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2화 (92/270)
  • 92화

    일행은 근처에 있는 프리미엄 고기 가게로 왔다. 숙성된 소고기를 판매하는 곳이었는데, 인기가 많아서 벌써 3호점까지 낸 곳이었다. 가격은 제법 비싸지만 입의 개수는 고작 네 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서로 술이 오가고 고기 냄새가 옷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편했죠?”

    “우하하하!”

    산박이 충호의 옆에 앉으며 농담을 걸었다. 충호는 벌써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술이 맞지 않는 게 아니라 혼자서 페이스를 높여서 달렸다. 소주가 잘 들어가는 날인 듯했다.

    충호가 산박의 앞에 술잔을 하나 척 놓아주고 소주를 따랐다. 서로 짠 하고 마셨다.

    “1레벨 던전이 매번 이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기대해도 좋아요. 난 이제 2레벨이니까.”

    산박이 자신 있어 하는 미소를 지었다.

    그 외에는 장비에 대해서 사견을 나눴다. 산박은 충호가 수비적인 전사가 되었으면 했다. 하지만 그건 술자리에서의 잡담일 뿐이었다. 내일이 되면 태반은 기억도 못 할 터였다. 거기에 이미 충호는 빚쟁이 신세였다. 산박과 채무 관계에 놓여 있었다. 말 그대로 떠들기 위한 주제에 불과했다.

    산박은 굉려에게도 술을 따라주고 잠깐 자리를 가졌다.

    “다시 한번 2레벨 축하합니다.”

    “앞으로 자주 못 보겠네요. 한 달에 두 번밖에 못 가거든요.”

    “그건 정말 아쉽네요. 하지만 그만큼 안전한 거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이 팀은 더더욱 견고해질 것이었다. 2레벨이 소속되어서 1레벨 던전을 함께 공략하기 때문이다. 여길 나가려고 생각하는 이는 오늘부터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만큼 큰 한 걸음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시은이 맥주잔 두 개를 놓고 그 사이에 소주잔을 놓은 다음 소주를 기울였다. 뭐 하는 짓인지 의문이었다.

    “이렇게 하던데.”

    “그게 아니라 퐁당 해야죠! 다른 소주잔으로!”

    충호가 훈수를 두다가 손으로 건드려서 소주잔 하나만 맥주잔 한 곳에 들어갔다. 어리숙했지만 폭탄주도 마시고, 모두 즐겁게 술자리에서 시간을 보냈다.

    뿔뿔이 흩어졌을 때, 송유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빠른데?’

    빠르다. 그렇기에 산박은 전화를 받기 전에 결과를 짐작할 수 있었다.

    ‘최소한 하나는 죽었겠지.’

    2팀 오버시어의 일원인 마법 궁수 루둔표 그리고 마법사 종휼간은 팀을 나가 버렸다. 안전하게 던전 클리어를 했고, 그 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팀을 꾸렸다. 특히 얼음 화살 주문, 정신 집중 기술을 지닌 종휼간의 장거리 마법은 압도적이었다. 사거리가 300m에 달했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산박이 전화를 받자 송유나가 투정을 부렸다.

    ―왜 이렇게 늦게 받으세요! 팀장님! 던전 나오셨죠?

    “조사하지 말라니까요. 정보꾼으로서 이제 은퇴해야지 저랑 계속 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거 불법 아닙니까?”

    ―아, 아니에요. 진짜로요. 그것보다 큰일 났어요. 오버시어 팀이 해체될지도 몰라요!

    “이미 해체된 거 아니었나요?”

    ―아니이이잉! 그게 아니라 진짜라고요. 심각하다고요.

    유나의 목소리가 끝으로 갈수록 점점 잠겼다.

    “무슨 일인데요.”

    ―루둔표라고 아시죠? 기억나시죠?

    “예. 그 사람이 왜요?”

    ―죽었어요. 던전에 들어가서 살아 돌아온 사람은 휼간 오빠뿐이래요.

    산박은 속으로 웃었다.

    ‘좋다.’

    주식이 올랐을 때 단타로 치고 빠지며 소득을 봤을 때 느끼는 기분과 흡사했다. 도박은 성공했고, 휼간은 돌아올 것이었다. 자신의 장거리 팀에는 없는 유연한 포지셔닝을 지닌 산박에게로.

    ‘곱게는 못 들어오지.’

    팀 오버시어의 팀 색깔을 생각하면 휼간의 영향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질 공산이 컸다. 그 기를 박살 내고 짓눌러서 바짝 눌러야 했다. 시작점이 0이면 1이 되는 것도 힘들었다.

    ―병문안이라도 가보시는 게 어떨까요?

    유나는 그런 산박의 속도 모르고 물었다.

    ‘휼간의 전화를 받았을 리가 없지.’

    종휼간의 나이는 서른다섯이다. 대단히 많았고, 나이가 많은 만큼 이뤄내야 할 것도 많아야만 한다는 압박 속에 자리 잡은 자아는 강할 것이었다. 그런 그가 열아홉 살에 불과한 유나에게 먼저 전화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만약 종휼간이 전화를 했다면, 그럴 마음이 있다면 유나가 아니라 산박에게 먼저 했을 것이었다. 유나에게 전화해서 산박에게 청탁하는 것보다 차라리 남자답게 산박이 있는 굴로 들어가는 게 더 모양새가 좋았다. 그러나 산박에게는 전화가 오지 않았고, 부재중 통화도 없었다.

    ‘그렇기에 유나가 멋대로 정보를 취득했고, 휼간의 실패와 생존을 파악하고 독자적으로 움직인 거겠지.’

    휼간도 이를 환영했을 터였다. 유나가 나서면 형편이 좋아지는 건 그였으니까.

    ‘여기에 어울려줄 이유는 없다.’

    “가만히 놔두는 게 상책입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조용히 지내세요. 날 잡아서 새로 팀 받아서 움직일 테니까요. 장거리 직업은 얼마든지 있다는 거 아시죠?”

    ―네.

    “거기에 제가 2레벨이 되었으니까 안전하게 견인할 수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뿐이지만요.”

    1팀과 2팀으로 번갈아 가면서 공략하는 건 산박에게 큰 이득이었다. 팀원들과의 격차를 벌릴 수 있었으며, 부족한 1레벨 주문과 기술을 터득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1레벨 던전 공략은 자선 행사가 아니다.’

    열심히 달려서 2레벨이 된 만큼 틈틈이 1레벨을 공략해 얻지 못한 1레벨 기술과 주문을 터득해야 했다. 겸사겸사 팀원과 함께할 뿐이고, 이는 팀 내의 산박의 입지를 높여줄 것이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것보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산박은 황량자 던전에서 획득한 정보를 입에 담았다.

    ‘정보꾼에게 정보를 주는 것만큼 확실한 게 없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같았다. 다른 점은 그녀는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제가 특수한 정보를 획득했는데, 일단 유나 씨에게서 받은 정보에는 없는 거거든요.”

    ―저, 정말요? 그럼 대박인데. 하지만 일부러 은폐한 것일 수도 있어서 정보 기업에 한번 문의는 해봐야 해요.

    안 그러면 큰일 날 수가 있었다. 너는 법대로, 나는 나대로가 ‘판타지 쇼크’ 이후의 기업과 개인의 상황이었다. 그나마 대한민국은 형편이 좋았다. 명분 없는 짓거리를 하면 칼같이 불매를 하기 때문에 기업이 설설 기는 모습이 종종 나오곤 하기 때문이었다. 이슈가 되지 않을 시에는 짓밟히지만……. 그건 잡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부탁해도 될까요? 아무래도 다른 정보꾼을 경유해서 의뢰하고 싶어서요. 물론 유나 씨 직접 말고, 한 번 더 꼬아서요.”

    ―어렵지 않죠. 더미 신분증을 몇 개 가지고 있거든요.

    판타지 쇼크 이후 죽은 이들에 대한 신원 재확인 진행률은 거의 반포기 상태나 다름없었다. 이 때문에 더미 신분증이 많았다.

    “더미 신분증은 쓰지 말고 인맥으로 안 되나요?”

    ―되긴 되지만…….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산박만 아는 정보였다. 잘못되면 더 큰일이 난다. 어느 정도 합법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반면 들키지 않으면 그만이기도 했다.

    “그건 유나 씨에게 맡길게요. 제 전문 분야가 아니니까.”

    ―넵. 그 대신에 휼간 오빠랑 어떻게 좀 안 되나요?

    “잊으세요. 어차피 제가 지금 2레벨이라서 팀원 구하는 건 쉬워요.”

    ―설마, 대기자들을 쓸려는 건 아니죠?

    편하게 던전을 클리어하고 싶은 사람은 많았다. 그들은 ‘대기자’라고 불리기도 했다. 자리가 나올 때까지 그저 대기하는 이들이었다.

    “설마요. 그런 기회주의자들을 제가 왜요? 수익을 위해서 돈 주고 자리를 팔면 모를까.”

    ―농담도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절망해서 그냥 한 놈을 던전에서 쓱 그어버린 40대 대기자도 있다고 뉴스에서 한창 떠들었잖아요.

    “대기자들은 안 씁니다. 확실한 사람 쓸 거예요.”

    산박이 다시 한번 더 단호히 말했다. 그 뒤로 적당히 대화하고 끊었다.

    ‘생각보다 휼간이 유나에게는 잘해줬나 보네.’

    나이가 어려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게 휼간에게 큰 득이 되었다.

    산박은 그 뒤에 쥐 죽은 듯이 하루를 휴식했다. 박조조에게 납품하는 것과 지건의 과수원에 나무 생육 주문을 주는 것 외에는 열정을 회복할 시간을 보냈다.

    꿈과 신념이 남들보다 강한 산박은 단 하루 만에 던전 피로를 떨쳐냈다. 보통 던전 피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적어도 최소 3일이 걸리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던전 피로라고 거창하게 말하지만, 그냥 피로감에 불과했다.

    “연어야.”

    산박의 말에 가슴팍 위로 옷을 움직이며 물의 연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은 송사리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커질 터였다. 실제로 전과 다르게 조금 살이 올랐다. 인조 정령이라서 성장도 빠른 듯했다. 그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어때? 물의 나무랑 같이 있으니까?”

    인조 정령은 물의 나무를 한 바퀴 돌더니 그대로 나뭇가지에 걸터앉았다. 그 모습을 본 산박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부동 지구에 개인 낚시터를 만들 생각을 가졌다. 당연히 ‘위장’을 위해서였다. 대장삵의 우려가 제기되었기 때문에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최우선 임무였다.

    “다시 한번 정리해서 말해봐.”

    “흠!”

    대장삵이 제법 고개를 뻣뻣이 들어 올렸다. 실로 건방진 삵이었다. 거기에 밑에는 나무로 된 박스를 두고 있어서 높이도 높았다.

    “물의 나무는 네가 놔둔 작은 수원 덕분에 성장 속도가 빠르다. 하지만 거기에 인조 정령이지만 정령인 물의 연어까지 함께하고 있다. 물론 나도 있지. 그 시너지는 무겁다.”

    그렇기에 더는 창고 마당에 비닐하우스 같은 걸로 숨길 수 없었다. 조금 큰 묘목일 때 서둘러 옮기는 게 눈에 덜 보일 것이었다. 시간을 끌다간 1톤 트럭으로 옮길 걸 3톤, 5톤 트럭이 와야 한다. 굴착기까지 필요하기 때문에 트럭의 숫자가 늘어나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지금 묘목은 그냥 짐수레 하나면 충분하다.’

    다만, 옮길 부지가 문제였다. 개인 낚시터로 만든다고 쳐도 땅을 제법 사야 했다. 확실하게 사유지로 관리해야 했기에 철창도 둘러야 하고, 컨테이너라도 하나 집어넣어 창고 겸, 사람 냄새도 좀 풍겨야 했다.

    ‘돈이 없다.’

    자연스럽게 장 노인이 생각났다. 빚을 지기 싫어하는 사람치고 돈 잘 버는 사람 없었다. 산박은 몇 가지를 고려한 뒤 그를 찾아갔다.

    “이자는 무슨 이자. 그냥 빌려 가. 대신, 마음의 빚으로 생각해 줬으면 하는데.”

    장 노인은 산박의 허를 찌르는 모습을 보여줬다. 다만 차용증을 쓰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당연하였기에 산박은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돈거래에는 확실한 계약 관계가 존재하기는 해야 했다.

    “혹시 모르니까 10년 무이자로…….”

    나중에 가서야 장 노인이 딴소리를 하긴 했지만 5년 무이자라도 산박은 수긍하고 넘어갔을 것이었다. 10년이면 장기라고 해도 무방했다. 큰 인심을 써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왜 이렇게 인심을 쓰십니까? 돈이면 사족을 못 쓰는 줄 알았는데요.”

    “흥. 지건이한테 들었다. 던전 갔다 오고 나서 과수원에 주문 쏟아붓는 거 말이다. 2레벨이 된 거냐?”

    “예.”

    장 노인은 산박의 인력 보충소 내지는 은행과 같았다. 서민을 등쳐 먹는 기업과 은행을 멀리하기 위한 꼼수 중에서도 탁월한 꼼수였다. 무엇보다 담보가 없었다. 던전 사용자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 상품이었다. 그런 던전 사용자가 담보로 내걸 것은 사망 보험금뿐이었다.

    실제로 은행이나 금융사에서 사망 보험을 들면 대출 한도가 급격하게 높아지는 걸 볼 수 있었다. 던전 사용자가 된 고객에게 방문, 전화를 통해 꾸준히 보험 상담을 하고 있기도 했다. 은행에서 높은 직위에 오르려면 은행에 있을 게 아니라 발품을 뛰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전화로 고객을 얻든가.

    어찌 되었든 나쁜 소리는 아니었다. 다만 산박은 보험료에 돈을 쓰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고로, 장 노인의 땅을 10년의 기간을 두고 구매하여 갚아 나가는 길을 택했다.

    “그래도 개인 낚시터라니, 팔자가 폈구만!”

    “어르신이라도 안 들여보내 줍니다.”

    “난 낚시터 없는 줄 아느냐? 인부는? 물이야 부동 지구를 관통해서 하천이 흐르니까 상관없지만, 구색을 갖추려면 개인 낚시터라도 수천만 원은 들 텐데?”

    “빌려주세요. 그것까지.”

    “나야 좋지.”

    장 노인은 되레 환영했다. 산박이 죽을 거라는 의심 한 점 없었다. 거기에 장 노인이 수천만 원의 돈을 쓰는 게 아니었다.

    ‘마겸이를 부르면 그만이지.’

    장마겸(章瑪謙). 못하는 게 없는 건설꾼이었다. 목공부터 시멘트에 기와로 벽을 쌓아 집을 만드는 특수 건축에도 능했다. 당산 장가(家)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하는 놈이었고 가장 많은 땀을 흘리는 놈답게 가장 돈을 많이 버는 놈이기도 했다. 놈은 일거리를 받아서 좋고 장 노인은 공짜로 2천만 원 차용증+땅값이 적힌 차용증을 얻으니 좋았다.

    산박 또한 시간을 확 앞당겨서 돈을 소비할 수 있으니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만들어야 할 거 빨리 만들면 이득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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