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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72/270)

72화

산박이 나무 위로 올라섰다. 나뭇가지를 조심스럽게 손으로 말아 쥐며 잔가지를 소리 없이 꺾고 작은 구멍을 통해서 봉화를 피우는 공터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일곱 마리의 약탈자들이 있었다. 대장삵이 말했던 대로 두 마리는 몽둥이를 들고 싸우고 있었다. 땀을 제법 낸 상태라서 전투가 시작되면 분명 뒤처질 놈들이었다.

한 마리는 해먹에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 머리 색은 푸른색이었고, 주변에 살얼음이 끼어 있었다. 체고가 낮은 대장삵이 ‘색깔 머리’가 존재한다는 걸 미처 파악하지 못한 듯싶었다.

나머지 네 마리는 적당히 휴식을 하거나 봉화를 지피고 있는 나무를 부지깽이로 쿡쿡 쑤셨다. 그 규모는 상당했는데, 장작을 올릴 때 나무토막을 통째로 집어넣었다. 호쾌했다. 불똥이 바짝 마른 가죽 털에 붙었는데도 평범하게 손으로 껐다.

‘평화로워 보이네.’

자신들이 습격을 당하리란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적은 계속 산에 있었으니까 걱정 없다는 얕은 생각이었다. 곧 토벌되리라고 낙관적인 마음도 지니고 있겠지.

산박이 물러났고, 유나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선타격은 중앙에서 해야 했다. 그래야 우회 타격의 공격력이 극대화된다. 약탈자들이 내달릴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대기하는 게 옳았다.

산박은 나무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사격각 때문에 집중성탄이 적을 여럿 상대하지 못하고 땅에 박힐 공산이 컸다.

‘최소 두 마리는 잡아야 한다.’

집중성탄을 쓸 가치가 있어야 했다. 나무 같은 장애물이 있는 곳에서 대장삵의 파도 송곳니를 적게 사용하게 만드는 대신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 마리가 아닌 두 마리만 피해를 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단발성 극대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소형 괴물인 약탈자는 집중성탄에 맞기만 해도 몸을 가눌 수 없었다. 특히 옆으로 맞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상체에만 맞혀도 몸의 큰 부분이 관통되어 사라진다.

산박의 눈에 얼음 화살이 숲을 가로질러 정확하게 한 놈을 노리는 게 보였다. 적당히 앉아서 나무 장작을 두들기고 있는 약탈자였다.

퍽.

둔탁한 소리는 결코 크지 않았다. 하지만 목 위로 있는 피부와 머리카락이 일어나지 않은 약탈자는 맥없이 앞으로 머리부터 처박았다. 땅에 부딪히며 머리에 박힌 얼음 화살이 더욱 깊이 들어갔다.

“적이다!”

그걸 본 약탈자가 벌떡 일어나며 고함을 질렀다. 굵직굵직하고 인간 같지 않은 괴이쩍은 머리카락이 뱀처럼 흐물거리며 그 끝이 바짝 섰다. 목과 얼굴 피부도 말리면서 수많은 지렁이처럼 올라왔다.

해먹에서 잠을 청하던 푸른 머리 또한 일어나서 나무둥치에 가져다 놓은 무기를 냅다 쥐고 주변을 훑었다. 그 손에 잡힌 도끼는 손아귀에서부터 얼음이 퍼져 나가서 얼음 도끼가 되기 시작했다. 부딪치면 날카로운 얼음 부분이 산산조각 나며 적에게 피해를 줄 것이었다. 근접전에서 매우 까다로운 것이 얼음 도끼였다. 이에 더해서 호흡이 망가질 정도의 추위를 선사해 주기도 했다.

“저쪽이다!”

얼음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가늠하면 적의 방향을 알 수 있었다. 약탈자 여섯 마리가 달려갔다. 산박과 유나는 소란스러운 공기를 접하고 옆 치기를 준비했다. 산박이 노리는 건 당연히 색깔 머리였다.

‘안 그래도 물량이 팀의 숫자보다 많은데 힘까지 다루는 놈이 들러붙게 할 수는 없다. 반드시 초전에 잡아야 한다.’

1+1=3, 4가 되는 게 현실이었다. 매우 경계해야 했고, 화력을 집중시켜야 했다. 그리고 산박은 혼자서도 그런 화력을 낼 수 있었다.

‘이런 기회는 금방 사라진다.’

우직하고 뭉치지 않는 약탈자들에게나 사용할 수 있는 함정이었다. 노골적이었기에 효과적이다. 산박의 앞을 지나쳐 우직하게 달리는 놈들의 선두에 푸른 머리가 있었다. 준비했던 집중성탄이 산박의 손에서 뻗어 나갔다. 바닥에 수풀을 쌓아 별빛을 숨기고 있었기에 누구도 몰랐다. 뻗어 나가는 집중성탄은 작은 별의 힘으로 조밀하게 묶여 있었고 영혼 자극 기술을 통해서 강력한 제어력으로 하나 되어 있었다.

“조심!”

몇몇 약탈자가 소름 끼치도록 빠르게 쏘아지는 집중성탄을 보고 고함을 질렀지만 푸른 머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누가 위험에 빠지든 알 바 아녔다.

퍼억!

푸른 머리의 몸에 큰 충격이 가해졌다. 그의 시야가 엉망진창으로 흔들렸다. 옆에서 딴에 경쟁을 하며 따라오던 약탈자 한 마리가 함께 휩쓸렸다. 팔 관절이 서로 뒤엉켜 우두둑 소리가 나며 꺾어졌다.

퍽!

나무의 뿌리와 무릎이 부딪치며 큰 소리가 났다.

“으…….”

벌벌벌.

무너진 시야가 흔들거렸다. 푸른 머리는 입에서 소리를 내려고 했지만 뭔가가 목에 걸렸다. 꿀꺽 삼켰다. 피비린내가 났다.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땅과 맞닿은 등이 뜨끈해졌다. 피가 잔뜩 흐르고 있었다.

그 눈이 옆으로 향했다. 함께 쓰러진 약탈자는 그대로 절명했다. 푸른 머리는 팔을 허우적거렸다. 오감이 서서히 사라져 갔고, 아련해졌다. …무뎌져 갔다.

왈칵.

피가 입으로 차올랐다. 푸른 머리는 얕은 기침을 토해냈다. 힘이 나오지 않았다. 피가 입에서 조금 튀어나왔다.

산박이 두 마리를 한 방에 죽였고, 유나는 사격을 실시했다. 딱 다섯 발만 쏘고 그대로 산박과 함께 전장을 이탈했다.

약탈자 두 마리가 산박과 유나가 있었던 곳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남은 네 마리 중 두 마리의 관심이 산박에게 크게 쏠렸다. 푸른 머리를 한 방에 보냈기 때문이었다.

그 상태에서 둔표의 화살 세 발과 함께 얼음 화살이 쏟아졌다. 자신들에게 달려오는 두 마리 중 한 마리를 집중 공격했다.

퓨퓨퓻!

단삼사, 거기에 불이 들러붙어 있었다. 화살촉이 살을 파고들었고, 불꽃에 살갗이 타들어 갔다. 끔찍한 고통. 거기에 불은 꺼지지도 않았는데, 산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 불꽃이기 때문이었다. 불꽃 화살 마법으로 만들어진 불꽃이었기에 평범하게는 꺼지지 않았다.

퍼억!

흉악한 소리와 함께 얼음 화살이 허벅지에 박혔다. 약탈자 하나가 그대로 넘어졌다. 달려오는 속력을 본인의 몸으로 주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강력한 한기가 허벅지에 스며들어서 뛸 수가 없었다.

“끄르으으윽!”

타오르고 있는 화살도 문제였다. 약탈자는 서둘러 화살을 뽑았다. 그러는 사이에 나머지 한 마리가 두 사람을 향해서 돌진했다. 맹렬하게 포효했다.

화르르르!

“크아아아악!”

기름이 든 나무 병을 소모해서 땅에 기름을 흠뻑 적셔둔 둔표가 불을 질렀고, 바짝 마른 털가죽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던 약탈자는 전신에 불꽃이 번졌다. 매캐한 연기가 그 입 속으로 들어갔다. 둔표가 환도를 뽑고, 휼간이 얼음 방패 주문을 사용해 줬다. 불꽃 속에서 뛰쳐나온 약탈자가 죽지도 않고 덤벼들어서였다.

“괴물 새끼!”

둔표가 소리를 내질렀다. 그는 자신의 앞에 든든하게 만들어져 있는 얼음 방패를 믿었다.

쾅!

불꽃 때문에 시야가 차단된 약탈자는 둔표의 외침을 듣고 방향을 바로잡아서 덤벼들었지만 얼음 방패에 부딪혀서 뒤로 크게 넘어졌다. 그런 놈에게 서둘러 둔표가 호다닥 달려가 양 손목을 베고 머리를 쳤다.

대장삵이 이를 보고 말했다.

“잘 싸우네.”

“몇 마리 남았습니까?”

산박과 유나가 중앙과 합류했다.

“모르겠습니다.”

이들은 싸우는 것에 집중해서 몇 마리를 잡았는지 알 수 없었다. 대신 대장삵이 말해줬다.

“세 마리. 그중에 한 마리는 저기 널브러져 있을 거다.”

두 마리는 산박이 집중성탄으로 처리했다. 그렇다면 남은 적의 전력은 두 마리였다. 놈들은 금방 다시 쫓아왔지만 허무하게 죽임을 당했다.

일행은 중상을 입은 약탈자를 마저 처리하고 죽은 것 같아 보이는 약탈자도 다시 한번 확인 사살 했다. 그 뒤에 수급을 취해서 눈을 뽑고 귀를 잘라내고 코를 도려내서 챙겼다.

화살도 다시 줍고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유나는 둔표의 화살 수리 도구를 빌려서 금이 간 촉을 교체했다. 반면 둔표는 화살대가 부러진 화살이 많아서 이를 교체하는 데 애를 먹어야 했다.

“봉화는요?”

무식하게 나무를 쌓아 올린 봉화는 그대로 내버려 뒀다. 적들이 자신들이 이곳에 온 것을 최대한 늦게 알아차렸으면 했기 때문이었다.

오버시어 팀은 썰물처럼 빠졌다. 짊어진 보급도 2일 치에 불과했기에 굉장히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동시에 산박은 최소한의 지도를 만들었다. 특히나 멀리 보이는 작은 언덕이라도 높은 곳이 있다면 반드시 기록했다. 당장 외울 수는 없었다.

“잠시만요. 나무 위로 좀.”

“예.”

산박이 나무를 올라갔다. 제법 큰 나무여서 다른 나무들을 제치고 숲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약탈자들도 이 나무를 제법 썼는지 나무에 상처가 많았다. 올라간 산박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평범한 숲이었다면 이런 짓은 사실 큰 의미가 없겠지.’

약탈자들이 나무를 많이 쓰다 보니 숲은 듬성듬성 구멍이 나있었고, 자연스럽게 정찰하기 좋았다. 산박의 눈에 증원 약탈자들의 무리가 보였다. 그저 점들이 우글거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기에 숫자가 몇이나 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길을 떠날 때는 길쭉하게 뭉쳐서 간다.’

산박은 그 앞으로 시선을 옮겼다. 안타깝게도 숲이라서 적들을 뿌리칠 수단이 별로 없었다. 기습하기에는 마땅찮았다. 산 같은 곳이어야지 시야에서 재빨리 사라질 수 있어서 기습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적의 숫자가 적든가.’

산박은 나무 아래로 내려왔다.

“증원이 오네요. 한두 시간 지나면 여기를 통과해서 저쪽 부락으로 갈 겁니다. 그리고 산을 오를 겁니다.”

단번에 약탈자의 예상 경로와 과정을 파악했다. 산박이 지도를 땅바닥에 내려놓자 다른 이들이 모였다.

“여기에 도착하는 데 최소 한 시간. 최대 두, 세 시간.”

“부락에서 조금 시간을 보내거나 여독을 풀지도 모르고, 적들을 처리하기 때문에 앞서 술도 걸칠지 모릅니다. 야만적인 의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걸리는 시간은 몰랐다.

“산으로 향하고 오르는 데 두, 세 시간.”

산박이 시간을 가늠했다. 그리고 입을 다물었다.

‘애매하다.’

적 부락에 화력을 쏟아부어서 처리하고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다. 되돌아가도 산에 적이 없다고 여길 수 있었다. 그리되면 최소 쉰 마리 이상의 약탈자가 공중에 붕 뜨게 된다.

‘이들과 싸우는 건 어불성설이지.’

물량 앞에 답이 없었다. 야금야금 잡아먹는 수밖에 없을 듯했다. 다행이라면 산박은 드루이드였다. 이를 설명하자 팀원들은 모두 수긍하는 편이었다. 전면전보다는 낫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하고, 오버시어 팀은 조금 우회해서 전력이 빠져나간 약탈자의 부락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부락에는 울타리 하나 없었다. 가끔 수십 분마다 지나가는 약탈자 한 마리가 순찰병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약탈자 애도 있네요.”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며 나무 무기를 쥔 채로 곳곳을 돌아다니는 어린 약탈자들도 보였다. 저들 하나하나가 개체수로 인정되기 때문에 오버시어 팀으로서는 반드시 쳐 죽여야 할 목표물이었다.

“밤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 저는 호랑이가 되어서 홀로 죽이고 다니겠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뭉쳐서 착실하게 놈들을 조용히 처리하세요.”

“예.”

“삵아, 넌 날 따라와라.”

“알았다.”

세 명, 한 명+한 마리로 나누어졌다. 건장한 약탈자가 소수였기 때문에 산박은 혼자서 날뛸 생각을 하면서도 대장삵을 곁에 두었다. 방심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순찰자가 나무 지팡이로 다리를 탁탁 치며 지나가자 그들은 부락으로 들어섰다. 그 어떤 장애물도 없었다.

호랑이로 변한 산박은 그대로 움막에 들어갔다. 약간 반지하로 된 간단한 목조 건물이었다. 내부에는 꼬물거리는 약탈자와 어미로 보이는 약탈자가 있었다. 그들은 산박이 들어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호랑이의 펀치가 약탈자의 머리를 후려쳤다. 산박은 픽 쓰러진 약탈자의 목을 물어서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하고 머리를 박살 냈다. 아기 또한 확실하게 죽였다.

이 던전을 클리어하는 방법은 두 개 부락 수준의 개체수를 죽이는 일이었다. 산박은 어슬렁거리며 조용히 목조 건물을 빠져나와서 움막의 뒤로 돌아갔다.

사각, 사각!

“꿈스. 가리사데르 데데!”

늙은 약탈자가 설치류를 잡는 간단한 함정을 만들고 있었고 어린 약탈자 두 마리가 이를 구경하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자신도 분명 하고 싶은 것일 테다.

콱!

산박은 어린 약탈자의 머리를 한입에 물고 앞발을 휘둘러서 늙은 약탈자와 다른 한 마리의 어린 약탈자를 후려쳐서 쓰러뜨렸다. 그들은 찍소리도 못 했다. 호랑이의 원투 펀치에 뇌가 크게 흔들렸다.

“아으르에…….”

혀가 꼬였고, 목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했다. 산박은 단번에 늙은 약탈자의 목을 물고 고개를 비틀었다. 그 상태로 쓰러진 어린 약탈자의 머리를 앞발로 짓눌렀다. 흙바닥에 입이 틀어막히며 놈이 버둥거렸다. 산박은 늙은 약탈자를 끝장내고 마지막 어린 약탈자도 물어 죽였다.

곧 다른 곳에서 소란이 느껴졌다. 산박과는 다르게 들킬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피 냄새가 서서히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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