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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61/270)

61화

실패한 괴물은 양팔과 무식한 체중으로 밀고 들어오는 놈이었다. 양팔을 이동 수단으로 쓰는 모습만 봐도 뒷다리가 없어 보였다. 이를 잘 이용해야 했다.

돈 대리는 전투적인 면에서는 경험이 풍부했기에 ‘답’을 알고 있었다. 그는 순식간에 명령을 하달했다.

“충호는 놈이 팔을 휘적거리지 못하게 최대한 들러붙어야 한다! 몸을 돌리지도 못하게 힘 싸움을 해줘야 해!”

“예!”

그보다 덩치가 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방패를 이용해 최대한 엉겨 붙어야 했다.

“난 충호의 뒤에서 장창으로 놈에게 최대한 피해를 줄 생각이다! 물론 도움도 주겠다.”

충호가 무너지면 전투는 그냥 끝이 난다. 실패한 괴물은 몸에서 오염물을 투척, 배설했기 때문에 중량이 줄어든 만큼 빨라졌다. 여기서 더는 도망칠 수 없었다. 따라잡혀서 짓눌려 물어뜯길 뿐이었다.

승부수를 띄우기 딱 좋은 순간에 돈 대리가 멈추고 결전을 준비했다. 전술적 시야는 좁았지만 이런 결전의 때를 정확하게 맞추는 건 돈 대리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숱하게 겪어서였다.

“산박! 격돌하는 순간에 놈의 머리통에 집중성탄을 때려 넣어라. 그리고 바로 환도를 뽑아 들고 측면으로 향해서 팔을 노려! 양팔만 무너뜨리면 우리의 승리다!”

“예!”

지금은 협력할 때였다. 오더를 최대한 들어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호랑이로 변해서 등을 점하여 목을 물어뜯고 싶었지만 호랑이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실패한 괴물의 약점인 양팔을 노리는 것이 나쁘지 않은 해결법이었다. 인간의 형태로 싸웠을 때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었다.

산박의 눈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영혼의 힘이 증폭되고, 그 힘의 아주 극히 일부가 주문으로 흘러들어 갔다. 작은 별의 힘이 응축되었다. 하지만 불완전했다. 그렇기에 거미줄처럼 구멍이 숭숭 뚫렸다. 그곳을 메우기 위해서 별빛탄 다섯 개가 쑥쑥 들어가서 단단히 자리 잡혔고 이내 하나로 뭉쳐졌다.

쿠르르륵!

실패한 괴물이 양팔을 이용해서 마치 노를 젓듯이 진창에서 미끄러졌다. 속력이 상당했다. 대신 체중은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통로 하나를 틀어막던 거대한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속도감이… 장난이 아니다!’

충호는 목이 뻐근함을 느꼈다. 상상 이상의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왔다.

‘이거 안 되겠는데.’

산박 또한 마른침을 삼켰다.

“그냥 지금 쏴!”

돈 대리의 외침에 산박은 지체하지 않고 집중성탄을 쐈다. 머리가 그대로 관통당했다. 실패한 괴물이 자신의 속력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옆으로 쓰러져 한 바퀴를 굴렀다. 팔로 본능적으로 흙을 짚으면서 속도를 줄여 나갔다.

‘다행이다!’

“쿠웨에에에엑!”

머리를 관통당했음에도 실패한 괴물은 더욱 괴성을 질렀다. 입에서 핥아 먹고 빨아 먹어 댔던 썩은 액이 토해졌다. 그래서 매우 기괴했다.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기도 했지만, 놈의 움직임에서는 활력이 크게 느껴졌다.

“아직이다! 방심하지 마라!”

경험적으로 놈의 죽어가는 모습이 가짜임을 알고 있는 돈 대리가 외쳤다. 그리고 그런 놈에게 충호가 그대로 돌진했다. 몸을 가누지 못할 때 미리 들러붙는 게 이득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돈 대리도 냉큼 달려가려고 했지만 후방에서 들리는 오염물의 소리에 몸을 돌려서 장창으로 몇 놈을 죽여야 했다. 그사이에 충호가 그대로 몸을 부딪쳤다. 실패한 괴물이 기우뚱거렸지만, 그건 이미 타격을 받고 있어서였다. 언제 충호의 힘이 막힐지 모를 일이었다. 그때가 되면 충호는 더더욱 도박수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크게 부상을 당할지도 모르지!’

산박이 거침없이 내달렸다. 동시에 도망치느라 던지지 못한 화염 물약을 힘껏 위로 던졌다.

쨍그랑, 화르르르!

단번에 실패한 괴물의 어깨 위쪽이 타올랐다.

“크아아아!”

놈이 더욱 발광했다.

대장삵은 몸을 빠르게 가누고 있는 놈에게 굉장히 민첩하게 올라타서 위로 향했다. 뭘 하려는 건지 잘 몰랐지만 산박에게 남은 힘으로 공격 마법을 쓸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사이에 산박은 놈의 우회하며 덤벼드는 오염물을 몸으로 밀쳐냈다.

“구어어어!”

하급 언데드인 좀비나 해골보다 백병전을 잘할 수 없는 놈들이었다. 이런 놈들에게 환도를 휘두르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냥 무식하게 밀고 들어가는 게 옳았다.

“흐아압!”

산박은 힘을 모아서 땅을 단단하게 받치고 있는 괴물의 팔, 겨드랑이 쪽을 깊게 찔렀다. 환도가 너무나도 쉽게 들어갔고, 뼈가 살짝 부딪히는 감도 손으로 전해져 왔다. 동시에 그곳에서 오물이 쏟아져 나와서 산박을 잔뜩 뒤덮었다.

“크!”

산박은 뒤로 물러났다. 뭔가가 그를 덮쳤지만 팔뚝으로 후려쳐서 떨어뜨렸다. 손으로 얼굴을 닦았다. 하지만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의외의 복병이었다.

‘이래서 나보고 치명상을 입히라고 했구나.’

눈을 감은 채 덤벼드는 오염물들은 정말 까다로운 존재였다. 산박은 어떻게든 냉정해지려고 했지만 무리였다.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고, 주변이 어찌 되는지 몰랐다.

순식간에 멈춰서 경계 태세에 들어간 산박을 향해 오염물이 다섯 마리, 여덟 마리가 모여드는 게 대장삵의 눈에 들어왔다. 파도 송곳니 마법으로 멀쩡한 놈의 반대편 측면을 흔들려고 했는데, 산박이 둘러싸여서 죽을지도 몰랐다. 팔 하나, 다리 하나 움직일 수 없게 되면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형편없이 보여도 체중이 있고, 움직이는 놈들이었다. 쓰러지면 정말 무력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대장삵은 그대로 튀어 올라 천장에 배를 보이고 반원을 그리며 몸을 뒤집었다. 땅으로 정확하게 착지하며 산박의 힘을 빌려 파도 송곳니 마법을 사용했다. 파도가 대장삵을 둘러싸며 보호했고 동시에 적을 향해 쇄도했다.

쏴아아아!

파도가 오염물을 휩쓸었다. 산박도 휩쓸렸다는 소리였다. 절로 욕 소리가 나왔지만, 덕분에 산박은 눈을 뜰 수가 있었다.

“좋았어!”

산박은 허우적거리는 놈들을 서둘러 처리했다.

그사이에 돈 대리는 장창으로 괴물의 오른팔을 차츰차츰 갉아먹었고 충호는 정신없이 방패로 실패한 괴물이 크게 움직이며 공격하려는 걸 막아섰다.

팔을 크게 휘적거리려면 시작부터 충호와 부딪쳐야 했다. 몸으로 밀면 밀려나겠지만 발을 놀려 밀어내는 힘을 대각선으로 흘려서 멀리 밀려나지 않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진창에 뒷다리가 없는 실패한 괴물은 중량이 줄어들고 나서는 충호를 넘어뜨릴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하체가 발달한 충호였다. 게다가 기술로 전사의 하체를 보유하고 있어 더욱 곰 같은 덩치를 지니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버틸 만하다!’

산박이 왼쪽 팔의 겨드랑이를 성공적으로 공격했기에 가능한 균형이었다. 또한 돈 대리의 장창은 실로 귀신같았다. 계속해서 남은 팔을 공략해 나갔고, 살점을 떨어뜨리고 뼈를 부숴서 팔에 들러붙어 있는 체중을 줄여 나갔다.

집중성탄에서부터 시작된 불균형을 제대로 잡기 전에 많은 타격을 입고 화염 물약에 타오르던 실패한 괴물은 제대로 된 시야를 확보하지도 못했다. 10분 동안 발악했지만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엄청난 생명력이다.’

산박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진짜 괴물과 싸운 기분이었다. 그만큼 생명력이 인간보다 수십 배 강했다. 끝없이 타오르는 화염을 꺼트리는 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좀 쉬고 풀 플레이트 아머를 회수한 다음에 다시 진행하자.”

돈 대리가 숨을 거칠게 토해내며 말했다. 반대는 없었다. 모두 무딘 칼로 동물을 도축한 것처럼 진이 빠져 있었다. 다시 수로를 건너야 한다는 게 너무 거지 같았다. 그리고 현재 체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정이 넘어서 회복한 힘으로 물을 진정시키고 넘어가면 됩니다.”

“알고 있다.”

산박의 조언에 돈 대리는 짧게 대답했다. 큰 전투를 성공적으로 끝냈다고 그는 단번에 산박을 함부로 대하기 시작했다. 가장 힘든 일은 산박과 충호가 했음에도 기고만장해 있었다.

‘마음에 안 드는 놈이야.’

무엇보다 확곡, 그를 너무 쉽게 버렸다. 매우 이기적인 팀장이었다.

허나 이를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적어도 그의 전투 경험은 믿음직했다. 이 던전을 공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또한 그가 지닌 완장과 그의 뒤에 있는 기업은 조금이라도 긁어서 굳이 부스럼을 낼 필요가 없었다.

자정 전까지 그들은 대기했다. 배가 많이 고팠지만 별수 없었다. 배낭도 두고 왔기 때문이다.

누구도 확곡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단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혀에 담는 순간 돈 대리가 싫어할 게 분명했다. 그 정도로 눈치 없는 놈은 이 자리에 없었다. 대장삵의 경우 산박이 미리 귓속말로 단단히 일러뒀다. 명예니 X이니 지랄 염병하는 대장삵은 요주의 인물이었다.

자정이 지나기 전에 미리 휴식을 하고 잠도 잤기 때문에 자정이 지나서도 어렵지 않게 움직일 수 있었다. 사실 던전 내에서 시간은 별 필요가 없었다. 힘이 충전될 때만 ‘하루가 지났구나’ 하고 넘기는 정도에 불과했다.

“아주 큰 고비를 넘겼다.”

배낭에 잘 싸놨던 육포를 질겅질겅 먹으며 돈 대리가 구구절절 말했다. 그건 마치 변명처럼 들렸다.

“그 실패한 괴물은 오물 던전에 단 한 마리만 있는 놈이다. 그걸 잡았으니 더는 나타나지 않는다. 확곡의 희생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안 그래?”

다른 이들의 의견도 물었다. 반강제나 다름없었고,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특히나 말투 자체가 공격적이었다. 충호보다 산박이 먼저 대답했다.

“예. 그렇죠. 어쩔 수 없었죠.”

“맞는 말입니다.”

충호가 곁눈질로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걸 산박은 알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이 끝나도 그는 팀 옥시모론의 일원이다. 그리고 산박은 그의 팀장이었다.

“근데 세 명이 불완전한 키메라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어렵겠지만, 그래도 해야만 해.”

다분히 직장인다운 판단이었다. 수익을 내야만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습관적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돈 노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게 정상이지만, 일이 이렇게 틀어졌으니까 오염물 생산 시설을 파괴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답지 않은 좋은 판단이었다.

‘불완전한 키메라에 대해서 전투 경험을 쌓았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딱 보면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를 판단할 수 있었다. 그만큼 돈 대리는 불완전한 키메라를 많이 잡았다. 1레벨 던전을 직장처럼 돌아다녔던 그였다.

불완전한 키메라가 가진 전력 때문에 바른 판단을 할 수 있었다. 그건 산박이나 충호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돈 대리가 1레벨 던전에서 계속 살아남아 활동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가 지닌 장점은 전투 경험으로부터 발로되는 강적과의 싸움에서의 생존이었다.

같은 팀원을 버리는 일? 돈 대리에게는 으레 있는 일이었다. 사람을 죽이고도 1레벨 던전을 꾸준히 돌 수 있는 돈 대리는 솔직히 기업에는 좋은 직원이었다. 사람을 구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산업 팀의 안정적인 수입은 그만큼 던전 사용자에게 기대되는 일이었고, 그런 걸 ‘원하는 사람’을 고용하는 건 기업에 손쉬운 일이었다. 경쟁률도 제법 치열했다.

돈 대리의 밑에 있는 직원이 종종 죽는다고 해도 던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인간의 가치는 인류의 위기 속에서 한없이 낮아지는 법이었고, 기업의 힘이 큰 나라에서 인간의 권리는 짓밟히기 마련이었다.

“오염물 생산 시설을 찾는 건 쉽다. 수로 방향을 거꾸로 따라가면 그만이다.”

“수로의 물살이 강하지 않습니까?”

“멍청아, 방향을 따라간다고 했지 수로를 타고 상류로 올라간다고 했냐?”

“죄송합니다.”

충호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산박이 일부러 저러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기분파는 계속해서 기분을 쏟아내서 배출하게 만들어야 한다.’

가만히 좋지 않은 기분이 쌓이도록 만들어 놓으면 갑자기 펑 하고 터지고 그때는 감당이 어려웠다. 꾸준한 배출, 그게 기분파 놈들이 큰 사건을 터트리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쌓이면 더 큰 폭발을 일으킬 뿐이었다.

물론 이게 안 통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건 다혈질+기분파일 경우였다. 산박이 봤을 때 돈 대리는 다혈질은 아니었다. 다혈질이었다면 자연스럽게 이 폭력적인 환경에서 주먹을 써야 했는데 그러지 않기 때문이었다.

상류로 방향을 잡고, 돈 대리의 산업 팀은 그곳으로 나아갔다. 정말 아쉬운 건 오염물에게서 얻을 부산물이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를 다른 것으로 채워야 했다. 그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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