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 * *
산박은 고기를 한가득 짊어지고 쌈 재료도 충분히 챙겨서 고아원으로 향했다.
“오랜만입니다.”
“얼굴이 반쪽이 되었어요.”
그의 방문에 수녀님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기도했다.
“이것만 주고 바로 갈 거예요.”
“같이 먹고 가지 않으시고요?”
산박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아원에 오래 있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신부님 생각이 나서 드리는 것뿐입니다.”
수녀님은 눈을 감고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산박이 짊어진 죄는 평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 또한 공범이나 다름없었다. 나이가 어려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는 애 하나를 지옥으로 밀어버린 건 신부나 수녀나 똑같았다.
그런데도 산박은 고아원에 고기를 크게 바쳤다.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직, 산박만 이해할 수 있는 감성이었다. 덕분에 고아원에서 오랜만에 고기 냄새가 나고, 아이들의 피부에 기름이 반들반들하게 묻었다.
띠링.
창고로 돌아가던 산박은 메시지를 확인했다. 송유나였다.
[한 명 구했어요. 풀 세트예요. 직업은 마법 궁수고요. 루둔표, 남자, 33세. 정보꾼 출신이에요.]
[예.]
산박은 짧게 대답하고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무지막지한 행동력이 빛을 발하네.’
송유나의 추진력을 파악했고, 산박은 그녀에게 팀을 하나 맡겼다. 그리고 그녀는 단 하루 만에 팀원을 하나 뚝딱 구했다. 그것도 재력이 좀 남아도는 30대 남성을 잡아챘다. 행동력이 강하기 때문에 빠르게 잡아챈 것이라 볼 수 있었다. 그녀의 강점을 파악한 산박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의외인 점은 같은 정보꾼 출신을 낚았다는 점이었다. 산박의 머리가 돌다리를 건넜다. 돌 하나하나를 밟으며 유추를 이어 나갔다. 몇 가지 추론을 할 수 있었다.
‘자신의 얼굴을 아는 사람들과 함께 넘어올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팀을 새롭게 짠다. 곧, 텃세가 없다. 자신이 잘 아는 사람들로 채운다면 2팀의 영향력을 단단히 움켜쥘 수 있었다. 나쁘지 않은 판단이고, 오히려 높은 점수를 배정받을 만한 일이었다. 분쟁이 턱턱 터지고 불만과 싸움이 일어나는 팀보다는 똑같은 것들이 우글거리는 게 오히려 낫다. 산박은 그들의 위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산박을 곤란케 하는 점도 있었다.
‘신분을 새로 파라고 했는데 아는 사람을 집어넣으면 의미가 없다.’
황당할 따름이었다. 물론 그건 그거, 이건 이거라고 할 수도 있었다. 어차피 팀원인 그들은 던전 활동에 대한 서류를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귀찮기 때문이다. 돈만 잘 들어오면 그만이었다. 그들에게 들키지 않고, 송유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서 던전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위태하긴 하지만, 그렇게 꼼꼼한 팀원이 있을 거라 여겨지지 않는다.’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이를 선택했을 공산도 있지만, 아무 생각 없이 한 것일 수도 있었다.
심란해진 산박은 메신저를 켰다.
[유나 씨. 신분을 숨기고 던전 활동을 할 텐데 지인을 데리고 오시면 어떡합니까?]
[지인이지만 저에 대해서 잘 몰라요. 그냥 하던 일이 정보꾼이었을 뿐이에요. 실력이 있으니까 데려오려고 하는 거고요.]
변명이 뭔가 약했다. 산박은 그녀가 확실하게 지인으로 팀을 꾸리고 싶어 함을 깨달았다. 그런 냄새가 맡아졌다.
[그걸 제가 믿을 것 같습니까? 문제가 생기면 바로 손절할 겁니다.]
[네. 맡겨만 주세요. 확실하게 컨트롤할 테니까요.]
“허.”
당찬 메시지에 산박은 황당해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그럼 팀장님이 팀원 구해주실 거예요? 1레벨 풀 장비로 무장한 사람을? 그럼 전 환영인데요.]
당장 1팀도 풀 장비를 가진 건 차용증을 쓴 충호와 시은과 산박뿐이다.
[지켜보겠습니다.]
[맡겨만 달라니까요. 생각보다 그렇게 큰 문제는 안 일어나요.]
위태위태해 보였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지 않았으므로 산박은 지켜보기로 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2팀은 유나에게 맡긴 것도 컸다. 그녀의 추진력과 행동력 때문에 팀을 맡긴 것인데 그걸 막으면 그녀를 기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유나에게 자신이 지켜보고 있으며 그가 싫어할 만한 일을 한다면 그 책임은 확실하게 유나가 지게 될 거라는 걸 단단히 일러두는 것이었다. 그러면 적어도 결정하기 전에 산박의 말을 한 번은 더 생각할 터였다.
유나는 30대 두 명을 기용했다. 불과 5일 만에 데려왔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처럼 뭔가에 쫓기듯이 서둘러 팀을 완성했다. 그녀까지 합쳐서 세 명에 산박이 들어가면 1레벨 던전 공략 팀이 완성된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산박은 그녀와 얼굴을 마주하지 않겠다고 했으므로 메신저를 통해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녀는 던전 사용자로 활동할 새로운 신분을 산박 것까지 준비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마법 궁수에 마법사까지……. 그럼 전방엔 누가 섭니까?]
[저랑 팀장님이요.]
‘그걸 말이라고…….’
충호와 비교하면 단번에 두 사람의 수비력을 생각할 수 있었다. 체중, 체급,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순식간에 붕괴할 터였다.
[괜찮아요. 그걸 생각해서 장비도 방어적인 장비를 많이 구매했죠. 특수한 콘셉트라서 값은 기본 시세보다 50% 더 비쌌지만요.]
돈을 벌어들이는 던전 사용자들에게 저레벨 던전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꾼답게 모아놓은 목돈이 제법 있었다. 그걸 투입한 듯했다.
‘일단은 훈련이다.’
[만나서 이야기합시다. 팀 훈련입니다.]
[넵!]
유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산박의 2팀에 대한 관심을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더욱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시기도 좋았지. 팀 옥시모론은 휴식하고 있으니까.’
반강제적인 휴식이었다. 강합과 탕만, 두 사람은 돈을 모아서 풀 세트를 구매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시은이 한 명이라도 빨리 세트를 완비하게 하려 했지만 강합은 정신적 트라우마 때문에 양보하려고 했고 탕만은 형님 먼저를 외쳤다. 두 사촌의 우정은 시은이 이해할 수 없는 범주에 있었다. 그 덕에 두 명이 풀 세트를 동시에 구매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 버렸다. 통장에 돈은 쌓여만 가고 서로 형님 먼저, 아우 먼저를 하기 바빴다.
이런 내막을 유나는 모르고 있었지만, 오히려 모르기 때문에 허둥지둥 허겁지겁 팀을 꾸렸다.
‘어떻게든 돌아간다.’
정보꾼 세 명이 모여서 그들에게 맞는 공략 콘셉트를 잡았다. 이를 훈련에서 보여줘서 산박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생각이었다.
* * *
부르르릉!
포터 6가 매연을 내뿜고, 그 속에서 마력 가루가 흩날렸다. 포트 6에는 석유 자원을 최대한 적게 사용하기 위한 마력 장비가 존재했다. 특히나 던전 사용자들에게 인기였는데, 본인들이 힘을 부여할 수 있어서였다. 1톤 트럭 주제에 3톤도 견딜 수 있는 무지막지한 차량은 큰 인기를 지닌 차량이었다.
루둔표(婁鈍彪)는 트럭을 타고 세종시로 향했다. 그곳에 있는 야산에서 훈련이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도중에 종휼간(鍾譎癎)도 픽업했다.
“아이고오오오, 가음사합니다아~”
그가 노래를 부르듯이 말을 하며 올라탔다. 구수했다. 또 2천 원을 꺼내서 건넸다.
“아따, 종 사장님은 어찌 이렇게 큰돈을 주십니까. 허허…….”
“허허, 빌딩 한 채 살 돈이긴 한데, 저한테는 껌값입니다. 껄! 껄껄! 꺼르껄껄!”
둔표는 그걸 호들갑 떨면서 받아 들었다. 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천 원은 기름값으로 주는 게 미덕이었다. 휼간은 정보꾼에 던전 사용자라 2천 원이나 줄 수 있었다. 둘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움직였다.
트로트곡이 흐르며 스마트폰이 울렸다. 휼간은 둔표의 폰의 패턴까지 알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어, 유나야!”
스피커로 변경하자 유나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절대로 늦으면 안 돼!
“알았다. 끊어라.”
운전하는 루둔표가 칼같이 잘랐다.
―지금 두 번 없을 기회라고!
“끊어라, 끊어. 운전하는 데 방해된다.”
―죽을래?
“어허, 형님한테 말하는 게 싸가지가 너무 없다. 그 산박이라는 사람도 알고 있나?”
―오면 디졌어.
“아, 그만 좀 해라. 우리 최대한 빨리 내려갈 테니까, 너도 준비 잘하고 있어라. 미리 얘기했던 공략 콘셉트도 한 번 더 읽고. 거의 그거 발표하러 가는 거잖아. 그 사람도 너한테 거의 팀 관리를 맡겼더만.”
―알았어.
“네가 잘해야 한다.”
―응.
통화가 끊겼다. 5년째 이어지는 사이였기에 유나에게 매료된 듯한 모습은 전혀 없었다. 시작은 외모 때문에 얽혔지만 이제 그것도 많이 희석되어 버렸다. 나이 차이도 심했고, 무엇보다 둔표와 휼간은 연애 세포가 죽은 자들이었다. 여자와 손잡은 지가 오래였다. 그런데도 재미난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옆구리가 허전하면 왼손으로 해소해서 현자가 되어 버리면 그것도 순간에 불과했다.
야산의 공터에서 산박은 처음으로 두 사람을 마주했다.
“반갑습니다. 태산박이라고 합니다.”
“루둔표라고 합니다. 인물이 훤하시네요.”
“종휼간입니다. 젊으신데 대단하십니다.”
사회생활의 기본이 되어있는 두 사람이었다. 조기 축구 팀에도 소속되어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두 사람이다. 이 정도는 기본이다. 웃는 낯과 기분 좋은 말로 분위기를 온화하게 만들 수 있는 건 대단한 일이라는 걸 잘 알았다.
“칭찬이 과하십니다. 혹시 팀명은 이미 정하셨나요?”
모두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일단 팀 특색이 있다고 유나 씨가 말씀하셨으니까 그것부터 보고 싶습니다.”
비밀로 당일에 말해 준다고 했기에 산박은 안달이 난 것처럼 굴었다. 그게 세 사람이 가진 열정을 더욱 불태우는 장작이 되었다.
“잠시만요. 오빠들은 의자랑 테이블 좀…….”
“오케이.”
“너는 뭐 하려고?”
“아니! 난 발표하잖아!!”
“에헤이. 또 그런다.”
티격태격하면서 중재도 한다. 3인의 색채가 서로 어울렸다. 그 모습에 산박은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팀 내에서 분란은 안 일어날 것 같았다. 그건 큰 재산이었다. 괜히 학연, 지연, 혈연으로 이루어진 팀들이 많은 게 아니었다. 남들은 썩었다, 썩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다른 요인에 의해서 유대 관계를 보유하고 있다는 건 강력한 이점이었다. 이들은 그 삼 요소에 비빌 수는 없었지만 세월로 묶인 인연이 있었다.
‘플러스 1점.’
벌써 1점을 먹고 들어갔다.
산박은 의자에 앉아 유나가 주는 유인물을 받았다. 컬러 인쇄까지 한 걸 보니 단단히 준비한 듯했다. 키워드로 보이는 단어에 색깔이 들어가 있었다. 매우 상세하게 적은 데다 요약해서도 볼 수 있도록 키워드를 색칠한 건 제법이었다.
“저희들의 던전 콘셉트는 오버시어(Overseer)입니다.”
“천리안이지.”
둔표가 툭 내뱉었다. 유나가 그를 표독스럽게 노려봤다.
“계속 말해 보세요.”
산박의 말에 유나가 다시 눈을 돌렸다.
“던전 자체를 관리하에 두고 공략하는 거예요.”
정보꾼이었기에 던전에 아주 빠삭했다. 모두가 정보를 구매한 팀장보다도 뛰어난 정보를 현장에서 내뱉을 수 있었다.
정보를 구매해도 그걸 외우지 않는 이상은 던전에 적용하기 어려웠다. 던전과 관련한 정보를 쓴 문자 또한 던전 내에서 금지되기 때문이었다. 왜 그런지는 몰랐다. 그래서 커닝 페이퍼가 안 통했다. 오로지 외워서 가야 했다. 산박이 무식하게 던전 정보를 달달달 외우는 시간을 가지는 이유였다. 남들보다 잠잘 시간도 부족한 게 그의 현재 상황이었다.
‘오버시어라…….’
머리에 확 들어오는 콘셉트였다.
“저레벨 던전에 대한 완벽한 지식을 토대로 던전을 공략하고, 또 최대한 거리를 두고 적을 죽여 나가서 차근차근 던전을 점령하여 클리어하는 게 저희 팀입니다.”
큰 줄기를 유나가 이어서 말했다.
‘어려울 텐데.’
제대로 된 정석 팀으로도 휘청거리는 게 던전이었다. 특히 0레벨과 1레벨 던전의 차이는 극심했고, 1레벨 던전끼리도 격차가 컸다. 그 모든 것에 대처할 수 있을 거라 여겨지지 않았다.
그런 산박을 본 유나가 자신 있는 표정을 지었다.
“다음 장을 보시면 저희들의 기술이 적혀 있습니다. 이것부터 보시죠.”
산박이 종이를 넘겼다. 그곳엔 그들의 능력치가 쓰여 있었다. 가장 먼저 송유나에 대한 것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를 훑은 산박이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들은 모두 장거리에 특화가 되어 있어요. 암살자인 저조차도 장거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