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화 (67/270)

67화

“둘 모두를 하겠다는 겁니까?”

“양동 작전인가요?”

“예, 하지만 양동 작전은 아닙니다. 주의력을 딴 곳으로 흩뜨리는 건 맞지만 목적과 다른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태양이 있고 바람이 불어오니 대류가 존재합니다. 곧 어둠 또한 내려앉겠죠. 그때가 된다면 저희는 게릴라를 하면 됩니다.”

괴물이라고 해도 지성이 깃들면 스펙이 인간보다는 높지만 압도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또한 이번에 상대할 약탈자들은 더욱 그러했다.

“숫자만 빼고 보면 충분히 저희가 상대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근접전은 어렵습니다.”

“예. 저도 똑같은 의견입니다.”

“낮에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산에 진지를 구축하고 함정을 팔 생각입니다. 우리 팀의 단점을 지우기 위해서입니다.”

“팀의 단점…….”

“근접전이 일어나는 걸 막기 위해서입니까?”

“일어나더라도 한 번은 버틸 수 있게 하겠다는 겁니다. 실질적으로 공략은 게릴라에 중점을 두고, 부락이 무너지면 그때 낮에도 공세를 유지할 생각입니다.”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몇 가지 문제점이 존재했다.

“유나가 잘 해내겠습니까?”

밤에 게릴라를 하는 건 인간에게 매우 위험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려면 유나가 제대로 한 건 해야 했다. 게릴라의 키 맨은 그녀였다.

“대장삵이 있으니까…….”

유나가 우물쭈물했다. 너무 막대한 임무였고, 책임감이 무거웠다. 그 모습에 대장삵이 냥냥 펀치를 날리며 말했다.

“그렇게 자신감이 없으면 어떻게 너한테 임무를 맡기겠는가!”

발톱을 세우지 않은 냥냥 펀치는 기분만 좋을 뿐이었다.

“힘들면 안 하셔도 됩니다. 산을 통해서 부락을 하나씩 말려 죽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양자택일이 가능하다는 건 하나만 해도 충분하다는 말이었다. 유나가 말을 잇지 못하자 산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게릴라는 포기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꾹.

산박의 말에 대장삵이 그의 발을 꾸욱 밟았다.

“왜?”

“너도 호랑이로 변하면 게릴라에 적극적 참여가 가능하잖아.”

“그렇게까지 힘을 기울일 정도는 아냐. 한다면 반반의 균형을 잡아야 해.”

산박은 팀의 색채를 벗어난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오버시어 팀의 첫 1레벨 던전 공략이었다. 여기서 ‘호랑이로 해결’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첫 전술부터 팀의 콘셉트를 벗어나 버리고 게릴라에 올인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까지 설명하고 나서야 대장삵이 물러났다.

‘여자에 미친 삵인가?’

단순 전술을 생각하면 대장삵의 판단이 더 옳은 방법이기는 했다. 하지만 팀장이라는 완장을 낀다면 그런 판단은 할 수 없었다. 오버시어가 공격적인 팀이 되어 버리면 자멸은 피할 수 없었다. 산박이 제어할 수 없을 때 뻥 하고 터질 것이었다. 그리고 산박은 둑이 무너지는 걸 바라보는 일반인처럼 휩쓸려서 죽게 될 터였다.

‘꼼꼼히 매듭지어야 한다.’

오버시어는 그 색채를 결코 버려서는 안 되었다. 쉬운 길을 놔두고 갈 정도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그게 옳았다. 조금이라도 콘셉트에 대한 경험치를 먹어야 했다.

“그럼 왜 굳이 게릴라를 하시려는 거죠?”

“적을 처리하기 좋고, 관심을 다른 곳에 돌릴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적을 상대하는 시기를 늦출 수 있습니다.”

유나의 질문에 산박이 거침없이 대답했다. 즉, 산에서의 방어선 구축에 있어서 최대한 적과의 조우를 늦추기 위함이었다.

“만약 게릴라를 한다면 어떤 식으로 진행됩니까?”

“유나 씨와 대장삵을 통해서 적을 먼저 찾아내고 장거리로 타격한다. 그게 전부입니다.”

무조건 먼저 찾아낸다. 그게 어둠 속에서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방법이었다.

“그것뿐입니까?”

“다른 응용법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산박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상처 입은 괴물을 두고 적을 함정에 빠뜨리거나 적들이 자주 다니는 지름길에 덫을 놓고 잡아먹는 것도 가능합니다.”

“굳이 안 찾아다녀도 된다는 말씀이시죠?”

산박이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던전에 잔류할 시간 때문입니다. 급한 건 우리지 저쪽이 아닙니다.”

“아…….”

오버시어 팀이 지닌 단점이기도 했다.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적을 섬멸하기 때문에 오히려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었다.

“게릴라는 힘든 듯한데요.”

휼간이 부정적 의견을 내놓았다. 다만 둔표는 오히려 유나를 두둔했다. 평상시에 서로 티격태격하는 것과는 반대로 든든히 받쳐 주었다.

“제 생각에는 오히려 게릴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찾아내기만 하면 승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어둠 속에서 장거리 공격이 지니는 강점을 버리는 게 오히려 어리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상대가 먼저 찾아내면 바로 근접전이 펼쳐지잖아!”

그런 상황이 닥치면 유나는 돌아 버릴지도 몰랐다. 전부 자기 책임이 될 게 뻔해서였다.

“회의 때는 서로 반말을 하지 마세요.”

열기가 달아오르자 이를 끊기 위해서 산박이 트집을 잡았다. 굳이 지금 말을 안 해도 될 것을 잡아당겼다.

“아! 죄, 죄송합니다.”

“조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네.”

분위기를 정리하고 산박이 다시금 전술을 정리했다.

“아무래도 처음이라서 유나 씨가 큰 부담을 느끼고 있으니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번만은 제가 적을 파악하는 걸 돕도록 하겠습니다.”

“오.”

“돕는 것뿐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을 겁니다. 아셨습니까?”

“예.”

“넵!”

유나가 귀엽게 소리를 냈지만 산박은 눈도 깜짝하지 않은 채로 말을 이어 나갔다.

“이번에 유나 씨는 암살자가 아니라 척후병으로서의 경험을 최대한 얻도록 해보세요. 판단도 행동도 그걸 먼저 감안하셔야 합니다.”

“예.”

“표적을 파악해서 알리면 팀 전체가 장거리 타격을 통해서 제압할 겁니다.”

“예.”

그렇게 던전 공략이 시작되었다. 일이 틀어졌을 시의 상황 판단도 세 개 정도 짜냈다. 아직 달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길이 없는 산에 짐을 풀었다.

“이건 던전 식물일까, 아닐까.”

“본 적이 없는 식물이니 던전 식물이겠지.”

“그렇게 간단히 판단한다고?”

“상식이야.”

“떠들지 말고 삽질이나 해.”

둔표와 휼간은 입을 잠시도 쉬지 않았다. 유나가 한 소리 했지만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삽질에는 노가리가 들어가야지만 할 만했다.

산에서 은신처를 만드는 일은 매우 쉬운 편에 속했다. 그냥 땅을 파놓으면 그만이었다. 쏘옥 들어가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땅굴 무적 논리라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대체로 가장 안락한 것이 땅굴이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올 필요가 없는 지점에 은신처를 만들어서 활동하는 건 매우 중요했다.

그사이에 산박은 흔적 지우기용 더미 덮개를 만들고 있었다. 대장삵은 그걸 본능적으로 눈으로 좇으며 구경했다. 삵에 깃든 고양잇과의 숙명이나 다름없었다. 집사가 부지런해야 고양이가 재밌는 법이었다.

꽈아악.

먼저 나뭇가지를 교차하여 정사각형의 그물을 만든다. 그것을 넝쿨로 적당히 촘촘하게 만들고 사이사이마다 시들거나 썩은 나뭇가지를 집어넣는다. 나뭇잎도 있었기에 훌륭한 더미 덮개가 되었다. 덮고 나서 모아놓은 나뭇잎을 흩뿌리면 더욱 완벽해진다. 흔적이 어쩔 수 없이 크게 남는 곳이나 반복적으로 밟고 지나가야 하는 길목이나 그냥 눈으로도 볼 수 있는 지점에 놓기 위함이었다.

아무리 산이라고 해도 멀리서도 볼 수 있는 지점이 있었고, 거기에 흔적이 있으면 말짱 꽝이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산에 대해서 빠삭하게 알아야 했다. 그 때문에 산박은 몇 번이고 산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엉뚱한 곳에서 시야를 확인하기도 했다. 한 사람의 시점에서 높이도 다르고 경사도 다르며 지형도 제각각인 산을 파악하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다.

작업은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밤에 게릴라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너무 강행군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만 밤에도 활동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번은 해야 합니다.”

“끙.”

모두가 점점 실감하고 있었다. 남들이 잘 때 움직여야 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거기에 야전이다. 피로는 배로 다가올 터였다.

“그렇게 크게 피곤하지는 않을 겁니다. 겁도 없이 돌아다니는 놈을 처리하고 바로 돌아올 겁니다.”

산박은 몇 번이나 말하며 팀원들의 걱정을 종식시켰다.

달빛이 내리쬐는 숲은 밝은 곳도 있었지만 어두운 곳도 있었다. 둔표와 휼간은 대장삵의 인도를 받으며 산에서 내려갔다. 유나와 산박은 보이지 않았다.

‘엄청나다.’

분명 근처에 있겠지만, 도저히 감도 잡히지 않았다.

쏴아아아아―!

큰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서로 부딪치며 파도 같은 소리를 냈다. 산이었음에도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소리였다. 곳곳에서 벌레의 울음소리가 시끄럽게 귀를 때렸다. 인공적으로 조성한 공원과는 현저하게 다른 소음이 이 숲에는 존재했다.

‘숲이 이렇게 시끄러운 곳이었나?’

절로 두려움이 일어났다. 낙엽이 많은 이 숲에서는 누가 다가오더라도 단박에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옆에서 걷는 동료의 발소리조차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꾸꺼거거꺼!!”

“와씨!”

둔표가 활을 하늘로 돌렸다. 괴물 소리인 줄 알았는데 둥지에 앉아있는 이상하게 생긴 새가 내는 소리였다. 덤벼들 기색이 없는 걸 보니 그저 위협하려는 듯했다. 실로 동물적인 판단이었다.

“누가 보면 악마가 나타난 줄 알겠네.”

“진짜 괴물의 울음소리였다니까.”

둔표가 간을 쓸어내렸다. 휼간도 둔표가 소리를 질러서 덜컹거린 심장을 진정시키기 바빴다. 서로 욕을 하지 않은 건 언제 전투가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잡담을 길게 나눌 수 없었다.

“뭔 밤바람이 이렇게 거세?”

“산이잖아.”

“숲은 덜하겠지?”

불안감에 절로 입이 나불거려졌다.

“조용.”

대장삵이 고개를 돌리며 말하자 두 명이 모두 합죽이가 되었다. 대장삵은 근엄하게 다시 고개를 돌려서 머리를 꼿꼿이 들어 올린 채 움직였다. 소리가 날 때마다 귀가 180도로 휙휙 돌아갔다. 대장삵은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수많은 산의 소리를 감별하기 바빴다. 전투는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가장 먼저 적과 조우하게 된 것은 송유나였다.

“흠! 흐흠! 흠!”

기괴하게 고개를 이리저리 빠르게 돌리는 약탈자의 뒷모습이 그녀의 눈에 담겼다. 달빛이 내려오는 썩은 나무에서 아주 큰 나뭇잎을 팔에 걸친 채로 애벌레를 담고 있었다. 달빛에 비치는 애벌레는 그 빛을 반사하며 옅은 빛을 내고 있었다. 신기한 노릇이었다.

약탈자는 나뭇잎에 담긴 애벌레를 종종 옆에 쭈그리고 있는 다른 약탈자의 앞에 떨어뜨렸다. 그 약탈자는 중지 손가락만 한 애벌레의 중간 부분을 잡고 한쪽으로 밀어서 내부에 있는 즙과 내장을 빼낸 뒤 껍데기만 나무통에 넣었다.

오로지 밤에만 채집할 수 있는 ‘달빛애벌레’는 약탈자들이 좋아하는 식량 중 하나였다. 던전 재료이기도 했다. 설사를 예방할 수 있고 위장의 기능도 증진하기 때문에 위 관련 질병을 지닌 이들에게 탁월한 약재였다.

특히 한국에서는 달빛애벌레를 수입까지 하는 형편이었다. 위가 약한 민족이기도 했고, 위를 혹사시키는 민족이기도 했다. 다른 나라 사람도 한국인과 어울리면 위가 쉬지 않게 되어 버려서 전염될 정도였다. 다만 아쉬운 건 변비는 못 고친다는 점이었다. 돌덩이를 배출하는 그들에게는 실로 암담한 일이었다.

‘적은 두 마리.’

타격하기에 충분했고, 처음에 때리기 좋았다. 유나는 능숙하게 되돌아갔다. 늑대 은신이 큰 도움이 되었다. 곧 네 명이 모였다.

“유나 씨는 우회 타격. 혹여나 도망칠 놈에게 치명타를 먹이든 하체를 노리든 하세요.”

“예.”

“대장삵은 후방 대기.”

“알았다.”

“신호는 유나 씨가 공격하면 공격하는 거로 하겠습니다.”

서로 마음이 잘 맞는 것과는 별개로 타이밍을 맞추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차라리 혼자가 된 유나가 선제 타격을 했을 때 그 방향에 집중하는 놈들의 뒤를 치는 걸로 호흡을 맞추기로 했다.

간단했다. 그게 끝이었다. 그렇게 기대되었다. 두 마리를 상대하는 일이었다. 그것도 지성 종족이라 스펙이 낮았다. 물론 인간보다는 우월했지만 한번 해볼 만했다.

인간 상태로 돌아온 산박은 슬링을 준비했다. 둔탁한 슬링은 언제나 생명체의 강적이었다. 급소에 맞히면 정신을 못 차릴 터였다.

모두 제각각 준비를 마쳤다. 유나의 화살이 일어서서 애벌레를 채취하는 놈의 가슴에 정확하게 박혔다.

“적이다(Ota)! 적이 나타났다(Awon ota farahan)!”

나무통이 엎어졌다. 그들이 유나에게 얼굴을 돌렸다. 굵직굵직한 머리카락이 뱀처럼 흐물거리며 곤두서고, 목과 얼굴 피부가 서로 뒤엉키며 지렁이처럼 올라갔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전투 태세였다. 몸은 인간이나 다름없었지만 역시나 그들 또한 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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