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 * *
산박은 팀을 탐색했다.
‘풀 장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중이떠중이 팀은 바로 제낀다.’
그런 놈들이 가는 팀에 가려고 풀 장비를 꽉꽉 껴입은 게 아니었다. 산박은 실업 팀 혹은 의뢰 팀을 선호했다.
실업 팀은 기업의 개다. 하지만 이익을 좇는 기업이 제대로 된 실업 팀을 꾸릴 리가 없었다. 50:50의 비율로 정직원과 외부 직원이 뒤섞인다. 산박은 외부 직원으로서 잠깐 용병을 뛰어주는 셈이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건 가장 먼저 안전이었다.
실업 팀 자체의 실력은 준수했다. 기업은 제때 물량을 확보해야 했고, 그 수량을 맞추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외부 직원을 써 인건비가 줄어든 만큼 실업 팀은 1레벨 던전을 확실하게 클리어할 준수한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월급을 받는 던전 사용자들.’
생활이 안정되어 있고, 사옥에 살기 때문에 돈의 씀씀이가 확 줄어든다. 기업이 마련한 땅에서 살아가는 소작농들이었다. 나라 속의 나라. 국토 속의 영지. 팀 옥시모론이 던전 공략을 하기 전까지 그곳에 잠깐 몸을 담아두는 건 나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실업 팀이 하는 던전 공략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산박은 1레벨 공략에 있어서 다른 팀에 속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 풀 장비를 획득했고 여유가 있을 때 다른 팀에 속해서 어떤 형식으로 돌아가는지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시은 씨가 문제긴 한데……. 잘되겠지.’
한 곳은 받아줄 터였다.
의뢰 팀은 기업의 의뢰를 받고 던전 부산물을 거래하는 팀이다. 보통 고레벨 팀의 파생 팀으로 창설되는 경우가 많고, 고레벨 던전 사용자가 사장인 경우가 많았다.
‘결코 망할 수 없지.’
던전 사용자를 통해서 돈을 번다. 사람 장사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실패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 많은 고레벨 팀들이 파생 팀을 만들어 의뢰 팀으로 꾸린다.
고레벨 던전 사용자쯤 되면 자신의 부산물을 거래하는 기업이 여럿 있을 것이고, 그 기업에 파생 팀의 물건을 사달라고 한다. 물론 협박은 할 수 없다. 사주는 건 기업이고, 던전 공략 팀은 그저 공급자에 불과하다. 그들이 돈을 벌려면 기업이 그것을 사줘야만 했다. 아무튼, 그런 곳이 의뢰 팀이었다.
‘거긴 들어가면 다시는 못 나오지.’
까다롭고 폐쇄적인 곳이었다. 실업 팀이 그나마 비빌 수 있고, 그나마 자유로운 곳이었다. 특히 외부 직원이 된다면 빠지는 건 아주 쉽다.
판단을 마친 산박은 서류를 곳곳에 찔러 넣었다. 비정규 인사 중에서 산박처럼 커리어가 많은 자는 찾기 힘들었다. 모두 한자리 꿰차고 있기 때문이다.
작든 크든 대단하든 하찮든 자리는 사람의 콧대를 드높인다. 코딱지만 한 권력과 완장으로도 사람을 벌레처럼 내려다보는 어리석은 종족이 인간이었다. 과거 신드롬을 일으켰던 토익, 토플 스터디 스터디장들의 포악한 썰만 들어도 백이면 백 능히 고개를 끄덕이며 냉큼 수긍할 것이다.
고로, 산박 같은 자는 특이하게 툭 튀어나오는 게 당연했다. 팀을 이끌어 1레벨 던전 공략을 성공하고 또 성공했다. 그 경력은 가볍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고, 확실하게 사람들을 손에 움켜쥐기 좋았다.
수많은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산박은 시은까지 해서 2인 출전이기 때문이었다. 1레벨 던전은 네 명이 보통이다. 그것보다 많으면 수익이 안 나고, 적으면 위험이 크다. 기업이 무엇인가. 돈을 좇는 자들의 성이다. 그들은 눈치를 보며 네 명을 세 명으로 줄일 생각을 하지, 네 명을 다섯 명으로 만들 생각은 일절 없는 돈에 미친 아귀들이었다. 인간을 수치로 보는 자들이었다. 그곳에는 그 어떤 정도 없었다.
‘세종일산 기업의 팀.’
연락이 온 곳은 단 세 곳. 단기간에 반응을 보였다는 걸 생각하면 좋은 일이었다.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자신의 가치가 실업 팀을 통해서 보였다. 물론 외부 직원이지만.
“여보세요? 외부 직원 모집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메일을 받았고, 연락드립니다. 태산박이라고 합니다.”
―아~ 예예. 반갑습니다. 전 돈노금(頓瑙禽) 대리라고 합니다.
“예, 반갑습니다. 그것보다 저는 2인 출전인데 괜찮습니까?”
―예, 예. 괜찮습니다. 다른 분은 이시은 씨 맞죠?
“예, 맞습니다.”
―그럼, 일단은 주민 등록 등본을 저희 쪽에 메시지로 보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 외에 다른 거는 없고, 다음 주 월요일에 저희 회사에 오셔서 실력 검증만 받으시면 됩니다. 한 시간 정도 교육도 잡혀 있는데, 그건 뭐 들어도 좋고 안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위치는 문자로 좀 넣어 주십시오.”
―예,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통화를 끊고 곧 메시지가 왔다. 주소가 적혀져 있었다.
[위치는 세종특별시 대평 지구 268-11, 오전 9~오후 5시까지입니다.]
산박은 지도 앱을 통해 위치를 확인했다.
‘세종 버스 터미널 바로 대각선 위쪽에 있네.’
옆에 있는 아파트의 위쪽에 있었다. 지리가 엄청나게 좋았다.
‘역시 기업은 기업이다.’
목 좋은 곳은 놓치지 않는다. 미리 선점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산박은 체크 패턴이 옅게 그려져 있는 회색 재킷에 검은색 티셔츠, 발목을 가려주는 짙은 청바지에 밝은 갈색 구두를 신고 시은을 기다렸다. 차는 없었는데, 유지비가 심하기 때문이었다. 버스가 편하기도 했고, 큰돈을 아낄 수 있었다.
머리는 직접 잘랐다. 날카롭게 벼려진 이발용 면도칼로 뒷머리를 싹 치고 양옆의 구레나룻도 깨끗하게 밀었다. 전체적으로 머리카락도 짧게 잘랐다. 덕분에 산박은 칼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런 첫인상은 트렌디한 재킷과 청바지 덕분에 희미해졌지만, 밝은 갈색 구두가 너무 가벼운 분위기를 풍기지 않도록 만들었다.
“팀장님!”
시은의 쾌활한 소리가 났다. 산박이 고개를 살짝 돌렸다.
시은은 검고 얇은 재킷을 걸치고 있었고, 발목 위까지 조금 과하다고 할 정도로 단이 짧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밝은 청색이 한껏 검은 재킷과 대비되었다. 뒤로 질끈 묶었지만 뒷머리가 풍성하게 흐트러져 있어서 건강하다고 여기기보다는 화려하다고 여길 정도였다.
둘 다 제법 큰 캐리어를 가지고 있었는데, 장비를 넣은 것이었다.
“그래 가지고 어디 제대로 실력 검증 할 수 있겠어요? 어디 데이트하러 가요?”
“팀장님도 바짝 꾸몄는데요?”
“기업 면접이니까요.”
“누가 보면 우리 데이트하는 줄 알겠어요.”
“월요일에?”
“네! 대학생인 거죠.”
“요즘 누가 대학엘 가요.”
“돈 있는 사람?”
“빽 있는 사람!”
산박의 말에 시은은 웃기지도 않으면서도 웃었다. 그렇게 가면을 썼다. 그게 시은의 페르소나였다.
회사는 5층짜리 빌딩이었다. 제법 낙후된 곳이었고, 실력을 검증하는 곳은 지하였다. 두 사람은 1층에서 접수를 하고 내려가 탈의실에서 장비로 갈아입고 차례를 기다렸다.
“아무도 없는데요.”
“연락을 한번 해봐야 하나.”
산박이 그렇게 말했을 때, 제법 빠른 소리를 내며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십니까. 표확곡(表確穀) 사원이라고 합니다. 태산박 씨, 이시은 씨 맞으시죠?”
“예.”
“네.”
둘 모두 깔끔하게 대답했다. 확곡의 눈이 시은의 전신을 빠르게 훑었다.
‘허벅지가 오우야……. 외국인을 보는 것 같은데?’
석궁을 당기도록 단련하였기에 시은의 허벅지는 제법 두툼했다. 강인한 근육이 발달하여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허벅지였다.
시은이 다리를 꼬자 확곡 사원이 놀라며 시선을 다시 올렸다.
“크흠. 대리님과 저, 그리고 두 분이 1레벨 던전을 공략할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보는 실력 검증입니다. 태산박 씨? 일단은 저희 팀에 오셨으니, 산박 대원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예. 마음대로 하십시오.”
안으로 들어가자 제법 큰 지하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투박한 콘크리트로 된 공간이었다. 곳곳에 그을리거나 녹은 흔적도 보였고, 뜯겨 나간 부분도 존재했다.
‘고레벨 던전 사용자도 여기서 간단하게 실력 검증을 하는가 보네.’
최근에 일정 구역을 새로이 보수 공사 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말씀하셨던 집중성탄을 가장 먼저 보고 싶습니다. 관통력이 강력한 드루이드 주문이라고 하셨는데, 솔직히 저는 믿지를 못해서요. 드루이드는 주문 피해량이 가장 낮은 직업군 중에 하나거든요.”
“예, 알고 있습니다.”
별빛탄을 보고 그걸 부정한다면 사기꾼이다. 산박은 순순히 수긍했다.
고정대에 얇은 철판이 하나 올려졌다. 그러자 산박은 손을 들고 말했다.
“두 장 더 올리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한 장만 뚫어도 통과입니다.”
“아, 그렇다면야.”
산박이 양 손바닥을 기도하듯이 모았다. 그 모습을 본 시은은 입을 오므렸다. 웃음이 터질 것 같아서였다. 산박은 지금 엄청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기만이었고, 연막작전이었다.
좌르르.
산박의 두 눈에서 광채가 흘러나왔다.
‘오.’
왠지 그럴듯한 모습에 표확곡 사원이 속으로 기대심을 가졌다.
‘중요한 건 연출이지.’
산박 또한 이 면접을 위해서 고민을 제법 했다. 드루이드가 가지지 못한 강력한 주문의 완성 과정은 제법 그럴듯하게 포장해야 한다. 단시간 내에 사용하면 의심과 경계를 받을 뿐이었다.
작은 별의 힘이 모여들며 거미줄을 만들고 별빛탄 다섯이 만들어지며 정신력에 의해서 응축, 불완전한 작은 별의 응축 고리에 끼워지며 완전해졌다.
투웅―!
쏘아진 집중성탄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철판을 뚫고 50m를 쇄도하고 사라졌다.
“대, 대단하다.”
확곡이 거기서 느껴지는 중압감을 확실하게 체감하며 놀라워했다.
“이제 됐습니까?”
“예, 충분합니다. 헌데, 따라다니는 소환수가 있다고 하셨는데…….”
“불완전한 주문이라 제 말을 잘 안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못 데리고 왔습니다. 괴물에 대한 증오심이 있어서 공략에는 도움이 될 겁니다.”
“아, 그러십니까.”
단점이 존재하는 주문. 산박은 이를 통해 대장삵 소환 주문이 반편이라는 걸 어필했다.
시은 또한 무리 없이 통과했다. 그녀는 곧개미의 굴을 클리어하며 새로운 기술을 획득했다. ‘싸늘한 증오’였고 이는 마녀 주문에 한기를 부여하는 기술이었다. 그 덕에 그녀가 사용하는 마녀의 손길은 조금 더 강력했다. 능히 후방 포지션에 기용될 만했다.
또한 산박과 시은 모두 풀 세트를 입고 있었기에 당연히 우대될 수밖에 없었다. 실력 검증 다음에는 장비 또한 스캔했기 때문이었다. 복잡한 제품 번호를 스마트폰에 저장한 것을 통해서 진품임을 확인받았다.
시은은 언데드를 조종할 수 있다는 것도 어필했다. 이 또한 큰 이점이 될 터였다. 던전 사용자와 던전 사용자의 경쟁으로 선출되기 때문에 산박과는 다르게 시은은 가진 패를 대부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산박은 집중성탄으로 드루이드의 단점을 싹 없앴기에 당당하게 숨길 건 숨기고 약해 보이게 만들 건 약해 보이게 만들었다.
둘 다 당연히 통과되었다. 실업 팀의 외부 직원의 역량을 넘는 자들이었다. 커리어 또한 그러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수요일에 출발하니 그때 오시면 됩니다.”
“잘 부탁드려요, 확곡 씨! 아, 사원님이라고 해야 하나요?”
확곡 사원의 말에 시은이 대답했다. 말에서 통통 튀어 오르는 활력이 쏟아져서 그의 귀에 꽂혔다.
“아뇨. 씨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예. 그런데 두 분은 혹시 무슨 사이신지…….”
“아, 저희 오빠요?”
시은의 말에 산박이 움찔했다.
“장난치지 마세요. 저보다 두 살이나 많잖아요, 누나. 저희는 그냥 친구예요.”
산박은 스물한 살이었고 시은은 스물세 살이었다. 산박은 그녀가 짓궂은 장난을 확곡에게 건 것을 서둘러 대답해서 지워 버렸다.
“아하! 그러시군요!”
“우리가 무슨 사이로 보이셨어요?”
“아! 아뇨! 전혀! 죄, 죄송합니다.”
확곡이 매우 자연스럽게 사과했다. 예쁜 여자에게 찍소리도 못 하는 타입이었다.
산박은 시은이 확곡을 요리할 때 그냥 돌아가 버렸다. 시은에게서 전화가 왔지만 메시지로 수요일에 보자는 말만 남겼다.
* * *
장 노인이 지건의 과수원에 방문했다. 고작 나무 다섯 그루뿐이었다.
“이래서 언제 이 땅을 다 채우겠어?”
“약조를 받아놨지 않습니까. 산박 그 사람은 약속을 어길 사람으로는 안 보입니다.”
그 말에 장 노인이 혀를 찼다.
“거기에 정확한 수량이 적혀져 있었느냐? 법적으로 치고 들어가면 산박을 끌어낼 수 있느냔 말이다.”
“예? 그건… 아닙니다만…….”
“그저 신의를 보여주며 우리를 안심시킨 것뿐이다.”
“그렇다면 왜 그때 바로잡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 장 노인이 지팡이로 흙을 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