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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74/270)
  • 74화

    * * *

    오버시어 팀은 두 개로 분리되었다. 이는 둔표와 휼간의 간사한 마음을 부추기기 충분했다.

    ‘지금부터 갈라서자, 뭐 이런 건가? 더러운 생각이나 하고 자빠졌네.’

    ‘마음에 들지 않아.’

    산박의 의도대로 산박과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의 마음은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1레벨 던전을 공략하게 해줬음에도 자기 합리화를 통해서 배은망덕한 마음을 가졌다.

    간잽이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법사 종휼간이었다. 숲과 산에서 300m가 넘는 거리를 꿰뚫고 상대를 죽이거나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얼음 화살 주문으로 약탈자들을 크게, 더욱 크게 분산시켜야 했다.

    비겁한 얼음 마법사답게 주문조차도 저격과 비슷했다. 300m면 상대가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이를 타격하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정신 집중 기술의 명중률 보정 때문이었다. 단순하게는 주문의 사거리 증가, 단거리 위력 증가, 주문 발현 시간 증가 등등의 효과를 내지만 주문 사용자에게 말 그대로 정신을 집중하게 해줬다.

    또한 종휼간의 장비는 주문 강화, 얼음 보조, 체력 증진의 효력이 깃든 1레벨 장비로 가득했다.

    얼음 보조(Ice assistance). 쓸데없이 폼 잡는 영어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만큼 얼음 주문에 대한 보조력이 상당했다. 물 마법의 계통 중 하나인 얼음 계통에 한하여 보조해 주는 만큼 강력할 수밖에 없었다. 믿을 수 없는 관통력이 이를 여러 번 증명하였다.

    “시작하자.”

    둔표의 말에 휼간이 심호흡을 했다. 척후로 나가있던 유나가 손짓하는 게 그의 눈에 담겼다. 이들은 유나의 지시에 따라서 해당 지점으로 향했다.

    “나무 위로 올라오세요.”

    도움을 받아서 나무 위로 올라갔다. 휼간은 상당한 몸치라서 위로는 유나가 당겨주고 아래로는 둔표가 엉덩이를 밀어야 했다.

    “흐흐흐.”

    이 상황이 웃겨서 휼간이 웃음소리를 냈다.

    “웃지 마!”

    밑에 있던 둔표가 윽박질렀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 남자 엉덩이나 밀어주고 있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이쪽을 보세요. 제가 뚫어 놨어요.”

    점이 오밀조밀 움직이고 있었고 가만히 있는 점도 보였다. 색깔 머리였다.

    ‘좋아.’

    휼간이 정신을 집중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얼음 화살이 쏘아졌다. 포물선을 그리지는 않았다. 물리적 법칙이 통용되지 않았고, 300m를 우직한 직선으로 뻗어 나가 그대로 상대의 머리에 명중했다.

    “됐다. 처음이라서 그런지 전혀 경계하지 않았어.”

    “서둘러 도망치죠.”

    “온다! 온다! 서둘러!”

    세 사람은 호들갑을 떨며 도망쳤다. 높은 지혜를 가진 산박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것만으로도 냉철하고 주변 공기를 조금 착 가라앉게 만드는 게 있어서 농담을 치는 게 어려웠지만 지금은 산박이 없었다. 적이 보이지 않으니 이들은 신이 났다.

    둔표는 목구멍으로 튀어나오려는 아재 개그를 삼켰다. 분위기가 좋은 때, 꺼트리고 싶지 않았다. 서른세 살까지 몇 번이나 소개팅을 박살 낸 여심 살해의 아재 개그에 의해서 피해를 입은 여자만 수십을 헤아렸다. 인연 만나러 갔다가 아재 개그 처맞는 만남. 끔찍할 터였다. 코를 벌름거리며 아재 개그 본능을 참으면서도 혼자 좋아하는 둔표는 못난 인간일 뿐이었다.

    반면 산박과 대장삵은 그들보다는 조금 위험한 짓을 해야 했다. 어떻게든 약탈자를 흩뜨려 놓아야 했고, 그 수단은 당연히 부락의 파괴였다. 적어도 움막의 절반 정도는 태우고 싶어 했다.

    이 전술적 목표를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밖을 흔들어야 했다. 내부를 타격하고 싶다면 밖을 타격하는 것에 큰 힘을 더하고 무주공산이 된 내부를 작은 힘으로 타격하는 게 기본 중의 기본이다. 산박은 전술, 전략은 몰랐지만 빈집털이 정도는 알고 있었다.

    산박은 대장삵과 함께 주변에서 활동하는 약탈자를 파악하고 난 다음에 접근했다. 놈들도 뭔가를 먹어야 했기에 나무 위에 조류를 잡기 위한 나무 덫을 놓고 무장을 한 채로 사냥하기 바빴다.

    산박은 그런 약탈자를 노렸다. 사냥감을 쫓고 있어서 도리어 사냥감으로 몰려도 모를 공산이 컸다.

    ‘몰이 하는 놈이 가장 적당하지.’

    가벼운 차림새에 고함을 지르고 다니는 놈은 꾸준히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숲의 가시거리는 최대 10여 m. 엄청나게 좁았다. 이런 상황에서 몰이꾼을 자처하고 있는 약탈자는 노리기 좋은 먹잇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상황을 이용해야만 한다.’

    종휼간처럼 초장거리 저격 마법 주문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집중성탄의 관통력과 피해량은 얼음 화살보다 좋았지만 별빛탄의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형편없는 사거리였다.

    산박은 동물로 변하지도 않았다. 피 냄새가 묻으면 추격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고함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산박은 살짝 파놓은 구덩이에 손을 넣어서 집중성탄을 만들어낸 채로 놈을 기다렸다.

    놈이 나타나자마자 산박은 그대로 손을 들어 올려서 집중성탄을 발사했다. 시야의 끝부분에서 빛이 밝아지는 듯한 기분에 약탈자가 몸을 돌렸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퍽!

    순식간에 살갗이 터져 나가며 피가 튀었다. 머리가 단번에 관통당했다. 산박은 서둘러 다가가서 부산물을 획득하고 도망을 쳤다. 대장삵이 그 뒤를 따랐다.

    조심 또 조심했으며 상황까지 이용했기에 약탈자의 시체가 발견된 것은 10분 뒤의 일이었다. 매우 치밀했고, 지능적인 살해였다.

    이를 기점으로 약탈자들은 내분에 휩싸였다. 두 부락이 하나가 된 상태나 다름없었다. 다른 부락을 돕기 위해 내려왔다가 빈집털이를 당해서 죄다 죽임을 당한 부락은 여기에 눌러앉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부락으로 가봤자 있는 건 망가진 움막과 흙이 묻은 식량과 가죽이 전부였다.

    한 부락 내에서 문제가 쿵 하고 떨어지니 안 그래도 나누어져 있던 양측 진영이 부딪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이들은 두 패로 나누어지고, 침입자를 처단하는 쪽이 이기는 것으로 승부를 봤다. 약탈자치고는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했는데, 그만큼 침입자들이 행한 악독한 짓이 뇌리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적은 노소를 가리지 않고 죽이는 사악한 존재였다. 반드시 타도해야 했다.

    약탈자는 양분되었고, 이는 시작부터 약탈자들의 전력을 절반으로 분산시키는 결과로 남았다. 동시에 공에 눈이 먼 약탈자들은 당연히 삼삼오오 뿔뿔이 흩어졌다. 간잽이 전략은 성공적으로 먹혀들어 갔고, 그 이후로 하루 동안 약탈자들은 침입자의 그림자조차 밟지 못했다.

    4일째가 밝아 왔다. 여전히 남아있는 약탈자의 숫자는 많았다. 하루를 버린 만큼 약탈자들은 퍼져있는 상태였다. 이제 오버시어 팀이 그 흩어진 약탈자들을 쓸어 담으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말이 간단하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다시 한번 놈들을 흔들었다.

    ‘지금이다.’

    해가 밝아 오기도 전에 산박이 낙엽 속에서 얼굴을 쏘옥 드러냈다. 숲은 숨기 정말 좋은 곳이었다. 나무 밑을 파서 들어가면 천혜의 은신처가 될 수 있었다.

    “삵아! 넌 퇴로에 숨어 있다가 내가 올 때쯤에 혹여나 대기하고 있는 약탈자가 있거든 뒤에서 쳐라. 미리 지키고 있으면 안 된다.”

    “알았다.”

    산박은 곧바로 부락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화덕을 발로 차서 엎었다.

    화르르르!

    화덕이 엎어지고, 움막에서 불이 타올랐다.

    뽕!

    휙휙휙휙!

    산박은 화염 물약의 뚜껑을 딴 채로 슬링을 이용해 크게 돌리며 하늘 위로 투척했다. 그다음에 서둘러 다른 곳으로 향했다. 산박이 던진 화염 물약은 사방으로 흩뿌려졌고, 움막이 단번에 타오르기 시작했다.

    약탈자가 산박을 보고 뭐라고 고함을 내지르며 쫓아왔지만 산박은 움막을 태우는 데 집중했다. 두 병의 화염 물약을 소비하고 화덕을 몇 개나 엎어버린 뒤에 도망쳤다. 대장삵의 파도 송곳니 주문이 연거푸 사용되어 쫓아오는 약탈자를 묶어서 손쉽게 도망칠 수 있었다.

    20여 채의 움막이 타오르고,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밤을 숲과 산에서 보낸 약탈자들이 깜짝 놀라서 그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검은 연기를 똑같이 본 다른 팀원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달려가는 놈들의 뒤를 쳤다.

    “카악!”

    화살 네 대가 순식간에 약탈자 한 명을 걸레짝으로 만들었고 앞서 나가는 약탈자의 어깨에 얼음 화살이 깊게 박혔다. 다른 두 마리가 몸을 돌려서 그 방향으로 쫓아갔지만 팀원들은 이미 도망친 이후였다. 이들의 목적은 지속적인 피해였다. 사망자를 확실하게 내는 게 아니었다. 철저한 원거리 공격으로 피해를 누적시키는 게 목적이었다.

    “커흐허허헝!”

    호랑이로 변한 산박이 포효하며 나무에서 뚝 떨어졌다. 덮쳐진 약탈자는 등을 보이고 공격 한번 못 한 채 목을 물어뜯겼다. 목에 상처를 크게 내고 산박은 냉큼 옆으로 몸을 돌려서 사라져 버렸다. 같이 달리던 약탈자 네 마리가 그 시체에 모여서 분노를 표출했다.

    “크악!”

    그렇게 모여 있었음에도 수풀에서 거대한 호랑이 머리가 툭 튀어나와서 약탈자 하나의 발목을 콱 물고 확 끌어당겼다. 단번에 머리가 땅에 부딪혔다. 돌이 있어서 크게 상처가 났다.

    “컥!”

    쭉 끌어당겨진 놈이 고함을 질러 대었다. 서둘러 남은 세 마리 약탈자가 수풀로 뛰어들었지만 호랑이의 꼬리밖에 보지 못했다.

    발목을 물어뜯긴 약탈자가 벌벌 떨었다. 이족 보행 괴물이 넘어져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끔찍한 무력감에 시달려야 했고, 큰 상처 때문에 세 마리의 약탈자의 이동 속도가 크게 느려졌다. 산박은 더는 그들을 공격하지 않고 다른 약탈자 무리에 피해를 주기 위해서 껑충 뛰었다.

    대장삵은 나무에서 다람쥐처럼 내려와서 산박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가 다른 약탈자를 포착했을 때, 다시 인근의 나무 위로 올라섰다. 혹시나 있을 위험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조그마한 대장삵의 귀가 홱 돌아갔다. 고개도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약탈자 하나가 투창을 들어 올리는 게 보였다. 아까는 볼 수 없었던 놈인데 어디서 똥이라도 싸고 온 듯했다.

    대장삵이 냉큼 튀어 올랐다. 파도가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렸다. 동시에 대장삵의 날카로운 발톱이 놈의 목을 깊게 베고 지나갔다. 파도의 힘 때문에 아주 깊게 베였다.

    호다닥!

    그런 다음 대장삵은 순식간에 나무와 수풀 속으로 쓔웅 사라져 버렸다. 물과 함께 대량의 피가 왈칵 쏟아져 내려왔다. 찰나의 시간에 불과했지만 보통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양의 피가 순간적으로 소모되었다.

    “그헉. 켁!”

    약탈자는 목젖을 위아래로 껄떡거리다가 입에서 피를 토하며 고꾸라졌다. 파도의 돌진력과 물의 밀도를 이용한 파도 송곳니는 대장삵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주문이었고, 매우 유니크한 주문이었다.

    산박은 약탈자들의 발목을 사정없이 물어서 끌고 가며 상대를 불구로 만들고 나무 위에서 기습해서 목을 물어뜯어 중상을 입히고 다녔다. 입에서 진득한 침이 흘러내릴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밤이 찾아오기 전에 나누어졌던 팀은 약속된 곳에서 하나가 되었다. 피에 절어있는 호랑이가 모습을 드러내자 같은 팀인 걸 알고 있음에도 일행은 표정이 딱딱하게 굳고 입술이 바짝 말랐다. 산박이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왜 인간의 모습으로 안 돌아오시고…….”

    “호랑이일 때가 더 따뜻해서요.”

    진실이었다. 하지만 진짜 목적은 아니었다. 이들을 한 번쯤 겁주기 위해서 호랑이의 모습을 계속 유지한 것뿐이었다. 만에 하나 있을 배신을 잘라내기 위함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모르는 법이지.’

    그새 유나가 결탁했을지도 모른다. 제대로 안 알려줬기 때문이다. 이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일렁이는 모닥불에 모습을 드러내는 피범벅이 된 호랑이가 제격이었다. 본능적으로 두려워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 공포심은 확실하게 마음속에 남는다.

    “어찌 되었습니까?”

    “위험 하나 없이 잘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둔표가 크게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화염에 휼간이 정면으로 얻어맞고 그도 팔 하나가 태워졌던 이전의 싸움과 달리 오로지 장거리로 약탈자를 처리했다.

    “이제 착실하게 갉아먹기만 하면 내일, 모레면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거리 팀이라는 게 진짜 쓰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그간의 앙금이 사라진 모습이었지만 산박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산박 또한 오늘만큼은 이 부드러운 분위기에 놀아나 주었다.

    * * *

    그 뒤로 2일. 6일 만에 오버시어 팀은 1레벨 던전, 개방형 던전, 약탈자의 던전을 클리어했다. 던전이 무너져 갔다. 새하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레벨 업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사용자 태산박을 인식합니다. 필요한 정보를 출력합니다.]

    [던전 사용자 태산박의 존재를 특정합니다. 당신은 카르마의 선택을 받은 자입니다.]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충분한 카르마를 획득했습니다. 레벨 업을 위해서 남겨놓을 수 있고, 자신의 수준에 맞는 새로운 주문과 기술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익숙한 말이 글자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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