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화 (53/270)
  • 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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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진 국제 던전 시장. 당진시. 대한민국의 5대 도시 중 하나이며, 던전 상품들이 즐비하다. 그곳에 있는 기업의 수만 해도 헤아릴 수 없다. 사람보다 기업이 더 중요한 곳이기도 했다.

    산박은 또 이곳을 들락거렸다. 당연히 그간 얻었던 경험 때문이었다.

    ‘1레벨 던전의 안전한 공략은 장비로부터 온다.’

    1레벨 던전에는 1레벨 이하의 장비만 들고 갈 수 있었다. 현실에서는 다양한 고레벨 아이템을 마음껏 착용할 수 있지만 던전에는 들고 갈 수 없었다. 그 수준에 맞는 것만 가져갈 수 있었다. 그렇기에 산박은 1레벨 장비를 곳곳에서 뒤지고 다녔다.

    ‘제약만 없었어도 ‘주문 강화’나 샀을 텐데.’

    ‘주문 강화 울트라 드라이 커버’, ‘주문 강화 블루 사파이어 은목걸이’, ‘주문 강화 블루 사파이어 은반지’ 두 개.

    산박은 1레벨 장비를 이렇게 보유하고 있었다. 이 장비들이 드루이드의 주문력을 상승시켜 주기 때문에 작은 호랑이에서 124.8kg에 달하는 호랑이가 될 수 있었다. 허나 똑같은 능력이 깃든 장비는 네 개를 초과해서 장비할 수 없었다.

    ‘만족하라는 뜻이지.’

    저렇게 입어도 ‘동물 변신’ 주문에서나 효력이 뚜렷했고, 별빛탄은 여전히 위력이 낮았다. 그래서 산박은 굳이 주문 피해를 높일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강화되어도 별빛탄은 별빛탄이다.’

    이목을 끄는 것에 불과했다. 그 정도는 투척 단검이나 슬링으로도 할 수 있었다.

    ‘초월의 힘이 깃든 장비와 아이템의 콘셉트.’

    주문 강화 장비를 네 개나 착용한 이유는 동물 변신과 별빛탄을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실제로는 동물 변신만 효용을 봤다.

    ‘그걸 더 강화할 수는 없다.’

    제약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송곳처럼 하나만 집중해서 보정받을 수가 없었다. 던전이 쉬워지는 걸 막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남는 건… 대장삵의 강화.’

    소환 주문을 받쳐주는 힘! 그것을 노릴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대장삵을 강화해 봤자 의미가 없었다. 삵은 그렇게 큰 동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소환 주문을 아이템으로 강화해 봤자 거기서 거기였다.

    ‘무엇보다 대장삵이 쓰는 물의 마법은 내 힘을 빌려서 쓴다.’

    그 방식 때문에 더더욱 소환 주문을 강하게 해주는 아이템을 살 이유가 없었다.

    ‘내가 지닌 힘의 용량을 높여주는 아이템.’

    주문을 1~2회 더 쓸 수 있게 해주는 장비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대장삵의 전투력을 조금 더 높일 수 있었다. 집중성탄을 쓰고 난 뒤에도 대장삵이 치료 마법이나 공격 마법을 쓸 수 있었다.

    산박은 대장삵이 썼던 공격 마법을 떠올렸다. 쏟아지는 파도. 물의 높은 밀도와 무게를 이용해서 상대의 움직임을 짧은 순간이지만 완벽하게 봉쇄한다.

    파도를 상대로 몸을 가눌 수는 있지만 상대를 공격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괴물에게조차도 그건 어려웠는데, 전신을 휩쓸기 때문이었다. 허리를 틀면서 나오는 시작의 힘. 어깨를 틀면서 받쳐주는 힘. 그런 근육들의 요소요소를 방해하기 때문에 파도에서 싸우거나 물살을 맞으며 공격술을 수련하지 않는다면 절대 그 순간에 공격할 수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무식하게 크든가.

    ‘훌륭한 공격 마법이지.’

    대장삵에게도 딱이었다. 리치가 짧은 대장삵이 시작하기에 좋은 공격 마법이고, 돌진 마법이다.

    ‘나쁘지 않은 콘셉트다.’

    대장삵의 1인분을 딱 받쳐주는 용량을 획득한다면 평타는 칠 수 있었다. 또한 장비로 커진 힘의 용량으로 별빛 물약이나 빛 무리 치료수 등을 더 만들 수 있었다. 힘의 용량이 커지면 무조건 이득이었다. 산박의 생산량이 많아지는 부수적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

    ‘문제는 비싸다는 점이지.’

    생산 직업, 전투 직업, 모두 원하는 것이기에 가격은 평범한 1레벨 던전 장비의 세 배 이상이었다. 최소 15만 원에서 최대 30만 원까지 다채로웠다.

    ‘주문 한두 개 더 쓰는 힘을 얻는 데 그 정도 돈이면 너무 심하긴 심하다.’

    다시 납품을 통해서 벌 수 있었지만 돈을 쓰는 건 쓰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서 상쇄한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다음에 생각할 수 있는 장비 콘셉트는 자잘하다.’

    발품을 팔며 파는 장비를 보며 떠올릴 수 있는 정도였다.

    산박은 일주일 정도 열심히 비교 구매를 진행했다. 그러면서도 돈을 버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수련은 뒤로 미루게 되었지만, 차근차근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했다. 장비는 중요했다.

    고민 끝에 산박은 점진적으로 큰돈을 들여서 ‘증강’ 장비를 구매하기로 했다. 부위당 가격이 제멋대로였지만 주문 강화 장비를 입고 있었기에 비싼 부위를 구매하기도 해야 했다.

    증강은 주문을 한 개 정도 더 사용하게 해주는 장비였다. 개인마다 그 효과가 차이 날 수 있었는데, 산박의 경우 임시로 착용해본 결과 1레벨 주문 네 개를 더 사용할 수 있었다.

    “다른 직업군보다 힘의 증가에 대한 효율이 굉장히 낮으시네요. 고객님의 체질일지도 모릅니다.”

    “아, 예.”

    그런 소리를 들어도 다른 장비 콘셉트를 구상하지 못했기에 이게 가장 좋았다.

    ‘증강의 조끼’, ‘증강의 장갑’, ‘증강의 신발’, ‘증강의 어깨 장식 띠’.

    이렇게 네 개를 구매하는 게 최종 목표였다. 당장 구매는 어림도 없었다. 너무 비쌌기 때문이었다. 수요가 굉장히 높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주문 네 개만 더 쓸 수 있어도 큰 이득이었다. 산박이나 네 개지 장비발을 잘 받는 사람은 여덟 개도 추가로 사용하게 된다고 했다.

    ‘꿈의 장비네.’

    총 구매 가격은 280만 원이었다. 압도적인 수요를 생각하면 당연한 가격이고, 거품도 끼어 있었다. 잘 팔리는 물건이었기에 매년, 분기마다 가격이 소폭씩 야금야금 올라가고 있기도 했다.

    ‘미쳐버린 상술이다.’

    싫으면 비슷한 장비를 대체해서 사야 했지만 기업들이 이미 경쟁 기업의 가격과 비교해서 적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가격은 어딜 가나 비슷비슷했다. 심지어 더 수준이 낮은 게 비싼 경우도 있었다. 발품을 안 판 고객의 등을 치는 건 아주 재미나고, 큰 마진을 올릴 수 있어서 짜릿할 것이었다.

    ‘차근차근… 천천히.’

    카드로 긁을 수도 있었지만 수수료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산박은 카드도 없었다. 수기로 계약을 했다.

    “140만 원만 지급하시면 모든 장비를 임시로 대여해 드리고, 나머지를 모두 지급하시면 소유권을 넘겨드리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산박은 상투적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직원과 악수를 했다. 나쁘지 않은 계약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장비를 받을 수 있었다.

    * * *

    정신과에서 치료 상담을 받고 나온 강합은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그의 몸은 이제 모두 완치되었다. 하지만 그 용맹했던, 어둠 속에서 조잡한 붉은 천을 휘날리며 기둥 사이사이를 질주하던 흉악한 기병의 랜스 차징에 당한 정신은 아직도 그 상처를 봉합하지 못했다.

    “형님.”

    “왜 이렇게 일찍 와있어?”

    탕만이 일어났고, 강합과 포옹했다. 강합은 여자 때문에 부모에게 절연당하게 되면서 아예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그 이후에 강합은 오로지 탕만과 인연을 지니고 있을 뿐이었다. 여자와는 헤어졌다. 그런 인연이었다.

    “이야기는 들었다. 크게 성장했다며.”

    “예. 하하.”

    탕만이 뒷머리를 긁었다. 하지만 강합은 그런 그를 대단하게 여겼다. 자신과는 확실하게 다른 노선을 탔기 때문이었다.

    “팀장님이 중보병 풀 세트를 입고 오지 않는 이상은 더는 1레벨 던전 공략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충호에게서도 들었다.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전방에 서는 전사 계열은 특히나 위험천만한 상황에 직면한다. 그렇기에 장비 자체가 거품도 많이 끼어있고 비싸기도 많이 비쌌다. 중고는 매물이 거의 없었다. 웬만해서는 끝까지 쓰기 때문이다. 장빗값이 어마어마했고, 구매하기가 어려웠다. 산박이 괜히 자력 해결을 명령한 게 아니었다. 그도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가장 싼 놈이라도 살려고 봤는데, 300만 원이 넘습니다.”

    “정말 미친 가격이구나.”

    풀 플레이트 아머는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서도 방어력 또한 좋았다. 특히 1레벨 던전에서부터 그 비율이 높아지기 시작한다.

    “그 돈을 모으려면 적어도 반년은 걸립니다.”

    쫄쫄 굶으면서 0레벨 던전만 돌 수는 없었다. 생활비까지 생각한다면 반년은 모아야 하는 목돈이었다.

    “팀장님은 사업도 몇 개 한다.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풀 세트를 갖춰 입을 거야. 그리고 1레벨 던전 공략을 시작하겠지.”

    강합이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그리되면 당연히 자신들은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 전에 돈을 구해야 했다.

    “팀장님에게 몰래 좀 말해보면 안 될까요?”

    “시도해볼 가치는 있지. 하지만 더 좋은 방법이 있잖아.”

    강합의 말에 탕만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안 받았어? 연락? 그것 때문에 보자고 했는데.”

    “팀장님 연락 받으신 거 아니에요? 전사라도 도와주실 줄 알았는데…….”

    강합이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쭉 밀었다. 메신저가 켜져 있었다.

    “시은 씨네요.”

    “그래. 화염 물약 알지? 그거 본인이 직접 만드는 거 알고 있지?”

    “네. 근데 씀씀이가 쫌 헤프지 않아요?”

    “그래도 돈을 제법 모아 놨더라. 이번에 어느 정도 도와준다던데.”

    “강합 형님만 도와준대요?”

    “내가 나 혼자로 끝내겠어? 어떻게든 잘 구슬려야지.”

    “근데, 그러면 못해도 수백만 원인데……. 그냥 주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강합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일이다. 받은 만큼 뭔가를 해야 했다. 그래도 받을 가치가 있었다.

    “잘 들어. 우리 팀장님 같은 사람, 보기 정말 힘든 사람이야. 그런 사람한테 찰떡처럼 붙어 있어야 해. 던전이 얼마나 거지 같은 곳이냐? 뒤통수치고 사람 죽이고,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곳이야.”

    “그래도 제 주변에서는 본 적이 없는데요.”

    “그러다가 한 방에 훅 가는 거지. 복불복이니까.”

    “…….”

    확률이 낮아도 자신을 덮친다면 그건 100%가 된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팀장님이랑 끝까지 가야 한다 이 말이야. 아니면 본가로 돌아가서 농사나 지을 거냐? 다른 형제들은 모두 집 한 채씩 주는데 너랑 나는 아무것도 없다잖냐.”

    “시은 씨는 뭘 원한대요?”

    메신저를 올려도 그런 것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모르지. 그냥 부팀장이라고 생각하고 잘 대해주면 되겠지.”

    강합이 커피를 단숨에 크게 한 모금 했다. 씁쓸한 만큼 정신은 말짱해졌다.

    “그게 끝이에요?”

    “대가는 반드시 돌아와. 그래도 시은 씨는 착하잖아. 분위기도 좋고, 예쁘고, 몸매 쩔고…….”

    “그거랑 인성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예쁘면 착해. 고생해본 적이 없거든.”

    “전 아니라고 봐요. 당장 던전 공략하는 예쁜 여자라니, 본 적도 없어요. 3 대 500 치는 해외 여자 던전 사용자는 들어본 적 있지만요.”

    “시은 씨도 석궁 당기는 여자야.”

    “아무튼요. 전 뭔가 가시가 있는 것 같아서…….”

    그 말에 강합이 낄낄 웃었다.

    “안 봐도 척이다. 볼 거 다 보고 지금 이렇게 말해도 소용없어.”

    “진짜, 진짜로요.”

    티격태격하는 이들은 결국 시은에게 부탁해서 20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400만 원만 모으면 두 명 다 풀 플레이트 아머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전진이었다.

    * * *

    막 강합과 탕만에게 돈을 주고 온 시은은 어두컴컴한 거실에 앉아서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빨리 두 명을 이용하고 싶어서 참을 수 없었다. 다른 놈이 팀에 속할 수 있어. 그건 나한테 불안 요소가 될 가능성이 있어.’

    팀의 장기 휴식을 조금이라도 줄였다. 모든 돈을 지원하지 않는 이유는 너무 단기간에 장비를 해결하면 산박이 의심할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어둠이 깃들었다.

    ‘트라우마를 자극하면 팀을 붕괴시키기 좋지.’

    그 포석은 상황이 오면 쓸 수 있고, 마음먹기에 따라서 팀을 위기에 빠뜨릴 수 있었다. 산박이 휘청거리면 그때 시은은 더욱 그의 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산박의 눈동자에서 반짝이는 보석이 어떤 보석인지, 알 수 있게 될지도 몰랐다.

    ‘강합의 트라우마는 하단을 향한 강력한 관통 공격.’

    그런 괴물을 만나면 팀의 전방은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탕만의 트라우마는 극복된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아냐.’

    분위기에 영향을 잘 받는 탕만이었기에 극복된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혹은 다른 요인에 의해서 덧씌워졌다.

    시은은 특히나 인간에 대한 관찰력이 높았다.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두 사람에 대한 진단을 웬만한 정신과 의사보다 잘 짚어내고 있었다.

    ‘그는 등이 약점이지.’

    전보다 더 큰 상처를 입게 된다면 크게 휘청거릴 것이고, 그때 다독이지 않고 강하게 압박한다면 완전히 무너질 것이었다. 저번 던전에서는 다독여 줬지만 다음에는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실망했다는 식으로 몰래 속삭이거나 그 의사를 전달한다면 탕만은 화려한 불구덩이 속으로 질주하여 사그라질 것이었다.

    시은은 몸을 일으켰다. 집에 불을 켜고, 리모컨으로 큰 TV를 켰다.

    ―자! 오늘도 시작하는 홈 트레이닝! 여자분들에게도 근육이 정말 필요한데요. 오늘도 어김없이 기본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목요일에는 어디를 조지죠? 예! 맞습니다. 허벅지입니다! 하나 하면 칼로리를 하나 죽인다는 마음으로! 하나! 둘! 하나! 둘!

    운동을 시작했다. 땀을 빼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밖으로 뛰쳐나가 사람을 죽일 것 같았다. 산박 때문에 지펴진 불꽃은 꺼질 줄을 몰랐다. 이를 약하게 하려면 양껏 죽이거나 또 다른 질 좋은 인간을 찾아야 했지만 그런 특별한 일이 자주 찾아올 리 없었고 사람을 많이 죽일 수도 없었다.

    “하아. 하아!”

    시은의 몸이 점점 땀범벅이 되어갔다. 레깅스 반바지가 젖어갔다. 그래도 그 충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감당할 수 없게 되기 전에 0레벨 던전에 가야 할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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