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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73/270)

73화

산박은 미친 듯이 내달렸다. 약탈자 하나를 물고 피를 곳곳에 뿌렸다. 발톱에 의해서 갈가리 찢긴 약탈자의 아랫배에서 장기와 피가 흩뿌려졌다.

‘피 냄새를 사방팔방에 뿌려야 한다.’

그래야지만 더욱 쉽게 승리할 수 있었다.

범은 움막을 손쉽게 부수고 정신을 못 차리는 약탈자를 단숨에 후려쳐 전투 불능에 빠뜨렸다. 목을 물어뜯고, 뱃가죽을 할퀴어서 찢었다. 또 한 놈을 문 채로 크게 움직였다. 피 냄새가 가공할 정도의 속력으로 바람을 타고 뻗어 나갔다. 전 부락이 들썩였다.

‘피 냄새다.’

나무 지팡이로 발을 탁탁 치며 걷던 약탈자의 머리카락과 목 위의 피부가 바짝 곤두섰다. 지나칠 정도로 긴장했는지 흐물거리지도 않았다.

“허억. 허억!”

피 냄새 때문에 코로 호흡하기보다는 입으로 호흡하고 있어서 매우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곳곳에 죽은 동족이 널브러져 있었다. 노소(老少)를 구분하지 않고 죽어가고 있었다.

“흐으, 크아아아아!!”

고함을 지르며 네발 달린 짐승처럼 땅바닥을 기는 약탈자가 움막 사이로 보였다. 온몸에 피가 범벅이었다. 호랑이의 잔혹한 이빨이 쓰러진 약탈자를 그대로 끌고 움막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무기를 쥔 약탈자가 서둘러 움직였다.

약탈자가 움막을 지나쳤다. 시야각이 넓은 호랑이의 눈으로 이를 미리 간파한 산박은 몸을 일으킨 채로 기다리고 있었고, 튀어나온 약탈자를 앞발로 후려쳤다. 약탈자는 달려가던 방향으로 그대로 튕겨 나가며 고꾸라졌다. 자신의 돌진력에 집어삼켜져서 얼굴이 짓뭉개져 있었고, 호랑이의 발톱에 의해서 큰 상처도 남았다.

그런 놈에게 산박이 그대로 달려들었다. 일어서려는 상체를 다시 눕히고 큰 힘이 깃들지 않은 도끼를 앞발로 쳐냈다. 피가 움막을 붉게 물들었다.

그런 산박의 뒤로 또 다른 약탈자가 조심스럽게 튀어나와 등을 노리려고 했지만, 파도에 휩쓸렸다. 대장삵이 산박과 함께하며 암중에서 그 뒤를 지켜주고 있었다. 움막과 함께 파도에 휩쓸린 약탈자는 흠뻑 젖은 수풀을 머리에서 뜯어냈다. 그의 눈에 호랑이의 아가리가 덮쳐 오는 것이 뒤늦게 보였다.

“크아악!”

약탈자는 호랑이에 머리를 물려 왼쪽, 오른쪽 휘둘려지며 균형 감각을 잃었고, 그대로 뱉어져서 몇 바퀴나 땅을 굴렀다. 그리고 겨우 일어섰지만 이어지는 산박의 휘두르기에 아래턱이 뜯겨 나갔다.

1:1로는 1레벨 풀 세트를 갖춘 산박을 결코 이길 수 없었다. 더군다나 대장삵도 함께하고 있었다. 두 다리를 굳건하게 하고 있어도 파도에 한번 휩쓸리고 난 다음에 달려드는 산박은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보고도 못 막는 수준인데 처음 당하는 입장에서는 대처할 수 없었다. 선제 타격의 기회를 잡고 먼저 간파하여 자세를 잡아도 파도의 질량을 이길 수 없었고, 또 기습의 기회를 잡아도 대장삵이 그를 지켜주고 있었다.

대장삵의 경우 그냥 시간만 벌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산박이 무피해로 상대를 타격할 기회를 제공해줄 뿐이었다. 대장삵은 그저 거들 뿐……!

비전투 괴물을 죽이고, 전투를 할 수 있는 약탈자들은 비겁하게 합공해서 죽였다. 완벽하게 간합을 확보하고 호랑이를 향해서 무기를 휘두른 약탈자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그만큼 물의 마법사인 대장삵과 동물로 변신한 드루이드인 태산박의 호흡은 강력했다.

반대편에서 싸우고 있는 송유나, 루둔표, 종휼간도 마찬가지로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비전투 약탈자는 당연히 손쉬운 상대였다. 그들은 싸울 생각도 못 했고, 도망조차도 못 칠 때도 있었다. 늙은 약탈자는 느렸고 기세도 약했으며 수동적이었다.

“죽어라!”

둔표를 향해서 움막에서 약탈자가 튀어나왔다. 뭐라고 지껄이는지는 몰랐지만 둔표는 냉큼 몸을 굴려서 도망쳤다. 옆에서 화살이 쏘아져서 약탈자의 어깨에 명중했다. 약탈자의 균형이 무너지며 그대로 한쪽으로 기울어 넘어졌다.

깡!

도끼와 둔표의 환도가 부딪쳤다. 약탈자의 머리에 휼간이 쏜 얼음 화살이 박혔다. 둔표는 약탈자의 손목을 베고 목을 얕게 베었다. 아예 동강 내지는 못했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헉헉! 헉헉헉!”

둔표는 노쇠한 몸을 이끌고 굽은 등으로 어린 약탈자를 대피시키고 있는 약탈자를 쫓아갔다. 무기로 다리를 베어 쓰러뜨려서 뱀같이 곤두선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려 앞쪽 목을 크게 베었다. 벌벌 떠는 작은 약탈자의 가슴을 베고 쓰러진 작은 약탈자의 발목을 하나 내려친 뒤 다른 놈을 노렸다. 출혈로 죽게 하기 위함이었다.

오로지 중상을 입히는 데 집중했다. 목을 벨 수 있을 땐 베었지만 그게 여의치 않을 때는 발목과 허벅지 안쪽을 노렸다. 화살로도 옆구리나 허벅지를 노렸다. 약점을 적중시키기보다는 명중률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였다.

피비린내 때문에 코가 마비된 상태에서 세 사람은 서로 협동하며 약탈자 부락에서 살육을 저질렀다. 간헐적으로 찔끔찔끔 혼자서 튀어나와서 공격하는 약탈자는 매우 쉬운 먹잇감이었다. 진작에 뭉쳤으면 위협적이었겠지만 피 냄새와 고함 소리가 자욱하게 퍼진 부락 내에서 그런 판단을 하는 약탈자는 없었다.

또, 색을 지닌 약탈자도 없었다. 그 덕에 단번에 수십 마리의 약탈자를 죽일 수 있었다.

그 싸움은 숲으로 도망친 약탈자를 추적해서 모조리 죽일 때까지 계속되었다. 몇 마리 놓쳤을 수는 있겠지만 매우 소수에 불과했다.

부락 기습 전투를 통해서 오버시어 팀이 올린 전과는 마흔 마리. 그중에 열 마리가 전투를 할 수 있는 약탈자였고 나머지 서른 마리는 비전투 괴물이었다.

전투는 싱거웠지만 모두 대단히 지친 모습이었다. 자신들보다 족히 열 배가 넘는 적이 있는 곳을 쳤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전투 인원은 두 배가 차이 났다.

산박이 피 냄새를 최대한 빨리 퍼뜨린 것이 주효했다. 사태가 시급할수록 약탈자는 개인플레이를 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일단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고 여겼을 터였다.

휴식을 취하고 난 다음에 산박이 입을 열었다.

“필요한 걸 챙기겠습니다.”

인간은 약탈자로부터 부산물을 취득했다. 눈을 뽑아내고 귀를 잘라내고 코를 도려냈다. 또한 움막 곳곳에 있는 달빛애벌레가 가득 든 나무통들도 배낭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왔던 길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우회하여 숨은 다음에 다시 한번 휴식을 취하고 나서야 땅을 파서 배낭을 숨겼다. 던전이 무너지면 알아서 지하철 계단 아래에 모습을 드러낼 터였다.

“이제 좀 쉽시다.”

산박이 숨을 탁 뱉으면서 지친 소리를 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눈이 정말 계속 감겼다. 마흔 마리에 달하는 생명체를 죽이는 일은 너무나도 고된 일이었다. 힘을 너무 많이 써서 양손이 아직도 덜덜덜 떨리고 있었다.

일행은 옷을 벗고 대장삵이 뿌리는 물로 샤워하고 대충 세탁도 했다. 그러나 피를 어느 정도 희석시키는 정도에 불과했다.

작은 굴에서 모두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오로지 용맹한 대장삵만이 살짝 굴에서 나와서 귀만 살짝 밖으로 보일 정도로 반엄폐를 한 채로 잠을 청했다. 동물적인 귀는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터였다. 그 덕에 불침번을 서지도 않고 모두가 꿀잠을 잘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일어난 건 산박이었다. 생각보다 그는 체력 소모가 적었다. 인간을 도축하는 인간 백정으로 살았던 경험 덕분에 죽이는 것에 있어서 요령을 터득하고 있었다.

산박은 지도를 펼치고 형세를 살폈다.

‘적어도 이삼십 마리의 전투 인력이 증원군으로 갔겠지.’

부락 규모를 가늠한 산박은 남은 약탈자들의 전투 가능한 숫자를 계산했다.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약탈자만 계산했다.

‘A 부락은 오버시어 팀에게 열아홉 마리가 죽었다. B 부락은 열 마리가 죽었다.’

대충 스물에서 마흔 마리가 남았다는 뜻이었다. A 부락의 비전투 괴물은 B 부락처럼 서른 마리가 넘게 있을 수 있었다.

‘그래도 많다. 하지만 해결 방법을 찾았다.’

산박은 꺼진 화덕의 불씨를 들쑤시며 빙그레 웃었다. 약탈자들의 개인플레이를 본격화시키면 그만이었다. 이 넓은 개방형 던전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었다.

‘거기에 이를 통해서 루둔표와 종휼간이 나에게 등 돌리게 만들기도 쉽다.’

산박은 그들이 스스로 자신을 저버리게 하고 싶었다. 하늘이 그들에게 시련을 줬다. 산박으로서는 이를 더욱 가속화하고 싶었다.

‘내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산박은 눈을 감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둔표와 휼간은 산박에게 불만을 표출했다. 나이도 많았기에 산박에게 정면으로 부딪쳤다. 어리석은 일이었다. 사회인이라고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떠나서 오버시어와 똑같은 팀 콘셉트로 시도한다면.’

실패할 공산이 매우 컸다. 전후방으로 활약하는 드루이드인 산박이 없기 때문이다. 확실한 살상력으로 필요할 때 적을 완벽하게 침묵시키는 산박의 전투력은 보통 1레벨 던전 사용자의 두 배, 세 배에 달했다. 대장삵 소환 주문과 동물 변신이 만들어낸 ‘나라는 괴물’이 바로 태산박이었다. 본인 스스로를 괴물로 지칭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대장삵이 없었다면 나도 상처를 많이 입었겠지.’

최대한 근접해야 하는 게 호랑이였다. 무기를 사용하는 괴물을 상태로 상처는 쌓여갈 수밖에 없었다.

‘실패한 그들이 살아남아서 나에게로 돌아온다면 나는 이득이다.’

한 번 실패했는데 또 등을 돌릴 가능성은 적다. 또한 그들은 산박이 쿨하게 다시 받아주는 것에 크게 감동할 것이었다.

‘미지근하다 싶으면 뜸을 들이면 그만이다.’

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제법 공을 들여야 하지만 믿을 만한 사람 두 명을 얻을 수 있다면 할 가치가 있었다.

‘죽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결국 이는 하늘의 뜻에 달려 있었다. 어차피 이미 마음이 떠난 놈들이었다.

‘팀을 둘로 쪼개서 나 없이도 잘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확신을 지닌 두 명은 손절하겠지. 새로운 팀을 만들 각오를 할 수 있다. 유나는 거부할 것이고, 세 명이 지닌 인연의 고리는 무(無)로 돌아간다.’

세 사람이 지닌 인연이 부서지는 건 상대적으로 산박의 이득이기도 했다.

‘두 사람이 살아서 돌아오면 받아주고 내 사람으로 만들고, 죽으면 그걸로 끝. 새로운 팀을 짜면 그만이다.’

산박은 둔표와 휼간이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우여곡절을 겪은 그들, 실패를 겪은 인간은 그만큼 은혜를 아는 법이었다. 또한 언쟁하는 사람 앞에서 욕을 안 하는 것만으로도 둘은 적어도 인성은 최소한으로 갖추고 있었다.

생각을 마무리한 산박은 팀원들이 모두 일어나자 밥을 먹고 곧바로 계획을 설명했다.

“부락 급습을 겪었을 때 모두 느끼셨을 겁니다. 한 놈씩 찔끔찔끔 오는 약탈자를 상대하는 건 제법 쉽다는 것을 말입니다.”

각개 격파 하는 약탈자는 정말이지 나약했다. 원거리 수단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오버시어 팀에게 신명 나게 처맞고 피를 쏟아내기 바빴다. 적당히 약탈자의 무기를 막고 나머지 둘이 활이나 마법으로 조져 버리면 깔―끔하게 죽일 수 있었다. 모두 확신에 찬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팀의 방향성에 조금 변화를 주고 싶습니다. 두 팀으로 나누어서 약탈자를 숲과 산으로 크게 흩뜨리고 각개 격파를 하는 겁니다.”

“나쁘지 않지만, 잡히면 큰일 나는 거 아닙니까?”

“300m 사거리를 지닌 얼음 화살로 쏘고 튀는데도 잡힙니까?”

“그건 아니지만, 죽이기 힘들지 않습니까.”

산박의 빈정거림에 휼간이 변명했다. 얼음 화살 하나로는 머리가 아니면 죽이기 힘들었다. 움직이는 표적을 잡는 건 어려운 일이었고, 요행에 기대야 했다.

“몇 번 운이 좋았다고 백발백중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도 이목은 끌 수 있겠죠. 작전 반경은 더 넓어지고 말입니다.”

“보급은 어쩌고요?”

유나의 말에 산박은 품에서 감자와 고구마 작물을 보여줬다. 모두 눈을 끔뻑끔뻑하고 쳐다보기만 했다.

산박은 작은 고구마를 손에 쥐고 나무 생육 주문을 사용했다. 단번에 고구마가 자라나고 열매가 맺어졌다. 감자와 고구마는 나무 생육 주문 한 번으로 열매를 맺게 할 수 있는 작물이었다. 열매를 다섯 개 맺고 그대로 시들어 버렸지만, 그것만으로도 능히 식량 역할을 대체할 수 있었다.

“와!”

특히나 유나가 후드득 떨어지는 고구마를 보고 탄성을 내질렀다.

“제가 고구마 좋아하는 건 또 어떻게 알고……. 아, 이렇게 또 여심을 흔드시네요.”

산박은 대꾸조차도 하지 않고 둔표와 휼간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곁눈질로 서로 눈을 맞추더니 이내 입맛을 다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일정 지점마다 약속된 곳에 고구마 작물을 통해서 보급이 이루어진다면 어렵지 않게 거대한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이른바 간잽이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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