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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70/270)
  • 70화

    ‘지금이다.’

    두 사람이 성공적으로 전략적 후퇴를 감행하자 유나는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큭! 야불란! 두―우싸!”

    휼간이나 둔표를 노리고 있는 약탈자들은 보다 높은 곳에서 쏴지는 유나의 화살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두 마리가 하체에 상처를 입었고, 이 때문에 그 두 놈은 무리에서 빠져나와서 유나를 노렸다. 근엄하게 전장을 내려다보던 대장삵이 유나를 힐끔 보고 냉큼 소리쳤다.

    “신경 꺼라! 두 놈은 내가 막는다.”

    송유나의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목적이 두 개로 쪼개지려는 조짐을 보이자 대장삵은 바른 판단을 내렸다. 용맹한 전사인 대장삵은 지금 무엇이 중한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휼간과 둔표, 저 두 인간을 지켜줘야 한다! 그게 산박이 그린 그림이다. 놈들을 조금이라도 더 느리게 만들어야 한다!”

    “예!”

    유나는 냉큼 대답하며 다시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핑핑!

    본래 가지고 왔던 다섯 발 외에 둔표에게서 빌린 다섯 발을 합하여 열 발을 모두 소진한 다음 유나는 롱 소드를 뽑은 채로 뒤로 달려갔다. 미리 정리해둔 비탈길로 뛰어들었다. 일행에게 합류하기 위해서였다.

    반면 대장삵은 이빨을 드러냈다.

    쏴아아아아!

    그는 단번에 파도를 일으키며 모습을 드러낸 약탈자 두 마리를 향해서 뛰어들었다. 이미 후방에서 산박이 호랑이로 변해 뒤를 치고 있는 걸 봤기에 거침없이 산박의 힘을 빼내서 사용했다.

    “캬아아아앙!”

    삵의 울음소리와 거센 파도 소리가 터져 나왔다. 물이 쏟아져 내려 약탈자를 밀어내며 두 마리를 잡아 두었다. 상처 입은 약탈자의 피가 파도의 물과 만나서 붉은색이 파도에 스며들어 갔다.

    “그아아앗! 푸풋! 푸우!”

    약탈자는 발악했지만 투창도 없었고 무기라고는 도끼가 고작이었다. 파도 송곳니 마법으로 산 저 멀리 약탈자를 밀어내는 대장삵을 결코 공격할 수 없었다.

    허우적거리는 놈의 얼굴을 대장삵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긁었다. 피가 흥건하게 쏟아져 나왔다. 깊게 베였고, 물 때문에 피가 매우 빨리 흘러나왔다. 혈색이 빠르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쿵!

    “극…….”

    약탈자의 등이 나무에 그대로 충돌했다. 몸이 크게 출렁거렸다. 약탈자는 신음 소리 한번 크게 내지 못했다. 폐가 고통에 짓눌리면서 소리가 쥐어짜듯이 약하게 흘러나왔다.

    ‘산은 물의 마법사에게 가장 좋은 전쟁터지.’

    내리막길을 파도에 휩쓸려 쏟아져 내려오며 속력이 대단히 높아진 상태에서 부딪혔기 때문에 그 충격량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졸졸졸…….

    대장삵은 피해를 입은 약탈자와는 다르게 서서히 사그라지는 파도를 이용해서 흠뻑 젖은 나무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아직 많이 남았다.”

    대장삵의 몸이 파도에 다시 한번 휩쓸렸다. 약탈자들 또한 똑같았다. 거듭 이어지는 파도 송곳니에 약탈자들은 정신을 못 차렸다. 하체에 화살이 박혀 있기도 했고, 산의 내리막길 때문에 파도는 엄청난 기세를 내뿜을 수 있었다. 특별한 원거리 수단이 있거나 하체의 힘이 강한 게 아니라면 버틸 수 없었다.

    대장삵이 두 마리를 효과적으로 탈진 상태에 빠지게 할 무렵, 휼간, 둔표를 향해서 네 마리의 약탈자가 바짝 쫓아왔다. 고새 한 마리가 더 산박에게 뒤를 당해서 네 마리에 불과했다.

    약탈자들이 괴성을 내질렀다. 그곳에 유나가 나타나며 고함을 내질렀다.

    “눈을 감아요!”

    두 명이 냉큼 눈을 감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섬광 단검이 번쩍 빛을 토해냈다.

    “지금!”

    둔표의 단삼사가 이어졌다. 빠르게 세 발이 연속적으로 쏴졌다. 더 쏘려고 했지만, 화살이 동이 났다.

    ‘이런!’

    당황도 잠시, 둔표는 환도를 미리 뽑아 들었다. 곧 근접전이 시작될지도 몰랐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휼간의 손에서 얼음 화살이 날아가서 상대의 머리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놈은 소리도 못 지르고 뒤로 넘어갔다.

    한 마리가 중상을 입고 무릎을 꿇었고 다른 한 마리는 절명했다. 두 마리가 남은 상태였다. 세 사람은 서둘러 도망쳤다. 미리 정리해둔 퇴로가 있었다. 다만 약탈자에게 또한 편한 길이었기에 시간만 끌 수 있었다.

    산박은 서둘러 달리면서 일어서려고 노력하는 약탈자의 머리통을 달려오는 기세를 그대로 담아 후려쳤다. 박이 깨지는 소리가 나며 놈의 머리가 땅에 부딪혀 살짝 튀어 올랐다가 다시 쓰러졌다. 무시무시한 야수의 괴력이었다.

    “커허허헝!”

    산박이 그 호쾌한 타격감에 저도 모르게 포효했다. 유나는 그 소리를 듣고 몸을 돌렸다.

    ‘여기서 싸우면 승부는 금방 난다!’

    산박이 뒤를 칠 수 있기 때문이다.

    “후읍!”

    유나는 이를 악물며 숨을 참았다. 약탈자의 도끼가 무식하게 내려쳐졌다. 롱 소드로 이를 미리 요격했지만 옆으로 튕겨 나가는 것처럼 형편없이 밀렸다. 다만 놀라운 균형 감각으로 쓰러지지는 않았다.

    약탈자 하나를 유나가 붙잡았지만 다른 한 놈은 원거리에서 자꾸 동족들을 공격한 다른 두 놈에게 단단히 화가 나있었다. 그들은 유나를 그냥 지나쳤다. 붉은 머리를 한 약탈자가 환도를 뽑고 있는 둔표를 노렸다.

    쐐애액!

    얼음 화살이 붉은 머리의 옆구리에 박혔지만 놈은 거침없이 달려 나갔다. 둔표의 뒤에 선 휼간은 이어서 둔표에게 주문을 읊었다.

    “얼음 방패!”

    얼음이 바짝 생성되면서 둔표의 앞에 얼음 방패가 만들어졌다.

    “콰아아아아아!”

    붉은 머리가 입을 쩍 벌렸다. 화염이 토해졌다. 그 사거리는 3m에 불과했지만 화력이 대단했다. 단번에 얼음 방패가 녹아내렸고, 둔표가 그 화염 때문에 몸을 굴렸다. 하지만 왼팔이 노출됐다.

    그 뒤에 있던 휼간은 정통으로 불꽃을 맞아야 했다. 다행이라면 초월의 힘으로 만들어진 불꽃이었기에 유해 가스는 없다는 점이었다. 또 얼음 방패 덕분에 찰나의 시간 동안 노출되었을 뿐이었다.

    “끄아아아악!”

    그럼에도 효과는 탁월했다. 두 명이 정신을 못 차리고 무릎을 꿇거나 데굴 굴렀다. 화상의 고통 때문에 눈조차도 뜨지 못했다. 식은땀이 쫘악 돋아났다.

    붉은 머리는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껑충 뛰었다. 목표는 둔표였다. 왼팔밖에 안 당해서 어떻게든 고통으로 쓰러진 몸을 가누는 속도가 빨랐기 때문이었다.

    콱!

    “?!”

    뛰어오른 놈의 발목을 산박이 아슬아슬하게 물었고, 놈의 무게 축을 이용해서 반 바퀴를 돌며 그대로 산 저 멀리 날려 버렸다. 거칠게 흙을 밀어내며 육중한 호랑이의 몸체가 바로 섰다. 서로 힘이 대단했기에 붉은 머리는 회전하며 날아가 나무에 옆구리를 부딪혔다.

    뿌득!

    갈비뼈가 그대로 박살이 났다.

    “칵!”

    뼈가 부러졌음에도 약탈자는 호랑이가 달려오는 소리를 듣고 몸을 일으켜서 반사적으로 입에서 불꽃을 토해냈다. 호랑이는 크게 옆으로 도망쳤지만 불똥이 눈에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크흥!”

    동시에 얼음 화살이 불꽃을 꿰뚫으며 붉은 머리의 입에 처박혔다. 화살의 끝이 목을 꿰뚫고 살짝 튀어나왔다.

    “거걱.”

    간헐적으로 움직이던 붉은 머리가 천천히 죽어갔다.

    그사이에 유나는 약탈자에게 형편없이 밀리고 있었다. 팔이 타오르는 와중에도 둔표는 일어서서 기회를 엿보면서 걸음을 조금씩 옮기다가 이내 숨을 꽉 참고 온몸을 움직였다.

    “흡!”

    그대로 환도를 투척했다. 동시에 앞으로 크게 넘어졌다. 낙법을 펼치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둔표는 머리부터 땅에 처박았다. 나뭇가지가 까칠하게 피부를 찔렀다. 하지만 땅이 푹신했고 돌이 없었다.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퍽!

    둔표가 던진 환도는 약탈자를 베지는 못했지만 어깨를 때렸다. 약탈자의 도끼가 헛스윙을 제대로 했다. 궤도가 틀어졌기 때문이었다.

    “이야아아아아!”

    유나가 고함을 내지르며 몸의 활력을 쥐어짰다. 매서운 롱 소드가 단칼에 약탈자의 손목을 쳤다. 이어서 유나는 약탈자를 어깨로 들이받았다. 동시에 쓰러졌지만 낙법을 펼쳐서 단번에 일어난 유나는 그대로 장작을 패듯이 상체를 앞으로 크게 기울여서 롱 소드를 다시 한번 내려쳤다.

    콱!

    약탈자의 다른 팔이 롱 소드를 막았다. 크게 살갗이 패었고, 가드가 풀렸다. 유나는 다시 한번 롱 소드를 내려쳐서 약탈자의 목을 쳤다. 피가 튀었다. 놈이 계속 버둥거렸다. 단신인 유나가 목을 한 번에 칠 수 있을 리 없었다.

    유나가 놈의 목을 치는 동안 산박의 외침이 아래에서 들려왔다. 전투를 끝낸 듯했다.

    “삵아!”

    산박은 모습을 바꾸고 대장삵을 불렀다. 한 손으로는 눈을 가렸다. 통증이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산을 다시 오르며 판단을 달리했다. 나머지 한 놈을 겨우 처치한 유나와 둔표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대장삵을 찾을 때가 아니었다. 어차피 죽어도 다시 소환하면 그만인 존재였다.

    “유나 씨! 빨리 못 움직이는 놈들의 목을 치세요.”

    “예!”

    산박은 가장 먼저 전신에 불꽃이 뜨문뜨문 들러붙어 있는 휼간부터 살폈다. 일단 치료수를 전신에 뿌렸다. 화상이 큰 얼굴에는 특히나 많이 뿌렸다. 다행인 점은 기절했지만 숨이 붙어 있다는 점이었다. 금방 정신을 차릴 터였다.

    치료수로 휼간을 치료한 다음에 휼간에게 준 드루이드 빛 무리 치료수를 챙겨서 앉아서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둔표에게 향했다.

    “괜찮습니까?”

    “예. 전 괜찮습니다. 휼간은요?”

    “치료수를 모두 써서 치료했습니다. 화상은 과잉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치료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산박은 녹아내린 가죽 장비를 뜯어내지 않고 둔표의 팔을 들어 올린 다음에 치료수를 부었다. 치료수가 중력에 의해 내려가며 옷으로 스며들며 화상을 치료했다.

    “하아아.”

    그제야 둔표가 불규칙적으로 참다가 다시 쉬었다가를 반복했던 숨을 편안하게 내쉬었다. 마지막으로 둔표가 산박의 눈에 치료수를 넣었다.

    “끄으응.”

    산박의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렸다. 정말 개같은 고통이었다. 불꽃은 인간에게 너무나도 강력한 수단이었다.

    “둔표 씨는 휼간 씨를 지켜 주십시오. 혹시 모르니까요.”

    “예.”

    산박은 환도를 들고 앞서 나간 유나를 따라갔다. 유나는 반항하는 약탈자 놈들의 손목을 자르고 뒤로 돌아가서 등을 밟고 목을 치고 있었다.

    퍽!

    “끄아아아아아악!”

    퍽!

    “흐으, 흐아아아아아아악!”

    퍽! 퍽! 퍽! 퍽! 퍽! 퍽!

    유나의 근력으로는 족히 열 번을 넘게 쳐야지 목뼈를 자를 수 있었다. 거의 부수는 수준이었다. 그 때문에 약탈자들의 고통스러워하는 소리가 끔찍하게 산을 뒤흔들어 놓았다. 피 냄새를 맡고 온 까마귀나 다른 육식 동물들도 허둥지둥 도망쳤다.

    “더럽게 안 잘리네. X발.”

    유나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동료가 큰 피해를 입었기에 증오가 들끓어 올랐다. 머리에 피가 쏠렸다. 어찌할 도리가 없는 분노가 표출될 곳을 찾았다. 욕은 가장 간단한 표출 수단이었다.

    전투보다 목을 자르는 데 더 땀이 났다. 송골송골 맺힌 땀이 약탈자에게 뚝 하고 떨어졌다.

    “그아아아아아아아아!!”

    그렇게 잔인하게 목을 수십 번 쳐서 떨구는 유나를 향해서 일어서지 못하는 약탈자가 괴성을 지르며 손으로 작은 돌을 던졌다.

    “이런 개새끼가!”

    안 그래도 불꽃에 덮쳐진 두 사람을 본 유나였다. 동료가 다쳤기에 그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컸다. 유나는 움직이지 못하는 약탈자의 등을 발로 밟아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약탈자가 목을 미친 듯이 흔들었지만 대가리를 몇 번 치니까 잠잠해졌다.

    유나는 그 상태로 약탈자의 목을 치고 수급을 한곳에 던져서 모았다. 산박도 이를 돕고, 대장삵이 돌아오자 그와 함께 가서 파도에 휩쓸려서 뼈가 부러져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약탈자 두 명의 목을 쳐서 수급을 챙겨 왔다.

    모든 수급을 모았다. 딱 열 개였다. 눈을 파내고, 귀를 자르고, 코를 도려냈다. 그것으로 전투는 끝났다.

    “왜 이렇게 늦게 나타나셨습니까?”

    휴식을 취하고 밥을 먹고 난 다음에 휼간이 불만을 토로했다. 유나가 그의 옆구리를 살짝 쳤지만 휼간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장난칠 기분이 아니었다. 둔표 또한 산박을 죄인으로 보는 듯한 눈을 했다.

    ‘요놈들 봐라?’

    그 물음에 산박은 휼간을 노려봤다. 분위기가 절로 흉악해졌다.

    “어어, 왜 이러세요, 갑자기?”

    “갑자기가 아냐. 짚고 넘어가야겠어.”

    유나가 살짝 일어나며 말리려고 했지만 둔표가 이를 손으로 제지했다.

    “처음에는 저랑 같이 가서 장거리 유인을 하고 오기로 했는데 갑자기 저보고만 유인하라고 하고. 제가 얼마나 위험했는지 아십니까?”

    “그때 전 우회하는 약탈자를 두 마리 잡았습니다. 턱을 넘으면…….”

    “숫자가 뭐가 중요합니까? 팀원이 죽든 말든 던전만 클리어하면 된다고 여기십니까?”

    산박은 입을 다물었다. 지금 그는 너무 흥분한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의 대화는 논쟁이 될 수 없고 그저 화풀이에 불과했다.

    “그만하죠. 더 이야기하고 싶으면 내일 이야기합시다.”

    “왜, 변명할 거리가 없으니까 도망치는 겁니까?”

    “뭐 하는, 뭐 하는 거예요, 지금!”

    유나가 소리를 쳤지만 둔표가 그녀를 쏘아붙였다.

    “너야말로 뭐 하는 건데. 휼간이 전신에 화상 입은 거 못 봤어? 잘못했으면 여기서 죽었어. 그냥 운이 좋아서 살 수 있었던 거야. 안 그렇습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산박의 말에 두 사람이 팔짱을 꼈다. 들어 보겠다는 오만한 태도에 산박은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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