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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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박은 2팀, 오버시어의 재정비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산박, 휼간, 유나가 한자리에 모여서 회동을 가졌다. 대만식 BBQ에서 식사를 하며 오버시어의 새로운 시작을 자축했다.
휼간은 그 회식 자리에서 구원받았다. 마음의 짐을 크게 덜어낼 수 있었다. 같이 식사를 한번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아니라 다시 한번 든든한 공략 팀에 소속되었음을 확인했고, 마음속에 단단히 자리 잡게 만들었다. 인간은 의외로 단순한 법이었다.
“새로운 팀원은 최대한 빨리 구해 보겠습니다. 임시 멤버 두 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산박은 더는 1레벨 던전에 마음대로 갈 수가 없었다. 한 달에 두 번밖에 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2레벨을 공략하기에는 2레벨 던전 팀의 폐쇄성 때문에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산박이 지닌 1레벨 장비의 숫자는 여덟 개. 소비 아이템까지 하면 열다섯 개가 넘는다. 장물로 판다고 쳤을 때, 단순 계산으로 100만 원은 너끈하게 벌린다.
‘사람 사냥이 본격화되기 좋지.’
1레벨 장비 풀 세트를 입은 던전 사용자는 걸어 다니는 보물이었다. 2레벨 초행자는 특히나 노리기 쉽다. 사고사 처리 하면 그만이었다.
어디서든 신입은 피를 흘린다. 경력을 쌓기 위해서 무료로 봉사하기도 하고, 전쟁터에서는 베테랑 대신 죽기 일쑤였다.
멀쩡한 사람도 금일봉 100만 원에는 혹하기 마련이었다. ‘완벽한 장소’가 지급된다면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땅에 떨어진 돈 봉투를 보고 그냥 지나칠 사람은 없었다. 그저 리스크가 있어서 경찰서에 가져다주는 것뿐이었다. 혹은 돈맛을 모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세상 풍파를 조금 덜 맞은 온실 속 화초겠지.
어찌 되었든 산박은 홀로 2레벨 팀에 속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거기에 2레벨 팀의 인원수는 예닐곱 명이었다. 1레벨 던전 팀이 네 명 내외인 것과는 다르게 많이 늘어난 셈이었다. 네 명 중 한 명과 여섯 명 중 한 명의 차이는 크다. 잡아먹혀도 손쉽게 더 잘 잡아먹힌다.
‘손쓸 도리도 없이 죽겠지.’
산박은 첫 1레벨 던전 공략을 생각했다. 거기서 죽을 뻔했다. 놈들의 휴대폰에 있던 범죄 장부가 없었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터였다.
아주 치밀한 놈들이었다. 팀장을 하지 않고 성공 팀, 실패 팀을 번갈아 가며 사상자 없이 클리어해서 블랙리스트 어플에서 자신들의 등급을 조절했다. 던전의 위험성 때문에 대다수의 민간 던전 사용자들은 옐로 등급에 머물러 있었다. 사람 하나 죽는 건 일상이기 때문이었다. 셋이 죽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 일 때문에라도 산박은 던전 진입을 매우 경계하는 편이었다. 적어도 팀 내에서 50%의 인력을 확보하는 걸 좋아했다. 네 명이서 가면 자신을 포함해서 두 명은 자기편이어야 했다.
2팀 오버시어의 경우에는 유나를 포섭했다. 정보꾼인 그녀를 쥐었다 뺐다 할까 말까 반복하며 시간을 투자해서 안달이 나게 했으며 동시에 충성심을 높였다. 기회의 제공이 가치 있게 느껴지게 한 것.
그렇기에 산박은 레벨 2가 되었음에도 2레벨 던전 공략이 어려웠다. 다만 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던전 블랙리스트 어플의 화이트 혹은 그린 등급의 팀에 속하면 된다. 기업 팀에 속하게 되는 셈이었다. 기업 팀은 언제나 용병을 구했는데,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산박이 휼간의 1레벨 던전 수익을 6만 원으로 고정한 것처럼 수익을 제한하는 식으로 운영됐다.
그나마 산박은 양반이었다. 1레벨 던전 수익의 평균 금액이 6만 원이었다. 나이가 많은 휼간은 경험상 이를 잘 알고 있었고, 수긍했다. 어느 정도 양보를 통해 외교적으로 관계를 원만하게 이끌어서 해결한 셈이었다. 그저 짓밟으면 시간이 지나서는 그냥 배신할 새끼밖에 안 되기 때문이었다.
산박은 손뼉을 치며 집중했다. 지금은 2팀을 다시 짜는 데 집중해야 했다. 그가 서류를 훑었다.
송유나는 간파와 은신을 통해서 혼자서 활동할 수 있고 우회 타격에 특화된 기술과 살법을 지니고 있었다. 또 투척과 포물선―살(殺)이라는 살법을 가지고 있었기에 원거리 무기의 효력이 증가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체격이 작아서 석궁을 쓸 수 없고, 팔이 다른 이들보다 길지 않고 아담해서 슬링에도 부적합했다. 전의 던전 공략 때 다목적 복합식 단궁을 사용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유나는 정보꾼으로 활동하며 근력 단련에 소홀했다. 단궁에 부여된 ‘힘의 보조’ 능력이 없으면 1인분을 하기가 힘들었다.
‘이제는 슬링도 위력적이라고 하니까.’
유나는 슬링 연습을 하며 근력 트레이닝을 하고 있었다. 로이더가 되어서 금방 끝내겠다고 메신저로 호언장담했지만 좀 검색했는지 수염 나는 여자는 되기 싫다고 찡찡거렸다. 돈을 주고 그 부작용을 없앨 수 있었지만 그런 곳에 돈을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쓸데없는 잡담이었다.
중거리는 단궁으로 해결하고, 단거리는 슬링으로 해결하면 완벽했다.
‘종휼간.’
얼음 마법사고, 사거리가 300m. 오버시어 팀 색을 가장 강렬하게 만들 수 있는 팀원이었다. 물론 비슷한 사람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저레벨 던전의 후방 직업은 넘쳐나고 있었다.
저레벨 던전의 경우 전방 직업이 매우 대우받고 있었다. 곧잘 죽기 때문이고, 부상도 많고 트라우마에 휩싸여 던전 사용자의 길을 포기하는 이들도 많았다.
‘강합을 2팀에 속하게 해도 나쁘지 않지.’
강합은 쌍검술과 투척술을 가지고 있었다. 슬링으로 무장 가능했고, 무엇보다 발달된 근육 기술을 지니고 있어서 근력과 체중이 증가한 상태라 투창을 여럿 들고 다니는 것도 괜찮았다. 유나가 슬링이 최대한의 무장 수준이라면 강합의 경우에는 재블린까지 넘볼 수 있었다.
또 방패술과 한 번의 공격을 막아내는 단수, 극악무도라 불리는 장무를 지니고 있어서 사악하고 치사한 수법으로 적의 공세를 약화하는 데 특화된 전사였다.
산박은 강합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메신저를 통해서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전사는 그만큼 귀중했고 언제 어디서든 여분의 전사와 교류하는 건 팀을 운영하는 산박에게 필수적이었다.
‘과수원을 통해서 돈을 벌고, 이를 통해서 사람을 고용해 밭과 논을 일군다.’
결과적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만드는 최소한의 일거리를 만든다. 어린이가 사람을 죽여서 먹고사는 세상을 사라지게 하고 싶었다. 그게 수많은 목표 중 하나였다. 구걸해도 쌀 1kg을 살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었다. 굶주림을 겪어본 산박이 기업 농장을 생각하는 건 당연한 수순과 같았다.
[아직도 던전 공략하기에는 힘드시죠?]
답장은 몇 분 걸리지 않았다.
[예. 죄송합니다. 자주 연락을 주셔도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저번에 받은 정신 치료 지원비도 감사합니다. 나중에 이 은혜를 꼭 갚겠습니다.]
[아휴, 우리 팀 귀중한 전력인 전사를 홀대할 수 있겠습니까?]
[귀중한 전사라뇨. 충호 씨가 들으면 큰일 납니다. 그리고 2레벨 축하드립니다! 찾아뵙고 축하를 드려야 하는데 메신저로 축하드려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그리고…….]
잠깐의 잡담이 이루어졌다. 쓸데없고 기억에도 남지 않는 잡담은 서로 간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이런 잡담을 딱 끊는 사람은 결코 친구를 사귈 수 없고, 사회에서도 입지를 다질 수 없었다.
강합이 아직도 정신 치료를 받고 있다는 걸 확인한 산박은 팀원 영입에 박차를 가했다. 1레벨 던전에서 활동하면 몇몇 제약이 있지만 강한 영향력을 지닌 건 여전했기 때문에 저격을 위한 팀원을 구하지는 않았다. 더욱더 안전성을 위한 인선이 고려되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매주궤(梅炷櫃)라는 인물이었다. 본적은 충주 매씨다. 워낙 큰 성씨라서 소외되거나 떨어져 나간 이들이 많았다. 방계 취급도 못 받는 셈이었다.
이름 뜻은 궤짝에 담긴 심지. 시적인 이름 뜻이었다. 직업은 후방 직업이었고, 주술사였다.
‘대부분을 오픈했네.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겠지.’
실제로 주술사 매주궤는 콘셉트가 독특해서 호흡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반대로 산박은 그와 잘 맞춰줄 수 있었는데, 전후방 어디서든 활약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매주궤는 기술로는 흙 발바닥과 나무 타투 기초를 가지고 있었고, 액티브 스킬이라고 할 수 있는 주문으로는 불 잎 수풀 토템과 아얄타의 나무 타투를 지니고 있었다. 타투와 토템! 주술사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흙 발바닥 기술은 맨발로 땅을 밟으면 주문이 강화되는 기술이었다. 주술사에게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아예 안 된다고는 할 수 없었다.
나무 타투 기초는 나무와 관련된 타투 효력이 30% 증가하고 타투를 부여하는 데 들이는 힘의 소모가 30% 감소하는 귀중한 기술이었다.
‘사기긴 하지.’
녹색 도끼라 불리는 타투의 신 혹은 주술의 신이나 오크의 신으로 불리는 자가 도와주기 때문이었다. 던전 사용자들에게는 호구 신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굳이 주술사가 아니더라도 녹색신을 위해서 일하는 자들도 많았다. 주고받는 게 확실하고 이득이 크기 때문이었다. 던전 3대 호구 신은 야만신, 녹색 도끼, 피의 신이었다.
산박은 빛의 신 팔라딘에서 야만신으로 갈아탄 상태였다. 신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기에 이놈 저놈 갈아타기로 했다. 그러던 중 빛의 신과 야만신의 관계 때문에 조사를 좀 했고, 학연 지연 혈연이 없는 놈은 호구 신을 믿으라는 명언까지 인터넷에서 접했다. 그는 이제 어엿한 야만신의 신도가 되어 있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기술과 타투가 딱 맞아떨어진다.’
아얄타의 나무 타투! 용맹성과 정신력, 적과 싸우겠다는 적의를 증가시켜 주고 신체 능력을 상승시켜 줌과 동시에 지구력과 스태미나 회복 증가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도망치고 쏘고를 반복하는 오버시어 팀에 어울리는 버프였다. 휼간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버프였다. 또 수틀리면 튀어야 하는 유나의 생존율과 안정성을 돕는다.
불 잎 수풀 토템 주문은 토템을 소환하는 주문이었다.
‘소환한다는 게 중요하지.’
즉발성이 높고 유지도 오래된다. 효과는 불타는 잎을 상대에게 뿌리는 것인데, 그 범위가 제법 된다. 다만 거리가 아쉬웠다. 하지만 크기가 작다는 것은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함정처럼 쓸 수 있어서였다. 추적자들은 실로 허망하게 화염에 온몸이 뒤덮일 터였다. 불꽃은 어디서나 좋은 속성이었다.
‘나쁘지 않은데.’
위험도를 확 낮출 수 있어서 좋았다.
‘0레벨 던전을 솔플로 경험한 커리어도 만족스럽고.’
무려 ‘장궁’을 사용하는 사람이었다. 제대로 간지뽕을 맞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걸로 혼자 던전 클리어를 해서 1레벨에 도달했다는 건 실력이 있다는 소리였다.
‘장력이 45kg은 넘었으면 좋겠는데.’
장궁 취급을 받으려면 최소 45kg의 당기는 힘을 궁수가 가지고 있어야 했다. 마지노선인 셈이었다.
그는 연락하자마자 바로 받았고, 면접을 보고 싶다고 강력하게 호소했다.
―오늘 당장에라도 면접을 보고 싶습니다.
팀에 몇 번이나 서류를 넣었지만 고배를 마신 듯했다. 바로 당일 면접을 보겠다고 했다.
“좋습니다. 세종시에 사시는 거 맞죠?”
―예!
목소리가 싱글벙글이었다.
* * *
송유나는 최근 이시은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던전 사용자 중에 아는 여자라곤 그녀가 유일했다. 그만큼 피의 전투를 이어 나가야 하는 던전 공략에는 여자가 소수에 불과했다.
불법적인 일인 정보꾼을 한 탓에 유나는 솔직히 말해서 합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범죄자나 다름없었고, CCTV를 해킹해서 시은에 대해서 조사하기도 했다. 이렇게 평범하지 않은 방법을 쓴 것은 시은이 자꾸 선을 그어서였다.
‘좀 친해지면 덧나나?’
베프가 되는 게 목표였기에 유나는 이시은의 이모저모를 알고 함께 취미 생활을 영유해 나가며 아주 친한 친구가 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뭘 해도 바쁘다고 하는 그녀였기에 그게 진짜인지 알아보겠다는 호기심도 있었다.
대부분의 말은 사실이었다. 시은은 진실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대화 도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바쁘다고 말할 때 진짜로 바쁘면 상대는 찍소리도 못 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진실 속에 거짓을 조금 섞을 뿐이었다.
새벽에는 요가로 몸을 풀고, 헬스 트레이닝을 한다. 던전 사용자에게 근육량은 강력한 관리 대상이었고, 여자는 특히나 근력량을 정밀하게 관리해야 했다.
그다음에는 인천에 가서 늦은 오후까지 네크로맨서를 공부하고 저녁에는 집으로 귀가하여 휴식 이후에 늦은 밤에 조깅.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같이 요가와 헬스?’
늦은 밤까지 스마트폰질을 하는 유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네크로맨서에 관심도 없고 공부와 수련도 하기 싫었다. 애초에 네크로맨서 직업이 없어서 가입도 불가능했다.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조깅을 같이하자고 해야겠다. 우연히 만나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