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황량자의 던전>
정신을 차렸을 때는 코에 모래가 들어가고 있었다.
“큽! 콜록! 콜록!”
산박이 기침 소리를 냈다. 방심하던 사이에 들어온 것이라 몸이 깜짝 놀랐다.
‘습기가 일절 없다.’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코와 입이 바짝 마를 정도로 공기에 습기가 전혀 없었다. 주변은 뿌옇고, 하늘은 어두웠다. 우중충했다.
‘싸늘하지만 영하…는 아니다.’
마치, 멸망한 세계를 보는 듯했다. 이것 또한 ‘개방형 던전’이었다. ‘황량자의 던전’. 멸망한 세계의 말로로 추측되는…….
정확한 건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던전에 대한 정보는 방대하기 때문이다. 딱히 전투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던전학은 신생 학문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지 않았다. 현대 자본주의는 오로지 자본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던전을 탐구하기보다는 확실한 실리를 추구하는 게 당연했다.
“황량하네요.”
“시야 거리는 길어봤자 30m쯤 되겠네요. 그것도 안 되나…….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모두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산박이 명령했다.
“일단 모두 천으로 입과 코를 가리세요. 습도가 너무 낮고, 입에 모래나 먼지가 들어갈 수 있어요.”
기관지가 안 좋아질 수 있었다. 그건 전투할 때 호흡에도 문제가 된다. 숨을 거칠게 쉬는 것만으로도 목에 통증이 생기면 움직임도 둔해질 수밖에 없었다. 팀원들은 천을 찢고 두건처럼 둘렀다.
“캬악!”
“가만히 있어. 그래야 착한 삵이지.”
“용맹한 삵은 냄새를 맡아야 한다! 이런 거추장스러운 걸 감히!”
“어차피 코가 곧 바짝 마를 거야. 이렇게 건조한걸.”
대장삵이 버둥거렸지만 어림도 없었다. 발톱을 세우지 않은 삵의 냥냥 펀치는 푹신하기만 했다.
“크윽……. 이런 굴욕을…….”
“굴욕 같은 소리 하네. 아무렇지도 않잖아! 오히려 더 좋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다음에 산박은 브리핑을 시작했다. 집중도가 최대일 때 산박은 결론부터 내렸다.
“저희는 석관묘에 들어가서 황자의 석관을 드러내 그를 죽여야 합니다. 그럼 던전은 완료됩니다.”
팀원들은 다른 방법을 묻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 산박이 그렇게 하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방법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10일을 버티는 것. 그것만으로도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었다. 멸망한 세계라 쉽게 무너지는 것이라는 둥 추측은 많았다.
다른 하나는 비를 내리게 하는 것. 던전 내에 존재하는 세계관? 그런 것을 자극한다고 들었다. 1레벨 던전에 대한 정보를 암기하는 것은 매우 힘들었기에 잘 알 수가 없었다.
“나오는 적은 정규병처럼 보이는 황량자가 있습니다. 그놈들이 가장 위협적입니다.”
위협 순위에 따라서 적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가장 먼저 황량자 정규군이 가장 위협적이었다. 특히 그들의 준수한 장비가 위협적이었다.
“사막 은총 갑옷. 충격을 1회, 크게 반감시키는 갑옷입니다. 상체 공격은 무의미하고, 방어구를 입은 곳은 뚫는 게 불가능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집중성탄을 시험하기에도 두려울 정도였다.
“싸우는 시간이 길어지면 갑옷의 은총이 충전될 수 있으므로 단기전을 노려야 합니다. 참고하십시오.”
“예.”
1팀의 경우 그런 걸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덩치 큰 충호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믿음직한 전사였다. 앞을 막아 준다고 공격력이 약한 게 아니다. 강하기에 수비력도 높은 것이었다.
“그들이 지닌 무기 또한 1회 충격을 크게 주기 때문에 처음 부딪칠 때는 최대한 회피하거나 투척 단검을 던져서 미리 부딪치게 만들어야 합니다. 아셨습니까?”
산박이 거듭 주의를 시켰다. 이에 모두가 짧게 대답했다.
“그다음에 위협적인 괴물은…….”
부르르륵!
방귀 뀌는 소리가 났다. 산박이 벌떡 일어났다. 다른 이들도 모두 서로 거리를 벌렸는데, 조금 세게 불어오는 모래바람 때문에 산박의 브리핑을 잘 듣기 위해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방해가 되었다. 만약 기습했다면 최악의 형세인 셈이었다.
대장삵조차도 코가 바짝 말라있는 바람에 뒤늦게 발견했다. 축축한 코가 아니라서 후각이 조금 약해져 있었다. 또 바람의 방향 때문이기도 했다. 적은 맞바람을 맞으며 그들에게 접근했다.
우중충한 환경. 모래바람 때문에 차단된 시야는 옥시모론 팀의 인지력을 크게 낮췄다. 이것은 산박조차도 등골이 서늘할 정도였다. 적이 괴물이라서 다행이지, 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뒤를 잡혔다.
산박이 놈을 보고 고함을 질렀다.
“뭉개진 슬라임입니다! 빠르고, 몸속에 긴 촉수를 숨기고 있어요! 촉수의 길이는 모두 다르니 장창부터 대거까지 각별히 준비하세요! 단기전을 생각하지 마세요! 몸에 달라붙으면 끝입니다! 틈에 들어가는 습성이 있어요!”
방귀 소리를 내며 황량한 회색 땅을 질주하고 있는 뭉개진 슬라임은 살덩이, 뒤엉킨 내장, 피부 주름과 피막이 들썩거리는 기괴하고 흉측한 슬라임이었다. 하지만 그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우웃!”
충호가 빠르게 물러났다. 갑옷 틈에 들어가는 습성 때문이었다. 몸속으로 들어오면 답도 없었다.
서둘러 물러나며 충호가 주문을 사용했다. 슬라임을 주춤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쐐액!
까마귀가 검에서 튀어나와서 적을 향해 쇄도했다.
퍽!
살점이 튀고, 피가 사방에 퍼졌다. 슬라임은 주춤거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거칠어졌다. 그런 슬라임에게 연거푸 다른 이들의 공격이 들어갔다.
시은의 석궁, 뒤이어지는 마녀의 손길이 강하게 뭉개진 슬라임을 움켜잡았다. 슬라임은 한기 때문에 더더욱 움츠러들었다. 근육의 체온이 낮아지며 수축하였다. 굉려는 투척 단검을 두 자루 정확하게 박아 넣었다. 산박은 무리하지 않고 슬링을 통해서 놈의 몸을 두들겼다.
속력이 줄자 매우 길쭉하게 달리던 놈이 두툼해지고 넓어졌다.
부르르륵!
슬라임이 몸에서 공기를 토해내며 촉수를 사방으로 뻗었다. 충호는 그 사정거리에 들 수밖에 없었는데, 그만큼 뭉개진 슬라임의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서걱!
충호의 환도가 길쭉해 보이는 촉수 두셋을 잘라냈고, 나머지는 방패로 우직하게 막았다. 촉수는 구부러지면서 방패에 흡착했다.
“큭! 비, 빌어먹을!”
힘 싸움을 하려고 했지만 단번에 무게 중심이 끌어당겨져 앞으로 나가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충호는 그대로 방패를 손에서 놓았다. 계속 버텼다면 앞으로 당겨져서 머리부터 땅에 처박았을 터였다.
터더덩!
방패의 차가운 감촉에 뭉개진 슬라임은 방패를 그대로 아무렇게나 던져 버렸다. 촉수의 길이가 길었기에 방패의 무게와 함께 휘둘러져서 촉수가 뜯겨 나갔다. 하지만 뭉개진 슬라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부르륵!
방귀 소리를 내며 몸을 더욱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돌진력은 사라졌고, 가속도 한번 멈췄다. 팀원들이 그걸 다시 회복하게 놔둘 리가 없었다.
볼트가 처참하게 슬라임을 꿰뚫었고 몸에 박히는 슬링탄의 개수가 점점 늘어났다. 몸의 무게가 증가한 데다 둔탁한 둔기 같은 산박의 슬링질까지 더해지자 슬라임의 피로도가 단번에 높아졌다.
“여기다! 여기!”
힘을 잃은 섬광 단검을 두 자루 투척한 다음에는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가던 슬라임을 다시 뒤로 가게 만들었다. 충호도 이를 도왔다.
괴물은 괴물이었다. ‘매서운 속력’을 지성으로 묶고 후려쳤음에도 뭉개진 슬라임은 30분을 저항하다가 죽었다. 엄청난 생명력이었다. 슬라임 종류는 모조리 단기전으로 끝나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엄청난 놈이네요.”
땀을 닦으며 굉려가 말했다.
“그래도 피해 없이 잡을 수 있으니, 오히려 이런 놈들이 낫죠.”
이를 충호가 받아줬다. 몰이를 한 사람이 가장 땀을 많이 흘렸다. 놈은 그만큼 스피드가 재빨랐다. 그런데도 잘 죽지 않았고, 한번 들러붙으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 흉악한 모습 때문에 오히려 진땀을 뺄 정도로 노력했다.
슬라임에게서 얻을 건 없었다. 모든 던전 사용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슬라임이었다. 황금을 머금은 슬라임이라고 해도 만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생명력이 높고, 일단 끔찍하게 생겨서였다.
산박은 환도로 놈을 반으로 갈랐다. 혹시나 싶어서였지만 역시나였다.
‘피와 뼈. 사람의 얼굴 한쪽……. 기괴하구만…….’
구역질이 나왔다.
휴식을 취해야 했기에 적당히 흙으로 덮어 두려고 했을 때, 산박은 슬라임의 몸에서 무슨 석판 같은 걸 발견했다. 일단 그걸 회수했다.
그 자리에서 휴식했다. 인식 범위가 짧아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건 위험했다. 또 바람의 방향에 따라 후각도 제한되어서 어쩔 수 없었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니네.’
“으…….”
고글도 없어 전투할 때 무리하게 눈을 뜨고 있던 팀원들은 너도나도 대장삵에게서 물을 받아서 눈을 씻었다. 특히 충호가 심했다. 실로 무식한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전사다웠다.
“봅시다. 조금 충혈되었는데, 치료수도 한 방울 떨어뜨려야겠네요.”
“예, 예…….”
산박이 직접 충호를 케어했다. 그 모습을 시은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주 꿀이 떨어지고 있었다. 하기야, 전사는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었다. 축구의 스트라이커와 같았다.
시은은 입술을 부르르 떨며 다른 곳에 시선을 뒀다. 저런 광경을 보면 어떻게든 충호를 죽여서 산박의 반응을 보고 싶다는 생각과 충동에 휩싸이기 때문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충호를 돌봐주고 산박은 석판에 묻은 찌꺼기를 대충 치운 뒤 석판의 이모저모를 훑어봤다. 석판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사막을 탐험하는 여행자 내지는 방랑자로 보이네.’
긴 지팡이, 그 끝에 미약한 빛이 깃들어 있었고 주변에는 마치 그를 비추듯이 자연이 안쪽으로 굽어져 있었다. 마치 예술 작품 같았고, 그 사람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글자는 읽을 수 없었다. 산박은 석판에서 눈을 돌렸지만 마음속에 그 방랑자가 크게 각인됐다.
휴식하며 이 던전에 대해서 나머지를 브리핑했다. 길을 잃는 일은 없었다. 생각보다 상냥한 개방형 던전이었다. 열악한 환경이기에 그나마 길잡이는 해주었다.
“아쉬운 건 바람을 등져야 한다는 거지만요.”
후각을 통한 전방의 적 감지가 불가능해졌다. 물론 나쁜 건 아니었다. 방향만 유지한다면 모래바람으로부터 눈을 지키기에도 용이했다.
“아무튼… 전술을 조금 변경하겠습니다. 본래는 굉려 씨와 제가 뒤를 치고 충호 씨가 버텨주고 시은 씨와 대장삵이 받쳐주는 것이지만…….”
산박이 어깨를 으쓱했다. 시야가 30m에 불과한 곳, 거기에 모래바람은 종종 밀도가 높아질 때가 있었다. 원거리를 좋아하는 인간에게 적대적이었다.
“오인 사격이 안 나길 기도해야 할 정도입니다.”
재난이나 다름없었다.
“뭉개진 슬라임처럼은…….”
“될 리가 없죠.”
상대가 한 마리일 때와는 달랐다. 다수와 부딪칠 때는 뭉개진 슬라임처럼 될 리가 없었다. 한 놈과 여럿은 모든 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중앙을 두껍게 하고, 굉려 씨만 우회 기동을 해주십시오. 가장 후방부터 노리시면 됩니다. 저희는 가장 후방을 노리지 않을 테니까요.”
약속도 했다. 적이 깨닫기는 힘들 터였다. 후방이기 때문이고, 상대의 시야도 제한되어 있었다. 전장을 위에서 내려다보지 못하는 이상 팀의 노림수를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굉려 씨, 할 수 있겠어요?”
“예. 중앙이 두텁다면 오히려 더 쉽습니다.”
굉려는 마치 산박은 자신의 말을 이해할 것이라 여기는 눈치였다. 산박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보다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암살자라면 더더욱 양동에 대한 이해가 깊다. 그건 집중의 묘리이기도 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다른 건 시야에 들어오지 않기 마련이다. 암살자에게 가장 상대를 죽이기 쉬운 상황이었다. 산박과 함께 양익이나 후방을 맡는 것보다 산박이 중앙에 들어가서 더욱 위협적으로 변하는 게 굉려에게 득이 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반면 다른 이들은 굉려를 불쌍하게 쳐다보았다. 그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포지션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이래도 됩니까? 너무 위험한 게 아닐까요.”
충호가 당황했다. 굉려가 너무 쉽게 수긍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산박이 이렇게 한 사람에게 불리한 작전을 세운 것도 쉽게 넘어갈 수 없었다.
“굉려 씨는 지금 1레벨 던전을 처음 공략하는 것 아닙니까. 너무 위험한 포지션이라 생각됩니다.”
“괜찮습니다.”
충호의 말에 굉려가 제지했다. 오히려 그는 편안했다. 암살자에게 있어서 동료는 솔직히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협력하는 것도 어색했다. 굉려는 오히려 편안한 표정을 지어줬다. 그런 태도에 충호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