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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68/270)
  • 68화

    목 위의 피부가 지렁이처럼 들고일어나고 머리카락은 메두사처럼 흐물거리며 그 끝이 곤두서는 기괴한 괴물은 인간 형태임에도 강력한 거부감과 위협감을 주었다.

    그들 중 하나는 가슴에 화살이 박혔음에도 거뜬했다. 놈은 유나를 향해서 덤비려고 했지만 측면에서 똑같이 공격당했다. 유나가 쏜 화살 한 발과는 비교도 안 되는 맹공이 퍼부어졌다.

    가장 먼저 둔표의 화살이 정확하게 목에 꽂혔다. 유나가 임시 궁수라면 둔표는 정예 궁수나 다름없었다. 특히나 기술로 궁술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허나 놀라기는 일렀다.

    퍼벅!

    한 발을 맞고 나서 그대로 두 발이 연속적으로 더 박혔기 때문이다. 다만 목이 아니라 팔과 옆구리에 박혔다. 단삼사의 단점이었다. 쏘면서 힘이 부치기 때문에 몸이 앞으로 기울면서 목이 아니라 몸 밑을 노리게 되는 것. 이 습관은 고치려고 해도 힘들었다. 체력과 힘이 받쳐 줘야만 해결할 수 있고, 그게 아니라면 정신력으로 버텨야 했는데 그러기에는 둔표의 정신력은 평범한 수준이었다.

    “헉헉.”

    참았던 숨을 뱉으며 둔표가 헐떡였다. 강력한 기습을 위해서 궁술을 사용했지만 다시 쏘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뻐억!

    산박의 슬링이 포물선을 그리며 화살이 네 대나 박힌 놈의 머리를 후려쳤다. 또한 얼음 화살이 다시 한번 가슴에 박혔다.

    그제야 약탈자가 휘청거리며 그대로 엎어졌다. 표적이 된 약탈자는 짐승처럼 고함을 지르며 일어섰지만 자신의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고 달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괴물…….’

    달빛에 비치는 그 모습은 야만적이고 흉포했으며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광전사나 다름없었다. 피를 흘리면서도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고함을 질러댔다. 피와 침이 뒤섞인 것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크아아아아아!”

    눈이 뒤집힌 채로 두 마리는 서로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한 마리는 유나에게 달려갔고 한 마리는 산박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미친놈들이네. 지성 종족 맞아?’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봤을 때 불을 사용함에도 정말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 있었다.

    “끼야아아아아!”

    껑충!

    약탈자는 껑충 뛰면서 쏘아지는 화살과 슬링탄을 피했다. 그때마다 곤두서 있는 머리카락과 피부가 몰려서 지렁이 같은 게 휙휙 움직였다. 마치 ‘감각 기관’처럼 보였다.

    ‘정면으로는 절대로 안 맞아주네. 무엇보다 짐승처럼 날렵하다.’

    엄청나게 두들겨 맞은 한 놈과는 다르게 다른 한 놈은 멀쩡했기에 껑충 뛰면서 어느새 쥔 돌을 투척했다. 하지만 적은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몰랐다. 그저 위협에 불과했다. 당연히 누구도 맞지 않았다.

    그들은 미리 놈을 눈으로 좇고 있었기에 어둠 속에서도 윤곽을 통해서 포착할 수 있었다. 반면 약탈자는 어둠 속에 있는 그들을 찾아야 했다. 초점을 고정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방향만 어림짐작하고 있을 뿐이었다.

    “삐익―!”

    휼간이 소리를 냈다. 동시에 푸른 마력이 넘실거리며 얼음 화살을 만들어냈고 그 빛이 이 숲의 어둠 속에서 화려하게 빛났다.

    “아우워어어억!”

    약탈자의 시선이 휼간에게 고정되었다. 얼음 화살이 발사되고 약탈자가 몸을 피했을 때, 둔표의 화살이 약탈자의 허벅지에 맞았다. 약탈자는 휘청거렸지만 버텨냈다.

    퍽!

    그러나 다음 순간 슬링탄에 머리를 맞았고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쿵!

    머리가 산에 있는 돌부리에 맞았다. 약탈자는 몸을 가누지 못했다. 화살이 더욱 박혔고, 슬링이 머리를 세 번이나 더 때렸다. 확인 사살인 셈이었다.

    유나는 피투성이의 약탈자를 마주했다. 그녀는 달빛이 그나마 들어오는 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약탈자 또한 그곳에 들어섰다. 동시에 고함을 꽥 내질렀다.

    “그아아아!”

    약탈자는 허리춤에서 덜렁거리는 짐승 털 주머니에 손을 쑥 넣더니 가루 같은 걸 꺼내서 몸에 턱턱 발랐다. 크고 작은 가루가 상처에 들러붙고 피를 흡수하며 지혈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후우.”

    유나는 롱 소드를 뽑은 채로 양팔을 높이 들어 올리고 검 끝을 약탈자에게로 향했다.

    “야리뽕타아이야아아아아!”

    약탈자의 입 양쪽 끝이 쩍 갈라지며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그만큼 입을 크게 벌리며 고함을 질렀다.

    유나 또한 달려들었다. 그녀는 단신이 지닌 날렵함과 민첩함을 검술에 녹일 줄 알았다. 약탈자가 그대로 자신의 무기를 투척했다. 도끼가 무식하게 회전하며 유나를 노렸지만 그녀는 어렵지 않게 피해낼 수 있었다.

    ‘침착하게.’

    옆으로 지나가면 그만이었다. 그녀는 사뿐하게 발을 튕기며 복서처럼 움직였다. 약탈자가 흉악하게 달려들었다. 마치 몸을 던지는 것 같았다. 표범이 사냥감을 노리는 듯한 행동이었다.

    탓!

    뒷발로 강하게 땅을 차며 유나가 거리를 벌렸다. 약탈자가 왼 주먹으로 땅을 치며 더욱 속력을 높였다. 그의 몸은 거의 짐승처럼 굽혀져 있었고, 인간이 바퀴벌레를 따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젠장.’

    쉬익!

    롱 소드가 찔러졌다. 동시에 상단세가 중단, 하단까지 내려갔다. 어쩔 수 없이 찌른 것이었다.

    ‘생각보다 더 노련하다!’

    약탈자가 한 발만으로 껑충 뛰어오르며 공중제비를 돌았고, 쭉 뻗은 다리로 그대로 내려쳤다. 그게 약탈자의 실수였다. 기민했지만, 롱 소드의 간합을 잘 재지 못했다.

    물론 유나가 뛰어난 점도 있었다. 다리가 짧아서 누구보다도 더 빨리 잰걸음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약탈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멀어질 수 있었고, 롱 소드를 휘두를 수 있었다. 유나가 손목을 돌리고 롱 소드를 위로 힘껏 잡아당겼다. 예열시켜둔 몸은 착실하게 그 무리한 동작을 소화해 냈다.

    약탈자의 전투술 또한 본능적이었지만 흉악했다. 몸을 낮추고 상대가 잡은 상단세를 아래로 변경하게 하면서 동시에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상대는 다시 무기를 높이 들어야 했다. 상황만 놓고 보면 약탈자의 압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서걱!

    다만, 결과는 유나의 승리였다. 단번에 약탈자의 다리가 베어졌다. 약탈자의 내려치는 힘과 유나의 잡아당기는 힘이 만났기에 그 사이에 있는 다리가 놀라울 정도로 깔끔하게 베였다.

    “크학!”

    약탈자가 몸을 굴렸다. 그가 양손으로 땅을 짚었을 때 롱 소드가 정수리를 내려찍었다.

    퍽!

    두개골이 깨지는 소리가 유나의 귀로까지 들어올 정도였다.

    투두둑.

    굵직한 머리카락이 떨어져서 꿈틀거렸다. 유나는 고개를 돌렸다. 거센 바람이 불었다. 코로 숲의 내음과 뒤섞인 피비린내가 맡아졌다. 저쪽도 상황이 끝난 듯했다.

    유나는 롱 소드의 피와 이물질을 닦고 검집에 집어넣은 다음에 대거를 뽑았다. 그러고는 약탈자의 몸을 뒤집어서 얼굴이 보이게 했다.

    피부가 지렁이처럼 뭉쳐서 딸려 나와 돌기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유나는 그 속에 대거를 쑥 집어넣어서 눈을 뽑았다. 양쪽 귀를 자르고, 코를 도려냈다. 그 손길은 거침없었다.

    눈은 보석처럼 딱딱한 검은색 덩어리였고 귀는 잘라내자마자 서서히 굳기 시작하며 오색으로 빛났다. 도려낸 코 또한 굳어지기 시작하며 변색이 일어났다.

    약탈자에게서 챙길 만한 건 전투 상황에서 변모하는 머리에 있는 일부 신체 부위뿐이었다. 나머지는 필요가 없었다.

    눈 귀 코를 챙긴 유나는 약탈자들이 모으고 있던 달빛애벌레가 담긴 나무통도 회수했다. 엎어진 애벌레 또한 다시 집어넣었다.

    “다친 사람은 없죠?”

    유나의 말에 산박이 웃었다.

    “혼자였던 유나 씨를 걱정하면 걱정했지, 그런 말을 들을 처지는 아닌데요?”

    잡담이 곳곳에서 훈훈하게 일어났다. 그들은 곧장 되돌아가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났을 때, 모두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확실하게 먹힌다.’

    육포를 먹으며 산박이 입을 열었다.

    “조금 맷집이 강하긴 하지만 머리를 노리면 확실하게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 다음에는 머리를 노리겠습니다. 근데 너무 재빨라서 몸을 노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기습할 때만이라도 그렇게 해주세요.”

    복기를 하는 그사이에 둔표는 회수한 화살을 재정비하고 있었다. 촉의 내구력이 망가진 걸 확인하고, 교체할 필요가 있으면 교체했다. 화살대 또한 금이 간 것이 있는지 꼼꼼히 살폈다. 깃도 손으로 싹싹 만지면서 약해진 깃을 뽑아내고 상태를 파악했다. 써먹을 수 있는 한 최대한 써먹어야 하는 게 화살이었다. 결코 한 번 쓰고 버릴 수 있는 소비품이 아니었다. 궁수의 정비는 다른 이들보다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정오까지 산에 함정을 설치하고 산의 지도를 꼼꼼하게 제작했다. 그사이에 대장삵의 보고가 떨어졌다.

    “약탈자 열 마리가 산을 수색하고 있다.”

    “어제 돌아오지 않은 두 마리 때문이겠죠.”

    “숫자가 많습니다.”

    “충분합니다.”

    산박은 손쉽게 이길 것이라 예상했다. 이에 다른 이들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고, 그 마음이 그대로 표정으로 드러났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팀은 약하지 않습니다. 해볼 만합니다. 물론 작전이 필요합니다.”

    산박이 유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저요?”

    “예. 유나 씨는 우리보다 위에서 우리를 지켜 주시면 돼요. 도망칠 때 말이죠. 어차피 고지에 있으니까, 상대가 사거리에 들어오면 쏘셔도 상관없어요.”

    “네.”

    계속해서 홀로 활동하게 되자 유나가 팔을 쓰다듬었다.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대장삵이 유나 씨와 함께할 겁니다.”

    “나? 난 어제 후방에서 아무것도 안 해서 이번엔 앞에 서고 싶은데.”

    “시끄러워. 오버시어 팀은 수비력, 안정성이 가장 중요해.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하는 게 매우 중요해.”

    산박은 이를 일축했다. 대장삵 또한 수긍했는데, 여기서 근접전에 특출난 자를 여럿 묶어둘 수는 없었다. 무위가 없기 때문이다. 물량 던전에서 물량에 근접해 감당할 수 없으니 당연히 대장삵은 만일을 대비하는 포지션에 배당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적의 인원수가 많아서 배정해 드리는 겁니다. 조심하세요.”

    “예.”

    산박은 바닥에 대충 그림을 그렸다.

    “고지전이 될 겁니다. 유나 씨가 여기 위에서 활동하고, 저희들은 아래에서 올라오는 놈들을 막을 겁니다.”

    간단하다면 간단했지만, 약탈자를 상대로는 모든 걸 면밀하게 짚고 넘어가야 했다.

    “기습은 머리를 노리고, 그다음부터는 하체를 노리세요. 적의 숫자가 많아서 기동력을 잃게 해야 합니다.”

    “살아서 돌아가는 놈이 있지 않겠습니까?”

    둔표가 얕은 생각을 입에 담았다. 나이가 완숙된 생각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건 농업 사회의 하찮은 오류에 불과했다.

    “어제 그 괴성을 지르던 광전사 놈들이 적을 앞두고 부락으로 도망간다고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겁니까?”

    “아… 아닙니다.”

    둔표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다리를 절어도 놈들은 공격을 계속해 올 겁니다. 장비도 제법 우수할 겁니다.”

    약탈자들의 장비는 1레벨 던전 정보에 의하면 다음과 같았다.

    “투척하기 좋은 도끼를 주 무기로 쓰고 투척용 단창을 던집니다. 주변에 있는 돌을 갈아서 투척하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든 지성 종족인 게 약탈자들이었다. 그들은 다양한 원거리 수단을 지니고 있었다.

    “위협적이죠. 그래도 저희는 고지를 가지고 있기에 유리합니다. 놈들은 사거리도 형편없습니다. 명중률도 마찬가지입니다.”

    투창의 사거리는 매우 짧다. 또 제멋대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명중률도 단창마다 제각각이었다. 물론 운 좋게 맞을 수도 있었지만, 위를 향해서 쏘기 때문에 그 위력이 약해질 수 있었다.

    “또한 저희는 마법 장비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를 백분 이용해 보겠습니다.”

    유나는 힘의 보조가 깃든 활, 복장에는 은신과 적 간파를 위한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척후병에게 도움 되는 풀 장비였다. 고로 그녀에게 기댈 수 있는 건 없다.

    산박의 눈이 둔표에게로 옮겨졌다.

    “루둔표 씨가 적의 시선을 끌고 방어 막으로 투창을 소비하게 해 주셔야겠습니다.”

    그는 장궁과 조립형 단궁을 쓰고 있었다. 둘 다 힘의 보조가 깃든 1레벨 장비였다. 그 외에는 가죽 방어구와 화염 화살, 방어 막 세트를 갖추고 있었다. 적의 탄환을 소비하게 하기 좋았다.

    “예.”

    “기름을 미리 주변에 뿌려놓고 불을 질러서 후퇴하셔야 합니다.”

    “그 말씀은 최대한 적을 끌어 들이고 도망치라는 겁니까?”

    “예. 그래야 떨어진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다음은 휼간이었다. 그는 주문 강화, 얼음 보조, 체력 증진 아이템으로 잔뜩 무장해 있었다.

    “휼간 씨는 정신 집중 기술을 통해서 적을 끌어 들이는 역할을 하셔야 합니다.”

    “유인 작전…….”

    “예. 여기 함정이 있는 곳으로 놈들을 끌어 들여야 합니다. 제가 함께하면서 도와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가 가슴을 쳤다. 가장 어려운 일이었고, 죽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거리를 크게 두고 얼음 화살을 통해서 계속 이목을 끌고 피해를 준다면 약탈자들은 덤빌 수밖에 없었다.

    ‘피를 보면 미친 듯이 달려오겠지.’

    산박은 냉철한 눈으로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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