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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화 (82/270)
  • 82화

    환경에 맞는 전술을 다시 짜고, 팀은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했다.

    시은은 산박이 도려낸 뭉개진 슬라임에 손을 쑥 집어넣고 있었다. 초급 네크로맨서의 소양은 시체를 만지는 데 거부감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시은은 당연히 시체에 거부감이 없었다.

    ‘음……. 써먹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마녀라는 직업은 네크로맨서와 부딪치는 것이 없어서 그녀는 두 개의 직업을 모두 소유하고 있었다. 그 덕에 시은은 해골을 일으킬 생각을 했고, 뭉개진 슬라임을 이용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가늠했다.

    굳이 던전 내에서 해골을 일으키는 이유는 괴물을 일으키는 게 이득이기 때문이었다. 인간 시체를 구하는 건 윤리적으로 아직도 용서받지 못하는 일이었고, 숨겨야 했다.

    또한 평범한 일반인은 그렇게 힘들여서 써봤자 일반인 미만일 뿐이었다. 고레벨 던전 사용자의 시체는 유용할 수 있었지만 그들의 시체는 던전 붕괴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얻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현지에서 구하는 게 이득이었다.

    ‘사용할 수가 없네.’

    그녀가 지닌 주문보다 더 비틀린 형태의 언데드 일으키기 주문이라면 쓸 수 있어 보였지만 그녀가 지닌 건 하나뿐이었다.

    “아쉽게도 못 쓰네요.”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맞바람을 맞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행군이었다. 등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마치 이들을 밀어주는 것 같았다.

    계속 걸어가야 했기에 되돌아올 수 없어서 보급을 모두 짊어지고 움직여야 했다. 이동 속도는 매우 느릴 수밖에 없었다.

    휘오오오오!

    바람이 주는 소음 속에서 행군하며 적의 접근을 파악하는 일은 매우 고된 일이었다. 무엇보다 가시거리가 짧아서 더더욱 피곤했다. 자주 시야를 갱신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사주 경계는 말이 쉽지, 제대로 하는 병사는 잘 없었다. 애초에 사주 경계에 대해서 깊게 병사를 가르치고 훈육하는 지휘관도 드물다. 신병들은 죽으면서 올곧은 척후병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교육 시간이 적으면 적을수록, 베테랑은 피로 만들어지기 마련이었다.

    자주 사위를 훑어야 했다. 뒤에서 왔지만 적이 뒤에서 나타나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잠시만요! 유골!”

    시은이 손을 들었다. 모두가 약속한 것처럼 행동했다. 바로 짐을 버리고 무기에 손을 가져갔으며 멀리 떨어진 이는 자신의 후방을 가장 먼저 확인한 뒤에 팀원에게 다가왔다.

    일자로 걸어오던 행군의 중심에 있던 산박은 우측으로 움직였고, 굉려 또한 산박과 함께 움직이다가 떨어져 나가며 조용히 허리를 숙이고 모래바람 속으로 사라질 준비를 했다. 이를 시은이 제지했다.

    “아뇨! 유골을 해골로 쓰고 싶어서요!”

    “왜 그렇게 급하게 말해요?”

    “금방 사라질 것 같아서……. 죄송해요!”

    그녀가 민망한 듯 눈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쾌감을 느꼈다. 의도적으로 속인 것이기 때문이었다. 시은은 이들을 조금 놀린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동시에 팀에게도 작은 재미를 선사했다. 입을 꾹 다물고 행군만 하던 경직된 분위기가 조금은 활기차졌다.

    “조금 도와주세요. 묻혀 있네요.”

    유골의 주변을 조금 판 뒤에 잡아당기자 투구와 함께 머리와 목뼈에 이어서 척추까지 딸려 나왔다.

    그러는 와중에 산박은 근처에서 할버드를 찾을 수 있었다. 황량자 병사들이 쓰는 제식 무기였고, 상당히 낡아 있었다.

    ‘쓸 수 없겠네.’

    산박은 할버드를 내려놓았다.

    유골을 꺼냈다. 머릿수가 하나 더 늘어나면 팀으로서는 이득이다. 또 투구가 툭 튀어나올 정도로 얕게 묻혀 있었기에 파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유골의 근처에서도 석판이 발견되었다. 산박은 시은이 유골의 뼈를 파악하고 있는 사이에 파면서 부서진 석판을 훑었다. 조각을 대충 모았다. 유실된 부분도 있었지만 석판 그림을 해석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난해한 글자와는 다르게 그림은 누구나 봐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게 그림이 가진 힘이었다.

    나뭇잎 없는 나무. 삭막함을 의미했다. 농부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작은 방랑자와 농부와 함께 농사를 하는 방랑자의 모습이 보였다. 고개를 숙일 때와는 다르게 덩치가 크게 그려졌다. 제멋대로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 사람이 지닌 영향력에 따라서 크기가 달랐다. 다만 만화처럼 칸이 구별된 게 아니라서 순서를 찾는 게 좀 어려웠고, 조금 난잡했다.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지. 아까의 방랑자가 농부에게 고용되어서 품삯을 받으려고 노력하나 보네.’

    신기한 것은 바짝 마른 나무와의 대비였다. 밭에 물을 쏟아붓는 농부들이 수십 명이나 되었다. 산박은 이를 유심히 쳐다보고 손으로 더듬었다. 석판이 그대로 바스러졌다. 돌조차 버티기 힘든 세월이 사람의 땀과 손을 만나 단번에 무너져 내렸다.

    ‘황량한 땅, 방랑자 그리고 물…….’

    산박은 그것만으로도 석판이 자신에게 이득이 됨을 느낄 수 있었다. 머리로 단번에 이해가 되었으며 이 방랑자가 물의 마법사 내지는 드루이드라는 것도 의심했다. 드루이드라는 것에 더욱 기울었는데, 농사를 도와주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

    ‘마법사는 노동을 안 하지.’

    이미지부터 손에 흙을 안 묻힐 것 같은 직업이었다. 반면 석판에는 농사를 할 때 몸집을 크게 그린 방랑자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분명 농사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있다는 증거였다.

    ‘확신은 할 수 없지. 일단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자.’

    산박이 석판을 해석하는 사이에 시은은 해골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장비 또한 가져왔던 것으로 새로 입혔다. 시체 무게의 방패라 불리는 1레벨 장비이며 백패 네크로맨서에게 허락된 장비이기도 했다. 오로지 하급 언데드에게 통용되는 장비였다.

    효과는 하급 언데드의 뼈 무게를 증가시키는 것이었다. 체중이 낮은 언데드의 단점을 극복시키기 위한 방패였다. 특히 해골 종류의 언데드에게 효과적이고, 모든 능력치가 낮은 하급 언데드에게 필수적이다. 아쉽게도 방패였기 때문에 이족 보행형 해골에게만 적용 가능하다는 단점도 가지고 있었다.

    ‘그걸 단점이라고 말하는 네크로맨서가 머저리들이지.’

    해골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시은은 언데드의 단점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하급 언데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단기간이지만 하급 언데드가 지닌 큰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방패라도 들고, 가죽이라도 입히고, 신발이라도 신겨야 그나마 할 만하다.’

    하급 언데드, 특히 해골 종류의 언데드가 지닌 절망적인 저체중은 전투를 아예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오히려 인간 형태가 가장 나았다. 도구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겉멋, 허세, 남들과 다른 개성에 발기(勃起)하는 놈들은 하급 언데드의 전통적 단점을 해결하지는 못하는 주제에 특별함만 원하는 놈들이었다.

    시체 무게의 철퇴 또한 이와 같았다. 시체 무게의 큰 망토도 마찬가지였다. 체격에서 자유로웠기에 구매해도 아쉽지 않았다.

    똑같은 능력으로는 세 개의 장비가 최대였다. 게다가 시은은 이 이상은 전투에 방해가 된다고 여겼다.

    가죽 혁대나 가죽 토시 등 사이즈 조정이 가능한 건 비싸서 구매하지 못했다. ‘시체 무게’가 아닌 네크로맨서의 장비는 고가였다. 대체할 제품이 존재하지 않아서였다. 중고로 푸는 것도 엄격하게 금지된다.

    그나마 첫 소비의 기준점인 시체 무게의 장비들은 시은이 감당할 수준은 되었다는 게 다행이었다. 자본주의는 결국 소비와 돈이 모든 것이었다.

    물론 시은의 소비력은 겨우 그 정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탕만과 강합을 빨리 복귀시키기 위해서 모은 돈을 써버려서 동이 난 상태였다. 때가 안 좋았을 뿐이었다.

    해골이 몸을 일으켰다. 시은은 해골에 손을 대고 천천히 팔을 올리고 내리고를 반복 명령하며 이 언데드의 수준을 파악했다. 어느 정도의 힘을 줄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건 초보 네크로맨서에게 매우 중요했다.

    특히 카르마로부터 기술을 받지 않고 있는 시은은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해야만 해골의 한계를 알 수 있었다. 해골학도 스스로 익혀서 지식으로 삼고 이를 세상에 드러낼 줄 알아야 했고, 골내근형법을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끝없는 연습으로 그럴듯하게 만들어야 했다. 길고양이를 잡거나 생닭을 사 와서 연습했지만 실전은 처음이었다.

    ‘괜찮아.’

    시은은 자신을 위로하고 일으켜 세운 해골의 수준을 꼼꼼하게 파악했다. 그다음에 해골에 내재된 시체 마력 중 일부를 엮어서 골내근형법으로 새로운 근육으로 만들었다.

    만약 너무 많은 시체 마력을 사용하면 해골은 그렇게 만들어진 근육을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움직이는 원동력이 미약해지기 때문이다. 반면 너무 적은 시체 마력을 사용하여 근육을 만든다면 있으나 마나였다.

    딱 중간. 효율의 타협선……. 그것도 뼈 내부의 시체 마력으로 쌓아 올리는 근육과 잔존하는 시체 마력의 타협을 이룩해야 했다. 그 지점에 닿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시은은 이를 어렵지 않게 이룩해 냈다. 사회에 능숙하게 섞여 들어가기 위해서 항상 초인적인 노력과 경계심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시은이었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화장실 예절까지 공부했을 정도였다. 또한 수많은 범죄 영화, 드라마, 다큐, 책 등을 통해서 악역들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었다.

    일상의 모든 것을 경계하며 살아가는 이시은의 지적 능력은 평범하지 않았다. 평범할 리가 없었다. 그녀에게 하루하루는 그저 지옥일 뿐이었으며, 공감하지 못하는 괴물이 양들이 사는 목장에서 살아가는 것에 불과했다.

    ‘됐다.’

    인간형 해골을 상대로는 처음이었지만 한 번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 경험 속에서 시은은 요령까지도 개발했고, 경험을 축적했다. 다음에는 더 빨리, 더 완벽하게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됐어요. 출발해요.”

    “제법 그럴듯해 보이는 놈이네요. 뼈도 왠지 모르게 커졌고…….”

    “해골학 덕분이죠.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요!”

    충호에게는 그렇게 짧게 대답하며 시은이 산박에게 달라붙었다.

    “궁금해요? 궁금할 텐데요?”

    “전 네크로맨서도 아닌데요. 그리고 모르는 것도 아니라서요.”

    시은은 산박에게 몇 번 치근덕거리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딱 산박이 주의를 주기 전에 스스로 감으로써 선을 지켰다.

    남에게 책잡을 이유가 있을 때만 엄격한 팀장이 되는 게 산박이었다. 또 팀원이 위험에 처했을 때만 그 몸집을 크게 드러내고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유가 없으면, 스스로가 정한 법을 지킨다면 산박은 온화한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시은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주 영악한 여자였다. 그리고 그런 태도 또한 산박은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선을 아슬하게 줄타기하는 그녀를 혼내기에는 이유가 부족했다. 명분이 없었다.

    이것은 산박이 어린 나이에 신부와 결탁해서 죽인 사람들의 피로 이루어진 철칙이었다. 그 일에서 손을 떼면서 정한 참회이기도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산박이라는 존재가 부서지기 때문에 그 철칙과 참회는 산박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생명줄과도 같았다. 그의 인간성을 보호하는 도구였다. 그게 시은과 산박의 차이점이었다.

    시은은 자신의 옆에 해골을 뒀다. 굳이 전방에 두거나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시은은 후방 포지션이었고, 직업 또한 전방과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들이었다. 주문 사용자라고 하기에는 주문 피해량이 높지 않았다.

    덜컹! 덜컹!

    바람 소리 속에서 수레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둔탁했고, 매우 무거운 소리였다. 가장 먼저 대장삵이 이 소음을 알아차리고 외쳤다.

    “적이다!”

    “방향은!”

    “이쪽입니다!”

    정반대에 있던 충호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려 좌측을 가리켰다. 명백하게 자신들을 노리고 오는 수레의 흐릿한 그림자가 보였다. 그것도 제법 여러 대가 난잡하게 보였다.

    “황량자 피난민들입니다. 정규군은 아닙니다. 뭉치세요.”

    산박이 단박에 판단했다. 굉려 또한 불렀다. 다수를 상대할 때는 뭉치는 게 최선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화력을 생각하면 적을 모이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애초에 시야가 나빠서 흩어지지도 못했다. 개개인이 싸우기에는 팀원마다의 단일 전투력 차이가 심했다.

    “그어어어어!!”

    입에서, 몸에서 모래를 쏟아내며 수레를 이끄는 피난민 황량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언데드처럼 보였지만 슬라임처럼도 보였다. 해골과 모래가 뒤섞인 괴물이었다.

    ‘저놈들, 창칼이 통할까?’

    충만은 모래를 끝없이 토해내는 황량자의 텅 빈 골통을 보며 의문을 가졌다.

    그들은 농기구를 쥐고 있어서 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뼈와 모래로 이루어진 몸 때문에 체중이 무겁게 여겨지지도 않았고, 신체에 훼손된 부분도 많았다.

    그들이 끌고 온 수레에는 온갖 생필품이 담겨 있었다. 천으로 덮었지만 천이 낡고 모래에 쓸려 나가서 내구력이 닳아 있었다.

    무식하게 앞으로 돌진하는 스무 마리가 넘는 황량자들을 보면서도 산박은 태평했다.

    “아무것도 사용하지 마세요.”

    그는 대부분의 장비 사용을 금했다.

    ‘다수를 상대로 집중성탄을 사용하는 건 나쁘지 않지만 어리석은 일이지.’

    관통력을 생각해도 쏟아붓는 힘에 비해서 이 황량하고 넓은 땅을 달려오는 황량자를 많이 쓸어 담을 수는 없었다. 대신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

    힐끔.

    “삵아, 파도로 쓸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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