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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화 (89/270)
  • 89화

    물의 연어. 인조 정령이며, 이 묘실의 입구에 마련된 우물 수로를 통해서 제작할 수 있는 정령이었다. 이 정령으로 세계를 구할 수도 있었지만 드루이드 왕자가 죽어서 이 묘실 지하 수로도 기능을 상실해 버렸다. 이를 설명하자 다른 이들도 흥미진진해했다.

    산박은 실제로 물의 연어를 보여 주기도 했다. 정령이 산박의 품에서 튀어나와 목 위로 연어처럼 포록 올라왔다. 푸른 마력이 아름답게 물결 모양으로 퍼져 나갔다. 하늘의 파도라고 묘사하기에 충분했다. 규모는 작았지만 오히려 그 덕에 귀여웠다.

    산박은 이를 공개했지만, 그 진실 속에 은폐 또한 진행했다.

    ‘내가 숨길 발동 조건은 이것을 드루이드만 할 수 있다는 것. 또 거대한 수로의 물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할 것.’

    물의 마법사인 대장삵이 없었다면 산박은 물의 연어를 획득할 수 없었을 터였다. 같이 있는 물을 위아래로 나눠서 역방향으로 돌리는 건 힘든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하나씩 소지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유지비가 문제죠.”

    또 단점을 미리 말해뒀다. 나중에 산박에게 불평하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물의 연어는 소유자와 떨어질 때 수원(水源)에 둬야 한다는 환경적 단점이 존재했다. 못해도 수돗물을 계속 틀어놔야 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계속 붙어 다녀야 했다.

    유지비를 잘 생각해야 했다. 근처에 다른 수원이 있다면 모를까, 수돗물을 항상 틀어 놓아야 한다면 그 수도세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터였다. 이 때문에 형편이 좋지 않은 충호는 건들지 못했다. 반면 굉려와 시은은 적극적으로 원했다.

    “어렵지 않죠.”

    힘을 써버렸기에 앞으로 진격할 수 없었다. 이 불만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그들도 혜택을 누려야 했다. 합리적인 리더로서 해야 할 선택이었다. 산박은 묵살보다는 공유를 택했다.

    시은과 굉려에게 인조 정령이 깃들었다. ‘힘’에 의해서 죽을 수 있어서 조심해야 했지만 그것은 산박이 말하지 않았기에 굉려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시은? 해골을 다루는 네크로맨서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 충분히 짐작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를 굉려에게 말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후방 지원 직업이고, 그는 전방 지원 직업, 그중에서도 스트라이커 내지는 우측 공격수였다. 가장 위험한 곳으로 뛰어드는 암살자였다. 그가 지닌 롱 소드와 장비가 만들어 내는 공격력 때문에 산박에게 기용될 수 있었다. 그 이점을 발휘할 수 없다면 있으나 마나인 셈이었다. 굉려는 조만간 정령을 잃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 사실을 모르는 굉려는 장 노인에게 그럴듯한 진상품을 들고 갈 생각에 기쁜 듯했다. 그 의도는 웬만해서는 꺾이지 않을 터였다. 묘실에서 ‘힘’을 통해서 연어를 죽일 가능성은 적었다. 그들은 충격과 관련된 장비를 보유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하루를 쉬고 그들은 다시 출발했다. 하루를 쉬면서 얻은 이득은 물의 연어 세 마리였고, 세 명이 나누었다.

    충호는 입맛만 다셨다. 그냥 강에 풀어놓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자기가 불러도 오지 않는 곳까지 가버릴 수 있어서 권장되지는 않았다. 방금 만났는데 큰 충성도를 물의 연어에게 요구하면 우스울 뿐이었다. 인조 정령이라고 해서 인공 지능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무분별한 숲이 아니라 규격화된 정원이었다.

    아무튼 산박은 물의 연어를 획득했고, 이를 점검했다.

    ‘장점이라면 당연히 물 생산이다.’

    5일의 보급품 제한. 그게 있는 이유는 바로 빌어 처먹을 정도로 개같이 무거운 물 때문이었다. 식수 위생은 전 문화에 걸쳐서 존재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생수만 배달하는 업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길 정도로 생수 산업은 대단하다. 똑같은 공장에서 가격이 상이한 서른 개 이상의 생수 브랜드가 출하된다.

    그 결과는 지하수의 고갈이고, 농업용수의 파멸이다. 그래도 멈추는 사람은 없었다.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농부는 무식한 것들이고 가장 먼저 짓밟히는 사람들이었다. 산박 또한 그들에 대한 자비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럴 여유도 없었다.

    아무튼, 이런 상황 속에서 생수를 만들 수 있는 물의 인조 정령은 큰 이득이었다. 던전에 갈 때 배낭에 물 대신 다른 걸 넣기도 좋고, 무게도 반토막 낼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산박이 포함된 팀은 보급 무게의 총량과 질 자체가 변한다.

    이는 오버시어 팀이라 불리는 2팀에게 특히나 유효했다. 물의 연어는 말 그대로 팀의 핵심 전략을 책임지는 핵심 전략 물자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었다. 당연히 평범한 팀에도 똑같이 통용된다.

    ‘단점은 죽으면 끝이라는 거지.’

    수원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현재의 산박은 많은 현찰을 얻을 수 있었다. 부지를 하나 사서 작은 늪이나 못을 만들 수도 있었다.

    세종시에서 북쪽, 산을 넘어서 있는 부동 지구는 버려진 땅이나 다름없었고 시골이라 해도 무방했다. 마을 내부로 진입하면 아스팔트는 없고 강 따라 있는 시멘트 도로가 전부였다. 장 노인이 그 지역의 대부분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지주였기에 그나마 땅값이 현실적으로 유지되고 있을 뿐이었다. 본래라면 평당 100원 해도 안 살 터다.

    현찰을 뽑아 오는 산박이라는 인적 자원이 부동 지구에 팍 하고 생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은 중요해.’

    나중에 인조 정령의 덩치가 커지면 생수 브랜드를 차리는 것도 가능했다. 부동 생수라고 팔면 그만이었다. 대기업만큼은 못하겠지만 소상공인 몇을 꼬드겨서(장 노인이 놓칠 리 없겠지만) 사업을 위탁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었다. 앉아서 돈을 버는 셈이다. 드루이드 과수원과 방식이 비슷했다.

    ‘단점을 해결할 수 있으면 더 좋겠는데.’

    인조 정령은 주문 피해에 언제든지 죽을 수 있었다. 그게 산박은 불안했다. 깨지기 쉬운 와인 잔을 품은 채 전투를 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들은 계속 진행해 나갔다. 본격적으로 묘실 탐사가 이루어졌다. 묘실은 단순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애초에 묘실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건 드루이드 왕자가 사후에도 이곳에 드루이드가 닿기를 기원해서였다. 그 확률은 한없이 낮았기에 던전이 되고 나서야 이루어진 셈이었다.

    제사를 드리는 묘실 1층. 그 아래인 지하 1층에는 지하 수로가 구조적으로 따로 떼어져서 존재했다. 일행은 그곳에서 소득을 조금 얻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는데, 대부분이 객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키는 이들은 소수의 근위병에 불과했기에 금방 처리할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을 보자 전투가 길어질 것을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솨르르르!

    모래가 뼈를 뒤덮었다. 이것은 황량자 피난민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황량자 근위병은 모래가 마치 피와 살이 되는 것처럼 유의미한 형태를 이루어 냈고, 그건 황량자 피난민보다 우월해 보였으며 정교했다. 그 모래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확장되어서 곧 할버드와 갑옷까지 뒤덮었다.

    퍽!

    슬링에 맞았지만 맥없는 소리는 전혀 나지 않았다. 모래 때문에 능력이 발동되지 않았다. 강력한 공격만 모래의 충격량 방어를 뚫고 갑옷에 닿을 수 있었다.

    ‘까다롭다!’

    시은의 볼트도 유효하지 못했는데, 계속 움직이는 모래 때문에 방향이 비틀려서 쓸려 나갔다. ‘힘’으로 움직이는 모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에 황량자 병사들은 모두 장병기를 즐겨 썼다. 근위병들은 부무장도 가지고 있었는데, 시미터 같은 날이 휜 곡도(曲刀)였다. 긴 리치와 짧은 리치 모두 소지하고 있었다.

    “에이아스!”

    “아이아스!”

    황량자 근위병들이 모래로 이루어진 성대로 소리를 크게 냈다. 곧바로 근접전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머릿수는 우리가 더 많다!’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근접전에서 충호가 우세를 점하지 못했다. 그건 충격적인 일이었다. 칠난균이 통하지 않아서 더더욱 충호가 당황한 기색을 했다. 흔들리는 멘탈은 자연스럽게 충호가 우위를 점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적들 또한 공세에서 큰 이득을 볼 수 없었다. 머릿수가 부족했고 상대가 평범하지 않아서였다. 다양한 시스템적 도움을 받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삵아!”

    결국 산박이 대장삵에게 물을 사용하도록 명령했다.

    쏴아아아!

    물로 근위병의 체중을 제거하고 힘으로 밀어붙여서 곤죽을 냈다. 대장삵이 으뜸인 던전이었다.

    “이렇게 능력이 편향된 던전은 오랜만인데요.”

    모래와 언데드의 조합이었다. 체중을 담당하는 모래가 사라지니 근위병은 하급 언데드로 전락해 버렸다. 오로지 물의 마법사를 위한 던전이었다.

    ‘그런 특수성을 지닌 개체가 있을 리 없겠지만.’

    산박이라는 변수가 만들어낸 촌극이었다.

    그 덕에 지하 5층까지 쾌속으로 진격할 수 있었다. 근위병들이 모래를 이용해서 몸집을 불려도 물 한 방이면 끝이었다.

    “케헴! 커흐으으으음! 키흐흠!”

    근위병들을 처리할 때마다 대장삵은 일부러 기침 소리를 많이 냈다. 자신을 보지 않는 팀원이 있을 때는 어깨에 올라가서 귀에 대고 헛기침을 해대었다.

    ‘미친 삵이네.’

    명예, 명예, 노래를 부르는 만큼 자신을 칭찬해 달라는 것으로 보였다. 결국 팀원들은 대장삵을 둥개둥개 해주기 바빴다. 실제로 큰 공적을 세우고 있었고, 전투는 편했다. 어느 정도냐면 7기의 황량자 근위병을 상대로도 파도는 유효한 타격이었고, 괴멸적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허우적거리며 얽히고설킨 근위병의 모습은 흉측했다. 서로가 서로의 진흙을 빨아들이고 있어서 더더욱 운신하기 힘들어 보였다.

    그저 골통을 부수고 할버드를 빼앗고 손목을 뭉개는 작업만이 있었다. 그건 두더지 잡기, 삽질하기 등과 유사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왕자 혹은 황자의 관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을 지키고 있는 자는 없었다. 그저 거대한 석관 하나만 존재했다. 크기는 2.3m에 달했다. 내부에 들어갈 시체는 그것보다는 좀 작다고 쳐도 2m는 될 터였다.

    “굉장히 넓네요.”

    석관이 있는 방 자체도 굉장히 넓었다.

    “보스전인가요?”

    산박은 시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사실 황량자 던전에서의 보스전은 맥없기로 유명했다. 왜냐하면 석관을 열고 나서 튀어나오는 탓에 그 전에 미리 대기했다가 참살해서 큰 피해를 주고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산박의 팀은 다른 팀보다 개체수가 둘이나 더 많았다. 대장삵과 해골 덕분이었다. 그 덕에 보스전은 쉬울 수밖에 없었다.

    “충호 씨가 석관을 까면 나머지는 공격만 하면 됩니다. 보통은 상체부터 일으키기 때문에 그 힘을 이용하기 위해서라도 목을 칠 사람이 필요합니다. 굉려 씨가 적임자죠.”

    산박이 굉려를 보며 턱짓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은 씨는 왼팔, 해골은 오른팔을 맡으면 됩니다.”

    “네.”

    “대장삵은 후방.”

    “뭐, 이번에는 어쩔 수 없지.”

    대장삵은 후방에 놓였다. 보스 괴물을 잡는 데 물의 마법사는 썩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차라리 뼈를 완벽하게 부술 수 있는 집중성탄이 제격이었다.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대장삵은 불만이 없었다.

    무엇보다 대장삵은 다른 데 신경이 가있었다. 이번에 큰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여겨졌기에 현실 세계에서 어떤 걸 요구할까 생각 중이었다.

    ‘꼬우면? 소환하지 말든가.’

    종종 무식하게 밀어붙이는 전사가 바로 대장삵이었다.

    “저는 슬링으로 놈의 투구에 깃든 힘을 없애고 집중성탄으로 머리를 날려버릴 생각입니다.”

    완벽한 작전이었다.

    “방심하면 안 됩니다. 방어할 수도 있고, 회피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산박의 말에 모두 긴장하고 전투에 임했다. 석관은 너비가 일정하지 않았고 좁아지는 곳이 있었다. 다리가 있는 곳이라 포지션을 잡는 데 유리했다. 마치 이집트 파라오가 잠든 석관과 구조가 비슷했다. 다만 조금 더 투박한 감이 있었다. 어찌 되었든 준비를 마치고, 전투를 시작했다.

    충호가 석관을 들어 올렸다. 앞으로 살짝 나아가며 단박에 힘을 줬고, 그대로 석관이 넘어갔다. 물러났던 시은이 냉큼 석관의 뚜껑을 밟았다.

    흉갑에 투구, 마치 장군처럼 잠에 빠진 황량자 황자가 몸을 일으켰다. 모래가 모여들며 그 뼈를 뒤덮었다. 하지만 그 전에 산박의 슬링이 투구를 때리고 굉려의 롱 소드가 목을 쳤으며 시은과 해골은 양팔을 내려쳐 봉쇄했다. 충호도 환도로 골반 아래에 드러난 뼈를 때렸다. 하지만 그 맹공 속에서도 거구가 몸을 일으켰다.

    예상했던 바였다. 다른 팀들을 통해서 익히 들었던 바였다. 뼈에도 충격 감쇄의 효과가 부여되어 있는 게 황량자 왕자였다.

    하지만 그것도 산박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결국 1레벨 수준의 능력이며, 슬링을 통해서 한 번 충격을 받아낸 투구와 두개골은 능력이 소모되어 있을 터였다. 집중성탄이 뻗어 나가 그 두개골을 부쉈다. 단번에 황량자 왕자가 무너져 내렸다.

    수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어도 산박은 흥미가 없었다. 이곳은 고작 1레벨 던전이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효율성 있는 힘’을 획득했으면 만족했다.

    던전이 무너져 내렸다. 난이도는 평범한 1레벨 수준이었다. 대장삵 때문에 매우 쉬운 던전이었으며, 그런데도 오히려 돈 될 것은 많이 챙겼다. 특히 근위병들이 지닌 호박석 목걸이나 사막신의 증표는 수익을 크게 올릴 수 있는 상품들이었다.

    하지만 산박의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어떤 태도로 나올 거냐.’

    레벨 업 시스템 혹은 카르마라 불리는 존재는 산박에게 손을 내밀 것이 분명했다. 추측에 불과했지만, 신들이 산박을 두고 조금씩 경쟁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렇다면 산박의 가치는 높다고 볼 수 있었다. 전과는 확연하게 태도가 다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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