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화 (58/270)
  • 58화

    ‘충호를 전방에 세워?’

    산박은 황당함을 숨겼다.

    ‘이 새끼들.’

    분노했지만 분노를 표출하지는 않았다. 마음속에 꾹 눌렀다.

    ‘표적은 충호란 소린가…….’

    그 생각은 보다 더 확장되었다. 그 반대도 충분히 가능했다. 중요한 건 충호와 산박이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이는 앞을 치든 뒤를 치든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적극적인 뒤통수는 치지 않겠지만, 염두에 둬야겠지.’

    가장 좋은 방법은 산박이 평범한 후방 포지션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일이었다. 이 또한 언제, 어디서 보여 주냐에 따라서 또 판단이 달라질 터였다.

    무력을 드러내는 것 또한 매우 신중해야 했다. 기회를 보고 그냥 계속 안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적을 노리는 어금니가 될 수 있어서였다.

    ‘상황이 어찌 될지는 모르지.’

    충호를 최선두에 세운 노금 대리는 이어서 말했다.

    “확곡도 전방에 서고. 왼쪽에 말이야. 전처럼 똑같이. 알았어?”

    “예!”

    “산박 씨는 치료 마법도 할 수 있다며?”

    “예. 정확히는 얘가 하지만요.”

    산박이 대장삵을 가리키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예.”

    돈 대리가 일침을 놨다. 산박은 쉽게 수긍했다. 성격이 더러운 게 절로 느껴졌다. 그 뒤에는 기업이 있었다. 그 기업도 성향이 돈 대리라는 놈과 비슷했다. 그러니 돈 대리는 날개를 단 호랑이나 다름없었다.

    “난 상황 봐가면서 위치를 잡겠습니다. 됐습니까? 궁금한 거 있습니까?”

    추가 질문은 없었다. 딱 봐도 질문을 원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그들은 곧바로 출발했다. 다행이라면 던전은 위험한 곳이었기에 꼰대질은 현실에서가 끝이라는 것이었다. 본인 짐은 본인이 지고, 공용 짐은 공평하게 나누어서 짊어졌다.

    던전은 피가 튀고 살이 튀는 곳이다. 보통 전쟁터도 아니고 괴물과 싸우는 전장이었다. 1레벨 던전의 경우 보통 5일의 짧은 시간 동안 미친 듯한 소모를 겪는다. 평범하게 십인장이, 백인장이 갑질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꼽을 줄 시간도 없었다.

    생존을 논해야 하는 곳이다. 딴생각하기 힘들었지만, 그 속에서도 지킬 것은 지키면서 허튼 짓거리를 하는 게 산업 팀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어둠 속으로 내려가 공간 이동에 휘말리며 산박은 돈노금 대리를 떠올렸다. 사원과 대리는 다르다. 대리야말로 산업 팀의 가장 큰 재산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원이라도 쉽게 그만두고 언제까지 할지 모른다. 하지만 대리로 올라간 놈은 기업의 신뢰를 받는 자들이었다.

    ‘그만큼 1레벨 던전을 많이 돌았다.’

    1레벨 기술과 무위를 한계치까지 얻었을 터였다. 그렇기에 같은 팀원에게 허튼 수작질을 할 수 있었다.

    노금 대리는 1레벨 던전에 한해서 수준급의 던전 사용자였다. 갓 1레벨에 올라선 자 중에서 돈깨나 있는 집안의 자식들을 안전하게 2레벨로 안착시키는 일 또한 병행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런 자들만 ‘대리 직급’을 얻을 수 있었다.

    ‘확곡 사원은 아직 그 수준은 아니야.’

    그 수준이 되었다면 같은 팀에 속해있을 리가 없었다. 수익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바로 독립시켜 팀 하나를 만들었겠지. 고로 산박의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조용히 지나간다.’

    밟으면 좀 밟혀주고, 때리면 좀 맞아준다.

    ‘객기를 부리지 않는다.’

    충호에게도 단단히 일러뒀다. 곰 같은 사내는 충분히 버틸 것이었다. 그 또한 개죽음당하는 건 싫었고, 기업이라는 거대한 사회 조직에 아무것도 못 한 채 죽기는 싫을 터였다.

    어지러움을 느끼며 던전에 난입한 산업 팀은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산박은 자신도 모르게 코부터 부여잡았다.

    ‘빌어먹을, 냄새.’

    똥 오물 냄새가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눅눅한 공기도 사람을 미치게 하였다. 하지만 입으로 호흡하는 건 매우 위험했다. 걸러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산박은 능숙하게 배낭에서 돌돌 만 천을 꺼내서 대장삵에게 묶어주고 자신 또한 코와 입을 가렸다. 다른 이들도 능숙하게 여분의 옷을 찢는 등으로 대처했다.

    “이상 없습니다!”

    확곡이 주변에 특이 사항이 없는 걸 확인하고 보고했다.

    “모이세요!”

    노금 대리의 말에 세 명이 그 주위로 모여들었다. 땅이 진창이었다. 그 흙을 산박은 절대로 만지고 싶지 않았다. 안 만져도 뭔지 알 수 있었다. 가끔 고여있는 웅덩이는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곳곳에 자리 잡은 던전 광물이 은은한 빛을 내며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저것 또한 모으면 돈이 될 것이다.

    “산박 씨, 여기가 무슨 던전인지 아세요?”

    “오물 던전입니다.”

    “오, 제법인데.”

    노금 대리가 감탄했다. 외부 직원 중에서 던전 정보에 빠삭한 자는 본 적이 없어서였다. 대부분의 던전 사용자들은 생계를 꾸리기 바빠서 정보에 돈을 쓰는 걸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게다가 1레벨 던전의 종류가 워낙 많았기에 정보를 사도 알아맞히려면 똑똑하고 암기도 많이 해야 했다. 때문에 보통은 돈 주고 던전 정보를 사서 암기하는 것보다는 그냥 장비를 맞추는 걸 선호했다.

    “산박 씨가 한번 말해봐.”

    “예? 어……. 그게, 오물을 쓰는 괴물만 나온다는 것밖에는…….”

    “으하하하! 그 정보 대체 어디서 산 거야? 클리어 방법도 안 말해주고!”

    “사기를 당했습니다.”

    노금은 정말 재밌어했다. 사기당한 경위를 묻기도 하고 시간을 제법 지체했는데, 충호는 이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참 산박의 하찮음을 들은 노금이 기분이 좋아져서는 산박을 위로해 줬다.

    “정보꾼 놈들은 믿으면 안 돼. 비싸도 기업한테서 사야지. 기업은 돈만 들어오면 다 해줘. 믿을 만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고.”

    “예.”

    산박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랄맞은 멤버십에 돈을 쏟아부은 것만으로도 기업도 믿을 수 없다는 걸 잘 알았다. 양쪽 모두 상도덕도 없고, 배달 포장지를 500원 받고 파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돈노금 대리는 손가락을 세 개 들어 올렸다.

    “1레벨 오물 던전의 클리어 방식은 세 가지다. 흐흐.”

    그는 흥이 났다. 가르쳐 준다는 건, 사람들의 앞에서 그들을 가르친다는 건, 선생이 된다는 건 인간의 자존감을 대단히 올려주는 행위였다.

    누구나 선생이 될 수 있었고, 돈노금 같은 하찮은 자라도 선생이 될 수 있었다. 그저 남들이 모르는 걸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선생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건 실로 큰 쾌락을 주고, 단단한 자존감을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하나는 불완전한 키메라를 잡는 일이다. 고레벨 던전 재료를 얻을 수 있어서 고가치 목표이기도 하다. 또한 그런 주제에 수준은 1레벨 괴물에 불과하지. 리스크라고 해봤자 고레벨 던전 재료가 무작위라는 것 정도다. 키메라 나름이라는 소리고, 수익률이 천차만별이다.”

    불완전한 키메라! 보스 괴물이라 불리기 부족함이 없는 놈이었다. 그 수준은 1레벨 던전에 맞게 설정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그런 주제에 고레벨 던전 재료를 토해 낸다는 게 먹음직스러웠다.

    “쪽박을 치든 대박을 치든 운 나름이라는 소리네요.”

    “그러취. 그다음은 오염물 생산 시설 파괴다. 던전의 근본을 부수는 일이지.”

    곧개미 굴에서 제단을 부순 것도 이와 비슷했다. 여기서는 오염물이라 불리는 괴물을 토해내는 생산 시설을 부수는 일이었다.

    “마지막은 반(半)클리어라고 해서, 후퇴하는 식의 클리어다. 전력을 보존하기도 좋고 실력이 없어도 클리어할 수 있어서 좋지. 이게 되는 던전도 있고 안 되는 던전도 있다. 오염물의 유해를 잔뜩 모아서 태워 버리면 된다.”

    디펜스가 되어 버리는 셈이었다.

    노금이 산박과 충호, 확곡을 보며 말했다.

    “신기하지?”

    “예!”

    모두 냉큼 대답했다. 확곡도 대답하는 걸 봐서 확곡의 던전 경험은 생각보다 적은 듯했다. 실제로 그는 고개를 휙휙 돌려보며 오물 던전의 더러움에 넋이 나가 있었다. 덕지덕지 흐르는 오물과 굳어서 종유석처럼 쌓여있는 오물들은 정말 더러웠다. 위생을 생각하게 된 현대인들에게 이보다 끔찍한 던전은 없었다. 앉아서 쉬기도 두려울 정도였다. 그게 오물 던전의 무서움이었다.

    “우리는 당연히 불완전한 키메라를 노린다.”

    그 말을 하고 일행은 곧바로 출발했다. 통로가 상당히 넓었기 때문에 양쪽 벽 끝까지 횃불의 불빛이 잘 닿지 않아서 어두컴컴했다. 빛을 내는 던전 광물이 아니었다면 기습에 당하기 쉬울 정도로 넓은 통로였다.

    “오염물은 기습 같은 거 안 해. 보면 단번에 알 수 있을 거다.”

    노금 대리는 태평했다. 몇 번이나 이곳에 왔는지 숙련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2레벨 던전에 대한 두려움, 적당한 월급으로 타협한 자였지만 1레벨 던전에 한해서 그는 늠름한 창병이었다. 이를 보며 산박은 안주한 삶이 가지는 평화로움을 생각했다.

    ‘부럽기도 하네.’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산박이 원하는 삶은 아니었지만, 사회가 점점 안정을 되찾으면서 이런 사람들은 계속 늘어날 터였다.

    “그어어.”

    짐승 소리가 났다. 마치 탄식하는 소리 같기도 했으며, 다 죽어가는 병자의 울음소리와도 비슷했다.

    “전방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엉. 들었다.”

    단창과 장창을 보유하고 있는 노금은 단창을 등에 부착시키고 장창을 손에 쥐었다.

    “전투가 시작됐어. 내려와.”

    산박이 던전에 들어오기 전부터 어깨에 올라간 채로 계속 내려오지 않는 대장삵에게 말했다.

    “때가 되면.”

    그렇게 말하며 대장삵은 더욱 산박의 어깨에 매달렸다. 내려올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인간을 탄 삵이 되었다.

    “전투 준비! 버티기만 하면 내가 뒤에서 처리할 테니 무리하지 마라!”

    “예!”

    충호와 확곡이 냉큼 대답했다. 확곡은 둔전사였기에 둔기와 방패를 쥐고 있었다. 반면 충호는 덩치에 걸맞게 방패가 상당히 컸고, 환도를 쓰고 있었다.

    던전 광물이 없는, 빛 하나 없는 곳에서 튀어나온 오염물은 기괴하게 생겼다. 사람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지만 모든 게 어느 정도 녹아내려 있었고, 오물 범벅이었다. 마치 인간으로 빚다가 만 진흙 덩어리에 비유할 수 있었다.

    ‘위험해 보이지는 않지. 하지만 중요한 건 다른 거다.’

    저 오염물의 진면목은 전투력이 아니었다.

    “우웨에에에에엑!”

    “윽!”

    오염물은 입에서 썩고 썩고 썩힌 오물을 대량으로 뽑아냈다. 배의 가죽이 팽팽하게 탱글거릴 정도로 오물이 꽉 차있었는데 그걸 충만과 확곡을 향해서 토해낸 것이었다. 동시에 유독한 독가스도 주변 대기에 흐트러졌다.

    독!

    그게 오물 던전의 가장 위협적인 적대적 요소였다. 거기에 불완전한 키메라의 무력까지 합치면 난이도가 껑충 뛴다. 그럼에도 산박은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경계에 그쳤다. 노금이 생각보다 베테랑인 걸 깨달아서였다.

    인성이 바로 되면 실력도 있다? 유교적 고집에 불과했다. 인성이 더러운 놈도 실력자가 될 수 있었고, 성공할 수 있었다. 이를 산박은 잘 알고 있었다.

    그 또한 신부와 결탁해서 인간 백정이 되어 고아원을 망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건 어린 시절의 산박에게 있어서 큰 성공이나 다름없었다. 피로, 갈라진 살로, 두 동강이 난 심장으로 쌓아 올린 성공이었다.

    “우욱. 욱!”

    확곡이 헛구역질을 해대었다. 충호와는 다르게 평범한 수준의 원형 방패를 가지고 있는 확곡은 오물에 그대로 노출되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누가 봐도 독가스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반면 충호는 생각보다 피해를 받지 않았다. 오염물은 평범한 수준의 사람 크기를 지녔다. 물을 잔뜩 먹어서 체중은 많이 나갔지만 그것마저도 덩치에 비해서 많이 나가는 수준이었다. 충호의 덩치는 오염물을 쉽게 중형 방패로 밀어내서 넘어뜨릴 수 있었다.

    쑤욱, 콱!

    두 사람의 뒤에 있는 노금 대리의 장창이 단번에 오염물의 머리를 꿰어냈다. 그는 팔뚝과 어깨를 옆으로 들어 올리며 창날을 반 바퀴보다 조금 못하는 수준으로 꺾었다. 자세를 바꾸면서 실린 체중은 확실하게 오염물에 박힌 창날이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쑤욱!

    단번에 장창이 빠져나왔다.

    ‘능숙하다.’

    산박은 나서지 않았다. 대신 슬링질을 했다. 조금이지만 강한 괴물에게도 타격을 줄 수 있어서 아직도 들고 다니고 있었다.

    철퍽!

    특히나 피부가 녹아있는 오염물에게는 화려한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충호에 의해서 넘어진 오염물의 목이 잡광석을 녹인 합금 슬링탄에 그대로 패었고, 더는 일어나지 못했다.

    “언데드보다 약한데요.”

    상황은 순식간에 끝났다. 다섯 마리의 오염물은 추풍낙엽으로 쓰러졌다. 충호의 말에 산박도 동의하는 바였다. 산박은 무기도 쥐지 않고 있었다.

    “우웨에에엑!”

    반면 잔뜩 썩힌 똥 오물을 맞은 확곡은 속에 것을 게워냈다. 동시에 목을 긁어댔다. 그 모습에 노금이 손을 까닥거려서 산박을 호출했다.

    “긁지 마, 이 새끼야. 그러다가 X 된다.”

    “예.”

    확곡이 투구를 벗었다. 대장삵이 물의 마법을 사용해서 단번에 오물을 씻어냈다. 그다음에 노금이 목을 확인했다. 피부가 조금 일어났지만 치료 마법을 사용할 정도는 아니었다.

    “치료 마법을 쓸 정도는 아니다. 자정이 되기 전에 쓰겠지만, 일단은 쓰지 않는다.”

    그는 아끼는 선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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