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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화 (71/270)

71화

“숫자가 뭐가 중요하냐고요? 단 두 마리가 들러붙었을 때, 어떻게 되셨죠?”

“그건…….”

휼간이 입을 열었지만 산박이 능숙하게 손을 들어 틀어막았다. 모두가 아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으로 다른 이들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큰일이 났죠. 그럼 만약 제가 유인할 때 따로 떨어져서 그 두 마리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 두 놈이 더 추가되어서 네 마리가 들러붙었다면요? 혹은 유나 씨한테 두 마리가 더 들러붙었다면?”

“…….”

산박은 두 명의 기세가 누그러지는 걸 봤다. 여기서 끝내면 어느 정도 선에서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산박은 이 기회를 천운, 하늘이 내려준 기회로 여겼다.

‘운이 좋군.’

박조조에게는 돈을 퍼부어서 그를 확인했다. 충호 또한 돈을 통해서 그 믿음을 보려고 했지만 표확곡과 돈노금 때문에 반쯤만 확인할 수 있었다. 시은은 살인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운명 공동체적 관계성을 얻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눈 셈이다. 강합과 탕만은 하자가 있다. 품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하는 이들이었다.

‘이 두 명은 하늘이 알아서 결정해 주실 것이다.’

“거기에 보지 않으셨습니까? 야만인들은 뭉치기보다는 흩어지는 걸 좋아합니다. 하나하나가 개인플레이를 즐기고, 그들 모두가 능히 변수를 창출해낼 수 있는 키 맨이라고 불려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건 괴물이니까 그런 거잖아요. 이제 그 정도만 해요. 이렇게 하면 감정싸움밖에 안 돼요.”

유나가 작은 손으로 붕붕 손사래를 쳤지만 산박은 멈추지 않았다. 다른 두 명도 남자의 자존심 때문에 산박의 말을 끝까지 들을 수밖에 없었다. 팩트로 두들겨 패니까 변명조차 하지 못했다.

“당장 마지막 붉은 피부를 지닌 놈만 봐도 유나 씨를 같이 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노렸죠. 안 그렇습니까?”

산박은 질문으로 끝냈지만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주먹을 말아 쥐고 앞으로 쑥 내밀며 입을 열려는 걸 행동으로 틀어막았다.

“적들의 근접전이 조금만 성공해도 실패하는 게 우리들의 팀 색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뒤에서 몇 놈이나 죽였는지 제 입으로 굳이 말을 해야 합니까?”

“…….”

모두 입에 꿀이라도 바른 것처럼 한 단어도 내뱉지 못했다.

“에휴.”

산박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결정타였다. 더는 참지 못하고 유나가 산박을 툭 쳤다.

“이야기 좀 해요.”

그녀도 속사포처럼 내뱉은 산박의 미친 짓거리에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래서야 분열밖에 안 난다. 던전을 공략하고 나면 팀이 해체될 터였다. 인간은 감성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지성 종족이기 때문이다.

산박은 거침없이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나무둥치에 산박이 기대고, 유나는 그대로 섰다. 우뚝 서버렸다. 그녀는 다른 것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일절 없었고, 행동거지를 염두에 두기에는 대단히 집중하고 있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나요? 예? 그래서 만족하세요? 맞는 소리라도 2절, 3절까지 하면 듣는 사람은 정이 떨어져요. 거기에다가 던전 공략을 하는 와중에요.”

“제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찍어 눌러야 하니까 찍어 누른 겁니다. 거기에 지금 이렇게 오고 가라는 것도 기분 나쁩니다.”

“팀장님 이런 분 아니시잖아요. 1팀의 팀 분위기는 잘 알고 있어요. 저는요, 이번 일이 저까지 싸잡아서 보내버릴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여요.”

‘흠…….’

산박이 입을 조금 오물거렸다. 예상외의 말이었다. 그렇게까지 느꼈다면 아까 난입을 해야 했다. 그러지 않았다는 건…….

“그 두 사람보다 저한테 어떻게든 남겠다?”

“네. 확실한 커리어가 있으시니까요.”

“이상하군요.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이시은이라는 분을 만났거든요. 제가 먼저 접촉했지만, 정말 많은 걸 들을 수 있었어요.”

산박이 움찔했다.

“이시은?”

황당한 곳에서 튀어나오는 이름이었다.

‘그녀가 개입했다? 왜?’

시은이 유나에게 믿음을 주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왜냐하면 송유나는 ‘산박에게 있어서 리스크밖에 안 되는 존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같은 여자라면 반드시 고자 같은 팀장님 밑에서 활동해야 한다고…….”

산박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저 고자 아닙니다. 아침마다도 잘 섭니다.”

“그거 성희롱인데요.”

“남자한테 고자라고 하는 건 성희롱 아닌가요? 여자한테 임질 걸렸냐고 묻는 거랑 다를 바 없는데요.”

“그거 진짜진짜 성희롱인데요?”

“말꼬리 잡지 마세요.”

산박이 손사래를 쳤다. 이런 주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유나는 더 말하지 못했다. 어쨌든 그녀는 변절자가 되었다. 두 사람이 아니라 산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이면에는 이시은과의 만남이 있었다.

‘이제야 이해가 된다.’

정신 나갈 정도로 산박에 대한 믿음을 지닌 이유. 산박은 나무둥치를 등으로 밀며 곧추섰다.

“시은 씨가 다른 말도 했습니까?”

“성공 가도를 탈 사람인 데다가 고자니까 여자 던전 사용자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잡으라고 하던데요. 이미 금액이 적힌 수표나 다름없다고요. 본인 경험도 많이 이야기해 줬고요.”

“그렇습니까. 다시 한번 확실하게 해봅시다. 둔표와 휼간, 두 사람을 제가 버리라고 하면 버리실 겁니까?”

“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둘 다 팀장님이 어떤 활약을 했는지 모르는 것뿐이잖아요.”

산박은 수긍했다.

“맞아요. 두 사람은 모르죠. 제가 굳이 그렇게 자극적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적당히 한 가지 이유를 말하고 물러서기를 권했겠죠.”

융통성 있게.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신 건… 왜죠?”

유나가 궁금해서 물었다. 산박은 하늘을 가리켰다.

“왜냐하면 하늘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거든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더는 말할 게 없어요. 정말로 그런 거니까. 두 사람은 유나 씨 때문이라도 이번 던전은 확실하게 잘 마무리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2팀 또한 계속 있을 겁니다. 시은 씨가 그렇게까지 했다면 이유가 있겠죠.”

산박은 걸음을 옮겼다. 더는 해줄 말이 없었다. 해주고 싶지도 않았다. 다른 곳으로 신경이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나한테 말하지 않았다. 이시은…….’

산박의 높은 지혜가 그녀를 훑었다. 하지만 경계심이 느껴졌을 뿐 위협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 일을 심각하게 생각해도 그다음을 알 수 없었다.

‘잡히는 게 없다.’

산박의 손이 허공을 휩쓸었다. 바짝 바른 그 손에서 느껴지는 건 안개 속을 휘적거릴 때 느끼는 약간의 축축함뿐이다.

그 뒤로 2팀은 휴식에 들어갔다. 열 마리를 잡았기에 고무적이었다. 이 부락의 약탈자의 숫자가 얼마인지는 몰랐지만, 2일 만에 열두 마리를 죽였다.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다른 팀이 5일 만에 내야 할 성과를 8일 만에 해결하면 되는 게 오버시어 팀이었다.

냉정한 분위기였지만 그들은 함께했다. 이곳은 던전. 인간은 홀로 설 수 없었다.

푹 쉬고 이들은 새벽녘 전에 일어났다. 산이라 공기가 으슬으슬했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일행은 딱딱하게 굳은 근육을 풀고 하루를 시작했다.

산박은 산의 지도를 다시 한번 암기하고 있었다. 틈틈이 봐놔야지 급할 때 팍팍 생각날 수 있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유나와 둔표는 바위 터에 다녀왔다. 산에서 툭 튀어나온 바위 터는 정찰하기 좋았다.

“큰일 났어요!”

유나가 호들갑을 떨며 은신처에 돌아왔다.

“뭡니까?”

“그놈들, 봉화를 올리고 있어요. 언제부터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연기가 자욱하게 일어나고 있어요.”

산박은 서둘러 바위 터로 향했다. 새하얀 연기가 끝도 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산과 산 사이, 숲에서 피워 올리고 있었다. 산에 오지 않는 이유는 뻔했다. 열두 마리나 죽어 버렸는데 올 리가 없었다. 인원을 모아서 확실하게 찍어 누르려고 하는 듯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부락 두 개가 몰려오면 그냥 밀릴 텐데요.”

“어떻게 하긴요. 도망쳐야죠.”

산박이 실로 간단하게 대답했다. 다만, 그냥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낮은 지대에서 봉화를 피우기 위해서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서 전공을 올리고 빠진다.’

“돌아갑시다.”

산박은 서둘러 돌아갔다. 함께 온 둔표는 묵묵부답이었다. 스물한 살인 산박보다 나이가 무려 열두 살이나 많은 게 둔표였다. 띠동갑 형인 셈이었지만 사회에서는 직함이 더 중요했다. 물론 반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뿐이었다.

“불을 크게 피우고 있는 곳을 타격하고 빠져서 적 증원군을 회피한 다음에 증원을 한다고 인원이 빠져있는 부락을 역으로 치겠습니다.”

“너무 급한 것 아닙니까?”

“서른 마리가 나와 있다고 하더라도 부락에는 스무 마리가 넘게 있을 텐데요.”

둔표와 휼간은 봉화를 지피고 있는 약탈자들을 처리하는 데에는 불만이 없었다. 자신들이라도 그런 판단을 했을 터였다. 반면 빈집을 치는 건 힘들어했다.

“화염 물약을 쓰든 뭘 하든 최대 피해를 단시간에 낼 생각입니다.”

산박이 승부수를 띄웠다. 모든 소비 아이템을 쓸 생각을 가졌다. 한번 어렵다고 말한 두 사람은 더 대답하지 못했다. 어제의 앙금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산박과의 언쟁을 피하고 싶었다.

“…….”

“추가적인 말씀이 없으시면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짧게 대답했다. 대장삵만 대답을 안 했는데, 그는 발톱을 손질하기 바빴다.

일행은 보급품을 모두 짊어지지 않았다. 산박의 판단이었다. 대신 산박은 만일을 대비해서 작물 씨앗 주머니를 챙겼다.

“2일 치만 가져가겠습니다. 뭔 일이 생겨도 드루이드의 주문으로 식량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 걱정 마세요.”

던전 식물과 던전 동물을 먹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대부분 독이 있었기에 처리하는 데 시간도 많이 들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배를 채울 여유가 되지 않았다. 평범해 보이는 까마귀조차도 던전 환경 내에서는 인간에 적대적인 자원이었다. 던전 사용자들이 보급을 챙겨 오는 가장 큰 이유였다.

은신처는 완벽하게 은폐되었다. 보급품은 은신처와 함께 묻혔다.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고, 일행은 빠르게 하산하여 일직선으로 봉화 지점으로 향했다.

숲이 그들을 맞이했는데, 나무가 너무 뜨문뜨문하게 있었다. 벌목한 나무의 흔적들이 곳곳에 존재했다. 지성 종족이 살아가는 흔적이 여실히 드러났다.

여전히 척후는 유나가 맡았다. 대장삵은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후방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그가 기습을 당해서 죽으면 소환물이기에 산박이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일행은 전후방을 확실하게 챙기고 있었다. 오버시어 팀은 간파되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대장삵이 없었다면 둔표가 후방을 맡았을 터다. 체고가 낮은 짐승은 척후에 어울리지 않았다. 또 인간 상태의 드루이드는 캐스터다. 주문 사용자였기에 결코 후방을 지킬 수 없었다.

바위 터에서부터 거리를 대충 가늠했기에 약 500m 지점에서 산박은 대장삵을 불러 작전을 개시했다. 대장삵은 유나를 따라잡아서 말했다. 서행하고 있었기에 능히 따라잡을 수 있었다.

“대기하고, 내가 적들의 위치와 거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머릿수도 확인하고 온다.”

“네.”

유나가 짧게 대답하고 그대로 나무 하나를 골라서 위로 올라갔다. 나뭇가지를 쳐서 자신의 시야를 확보하고, 자른 나뭇가지는 아래에 교차하여 몸을 가리는 데 사용했다. 단궁을 쏠 수 있게 팔을 움직여 불필요한 것들을 대거로 쳐냈다. 단궁에 화살을 메기고 언제든지 당길 수 있도록 준비했다.

20분 만에 돌아온 대장삵에게 유나가 신호를 보냈다. 나무를 발로 쳐서 흔들리게 하였다.

“몇 마리예요?”

“일곱 마리. 어지간히 싸우러 가고 싶지 않은지 두 놈은 싸우고 있다.”

좋은 소식이었다. 거리는 산박이 생각했던 것보다 가까웠다. 불과 400m 앞에 적들이 존재했다.

산박은 곧바로 전투에 들어가기로 했다. 유나와 산박이 우측으로 가고 둔표와 휼간, 대장삵이 중앙을 맡았다.

“어제와 비슷할 겁니다.”

“예.”

모두 일제히 대답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유나만 컸고 나머지는 작았다.

산박은 동물로 변하지 않고 유나와 함께 이동했다. 집중성탄을 쓸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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