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0화 (80/270)
  • 80화

    * * *

    이시은은 인천으로 향했다.

    ‘세종시에는 왜 그게 없을까. 그게 아쉽단 말이지.’

    ‘판타지 쇼크’의 여파로 모든 세계가 피해를 입었고 그건 대한 제국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먼저 만주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했고, 나라는 두 쪽이 났다. 만주에는 고구려의 후손들이 살아 있었기에 남쪽과 잘될 수가 없었다.

    서울이 상실되면서 특히나 정치권이 싹 갈려 나갔다. 삼두 정치라 불릴 정도로 과거 역사의 핏줄들이 아득바득 이를 갈며 싸우던 모습도 사라져 버렸다. 삼 당 체제가 붕괴되고 이 당 체제로 변하게 되었다.

    또한 대한 제국은 대한민국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한민족은 자신들의 잠재력을 내보였다.

    인천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재건 도시, 복구의 씨앗, 아름다운 기적이라 불리고 있었다. 한 번 무너졌던 포스코 타워가 우뚝 솟은 채 시은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가야 할 목적지였다.

    ‘높다.’

    시은은 몇 번 교통수단을 바꾸면서 나아가야 했다. 아직 인천은 가야 할 길이 멀었다. 하지만 그 중심부로 향할수록 확실하게 주변이 깔끔해졌다.

    “다 왔습니다!”

    “수고하세용!”

    늙은 노인이 이끄는 인력거에서 내리며 시은은 품삯을 두둑이 쥐여줬다. 노인은 크게 고개를 숙였다. 이 돈이면 집에 있는 자신의 아내에게 뜨끈한 설렁탕을 줄 수 있을 터였다. 운수 좋은 날이다. 절로 흥이 났다.

    포스코 타워의 높이는 305m, 총 68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재건 전의 포스코 타워를 완벽하게 따라서 만들었다.

    그 속내에는 예전의 대한 제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 또한 이 포스코 타워는 옛 백제의 귀족이었던 각복모의 가문이 소유하고 있었다. 일본의 자본이 들어갔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들 가문은 현재 인천에 3천 평이 넘는 대저택에 살고 있다.

    포스코 타워의 주변에는 깔끔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몇몇 경비 팀과 경찰이 순찰을 평화롭게 돌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곳을 지나고 있는 시은에게 사복을 입은 두 명의 건장한 남자가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네. 무슨 일이시죠?”

    “저희가 연예인 매니지먼트를 계획하고 있는데, 혹시 그쪽 분야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없으셔도 한번 모델부터 시작하시는 게…….”

    “여기 보시면 강습 같은 경우도…….”

    “죄송해요. 던전 사용자라서요.”

    “와! 던전 사용자시구나! 그럼 더더욱 연예계 쪽을 생각하셔야죠! 그렇게 힘든 일을…….”

    “저희는 정말 깔끔하고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통해서 연예인을 배출하고 있고 다채로우면서도 앙글레스한 체제로 인텔리전스 시스템을 이용해서…….”

    시은이 몇 번 거절을 했지만 두 남자는 그녀에게서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곤혹스러운 모습을 본 경비원 두 명이 다가왔다. 사실 그들도 진작에 이시은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예쁜 게 죄라면 죄였다.

    “실례합니다. 여성분이 곤란해하시는 것 같은데요.”

    “예? 아뇨. 아닌데요.”

    “그건 그쪽에서 말하면 안 되고.”

    “곤란해하고 있었어요. 좀 도와주세요.”

    그 말에 경비원이 단번에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서 막아섰다.

    “자꾸 절 붙잡아 두시고……. 좀 무서웠어요.”

    “아, 아뇨. 저 여성분이 그렇게 크게 거부를 하지 않았다니까요.”

    “덩치가 커서 무서워서…….”

    “에헤이, 이 사람들 진짜 악질이네.”

    시은이 손으로 눈 주변을 닦자 단번에 경비원들이 흉한 기세를 뿜었다. 결국 두 사람은 허둥지둥 도망쳤다. 시은도 저런 저급한 쓰레기들한테 시간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기에 쉽게 보내줬다.

    시은은 경비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빌딩 로비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사다 주는 모습을 보였다. 경비원 두 명의 입이 쭉 찢어지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나중에도 볼 수 있으니까.’

    세상이 좁다는 걸 ‘공부’해서 이해하고 있는 시은이었다. 앞으로 포스코 타워에서 활동을 펼쳐야 하는 그녀였고, 경비원 두 명을 알고 지내는 건 나쁜 일이 아니었다. 연락처까지 서로 나누었다.

    “아! 네크로맨서시군요.”

    “네. 저 보면 인사해 주세요!”

    “그럼요!”

    근무 때문에 커피만 들고 사라지는 경비원에게 손을 살짝 경박하지 않게 흔들어 주고 시은이 몸을 돌렸다. 차갑게 식은 눈동자와 함께 분위기 자체도 얼음장처럼 변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유심히 보지 않기 때문에 걸을 때만큼은 그녀도 편해질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사회라는 감옥 속에서 자그마한 안식처를 주는 ‘걷기’는 시은의 가장 큰 취미이기도 했다. 강을 걷거나, 공원을 걷거나, 그냥 아무 데나 걷거나. 그 행위 속에서 시은의 스트레스는 크게 풀렸다.

    로비에서 시은은 신분을 증명하고 백패(白牌)를 받았다. 외부로 유출이 안 되는 새하얀 색의 증표였고, 수습 기간 내에는 계속 로비에서 받아야 했다. 백패는 네크로맨서의 자격증이었다.

    ‘네크로맨서의 빌딩’. 포스코 타워는 현대의 네크로맨서가 모이는 곳이었고, 그곳은 특별한 패를 지닌 자들만이 올라가서 활동할 수 있었다. 민간에 개방된 곳은 오직 3층까지였다.

    “왼쪽 엘리베이터를 사용해 주세요.”

    로비의 안내에 따라서 시은은 경비원을 통과해 전용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곳에서 곧바로 4층으로 향했다.

    백패 네크로맨서인 이시은이 이곳에서 가장 먼저 한 것은 백패에게 허락된 1레벨 장비를 구매하는 일이었다. 인천에 집중해서 살아가는 네크로맨서는 매우 폐쇄적인 집단이고 기업이었다. 그들의 장비를 장물로 파는 일은 큰 피의 복수를 불러일으키는 일이라 네크로맨서의 장비를 얻으려면 이곳에 소속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점은 백패 네크로맨서까지는 누구나 시간만 들이는 것으로 안전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텃세도 없다는 점이었다.

    네크로맨서 장비로 새 단장을 하고, 시은은 지식과 기술을 탐구했다. 자신이 지닌 주문 해골 일으키기는 가장 하급의 라이즈 스컬 주문이었고 제대로 된 것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노하우를 터득해서 버텨야 했다. 혹 이게 잘 안 된다면 1레벨 던전 클리어를 통해서 네크로맨서 주문과 기술을 터득해야 했다.

    ‘당연히 할 수 없어.’

    다만 그 선택을 시은은 할 수가 없었다. 산박에게서 멀어지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2레벨에 도달할 것이 분명했다. 위태로워도 시은은 지금 가진 것으로 그와 비슷한 시기에 2레벨에 도달해야만 했다. 그런데 카르마를 주문이나 기술을 얻는 데 사용한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해골학이란 하급 언데드, 그중에서도 뼈를 다루는 네크로맨시의 요령이며 극한의 효율성을 획득하기 위한 지식이다. 이를 가볍게 여긴 고위 네크로맨서는 데스 나이트의 뼈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해서 뒤늦게 해골학에 입문하기도 한다. 그 근원이 하급 언데드의 뼈를 다루고 있다고 해도 결코! 천대해서는 안 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 어떤 네크로맨서도 가능한 가장 쉬운 방법은 해골 언데드의 뼈에 정신을 집중해서 근섬유처럼 시체 마력을 엮어주는 것이다. 이를 골내근형법(骨內筋形法)이라 부른다. 해부학, 정확히는 근육에 대한 지식을 쌓고 그 모형을 보고 공부한다면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사령 마력은 해골 언데드의 행동력에 소모되기 때문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본인의 실력에 맞춰서 매번 골내근형법에 사용할 사령 마력을 가늠하는 것이 매우 까다롭다. 감이 좋지 않은 자는 반드시 체감을 위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시체를 다뤄야 할 것이다.]

    그녀는 집중해서 세 시간을 내리 공부했는데, 그녀의 앞에 누군가가 캔 커피를 놓았다. 시은이 고개를 들어 올리자 깔끔한 피부에 뚜렷한 이목구비, 조금 큰 눈을 하고 있고 눈썹이 얇은 남자가 빙긋 웃었다. 밝은 갈색으로 염색을 하고 파마를 했는데, 뿌리 부분이든 머리끝 부분이든 풍성한 컬이 돋보이는 모습을 보니 관리도 매우 꾸준히 하는 듯했다. 스핀 스왈로 펌을 아주 잘 소화해 내는 미남이었다.

    “전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건 안 마셔요.”

    “아, 그래요? 죄송해요. 하지만 저 위험한 사람 아닌데.”

    자연스럽게 남자가 옆에 앉았고, 자신의 네크로맨서 패를 보여줬다. 적패(赤牌)였다. 검붉은색의 패를 본 시은의 눈이 조금 커졌다. 황패도, 백패도 아닌 흑패의 바로 위에 있는 적패는 거리낌 없이 이용하다가 퉤하고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어중간한 신분이기 때문이었다.

    “좋은 네크로맨시가 없으신가 봐요. 공부 열심히 하는 거 보면.”

    “조금 기분 나쁘게 들리는데…….”

    “그러셨다면 정말 죄송하네요. 사죄하는 의미에서 커피 한잔 어떠세요? 당연히 제가 살게요.”

    “싫어요. 첫 만남에 쉽게 넘어가고 싶지 않아요. 대신, 내일도 이 시간에 오시나요?”

    “다, 당연하죠!”

    시은의 말에 남자가 조금 목소리를 높였다.

    “쉿. 통성명은 그때 해요.”

    시은은 그렇게 적패를 지닌 선배를 알게 되었다.

    박서후(朴徐厚)는 도서관에서 빠져나가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대박!’

    시은과 관계를 가질 생각에 벌써 사타구니에 열이 찼다. 진짜 보기 힘든, 특히나 한국인 중에는 잘 보이지 않는, 도서관에서도 색기가 흘러넘치는 여자를 알게 되었다.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100% 썸 타는 분위기였다. 여자를 여럿 사귀어본 그였기에 확신했다.

    저런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서 그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먹어본 놈이 맛도 잘 아는 법이었다.

    시은은 늦은 저녁을 밖에서 사 먹고 집으로 귀가했다.

    “냐옹.”

    “이리 온…….”

    뿌득!

    귀가하는 도중에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길고양이의 목을 비틀어서 검은 봉지에 담아서 들어갔다. 오늘 배운 네크로맨시를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 * *

    1팀의 던전 일정이 드디어 잡혔다. 산박을 탓하는 분위기는 없었는데, 지급 물품이 하나 더 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공짜! 사람은 작은 물건에 의외로 깊은 호감을 느끼기도 한다.

    “장비 현황은 모두 받았는데, 시은 씨, 괜찮겠어요? 개인 장비가 많아지셨는데.”

    “네. 조금 무거워도 어쩔 수 없죠. 언데드를 좀 더 강화시키고 싶어서요.”

    본인이 확실하게 괜찮다고 말했기에 산박은 더 걸고넘어지지 않았다.

    “다시 한번 가방 확인 후에 던전에 들어가겠습니다.”

    산박이 그렇게 말하고 팀원들의 변동 상황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훑었다.

    시은은 환도에 산화 두꺼비독을 발랐다. 도를 뽑는 순간 산소를 만나서 단번에 녹는 독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여자였기에 공격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 중 하나였다. ‘화염’ 수단이 많이 있었기에 산화 독을 선택했다.

    ‘팀을 고려해서 선택했다. 아주 좋다.’

    그 산화 두꺼비독 검집만으로 시은이 가진 능력이 대단하다는 걸 보여줬다.

    석궁 또한 새롭게 구매했다. 보조 근력의 석궁이었고, 장력도 높였다. 여러 발 쏘기보다는 근육이 힘들어도 한 발의 관통력을 높였다. 시은은 물량으로 밀어 버리는 괴물보다는 확실하게 강한 보스 몬스터가 가장 사람을 죽이기 쉽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그로 인해서 큰 충격을 받은 강합은 언제 복귀할지 몰랐다.

    ‘그녀는 경장비를 쓰는데, ‘주문 한기’와 ‘주문 강화’를 선택했다.’

    마녀여서라기보다는 마녀의 손길과 싸늘한 증오 때문이다. 마녀의 주문에 한해서 한기가 서리는 싸늘한 증오의 효능을 더욱 높이고 마녀의 손길 주문 피해를 더욱 강하게 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산박처럼 주문을 더 사용할 수 있는 증강의 장비는 없었다.

    ‘마녀의 손길은 견제 용도의 주문이기 때문이지.’

    목을 조르는 것이기에 공격력이 크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찌 되었든 사용해야 했다. 다른 주문은 공격력 자체가 없었다.

    ‘볼트에도 돈을 제법 썼다. 이건 의외지.’

    관통의 볼트. 궁수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거지같이 장력을 높여야 하는 활보다는 사실 다리나 허릿심으로 장전할 수 있는 석궁이 인기가 높았다.

    ‘던전에 조금은 진지해진 건가.’

    나쁘지 않았다.

    ‘그 외의 가방에 짊어지고 있는 추가 무장들은 언데드를 위한 것이다.’

    하급 언데드 강화를 위해서 개인 가방에 무기와 방패, 망토가 들어가 있었다.

    거기에 시은은 화염 물약 외에도 자극 물약도 챙겨 와서 보급해 줬다. 팀에 공헌하려는 태도가 확연하게 보이는 행동이었다. 시은이 1팀에 애착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산박에게 기쁜 일이었다.

    “출발하겠습니다.”

    “예!”

    “네!”

    4인이 안으로 들어섰다. 던전이 그들을 집어삼켰다. 공간 이동 되는 감각과 어지러움이 동시에 몰려왔다. 언제나 적응되지 않는 감각이었다. 왜냐하면, 그걸 거부할 수가 없어서 무력감마저 들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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