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화 (79/270)
  • 79화

    “어떻습니까?”

    산박이 상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간단한 안주와 술이 전부였다. 하지만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다. 집을 꾸리는 여자 하나 없는 남자는 천장이 무너져도 가만히 놔두는 것들이었다.

    “그래도 먹다 남은 오징어를 가져오는 건 뭐냐?”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거슬렸다면 죄송합니다.”

    산박이 오징어를 자신의 앞에 뒀다.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그만이었다.

    “됐다. 요즘 누가 그런 걸 따지느냐? 굶어 죽는 사람도 있는데. 하나 줘 봐라.”

    장 노인이 신경 써주는 모습에 산박은 절로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냉큼 씹고 있던 걸 보여줬다.

    “아니! 이빨 자국 난 거 말고!”

    “흐하하하.”

    산박이 크게 웃었다. 지건도 어색하게 웃었다. 어르신에게 장난치는 놈은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얼굴이 붉어진 장 노인을 보며 산박이 씨익 웃었다.

    “대단하십니다. 소리 한 번 지르고 끝이네요. 욕이라도 하실 줄 알았는데.”

    “간신배 놈. 상황 따라서 이러는 거 보기 안 좋다.”

    “예.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그래서 어떻습니까?”

    “드루이드 사과나무, 보통 놈이 아니다.”

    한참 어린 놈이 장난을 쳐도 용서해줄 정도였다. 그만큼 수익성이 뛰어났다.

    “지건아.”

    “예!”

    지건이 가져온 유인물을 산박에게 건네줬다. 컬러도 보였고, 사진도 붙어 있었다. 제법 고생한 티가 났다. 사업하는 사람다웠다.

    ‘열정이 보이네.’

    [드루이드 과수원 사업]

    제목부터 확실했다. 오로지 돈 보고 일을 벌이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었다. 산박은 그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과 출하량은 1년에 25만 톤 정도입니다. 보통 10kg 하면 사과가 50과 정도 들어가 있습니다.”

    지건은 시작부터 숫자 놀음을 했다. 산박은 매우 집중했다.

    “어마어마한 양이죠. 특히 한국 사과는 당도가 정말 높아서 상품성도 뛰어납니다. 수출도 쉽게 쉽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건은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사과 1톤이면 5,000과 정도입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일 년에 300과 정도를 딸 수 있습니다. 그렇게 계산을 한다면 적어도 1년에 300과 정도는 한 그루에서 나와 줘야지 경쟁성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드루이드 사과나무에서는 몇 개나 납니까?”

    “한 달에 50과. 열매가 자라나는 속도가 어마어마하다. 비교 불가능이고, 대체할 수도 없다!”

    장 노인이 고함을 지르듯이 말을 토해냈다. 그만큼 혁명적인 현상이 이루어졌고, 이를 두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사과 농가들 다 제치고 산업 하나를 손에 쥐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말이다!”

    “무섭네요.”

    산박이 약한 소리를 했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사과 농가들이 1톤 트럭을 타고 와서 과수원을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 분명했다. 그게 힘들다면 사람을 고용할 터였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겁먹기는…….”

    “수출 위주로 하면 국내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해외라고 해봤자 사과 파는 놈들이 뭘 어쩌겠습니까? 거기에 무역 회사 하나를 경유한다면 욕은 그놈들이 먹습니다. 다른 회사 여럿 거쳐서 소상공인처럼 속여서 출하하면 됩니다.”

    “없는 경매장도 만들면 좋겠지.”

    사람 손 여럿 거치면 과수원을 못 찾을 게 분명했다.

    산박은 손사래를 쳤다. 이런 이야기는 너무 나간 이야기였다.

    “지금 너무 흥분해 있습니다. 그런 것 말고, 정확히 이익이 어느 정도 됩니까?”

    “지켜본 결과 나무 한 그루가 보름에 스물다섯 개. 한 달에 쉰 개 정도 생산을 합니다. 빠르지요. 나머지 네 그루에도 한다면 다섯 그루가 한 달에 이백오십 개를 생산합니다.”

    “여섯 그루면 보통 사과나무 한 그루에서 나오는 일 년 생산량을 한 달마다 생산할 수 있네요.”

    특히나 자주자주 열매를 생산한다는 게 중요했다. 무서운 힘이었다. 다른 드루이드들은 특성에 잡아먹혀서 자연인이 되었기에 세상 사람들이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또 그 많은 1레벨 드루이드 중에서 나무 생육 주문을 얻은 드루이드는 극소수에 불과할 터였다. 결국 상업용으로 드루이드 주문을 사용한 건 산박이 최초인 셈이었다.

    “굉장한 일이지. 거기에 사과는 가장 대중적인 과일이다. 안 팔릴 수가 없다.”

    “크기도 다른 사과보다 더 큽니다. 햇빛에 안 둬야 하지만, 한 달을 놔둬도 단단합니다.”

    “당도가 높을수록 빨리 썩는데 그런 단점도 없어. 마치, 생기를 가득 머금은 과일 같다.”

    “실제로 생명력 하나만큼은 탁월한 열매입니다.”

    산박은 부정하지 않았다. 드루이드는 자연과 우주를 탐구하는 직업이었다. 작은 별빛의 힘을 탐구하기 위해서 사막을 건넌 드루이드의 단편적인 경험을 산박은 가지고 있었다. 그 말에 거짓은 없었다.

    “50과, 10kg에 2만 원 돈입니다. 여섯 그루에서 나오는 출하량을 생각하면 한 달에 12만 원은 수익이 나오죠. 물론 팔려야 하기 때문에 값이 오르락, 내리락할 수 있습니다.”

    “유통으로 얼마를 줄 생각입니까?”

    “우리나라만큼 유통의 힘이 강한 곳도 없습니다.”

    담합이 심하기 때문이다. 사돈에 팔촌까지도 유통업으로 엮어서 3단, 4단을 경유한다. 그들은 적어도 소비 가격의 50%는 뜯어먹었다.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10%씩만 뜯어먹어도 다섯 곳을 경유하면 50%다.

    “그게 무슨 쌍팔년도 소리야? 그건 소고기 놈들이나 하는 짓거리고, 요즘은 안 그래. 택배부터 재미를 보기 시작해서 이제는 유통까지 잡으려고 하는 것이 대기업인데. 인터넷 마켓은 5~10% 정도만 떼먹는다. 나머지는 우리 것이다. 내가 또 잘 알아.”

    “어련하시겠습니까.”

    아낌없이 공개하는 모습에 산박이 가볍게 대꾸했다. 유통업자 혹은 기업에 판매를 맡긴다면 택배비까지 고려해야 했다. 하지만 남들 다 그렇게 파는데, 자신들까지 굳이 싸게 팔 필요는 없었다.

    ‘싸게 판다면 할인이나 이벤트를 넣어야지.’

    기본부터 싸면 사기가 좀 그렇다. 조금이라도 할인되는 맛이 있어야 했다. 원래 1만 원에 파는 것보다 3만 원짜리를 1만 원에 파는 게 더 파격적으로 다가온다. 인간은 감성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게 골머리 아파할 일이 없다. 회사 하나 설립해서 15%를 외부 판매 자금으로 쓰고, 나머지는 축적해 놓고 매년 일정 비율로 배당금을 공평하게 나눠 가지면 된다.”

    “회사요?”

    “장지건 상회입니다. 드루이드 사과가 가진 상품성이 대단해서 회사를 설립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까?”

    “예!”

    판매에 15%를 걸고, 돈이 남으면 매년 배당금으로 공평하게 나눈다. 나쁘지 않았다.

    “여기 장지건이 사장, 자네가 감사를 맡으면 그만이지.”

    “그렇게 쉽게 회사가 됩니까?”

    “2인 회사부터 시작하는 거다. 나중에 나무가 늘어나면 그만큼 사원도 뽑아야지. 아! 다연이는… 부사장으로 해야 하나?”

    “글쎄요……. 그런 거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거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면 나머지 85%의 수익을 배분하면 돼.”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평범하게 종자만 주는 로열티의 경우와는 다르기 때문이었다. 드루이드 나무는 산박밖에 못 만든다. 그 수명이 몇 년일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고려할 게 생각보다 많다.’

    산박의 노동량에 따라서 비율을 달리해야 했다.

    조용히 술잔이 오고 갔다. 산박은 스마트폰도 그냥 꺼버렸다.

    “제가 해야 하는 양에 따라서 달리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야지만 알 수 있네요.”

    “그렇지……. 똑똑하구만.”

    장 노인은 생각보다 더 꼼꼼하게 고민하는 산박의 모습에 속으로 아쉬움이 들었다. 산박의 그간의 행태를 보면 크게 양보해줄 것이라 여겼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일단은 50% 떼 가세요. 매년 갱신하는 거로 하죠.”

    “일이 어찌 될지 모르기에 매년 갱신에는 찬성하지만, 인건비를 생각하면 50%는 너무한 것 아닙니까?”

    지건이 툴툴거렸다. 합당한 의견이었는데, 산박이 하는 거라곤 주문을 읊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없던 일로 하든가요.”

    산박은 스마트폰을 켜며 말을 이어 나갔다.

    “당장 박조조 씨한테 전화해 볼까요? 너도나도 하고 싶다고 할걸요?”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다른 사람한테 맡겨도 되겠나? 믿을 수 있겠어?”

    “못 믿죠. 하지만 시작은 50%로 하고 싶습니다.”

    산박은 다시 한번 더 못을 박았다.

    “아무래도 돈이 급한 듯한데, 그렇다면 반년을 기한으로 두고, 반년 뒤에 자동적으로 65%로 하는 건 어떤가.”

    “제가 20%를 먹네요. 상황이 변하지 않고 유지된다는 조건에 한해서 그렇게 하겠습니다. 단, 반년 내에 드루이드 나무가 시들거나 죽으면 없던 거로 하겠습니다.”

    “좋다.”

    단번에 계약서를 작성했다. 회사를 만드는 일도 단숨에 진도를 빼기로 했다.

    ‘지금 상태로는 달마다 만 원도 안 들어오지만 차근차근 나무의 숫자를 늘리면 어마어마하게 돈이 들어오겠지.’

    드루이드 나무가 지닌 생명력만큼 사과나무의 수명이 매우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장지건 상회가 만들어졌다. 의외로 지건의 아내인 윤다연은 부사장이 되고 싶다고 했다. 있어 보인다는 이유였고, 남편이 사장인 회사이므로 아내인 자신이 부사장이 되어야 한다는 간단한 말을 했다.

    * * *

    산박은 당진 도시로 향했다. 새로운 팀 지급 물품을 확보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변명으로 보름을 더 버텼다. 모두 드루이드 사과나무에 대한 데이터 확보와 계약을 위해서였다. 그게 마무리된 지금, 그는 서둘러 1레벨 던전을 공략해서 레벨 업을 해야 했다.

    ‘환경에 변화를 가져오는 1레벨 소비템은 거의 없네.’

    검은 안개의 덕을 본 적이 있었기에 산박은 지형 변화를 주는 물약을 찾고 있었다. 검은 안개에 버금가는 게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건 1레벨 소비 아이템 중에는 없었다. 있다고 해도 새하얀 안개가 전부였고, 범위도 좁았다.

    “흐으음……. 역시 특이한 건 없네.”

    아쉬운 일이었다. 전의 협소한 상점에도 들릴까 했지만 전 던전에서 화염 진득액은 사용도 하지 않았다. 조커 카드라고 생각하니 아무도 안 쓰게 되어 버렸다.

    ‘차라리 섬광 단검이 쓰기 편하지. 비싸지도 않고.’

    쓰고 나면 평범하게 투척 단검으로도 쓸 수 있었다. 추가적인 원거리 수단은 언제든지 유용했다.

    ‘치료 쪽으로 눈을 돌릴까…….’

    그런 산박의 눈에 신제품이 들어왔다. 신제품임에도 49% 세일을 하고 있다는 게 실로 어처구니없었다. 단기간에 폭망한 제품인 듯했다. 가격은 세일해서 4,990원. 초저가였다.

    “향수?”

    제품명은 단순명료했다. 결국 직원을 호출하는 수밖에 없었다.

    “네, 고객님.”

    “이거 무슨 효과예요?”

    “아……. 악취가 나게 만드는 향수입니다. 스컹크의 열 배에 달하는 악취라서 홀로 남았을 때 도주용이나 보호용으로 사용하는 향수죠.”

    ‘와우.’

    산박은 제법 그럴듯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표확곡이 절로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급류에 휩쓸려서 살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닌 채 낙오된다면 충분히 생존 시간을 길게 늘릴 수 있었다.

    “지속 시간은요?”

    “상황마다 다르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이동하지 않는 경우까지 포함한다면 다섯 시간도 너끈합니다.”

    “휘유……. 이 좋은 걸 왜 세일하는지 아십니까?”

    “그야 확실하게 적을 타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계륵인 셈이죠. 팀원과 흩어지는 상황은 적고, 매우 위험할 때뿐입니다.”

    “혼자 살아도 공략의 가능성은 작으니까요.”

    산박이 직원의 말을 받았다. 돈이 되는 곳이었기에 직원 관리가 아주 잘되고 있었고 직원의 수준도 높았다. 산박은 네 병을 구매했다.

    이를 1팀에게 알리자 모두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특히 충호는 장문을 쓸 정도로 중요하고 효과적인 아이템이라고 평가했다.

    ‘그 또한 알고 있는 거지. 표확곡처럼 낙오된 자의 말로를.’

    죽지 않은 게 용했다.

    또한 충호는 공격력이나 치유력을 지닌 소비 아이템이 가장 으뜸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미리 산박의 편을 든 것이기도 했다. 쓸데없는 배려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산박은 마음에 들었다. 충호가 그만큼 산박에게 호감을 보내고 있다는 증거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팀의 분란 따위 결코 일어날 수 없었다. 충호의 곰 같은 덩치는 그가 1팀의 이인자임을 표시해 주는 징표나 다름없었다.

    ‘다시 던전으로.’

    왠지 다음 던전을 클리어하면 레벨 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에 더욱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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