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화 (63/270)
  • 63화

    <새로운 팀>

    표확곡은 경찰의 인도하에 잡혀갔고,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의 부탁을 받아 산박과 충호 또한 함께 경찰소로 향해야 했다. 그들이 나왔을 때는 세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적고, 또 적고, 말하고 또 말해서였다. 마치 뭔가를 캐내기 위해서 돈을 받은 경찰처럼 굴었다.

    ‘그럴 만도 하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러운 건 표확곡이 모든 것에 의욕을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대부분의 죄는 그가 짊어지고 갈 터였다.

    경찰서 밖에는 고급 세단을 세워놓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이들이 여럿 보였다. 이미 인상 파악을 해뒀는지 산박과 충호가 나오자 그들이 동시에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쫄 것 없어요.”

    산박은 그리 말하며 경찰서를 떠났다.

    “표확곡 개새끼가 정말 에미가 돌아 버렸나 봅니다.”

    세종일산에 속해있는 놈이 그렇게 지껄였다.

    “모르지. 저 두 놈들 기억은 해놔.”

    “예.”

    “담배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쓰냐?”

    “1레벨 고수 하나 떠나 버렸으니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여자 가슴이나 주무르러 가야겠다. 운전대 잡어.”

    “예.”

    경찰서에서 고급차가 우르르 빠져나갔다. 그들은 거침없이 클랙슨을 울리며 도로에 진입했다. 모든 차가 빨간불이 들어온 것처럼 멈췄다. 대부분이 알고 있었다. 고급차가 우르르 몰려다닐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렇기에 간댕이가 쥐 새끼처럼 작아지며 브레이크를 밟고 있었다.

    * * *

    산박과 충호는 술자리를 가졌다.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충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죽인 건 확곡이었지만 그들 또한 보이지 않는 위협을 맛봤기 때문이었다. 술이 제대로 맛있었다. 하지만 정신은 지나칠 정도로 말짱했다.

    “실업 팀도 잘 보고 가야 하는데, 그런 곳일 줄은 몰랐어요.”

    “예, 예. 압니다.”

    잔이 새롭게 돌았다. 산박은 거침없이 쌈을 싸서 입에 한입 크게 가져갔다. 경쟁적으로 고기를 먹으며 두 사람은 서로가 던전에서 얻은 걸 말했다.

    “전 레벨 업을 위해서 아껴 두었죠.”

    “아! 그렇습니까? 전 무위를 하나 얻었습니다.”

    그전의 던전에서는 정교한 검술을 획득했다. 검 관련 무기의 제어력이 증가하는 기술이었다.

    “어떤 무위를 얻었는데요?”

    “쐐기라고 불리는 순무입니다. 상대의 빈틈에 찔러 넣는 겁니다.”

    찌르기 강화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 얻은 그림자 기사의 1레벨 기술, 주문, 무위를 봤을 때 거기서 거기였다.

    “저도 팀장님처럼 레벨 업을 노려야겠습니다.”

    “원체 덩치가 좋으시니 오히려 그게 좋을 겁니다.”

    산박도 동의해 줬다. 아무리 단련되어도 1레벨 수준으로는 갑작스러운 상황에서의 공격에 허망하게 죽기 좋았다. 더 높은 레벨의, 더 강력한 힘을 노리는 게 좋았다. 이번 돈노금의 무력은 이를 확인시켜 줬다.

    “보다 더 높은 세상을 향해서.”

    산박이 제법 취해서 낯간지러운 말을 하며 잔을 들어 올렸다.

    짠!

    잔과 잔이 부딪쳤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술을 기울이며 자신을 채찍질한다. 또는 요행을 기다리기도 했다.

    산박이 자신의 창고 앞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작은 체구의 여자가 튀어나왔다.

    붉은 머리카락이 산박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칼같이 잘라냈고, 관리를 아주 잘해 놨는지 찰랑거렸다. 검은 재킷에 아래로는 붉은색 원피스 자락이 보였다. 그 아래의 다리는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불투명한 스타킹이었고, 겨울용이었다. 추위를 제법 타는 듯했다.

    “송유나 씨.”

    산박이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오늘 던전 클리어하셨잖아요.”

    언제 나올지 모르는 던전의 클리어 여부를 알고 있다는 건 유나가 얼마나 불법적인 일에 발을 담그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다시는 찾아오지 마세요.”

    산박이 매정하게 창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유나가 이를 막아섰다. 조그마한 체격이 길을 막았는데, 너무나도 약해 보였다.

    “비키세요.”

    “자, 잠깐만요!”

    유나가 양팔을 쭉 벌렸다. 산박은 한숨을 쉬며 직접 말했다.

    “그쪽은 불법적인 움직임을 너무 많이 했어요. 제가 그런 분을 팀원으로 왜 받아줘요?”

    “1레벨 던전 정보를 줬잖아요!”

    “그래서 깔끔하게 40만 원 드렸죠. 뭔가가 더 있나요?”

    “세종일산에 대한 정보는요?”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고 무식하게 보내놓고 여기서 대가를 요구한다? 그런 사람을 제가 왜 팀원으로 받아들여야 하죠?”

    정론이었다. 유나는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음험했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볼 수 있었다.

    “후회하실지도 몰라요. 전 굉장한 실력을 지니고 있어요.”

    산박이 손을 휘적거렸다. 더는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먹어봤자 독이었다.

    “산박 씨가 지냈던 고아원은 수입도 없으면서 잘만 유지되었죠. 어떻게 그랬을까요?”

    “신부님의 수완이죠.”

    산박이 어깨를 으쓱하며 능청스럽게 답했다. 저렇게 압박을 해봤자 제 발 저릴 산박이 아니었다. 유나가 입을 꾹 다물었다.

    ‘만약에 고아원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알아도 아쉬울 게 없다.’

    모든 걸 짊어지고 죽은 신부 덕분에 산박은 새로운 삶을 되찾았다. 신부를 탓할 수는 있어도 산박을 표적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어린애가 뭘 하겠어.’

    뭔가 낌새라도 있었으면 유나도 달라붙었을 터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한 마음은 있지만, 죄송하지만 유나 씨는 저희 팀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에요.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가세요.”

    “전 정말 안 들킬 자신 있어요. 평생 안 걸릴 거예요. 정보꾼 접으라면 접을게요. 어떤 기업도 신경 쓰지 않아요. 진짜예요.”

    “고레벨 던전 정보를 가져갔는데, 그걸 누가 믿어요?”

    “한 번도 팔아본 적이 없어요. 사라고 해도 모두 고레벨 던전 정보는 필요 없다고 했단 말이에요!”

    산박은 그대로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유나가 바짝 따라붙었다. 산박은 대문 사이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발 하나를 틈에 끼워놓고 있었다.

    “이러다 다쳐요. 물러갈 생각이 없으세요?”

    “네. 전 던전 사용자가 되어야 해요. 이대로는 비전이 없어요.”

    “경험 쌓아서 다시 오세요.”

    산박이 더욱 힘을 주며 문을 닫으려 했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유나는 이제는 팔까지 집어넣었다. 산박이 얼마나 매정한 자인지를 몰랐다.

    ‘떼쓰면 다 되는 줄 아네.’

    “아, 덥다.”

    그러고 보니 복장도 제법 골이 파였다. 뒷골목에 꼭꼭 숨어 있었던 이유도 이 차림 때문이리라. 가죽점퍼 지퍼가 아래로 흘러내렸고, 붉은색 원피스가 보였다.

    “몸으로 때우겠다?”

    “별로예요? 작아서?”

    산박이 유나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하흥!”

    유나는 몸을 크게 움츠렸지만 문에 부딪힐 정도로 격렬하게 반항했을 뿐 물러서지는 않았다.

    “아아, 손손손!”

    산박이 힘으로 밀어붙이자 그녀가 소리를 크게 냈다.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일순 산박의 마음에 살의가 깃들었다.

    ‘죽여야 하나.’

    불순분자를 팀 내부에 넣을 생각은 없었다. 언제든 흠이 될 게 뻔했고, 이런 종류의 불법을 저지른 자는 양심도 닳아 있어서 던전에서 수틀리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직업은 뭡니까?”

    “암살자요.”

    “…….”

    산박이 문을 닫으려고 힘을 줬다. 송유나는 버텼다.

    “정말, 한 번만 써보세요. 진짜로 잘할 자신 있어요.”

    “좋아요. 임시 팀원으로 받아들일게요.”

    산박은 의외로 그녀를 받아들여 줬다. 그녀는 거듭 감사를 표했다.

    “언제 가나요? 1레벨 던전!”

    그녀가 발랄하게 말했다. 산박은 나중에 알려 주겠다고 했다.

    그것으로 유나는 손쉽게 돌아갔다. 산박은 믿음직한 팀장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의 말은 강철처럼 묵직하고 믿을 만하다고 여겼다.

    유나가 떠나가고 그제야 산박은 냉수를 마셨다. 제법 취기가 있었는데 싹 사라져 있었다.

    ‘별 이상한 게 들러붙었네.’

    임시로 해놓고, 안 부르면 그만이었다. 산박은 잠을 청했다. 저런 막장 짓을 서슴지 않는 사람은 뭘 해도 진상이었고 밉상이었다.

    ‘얼마 안 있어서 깨닫게 되겠지.’

    발악해도 안 되는 일이 있는 걸 알 것이다. 다만, 그런데도 산박은 눈을 감은 채 유나가 흘리는 피를 생각했다.

    그녀는 그의 무서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큰 이점이었다.

    * * *

    며칠 뒤에 산박은 인상을 팍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바로 옆집에 이사를 했어요! 떡 좀 드세요!”

    송유나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해맑게 웃었다. 햇빛이 비쳐 백옥 같은 피부가 더욱 새하얗게 변했다.

    시루떡을 받은 산박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자 유나는 몸을 산박에게 쑥 내밀며 퉁 치려고 했지만 머리가 잡혔다.

    “아잉.”

    “미쳤어요?”

    “진짜 저는 이 팀이 마음에 든다고요. 다른 팀장은 다리 벌리는 것만 원하고, 실업 팀이나 의뢰 팀은 암살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요.”

    “그건 나도 똑같아요. 임시 팀원으로 해준다고 했잖아요.”

    “봐요! 앞뒤가 다르잖아요! 분명 평생 안 불러줬을 거야!”

    “왜 그렇게 집착해요?”

    “이만한 팀이 없다니까요. 그리고 그 시은 씨도 마녀인데 팀이잖아요.”

    함께 던전에서 살인을 저질렀을 때부터 시은과는 공동 운명체나 다름없어서 데리고 있는 것뿐이었다. 물론 실력도 출중했다. 여자의 몸으로 원시 석궁을 당길 줄 알았다. 전사로서의 역량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유나 씨는 아무리 봐도 전투력이 있을지…….”

    “기습은 잘하는데요.”

    “됐어요.”

    앞을 든든히 막아줄 전사가 더 이득이었다.

    ‘완전히 맛이 가버렸구나.’

    산박이 지내는 창고의 옆에 그냥 불쑥 입주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삿짐을 옮기는 차량에는 묵직한 생활 가전도 있었다. 간단히 온 게 아니었다.

    ‘이 여자, 완전히 올인 했다.’

    황당했다. 산박의 실패이기도 했다. 이 정도까지 할 줄은 몰랐다.

    “일심동체!”

    유나가 포즈를 취했지만 산박은 진지한 눈으로 그녀를 창고 안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딱 마주 보고 앉았다.

    “대단한데……. 어떻게 이사 올 생각을 했어요?”

    산박의 물음에 유나가 입을 열었다. 밝은 분홍색 입술은 도톰했다.

    “생각보다 쉽게 임시 팀원으로 받아 주셔서요. 그래서 더 강하게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죠. 암살자인데 그것도 너무 쉽게 넘어갔고요.”

    술에 취해서였다. 산박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그리고 유나에게는 운이 좋았다. 술 취한 산박과 실랑이를 벌였고, 그 본심을 읽을 수 있었다.

    “좋습니다.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식으로 굴릴 겁니다.”

    “어떻게요?”

    “2팀을 만들 겁니다. 저도 거기에 속하겠지만, 주는 아니고 보조입니다.”

    “제가 꾸리라는 건가요?”

    “일정 부분 도와주겠지만, 제가 없을 때도 있을 겁니다.”

    “그건 좀…….”

    유나가 말을 흐렸다. 그녀가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였다. 새로운 팀을 만들겠다니? 황당했다.

    “너무 말씀이 다르신데요.”

    “저도 가끔 돕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신분증 새로 파세요. 그 신분증 저한테 가지고 오시고요. 정보꾼 송유나는 저와 일을 하지 않는 관계여야 합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싫으면 없던 일로…….”

    산박이 스윽 상체를 돌리자 송유나가 호들갑을 떨었다. 조그마한 체구를 붕붕 흔들었다.

    “아아아! 알았어요! 하지만 정말 많이 도와주셔야 해요! 팀장도 맡아 주시고요!”

    “아뇨. 중요한 건 제가 판단하겠지만 2팀 팀장은 유나 씨가 맡으세요. 가장 먼저 할 일은 풀 세트를 구매하는 겁니다. 다음 이야기는 그때 이어서 하겠습니다.”

    “예? 못해도 200만 원 이상이 드는 일인데요?”

    암살자는 특히나 돈이 드는 직업이었다. 그러나 산박은 매정했다.

    “싫으면 돌아가세요.”

    “알았어요. 다른 건 더 말씀하실 게 있어요?”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말 것. 폰도 새롭게 해서 저한테 문자로 보내 주세요.”

    “네.”

    유나의 행동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산박은 어쩌면 그녀를 너무 과소평가한 것일지도 몰랐다. 산박은 그런 유나의 행동력을 쓰기로 했다. 유나가 두 번째 팀의 운영을 아주 잘할 것이라 기대했다.

    무식하게 이사까지 와서 산박을 압박했다. 그 덕에 유나의 특출난 부분을 깨달았고, 산박은 2팀을 그녀가 운용토록 하기로 했다. 그녀는 2팀의 팀원이고 산박은 팀장을 하기로 했지만, 실제로는 둘 다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겠지만 전 전혀 노출되지 않을 겁니다. 전체적인 판단은 제가 하겠지만 표면상 2팀장을 맡아 주세요.”

    “알았어요.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게 최선이라면… 이 정도로 만족할게요.”

    유나가 그제야 수긍했다. 몇 번이나 선을 넘었지만 산박이 받아줬기 때문이었다. 산박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산박은 밖으로 총총 나가는 유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저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2팀을 어떻게 하느냐는 저 추진력에 달렸다. 정신 나간 민폐녀에게 주어진 시련이었다. 그걸 해결한다면 산박은 사람을 하나 얻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개똥도 쓰기 나름이었다.

    ‘시간을 두고 결정해야겠다.’

    그녀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서 그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터였다. 즉흥적이지만,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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