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화 (59/270)
  • 59화

    * * *

    “끄어어어어어어!!”

    벽에 들러붙어 있던 오염 덩어리에서 얼굴이 불룩 튀어나오더니 고함을 내질렀다. 충호가 놀라서 방패를 휘둘렀다.

    철퍽!

    얼굴이 툭 하고 끊어져서 바닥에 떨어졌다. 뻐끔거리던 오염물이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고 벽에 들러붙어 있던 게 흐물거려지며 축 내려앉아서 바닥에 흘러내렸다. 그나마 몸을 움켜쥐고 있던 힘이 빠져서 내부에 있던 썩은 체액과 오물이 사방으로 번졌다. 고약한 냄새와 동반된 독가스 또한 주변 대기로 퍼져 나갔다.

    “콜록.”

    충호가 기침 소리를 냈다. 오염물이 확실하게 산업 팀의 체력을 빼앗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들은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던전의 공기는 바람 한 점 없이 정체되어 있었기에 독가스를 피하려면 자리를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 곳에서든지 놈들을 볼 수 있었다. 종종 천장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하반신은 없고 상반신만 있는 놈들이었다. 그 덕에 노련한 노금 대리조차도 천장에 떨어진 놈 때문에 피해를 보기도 했다.

    “빌어먹을! 더러운 새끼들!”

    천장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횃불의 범위에 닿지 않았다. 그렇기에 항상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라면 오염물은 전혀 공격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산박을 제외하고 모두 풀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하고 있어서이기도 했고, 오염물은 무기를 손에 쥘 수가 없었다.

    “으으윽!”

    물론 그렇다고 해도 오물이 매우 위협적인 독임은 틀림없었다. 천장에서 떨어진 놈을 짓이겨 버리고 노금 대리가 눈을 찌푸렸다. 그는 서둘러 대장삵이 주는 물로 세수했다.

    ‘대단하다.’

    마법으로 물을 쏟아내는 대장삵은 이 던전에서 완벽한 카운터 소환물이었다.

    “눈이 충혈되었네요.”

    “오물이 오염물의 내부에서 체온으로 다른 것보다 더 썩어서 그래. 세균도 많겠지.”

    오염물은 생명체다. 생명체의 온도에서 살아가는 세균은 대단히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었고, 그만큼 오물을 더욱 독하게 만들 수 있었다.

    “여기서 일단 치료 마법을 쓰겠다.”

    산박은 충호, 노금, 확곡에게 차례대로 대장삵을 이용하여 물의 마법을 선사해 줬다. 해독 마법이었다. 마지막에 대장삵과 산박도 해독 마법을 걸었다. 혹시 몰라서였다.

    “산박 씨, 앞으로 마법 몇 번 더 쓸 수 있지?”

    “열 번은 더 쓸 수 있습니다. 대장삵은 제 힘을 빌려 쓰기 때문이죠.”

    “그래? 역시 증강 장비다.”

    물론 거짓이었다. 연못의 꽃을 섭취한 대장삵에게는 자체적으로 지닌 힘이 존재했다.

    산박은 일부러 횟수를 숨겼다. 노금의 실력과 오물 던전에서 물의 마법이 가진 위상 때문에 숨겨도 된다고 판단했다.

    물의 나무가 죽기 전까지는 관계를 맺은 영물이 가질 수 있는 단 하나의 꽃. 나무 또한 단 한 번밖에 피우지 않는 유일한 꽃인 연못의 꽃은 대장삵이 1레벨 주문을 4회나 사용할 수 있는 추가 역량을 줬다. 희소성을 생각하면 조금 부족하다고 여길 정도였지만 산박에게 힘을 의존했던 지난날에 비한다면 이것도 감지덕지였다.

    해독 작용을 하자 입에서 청량함이 쏟아져 나왔다. 몸의 노폐물과 독도 싹 사라지게 해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상쾌함마저 들었다. 또한 금방 대변을 봐야 했다. 급똥! 그게 해독 마법의 효능 중 하나였다.

    “허어어엇!”

    푸더더더더더덕! 덩더러러 푸덕!

    특히 술배가 조금 나온 돈노금 대리는 말 그대로 오랜만에 쾌변을 맛봤다. 배출의 쾌감으로 생긴 여운은 제법 오래갔다.

    던전은 여전히 눅눅했고 똥 오물 냄새가 심했지만 일행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앞서 나갔다. 그리고 마주하게 된 것은 오물 수로였다.

    쏴아아아!

    물살이 강했다. 똥이 뭉쳐서 둥둥 떠있었고, 물 색도 끔찍했다. 정말 빠지고 싶지 않았다. 노금 대리가 손뼉을 치며 이목을 모았다. 물소리가 심했지만 가까이 있었기에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빠지면 다시는 못 나올 수 있다! 장비를 벗고 밧줄에 몸을 묶은 다음에 한 사람이 건너편까지 간다! 그다음에 밧줄을 통해서 한 명씩 넘어간다!”

    수로의 강한 물살 때문에 적이 수로에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다만 워낙 물이 많이 튀고 있어서 눈 코 입으로 들어가는 게 있을 수 있었다. 어찌 되었든 헤엄을 쳐서 열 걸음은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누가 갈지는 가위바위보로 정했다. 당연하게도 돈노금은 빠졌다. 직함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그냥 자연스럽게 한 걸음 물러났을 뿐이었다.

    간악한 사내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불만을 표현하지 않았다. 확곡? 돈노금 대리가 그의 직속상관이다. 그는 내일도 돈노금과 함께하고 한 달 뒤에도 돈노금 대리와 함께 일한다. 충호? 산박을 보고 있었다. 산박? 돈노금과 척을 지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2레벨 기술이나 좋은 주문을 얻기 전까지 돈노금은 산박의 위에 있는 존재였다.

    ‘놈을 죽이면 세종일산이 나서서 방해하겠지.’

    적어도 던전 공략을 하지 못하게 만들 터였다. 수상스러운 놈이 고레벨 던전 사용자가 될 때까지 가만히 둘 리 없었다. 특히나 정보꾼들에게 평판이 안 좋기에 산박은 고슴도치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아야 했다.

    “가위, 바위, 보!”

    충호가 당첨되었다. 사실 덩치만 봐도 충호가 가야 하는 것이었다.

    “힘내세요.”

    “옙.”

    충호가 돈노금의 말에 짧게 대답하며 심호흡하고 그대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건너편으로 단숨에 간 충호는 2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입에서 구토를 하고 양쪽 콧구멍을 한 번씩 막으면서 안에 것을 뱉어냈다.

    밧줄을 통해서 충호의 방패와 무기부터 옮기고, 그다음에 풀 플레이트 아머를 옮겼다. 다음은 산박이 넘어갔다. 대장삵은 산박의 머리에 밧줄로 묶였다. 그 또한 장비를 받았다.

    “다음은 확곡!”

    “예!”

    확곡이 밧줄을 잡아당겼을 때, 물살이 단번에 거세졌다.

    “뭐야!”

    그가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돈노금은 침착했다.

    “몇 번 있는 일이다. 걱정하지 마. 뒤로 물러서! 물러서! ‘막혀있던 것들’이 나올 거야!”

    뭐라고 말하는지 들을 수는 없었지만 몸짓 언어를 보고 산박과 충호가 물러났다. 대장삵이 물을 뿌려서 한 번 씻어내고, 그들은 서둘러 장비를 입었다.

    그사이에 갑자기 물이 많아진 곳에서 오염물들이 우르르 떠내려 왔다.

    “기가 막히네요.”

    그 엉망진창인 모습에 충호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왜 이런 곳이 있는지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의문은 그 무리가 그대로 떠내려가자 사라졌다. 사는 게 중요했지 연구하고 싶은 마음은 애초에 없었다. 짧은 궁금증에 불과했고, 금방 사그라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던전 연구학이라는 게 있었지만, 인력이 매우 부족한 상태였다. 산박 또한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런 건 분명 도움이 되겠지만 연구하는 데 많은 세월이 걸리는 것이었다. 그런 긴 세월이 걸리는 일을 하기에는 현재가 산박에게 더 중요했다.

    “이런…….”

    그러나 쉽게 생각했던 이들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당연했다. 안 그래도 강한 물살인데 오염물이 크게 떠내려온 뒤에 물살이 빨라지고 물의 양이 더 많아져서였다. 당연히 넘어올 수가 없었다.

    돈노금이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은 물이 다시 줄어들어야 했는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였다.

    ‘뭐가 다른 거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간 많이도 오물 던전을 돌았지만 이런 경우는 없었다. 특이한 경우인 셈이었다.

    5분을 더 기다렸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두 명씩 갈라진 상태로 활동하는 게 정상이었지만 대장삵이 지닌 물의 마법 때문에 편의를 크게 본 상태에서 대리와 사원이 물러날 리가 없었다.

    “물의 마법으로 어떻게 안 돼?”

    돈 대리가 대장삵을 가리키거나 삵이 하는 행동을 따라 하며 삵을 이용하라고 했다.

    “할 수 있겠어?”

    “충분히 가능한데… 힘을 많이 써야 할 거야.”

    대장삵이 물을 제어했다. 완벽하게 제어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면 너무 짧은 시간밖에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전처럼 물살이 변하자 돈노금과 표확곡이 동시에 넘어왔다. 산박은 그 거친 모습을 보고 밧줄을 끊어 버릴까 싶었지만 참았다. 그렇게 해도 해결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맞춰주는 수밖에 없다는 게 참으로 더럽다.’

    재정비를 하고 팀은 계속 나아갔다.

    이변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선두에 있던 충호였다. 그가 걸음을 멈췄다.

    “바닥에 진창이 사라졌습니다.”

    이동 속도가 매우 느려지게 만드는 것이 진창이었다. 넘어지면 손목을 크게 다칠 수 있었는데, 배낭을 무겁게 짊어지고 있어서였다. 그런데 그 감각에서 벗어났다. 체감이 절로 될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다리에 힘을 주고 있었기에 갑자기 진창이 사라지자 매우 편안함을 느꼈다.

    “‘실패한 괴물’이 나올 거다.”

    대리가 경고했다. 그렇게 말하며 산박에게 턱짓을 했다.

    “화염 물약을 투척할 준비를 해. 놈은 덩치가 매우 크기 때문에 화염 물약을 쓴다.”

    “예.”

    정지한 상태로 노금 대리는 실패한 괴물에 대해서 설명했다.

    “바닥, 벽, 천장까지 오물이란 오물은 말끔하게 먹어 치우며 돌아다니는 놈이다. 당연히 오염물도 한입에 집어삼킨다. 얼마나 많은 오물과 오염물을 먹었느냐에 따라서 덩치가 달라지고, 거기에는 제한이 없다.”

    먹는 만큼 커지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우회를 하지만, 놈을 죽이기만 하면 안전하게 은신처를 꾸릴 수 있고 장기간 휴식하기도 좋다.”

    놈이 주변에 있는 물기까지 싹 다 흡수하기 때문이었다. 공기 자체가 달라져 있었다. 천을 벗어도 될 정도였다.

    조금 앞으로 나선 돈노금이 바닥을 손으로 짚었다. 미약하게 오르막길이 되어 있었다. 그저 지반이 울퉁불퉁한 걸 수도 있었지만, 그럴 리 없었다.

    ‘언제 경사가 심해질지 모른다.’

    물론 아예 심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여기서 놈이 나타날 때까지 대기하겠다.”

    “예.”

    일행은 그제야 휴식을 취했다. 진창을 계속 걸어와서 하체에 큰 피로감이 쌓여 있었다. 노금 대리는 그나마 나았다. 다양한 1레벨 기술과 장무를 보유하고 있어서였다. 다양한 보정 기술이 노금의 활력 소모를 최소화해 주고 있었다.

    산박 또한 나쁘지 않다는 판단을 자체적으로 내리고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땅의 경사가 미세하게 위로 향하고 있다는 걸 못 알아차렸다는 것이었다.

    직감 내지는 사냥꾼의 기술에서 배가 튀어나온 돈노금이 한 수 위에 있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돈노금의 경우에는 실패한 괴물과 조우한 적이 많았기에 다양한 환경에서 그와 싸운 경험이 축적되어 있었다.

    경사도는 특히나 실패한 괴물과의 전투에서 중요했다. 육중한 중량을 지닌 실패한 괴물은 내리막길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마치 기병처럼. 그렇기에 돈노금은 시간을 좀 버리더라도 여기서 실패한 괴물을 처리하고 하루를 보낼 생각을 가졌다.

    쪽잠을 자고 불침번을 번갈아 세우며 체력을 보존하는 사이에도 실패한 괴물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반대편으로 향하고 있는 듯했다. 결국 두세 시간 만에 일행은 다시 출발했다.

    경사가 점점 높아지고 공기가 바짝 말라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산박은 화염 물약을 만지작거렸다.

    오르막길의 중간에 도달했을 때, 그 길의 정상에 있는 놈을 볼 수 있었다.

    ‘엄청난 덩치다.’

    던전 광물의 은은한 빛에 의해서 놈의 모습이 노출됐다. 놈은 통로를 가득 메울 정도로 거대했다. 마치 ‘건축물’ 같은 크기였고, 시체로 터널이 막힌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공포 영화에서 쓸 법한 광경이었다.

    “뭐 하고 있는 거죠?”

    “쉬고 있는 것 같은데.”

    산박과 노금이 속삭거렸다. 노금 대리는 뒤를 돌아봤다. 내려가기에는 길었지만 내려가서 싸워야 했다.

    “이대로 돌진해 오면 우리만 병신이 되니까 소란을 피워서 놈이 내려오게 만들어야 해. 갑옷 입은 사람들은 다 내려가고 산박 씨가 고함을 질러서 관심을 끌고 뛰어 내려와.”

    “예.”

    산박은 짐을 확곡과 충만에게 건넸다.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였다. 대장삵 또한 내려가야 했다.

    “내려가 있어.”

    “알았다.”

    홱!

    대장삵은 실로 매정하게 내려갔다. 산박은 뭔가 배신감이 들었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모두 내려간 것을 확인하고 산박이 숨을 들이켜며 소리를 질렀다.

    “우아아아아아!”

    함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반응은 금방 일어났다. 몸을 거칠게 버둥거리며 놈의 머리가 산박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놈은 마치 아귀처럼 생긴 아가리를 가졌다. 눈은 대칭되지 않고 괴상하게 들러붙어 있었고 피부는 땀 하나 없이 바짝 말라 있었다. 얼마나 바짝 말라 있는지 쩍쩍 갈라져서 붉은 살이 보일 지경이었다. 그 주변에는 고름이 두드러기처럼 나있었다.

    또한 주름이 몸에 가득했는데, 덩치가 커지면서 주름이 펴진 듯한 부분도 있었다. 그걸 알 수 있는 이유는 최근에 펴져서 그 흔적이 다른 피부와 다르게 남아 있어서였다. 마치 물결이 나있는 것처럼 명암이 달랐다.

    “꾸어어어어어엉!”

    울음소리를 내지르며 놈이 앞발을 쿰척쿰척 움직였다. 산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적이 높은 곳에 있었기에 화염 물약을 미리 투척하지 못했다. 닿지 않을 게 분명했다.

    다른 세 사람도 서둘러 뒤로 더욱 물러났다.

    쿵! 콰르르!

    길쭉한 몸체를 지니고 있고 몸속에 오염물이 잔뜩 들어가 있어서 실패한 괴물은 자신의 체중을 감당하지 못하고 머리부터 땅에 처박더니 주르륵 미끄러지다가 천장을 긁고 데굴데굴 굴러오기 시작했다.

    ‘와, 씨!’

    산박은 끔찍함을 느끼며 미친 듯이 뛰었다.

    쿵!

    놈이 바닥에 고꾸라지며 바짝 마른 흙먼지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 먼지 속에서 실패한 괴물의 입 속에 잡아먹혔던 오염물들이 소리를 내며 쏟아져 나왔다. 실패한 괴물 또한 육중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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