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0/270)
  • 60화

    “꾸에에에엑!”

    실패한 괴물은 돼지 멱따는 소리를 냈다. 거대한 아귀 얼굴에 긴 양팔과 그 뒤로는 돼지처럼 살찌워진 몸을 지니고 있었으며 피부는 주름이 잔뜩 져있었다. 오염물을 어찌나 먹었는지 주름이 펴져서 빵빵한 부분도 있었다.

    “도망쳐! 놈이 오염물을 계속 토해내게 해야 한다!”

    주둥이에서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는 오염물이 많아질수록 실패한 괴물의 덩치는 ‘전체적’으로 줄어들어 갔다. 기이한 현상이었다.

    산박은 정보를 알고 있음에도 혀를 내둘렀다. 덩치가 큰 괴물은 인간으로서는 대적할 수 없는 종류의 적이었다. 그렇기에 1레벨 던전에서는 잘 나오지 않았다. 허나 이런 페널티를 지니고 나타나는 괴물이 있었다. 그게 실패한 괴물이었다. 덩치를 키웠을 때 가장 강력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오염물을 토해내서 크기가 줄어들었다.

    “후욱! 후욱!”

    호흡을 제어하며 네 명 다 달려 나갔다. 산박은 자신이 버려둔 가방을 그냥 지나쳤다. 나중에 다시 회수하면 될 일이었다. 그가 상대하는 적은 지성 종족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버려도 쉽게 되찾을 수 있을 터였다.

    “퉤엣!”

    실패한 괴물의 거대한 주둥이가 모아지고, 탄환처럼 오염물을 뱉어냈다. 오염물은 무시무시한 속력으로 땅과 부딪쳐서 사방으로 비산했다. 오염물의 몸이 길거리에 뱉어진 가래처럼 곤죽이 되었다.

    ‘맞으면 죽는다!’

    산박은 지그재그로 달려 나갔다. 그건 충호도 마찬가지였다. 따로 경고를 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단 한 명, 그러지 않고 도망치는 데만 전념하고 있는 자가 있었다. 모든 걸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그는 직선으로 달리고 있었다.

    “후우욱! 후욱!”

    확곡은 코로 숨을 내뱉으며 계주를 하듯이 자세를 갖추는 데 집중했다. 최대한 빨리 달리기 위함이었다. 가장 마지막에 서고 싶지 않은 이기적인 마음과 살고 싶다는 절박함이 확곡을 필사적으로 달리게 만들었다.

    “퉤에!”

    오염물이 투척되었다. 달리는 확곡을 노렸다. 정확하게 명중하지는 않았다. 약간 빗맞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집채만 한 놈이었다. 그 체격이 줄어들기 전에 뱉어낸 오염물은 사람과 비슷한 체격을 지니고 있었다. 당연히 빗맞아도 달리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대형 사고나 다름없었다.

    “……!”

    단말마의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했다. 확곡 사원은 그저 데굴데굴 굴렀다. 어디를 맞았는지도 몰랐다. 그만큼 엉망진창으로 구르면서 전신에 통증을 느꼈다.

    벌떡!

    “악!”

    바로 일어나려고 했지만 일어서던 무릎이 힘을 잃으며 그대로 땅을 강하게 찍었다. 충격이 다시 한번 그의 몸을 흔들었다.

    쫙.

    식은땀이 전신으로 분비되며 오한이 들고 닭살이 돋았다. 확곡은 손을 더듬거리며 오른 발목을 건드렸다.

    “…….”

    입만 뻐끔거릴 정도로 엄청난 고통이 그를 덮쳤다. 손끝이 벌벌 떨렸다. 이 상태로 움직이면 괴물한테 잡혀서 죽기 전에 쇼크사하는 게 더 빨라 보일 정도였다.

    “버려! 버려, 버려!”

    선두를 달리는 노금 대리가 고함을 질렀다. 실패한 괴물은 오물 던전에 오직 단 한 마리만 나타나는 대형급 괴물이었다. 그렇기에 순식간에 확곡을 버리라는 소리를 할 수 있었다. 이번 도주만 성공하면 다시는 저런 괴물을 안 만날 수 있어서였다.

    “씨이이익. 으으그르으으윽.”

    확곡이 이를 악다문 채로 용을 썼지만 고통에 대한 거대한 공포가 그저 몸의 근육에 힘을 줄 뿐 움직이지는 못하게 만들었다. 옆에서 보면 그저 벌벌 떠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충호 씨!”

    그런 그를 보며 산박이 고함을 질렀다. 노금과 확곡이 저 정도의 관계라면 한쪽을 노려서 던전을 보다 유연하게, 뒤통수 맞지 않고 갈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예!”

    충호가 대답하며 다시 뒤로 되돌아왔다. 그사이에 산박은 혁대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탕만의 고통 이후로 천연 마비 가루를 가지고 온 산박이었다.

    산박은 확곡의 강철 다리 보호구를 잡아당기고 벗겨냈다.

    “아그으으으! 흐흐흐흐흑.”

    확곡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감동? 지랄 개뿔. 겁나게 아파서였다. 산박이 꺾인 발목에 마비 가루를 반쯤 뿌렸다. 피범벅이 된 피부를 통해서 빠르게 환부에 스며들 것이었다. 나머지 반은 확곡의 입으로 가져갔다.

    “입을 여세요!”

    “아흐흐흑.”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말을 해도 근육이 경직되어서 열리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돌출입이라서 손가락을 집어넣어 강제로 열 수 있었다. 앞니의 위와 아래가 딱 맞지 않았고 아랫니가 말랑말랑한 위쪽 잇몸에 닿아 있어서 위를 공략할 수 있었다.

    “됐다! 짊어져서 달려요! 짐은 저 주시고!”

    산박이 서둘러 충호의 짐을 대신 들려고 했지만 충호가 이를 뿌리치며 방패만 건넸다. 환도는 검집에 넣은 지 오래였다. 덩치 큰 놈을 보고 도망을 칠 때부터 냉큼 발 빠르게 집어넣었다.

    “방패만 들어 주세요!”

    “예!”

    충호가 양손을 이용해서 확곡의 몸을 살짝 움직였다. 엎드려 있는 확곡을 옆으로 눕게 하고 허벅지와 겨드랑이에 손을 쑥 집어넣은 다음에 단번에 들어 올려서 어깨에 짊어졌다.

    “후욱! 후욱!”

    ‘와! 힘 봐!’

    산박이 입을 쩍 벌렸다.

    “흐하아압!”

    기합을 지르며 충호가 스피드를 올렸다. 산박은 뒤를 힐끔힐끔 보며 방패로 몇 번이나 오염물을 막아냈다. 그때마다 균형을 잃었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대처를 단단히 한 채로 맞았기 때문이었다.

    쏴아아아!

    그런 산박의 귀에 물살 소리가 들려왔다.

    ‘아, 젠장.’

    전술적 패배. 그것이 이들 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던전 사용자가 군사학을 전공할 리가 없었고, 그런 걸 공부할 리도 없었다.

    산박이 아무리 지혜 스탯이 높아도 확곡이 갑자기 발목을 당했고 거기에 대처하느라 정신을 빼앗겼다. 또한 이 팀의 팀장은 산박이 아니었다. 팀장은 확실히 돈 대리였고, 그는 숙련된 베테랑이었다. 그 때문에 산박은 팀의 활동에 대해서 매우 넓고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았다. 돈 대리 때문에 책임감이 줄어들었다.

    돈 대리는 그들을 기다리기보다는 서둘러 수로를 건너가고 있었다. 어차피 실패한 괴물은 오염물을 토하면 토할수록 작아진다. 계속 도망가는 게 공략법이었다. 그건 현재 할 수 있는 유일한 공략법이었다.

    “제, 제기랄.”

    확곡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는 수로를 건너갈 수 없었다. 돈 대리는 장비까지 다 벗어서 가고 있었다. 오직 무기만 들고 있을 뿐이었다.

    현대적 아이디어를 적용해 풀 플레이트 아머를 홀로 탈부착 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비 가루를 발목에 흡수시키기 위해서 확곡의 다리 보호대를 순식간에 빼낸 것만 봐도 현대의 우월한 아이디어가 가지는 힘이 드러났다. 중세 풀 플레이트 아머라고 해도 구조가 완벽하게 옛날식이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전체적 형태만 그러할 뿐, 세세한 단점은 확실하게 지워진 풀 플레이트 아머였다.

    “뭐 해! 이 개새끼들아! 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돈 대리가 영웅 짓거리를 하는 상병신 새끼들을 욕했다. 물론 충호와 산박은 더는 확곡을 위해서 희생할 생각이 없었다. 산박은 충호의 등 뒤에 들러붙어서 풀 플레이트 아머를 벗겼다. 현 팀에서 최강 전력이라고 ‘추측되어지는’ 돈 대리가 수로를 건너갔기 때문이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무식하게 넘어간 돈 대리는 굉장히 힘든 기색이었다. 그만큼 강해진 물살은 아직도 유지되고 있었다.

    “제발, 제발요. 제발 절 버리지 마세요…….”

    땀으로 범벅이 된 확곡이 땅에 쓰러진 채 애원했다. 오물 던전이 말 그대로 순식간에 사지(死地)가 되어 버렸다. 그 배경에는 당연히 돈 대리가 있었다.

    이번 상황을 통해서 산박은 돈 대리의 많은 걸 간파할 수 있었다. 그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보다 던전의 공략을 냉철하게 이행했다. 그 뿌리에는 대단히 하찮은 재능이 있었다. 겁이 나니까 정석을 논할 수밖에 없었다.

    “살려 주십시오……. 제발, 아직 죽고 싶지 않아요…….”

    확곡이 계속 우는소리를 했다. 그 모습에 대장삵이 그를 실로 불쌍하게 여겼다.

    “이봐, 드루이드. 적어도 마법 한 개는 이놈에게 써주게 해줘.”

    “저 덩치 큰 괴물이 너한테는 안 보이냐? 그나마 느려서 다행이지! 어서 어깨 위로 올라와!”

    산박이 거칠게 대장삵의 목뒤를 잡아서 위로 들어 올렸다. 허나 명예로운 대장삵은 나쁜 놈으로 보이지 않는 확곡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고 싶었다. 버둥거리는 놈을 보며 산박이 신경질을 냈다.

    “하려면 빨리해!”

    추궁은 다음이다. 파보면 분명 먼지가 흘러내릴 게 분명한 확곡이었지만 적어도 대장삵에게 있어서 확곡은 약자일 뿐이었다. 대장삵으로서는 그를 그냥 이렇게 보낼 수 없었다.

    ‘이 녀석이 왜 이러지? 역린인가?’

    전투 상황에서 버려지는 자에 대한 트라우마? 그런 게 있어 보였다. 어찌 되었건 산박은 대장삵에게 하나의 마법을 쓰도록 허락했다.

    “굴러라! 나약한 전사! 어서 굴러서 수로에 빠져! 내가 마법을 써서 호흡을 하게 해주겠다! 생(生)은 그곳에서 움켜쥐도록 해라!”

    “끄으으!”

    확곡이 몸을 굴렸다. 그사이에 충호와 산박이 밧줄을 움켜잡았다. 대장삵이 물의 마법을 사용했다. 확곡의 목에 푸른빛이 감돌았다.

    풍덩!

    그는 거센 물살에 그대로 휩쓸렸다. 대장삵이 서둘러 산박의 어깨 위로 점프해서 발톱을 세워 머리를 부여잡았다.

    ‘윽, 이 새끼.’

    산박이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아까 전에는 밧줄로 묶었지만 이번에는 잡아주는 것이 없었다. 대장삵이 발톱을 강하게 세울 수밖에 없었다.

    “쿠웨에에에에엑!”

    서둘러 달려오던 실패한 괴물이 오염물을 토해 냈다가 다시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그래도 절반의 오염물은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워서 팀을 노렸다.

    “헉헉. 헉.”

    진이 빠진 채로 올라오는 두 사람을 돈 대리가 서둘러 잡아당겼다.

    “잘했다!”

    그가 크게 칭찬했다. 하지만 산박과 충호는 대답할 수도 없었다. 세 사람은 계속 거리를 유지하며 도망쳤고, 실패한 괴물의 덩치가 최소한으로 작아질 때까지 끈질기게 시간을 소비했다.

    “웨에에에엑!”

    “꺼져!”

    도주로에는 당연히 오염물이 또 존재했다. 계속 움직이는 놈들이었다. 처리해도 되돌아가면 있을 수 있었다.

    돈 대리의 장창에 단번에 오염물의 머리통이 터졌다. 질퍽한 소리와 함께 오염물이 그대로 쓰러졌다. 하지만 그 숫자는 점점 늘어만 갔다.

    “허억! 허어억! 허어어어억!”

    충호 때문이었다. 덩치가 크고 전사의 육체를 지녔기에 마라토너처럼 오랜 시간을 달릴 수 없었다. 충호는 걸쭉한 침을 가래 뱉듯이 토해냈다. 결국 팀 전체의 이동 속도가 느려졌다. 분대의 속력은 가장 이동 속도가 낮은 자의 속력으로 결정된다.

    “꾸애애애애애애액!!”

    실패한 괴물이 고함을 내지르며 계속 도망치는 침입자를 향해 분통을 터트렸다. 그 소란 소리를 들은 오염물이 점점 모여들고 있었다. 산박은 전황이 서서히 나빠지는 걸 느꼈다.

    “이대로는 안 돼.”

    대장삵이 말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충호의 활력을 회복시킬 수 있겠어?”

    산박이 남은 힘을 가늠했다.

    “집중성탄은 남겨둬야 해.”

    대장삵의 판단. 거기에 산박도 동의했다. 결국, 충호의 정신력에 달려 있었다.

    “충호 씨, 방패를 버려요!”

    그 말에 돈 대리가 화딱지를 냈다.

    “뭔 개소리야! 아무리 몸집이 작아져도!”

    콱!

    장창이 횃불의 범위에 들어온 오염물을 정확하게 꿰어냈다. 창질 하나는 기가 막혔다.

    “실패한 괴물의 덩치는 크다! 집중성탄 하나만으로는 부족해!”

    뭐든지 부족했다.

    아슬아슬한 균형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모두가 충호가 위태로운 걸 보고 더욱 앞서서 오염물을 미리 처리했기 때문이었다.

    “허억! 허어억!”

    충호도 본인을 잘 챙겼다. 진창 지대에 들어와서도 단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았다.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넘어지지 않았다는 게 중요했다.

    “됐다! 숨을 골라라!”

    그제야 충호가 멈춰 섰다. 당장이라도 허리가 땅으로 굽어질 것 같았지만 그는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눈이 핑 돌았다. 하지만 오히려 이게 더 확실하게 호흡을 정돈할 수 있었다.

    “치료수도 마셔요.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을 거예요.”

    산박이 치료수 뚜껑까지 직접 열어서 건네줬다.

    창병인 돈 대리는 결코 최선두에 설 수가 없었다. 서더라도 일순간 가능했고, 상대의 체급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야 했다. 실패한 괴물을 상대로는 좋지 않았다.

    ‘씨벌.’

    충호는 거침없이 다가오는 실패한 괴물을 바라보았다. 자신보다 머리 두 개는 큰 놈이었다. 절로 겁이 났지만 그는 우직하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풀 플레이트 아머 하나 없는 복장이었지만 거침없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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