악마적인 행동을 하기는 하지만 팀의 이득을 봤을 때 용서해줄 만했다.

    ‘그렇게 친한 것도 아니고…….’

    고민은 깊어졌지만 수확은 없었다. 되레 손해만 있을 뿐이었다. 유나가 정확히 어떻게 되었는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산박이 할 수 있는 건 제한되어 있었다.

    ‘1팀에서 의심이 가는 사람을 꼽으라면 시은 하나뿐이다.’

    그녀가 범인이라면 그 전에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 게 이상했다. 특히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린 강합이 살아 있다는 게 모순적이었다. 시간적 여유는 충분히 있었다. 그렇다면 여자만 죽이는 걸까? 혹은 다른 조건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특별히 확 다가오는 건 없었다.

    ‘그녀를 내치기에는 실력이 아쉽다.’

    거기에 2레벨 던전이나 3레벨 던전으로 가면 던전을 공략하는 팀원의 숫자가 늘어난다. 개인의 영향력은 점점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시은은 보류한다. 하지만 신뢰 등급을 낮춘다.’

    무슨 일이 있을 때 시은은 후순위고 상대적으로 충호가 위로 올라간 셈이 되었다. 혹은 탕만이나 강합이다. 그들은 시은과 술자리를 가지고도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유나와도 접점이 없다. 제외해도 좋았다.

    ‘굉려는 논외고.’

    장 노인의 영향력은 산박보다 크다. 그는 아니다. 1팀에서의 입지가 흔들렸다면 2팀에 속하기 위해서 죽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충호와 굉려의 조합은 상등품이었다. 중앙에서 덩치 큰 전사가 관심을 끌고, 굉려가 근접전으로 측후방을 노린다.

    ‘그것도 강력한 공격력으로.’

    굉려는 안전하게 상대의 뒤통수를 쳤기 때문에 그 손맛과 손쉬운 던전 공략의 맛을 알았다. 포기할 수는 없었고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을 터였다.

    ‘그런 면에서는 시은도 아닐 수 있지.’

    노력이 대단하여서 굳이 불법적인 일을 손에 댈 이유가 없었다. 마녀와 네크로맨서. 직업만 두 개였기에 승승장구하는 일만 남았다. 인간이기에 실수를 저지를 수 있지만 글쎄였다. 워낙 자기 관리가 뛰어난 여자였기 때문이다.

    ‘처음 봤을 땐 이상하게 경박했는데……. 그건 연기였겠지.’

    보면 볼수록 진국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가까이 둘 수 없었다. 쥐고 함께하기에는 좋지만 등을 맡기기는 힘든 셈이었다. 어중간한 선에서 극진히 대접해 주는 게 옳았다.

    그렇다고 해도 의심스러운 이들을 죄다 ‘판단’하는 건 꼭 필요했다.

    ‘따로 팀장으로 독립시켜야겠다.’

    시은은 산박의 팀에서 퇴출된다. 다른 팀의 팀장이라는 명목으로 쫓아내는 셈이다. 조금 나중이 되겠지만 번복은 없을 것이었다. 자신에게서 떨어뜨려 놓는 게 좋았다. 던전 공략에는 한 점 의심도 있어서는 안 됐다. 같이 던전 공략을 하게 될 때도 있겠지만, 그때는 시은의 사람이 아니라 산박의 사람에 둘러싸여서 그녀가 함께할 것이었다.

    산박은 생각을 정리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네 가지였다.

    1. 오버시어 2팀의 완벽한 붕괴 및 정리.

    2. 종휼간 손절.

    3. 시은의 팀장 독립.

    4. 장 노인 방문.

    장 노인의 경우는 생각과 고민이 필요 없었다. 오래 산 만큼 사람과 많은 교류를 하고 있는 게 그였다. 일이 생기면 그와 접촉하는 건 결정 사항이나 다름없었다. 산박이 가지지 못한 인력과 인맥이 있기 때문이었다. 노력한다면 산박도 능히 양적 팽창을 할 수 있지만, 그래서야 위험만 커질 뿐이었다.

    가장 먼저 산박은 장 노인을 만났다.

    “그래? 들은 건 없다.”

    “확실합니까? 짚이는 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없다. 적어도 부동 지구에서 뭔 일이 일어나면 내 귀에 다 들어오게 되어 있다.”

    장 노인은 짧게 대답했다. 그건 그의 배려였다. 오래 잡아두지 않는 것만으로도 산박은 큰 시간을 벌 수 있는 셈이었다.

    “CCTV 동영상을 몇 개 담아서 줄 테니 창고 문을 열어둬라.”

    “감사합니다.”

    “오래 함께 가는 사이에 이 정도는 쉽지. 빚이라 생각해 주면 더 고맙고.”

    “빚을 달아 두겠습니다.”

    “하하하.”

    장 노인이 웃었다. 산박의 태도가 아주 만족스러웠는데, 눈앞의 손해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 게 기특했다. 만약 여기서 실리를 추구했다면 장 노인은 산박을 다시 봤을 것이었다.

    빚을 지기 싫어하는 건 결코 좋은 게 아니었다. 점점 큰 게 오고 갈수록 서로 빚을 지우고 싶어 하는 게 사업하는 사람들의 심리였다. 돈을 갚을 여력이 되어도 어음을 주는 것과는 달랐다. 말 그대로 ‘빚’이었다.

    산박은 그걸 이해하지 못했지만 장 노인에게 어울려 줬다. 진짜로 장 노인이 이 ‘빚’을 사용한다면 그때는 사이가 틀어질 뿐이었다. 그저 어느 정도 생각해 달라는 것 정도였다.

    장 노인을 만난 다음에는 휼간을 만났다. 카페에서 서로 마주했다.

    “유나 씨한테서 최근 연락을 받은 게 언제죠?”

    “예? 그게…….”

    휼간은 스마트폰을 꺼내서 메신저의 날짜를 확인했다. 그 무신경함을 산박은 주의 깊게 살폈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무신경함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의심이 줄어들었다.

    그는 위기 속에서 멍청해진다. 그걸 생각했을 때, 방금은 설계했을 수 있었지만 그걸 아주 자연스럽게 내비쳤다. 유나를 어찌했다면 여기서 보여줬을 것이었다.

    “3일 전입니다.”

    “최근에 만난 건요?”

    “제법 됐습니다. 일수까지는 잘……. 5일? 7일?”

    주말이 주말 같지 않은 게 그들이었다. 던전 공략은 평일, 주말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휼간은 병원에서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때 날짜 감각이 무뎌졌고, 다시 정착되지 못한 듯했다.

    이것저것을 물어도 휼간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애초에 이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저, 팀장님, 근데 유나는 왜요?”

    “전화 한번 해보세요.”

    휼간이 통화 버튼을 눌렀고, 이내 끊었다. 유나의 휴대 전화는 켜져있지 않았다. 시은이 부순 지 오래였다.

    “어?”

    “몰랐습니까?”

    “잠수 탄 건가요?”

    휼간은 산박이 자신을 드잡이질 했기에 유나가 잠수를 탄 건 줄 알았다.

    “왜 모르시죠? 서로 친분이 있으셨잖아요. 연락을 한 번도 안 하셨어요?”

    “그게, 보통은 유나가 저한테 먼저 연락을 해서요. 그래서 필요한 게 있으면 그때 말하는 편입니다.”

    선을 넘는 송유나의 모습을 본 산박에게는 상당히 신뢰성 있는 발언이었다.

    “알겠습니다. 다만, 그것 때문에 오버시어 팀을 해체할 예정입니다.”

    “예?!”

    휼간이 소리를 질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고, 하늘이 무너지는 굉음이었다.

    “어, 어째서 그렇게 됩니까? 유나는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아마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하지만, 고레벨 던전 정보를 유나 씨가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그쪽으로 의심할 수 있죠.”

    “아.”

    휼간이 단번에 넘어갔다. 되팔이 정보꾼이라도 돌아가는 사정은 으레 듣기 마련이었다. 특히나 정보꾼이 잡혀 죽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주제도 모르는 천한 것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이번에는 그게 유나가 되었을 뿐이었다.

    “고레벨 던전 정보 얘기는 처음 들어 봅니다.”

    휼간이 눈을 질끈 감았다. 눈두덩이를 손으로 만졌다. 뭔가, 뇌가 제대로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유나 씨와 관련된 건 모조리 쳐내는 게 신상에 좋습니다. 그래서 그런 거고요.”

    “전 근데 괜찮을 겁니다. 1팀 임시 팀원으로라도…….”

    그가 애써 웃었지만 산박은 한숨을 내쉬었다.

    “휼간 씨, 지금 나 살기 바쁜데 어떻게 휼간 씨까지 챙겨 줍니까? 그리고 예전부터 같이 정보꾼으로 활동하셨다면서요. 그런 당신 내 팀에 넣었다가 저까지 똑같은 놈으로 보이면 어떡합니까?”

    산박이 말벌 떼처럼 그를 몰아붙였다. 서늘한 목소리가 휼간의 귀를 때렸다.

    “그건…….”

    그는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말끝을 흐렸다. 산박은 다시 부드럽게 말을 이어 나갔다.

    “휼간 씨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서둘러 어디로든 가세요. 새 출발 할 수 있을지는 모르죠. 하지만 일단 살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유나 씨가 실종인지 죽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냥 어떻게 되어 버렸을 뿐입니다.”

    “예.”

    “그럼 저희가 할 일은 하나뿐입니다. 쥐 새끼처럼 웅크리는 것뿐입니다. 흩어져야지 더 살 수 있고요. 아닙니까?”

    “예.”

    산박은 거듭 그를 다독거렸다. 나도 어쩔 수 없다. 너도 살아야 한다. 근데 무섭다. 그걸 이해해 줬으면 한다. 블라블라…….

    그 어떤 약속도 다짐도 없는 힘없는 변명들이 산박의 입을 통해서 뻗어 나왔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휼간을 손절하고, 산박은 팀을 완전히 해체했다. 모든 사이트에서 2팀에 대한 정보를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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