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화 (52/270)
  • 52화

    * * *

    박조조에게 납품하고, 던전 대전 상인 공회로부터 대금을 받는다. 온라인을 통해서 팀원과의 인연 고리를 얇게나마 유지한다. 억지로라도 이어 나갔다.

    동시에 산박은 개인 정보원을 구하기 시작했다.

    ‘꼼꼼하게 해야 한다.’

    개인 정보원은 기업 혹은 사람을 통해서 정보를 사고 이를 자신의 사업 도구로 삼는다. 당연히 기업이 취급하는 것보다 싸고, 알려주지 않는 정보를 판다.

    산박은 1레벨 던전에서 몇 번이나 정보 누락을 겪었다. 돈 욕심에 미쳐버린 것들에 휘둘려야 했다. 이를 방지하려면 믿음직한 정보원과 끈끈한 돈으로 묶여야 했다. 그리고 세월을 통해서 관계를 덧칠해 나가야만 했다.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훌륭한 정보원을 찾는 건 힘든 일은 아니었다. 그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뿐이었다. ‘꾸준함’. 진득하게 엉덩이를 깔고 스마트폰을 통해서 많은 정보원과 접촉해 봐야 했다. 물론 발품도 팔았다. 최대한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박조조의 추천도 받았지만, 쓸 만하지 못했다.

    ‘이렇게 사람이 없나?’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 마시며 잠시 쉬던 산박이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몇몇 정보원들의 경계도도 높아지고 있었다. 그들 업계는 규모가 작았고, 산박이 들쑤시면 들쑤실수록 그에 대한 정보도 퍼져 나가고 있었다. ‘간잽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경찰? 경찰은 이렇게 들쑤시지 않는다.

    ‘제기랄.’

    결국 산박은 보름 만에 개인 정보원과 관계를 다지는 행위를 그만두게 되었다. 세종, 대전, 당진, 대구, 부산. 멀리 있어도 대한민국 5대 도시에 갔지만 모두 허탕이었다.

    ‘이목이 너무 쌓여서 더는 하고 싶어도 못 한다.’

    산박은 대신 멤버십을 올릴 준비를 했다. 결국 정공법으로 나섰다. 돈을 때려 박아서 자격을 얻는다. 정보 기업에 빌붙을 수밖에 없었다.

    뿜샤, 에브리바디 뿜뿜샤!

    스마트폰이 울렸다. 산박이 전화를 받았다.

    “박 사장. 무슨 일입니까?”

    ―태 사장. 전에 소개해준 정보꾼이 한 사람을 소개해 주고 싶다고 해서 이렇게 연락합니다. 괜찮겠습니까?

    “어떤 사람입니까? 제가 이미 만난 정보꾼일 수도 있습니다.”

    ―본명은 나도 못 들었는데…….

    “당연한 것을…….”

    산박의 말에 박조조가 헛기침을 했다. 트럭 상인 박조조는 정말 안 끼는 데가 없었지만 그 때문에 깊이가 얕았다. 그나마 요즘에는 산박이라는 든든한 공급책이 있어 위상이 높아져서 조금씩 그 단점을 메꾸고 있었지만 아직 극복한 것은 아니었다.

    ―마른 갈대라고, 제법 서정적인 이름입니다.

    “정보꾼답습니다. 들어본 적 없으니 연락처를 보내 달라고 하세요.”

    ―예. 왕보겁이한테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술 한잔 같이합시다.

    “예. 화끈하게 합시다.”

    서로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날이 언제 올지는 몰랐다. 두 사람 모두 일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어서였다.

    산박이 정보꾼 왕보겁에게 연락을 받기도 전에 마른 갈대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요놈 봐라?’

    산박의 눈이 빛났다. 제법 그럴듯한 인물을 만난 기분이었다.

    ‘아직은 확정 짓기 이르지.’

    검증해 나가야 했다. 누구나 자신의 전사로 삼고 전방에 두고 싶어 할 충호에게조차도 장비 구입을 자력으로 해결하라는 과제를 던져준 산박이었다. 이 정도로는 산박의 믿음을 얻을 수 없었다. 박조조가 큰 이득을 얻고, 그런데도 산박에게 계속 붙어 있으면서 차근차근 산박을 위해서 일하는 것으로 과제를 훌륭히 달성한 것처럼 마른 갈대 또한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물론 그건 3개월 후가 될지, 반년 후가 될지 모르지.’

    또 지금 이야기할 것도 아니었다. 일단은 실력이 있는 정보원을 다급히 획득해야 했다. 누락된 내용이 없는 던전 정보가 절실했다.

    ‘곧개미의 굴에서 여왕 곧개미를 노리지 않은 건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산박은 운을 믿지 않았다. 그건 언제나 몸을 홱 돌려서 자신의 목에 창을 꽂아 넣을 수 있었다. 돈을 버는 도박꾼은 그저 확률을 믿고, 돈을 버리는 도박꾼은 운을 믿는다.

    그는 마른 갈대가 보내온 메시지를 읽었다.

    [안녕. 보겁이한테서 이야기는 들었어. 믿을 만한 고객이라던데? 거기에 다른 정보원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도 제법이야.]

    ‘좀 경박해 보이는데.’

    같은 동료를 보겁이라고 칭하는 것도 우스웠다. 그는 30대 중반의 수염 기르는 배불뚝이 아저씨였다. 보겁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털이 많았다.

    [1레벨 던전 정보를 얻고 싶다.]

    [특수 던전? 일반 던전?]

    [양쪽 다.]

    상대가 무례하게 굴었기에 산박도 거침없이 문자를 놀렸다. 상대는 거기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대화를 이어 나갔다.

    ‘지금까지 정보를 다루는 기업에 투자한 금액은 70만 원.’

    그놈의 멤버십인지 지랄인지 때문에 쓸데없는 것들도 구매해야 했다. 본래 1레벨 던전에 대한 정보는 40만 원이 정가였다.

    [정보료는 40만 원이다. 정보 기업과 같은 이유는 누락 정보가 없고, 비밀리에 전해주는 것이고, 다음이 있기 때문이다.]

    ‘나쁘지 않다.’

    저 말을 못 믿을 이유는 없었다. 박조조→왕보겁→마른 갈대로 이어진 인연의 고리가 신뢰성을 부여했다.

    [지급 방식은?]

    [현금. 3일 이내로 당진시 동쪽에 있는 행담도(行淡島) 휴게소 2층 화장실로 와라. 혼자 와야 하고, 누구를 대동한다면 거래는 파기. 다음에 볼 수 없다.]

    [알았다.]

    정확한 시기를 말해 주지도 않았다. 산박은 빠르게 행동했다. 3일 내라고 하지만 행동력을 크게 보여줘야 했다.

    40만 원을 찾고, 곧바로 행담도 휴게소로 향했다. 그곳의 2층 화장실에 들어가서 그대로 사람을 기다렸다.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그저 기다리고 있는 산박은 절로 눈에 띌 수밖에 없었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마른 갈대를 찾으시죠?”

    노숙자가 산박을 건드렸다.

    “예.”

    “따라오세요.”

    그는 식당에 산박을 안내해 줬다. 제육볶음과 낙지볶음이 테이블에 있었고, 정보꾼은 낙지볶음을 먹고 있었다. 산박이 자리에 앉았다. 정보꾼은 노숙자에게 천 원을 건네줬다. 노숙자는 희희낙락하며 서둘러 소주를 사러 갔다.

    “마른 갈대가 맞습니까?”

    “일단은 돈부터 주세요.”

    산박은 거침없이 흰 봉투를 꺼내서 줬다. 그걸 제법 주의 깊게 본 상대는 현금을 세지 않고 집어넣었다.

    상대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중성적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목소리는 허스키했다. 그나마 목소리가 조금은 여성스러웠고, 단발을 칼같이 자르고 관리하고 있어서 여자임을 알 수 있었다.

    “여기요.”

    상대는 USB를 건넸다. 산박은 이를 챙겼다. 그러고는 물었다.

    “그렇게 조심해 놓고는 왜 얼굴을 보여주는 겁니까?”

    “저 나름대로 많이 조사했거든요. 그리고 그쪽이 제법 오래갈 파트너를 찾는다는 걸 짚어낼 수 있었죠. 추측이지만, 정답인가요?”

    “예.”

    산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속으로 감탄했다. 추측하는 건 정보꾼으로서 위험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순수한 감탄을 끌어냈다. 인재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돈이나 정보가 우선순위가 아니라, 제대로 된 정보꾼을 찾고 계시죠.”

    “그것도 알고 있었습니까. 아니면 보고 나서 알았습니까.”

    “반반이에요. 문자로 반말했을 때 짚고 넘어가지 않았잖아요.”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저도 그쪽이 반응하지 않아서 반응하지 않았어요. 저랑 그쪽이랑은 서로 다른 위치에 서있었어요.”

    산박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돈을 쓰는 처지고 상대는 돈을 받는 처지다. 클레임을 거는 건 고객이다. 종업원이 상품을 보는 고객에게 클레임을 걸면 그냥 미친놈이었다.

    “아무튼, 50%의 확률에 조사를 통해 더더욱 확률을 높여서 여기에 나올 생각을 했죠. 더 말한다면, 문자로는 반말을 했지만 정작 대면해서는 존대를 하셨는데…….”

    “예.”

    “거기서 사람을 중히 여긴다는 걸 확신했어요.”

    그렇게 말하며 정보꾼은 가발을 벗었다. 새빨간 장발이 내려왔다.

    “변장까지 했습니까?”

    “네. 거기에 화장도 짙게 했어요. 혹시 모르니까요.”

    여자의 화장법은 변화무쌍했다.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제 이름은 송유나예요. 한번 잘해봐요.”

    산박은 그 손을 마주 잡았다. 고생하고 노출된 덕분에 쉽게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이를 깨뜨린다면 송유나가 깨뜨릴 것이었다.

    두 사람은 밥 한 끼를 먹으면서 여러 가지에 대해서 묻고 답했다. 대부분의 질문은 산박이 했다. 유나는 이미 산박에 대해서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왕보겁 정보꾼과는 어떤 사이입니까?”

    “동업하는 사이죠. 한 명보다는 두 명이 좋고, 서로 얻은 정보를 비교하고 재검증할 수 있어서 이득이 커요. 그는 욕심이 없어서 나쁘지 않은 정보꾼이죠.”

    큰 욕심은 없어 기밀한 정보를 다루진 않지만 30대 중반에 이른 보겁의 평범한 정보는 상당히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 연차만큼 발이 넓었고, 오랫동안 기업인들에게 먹인 검은돈도 많았다. 정보꾼이 된 지 5년밖에 안 된 유나에게 이보다 훌륭한 동업자는 없었다. 즉, 통수 맞을 걱정이 없었다.

    정보꾼은 기업 입장에서는 바퀴벌레와 같았다. 그들이 얻는 정보는 결국 정보 기업의 정보니까. 하지만 박멸하기는 힘들다. 그런 곳에 큰돈과 영향력을 쓰는 것이 애매했다. 저레벨 던전에 대한 정보뿐이기 때문이었다.

    ‘제법 술술 말해주네. 생각보다 더 좋다.’

    산박은 술이 당겼다. 그가 모르는 세계를 유나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제법 협조적이고 말도 많았다. 그를 파트너로, 호의적으로 대하고 있었다. 이는 산박이 가진 인간관계에 없는 타입이었다.

    “근데, 왜 나 같은 고객과 깊은 관계를 다지고 싶어 하죠?”

    “나중에 고레벨이 된다면, 날 레벨 업 시켜 줬으면 해요.”

    “……! 던전 사용자였습니까?”

    “네. 1레벨이 되고 제법 오랫동안 던전에 가지 않았어요. 감을 유지하려고 0레벨 던전만 다니고 있죠.”

    그 말에 산박은 의자를 뒤로 젖혔다.

    “미안하지만 돈은 돈대로 받고 레벨 업은 레벨 업대로 시켜 달라는 말씀은 좀.”

    “고레벨이 되어도 이용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도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정보의 소스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건 안 돼요. 하지만 고레벨 던전에 갈 때마다 뼈저리게 느끼게 될 거예요.”

    그녀가 산박에게 얼굴을 조금 들이밀었다.

    “이 정보는 진짜배기구나, 라고요.”

    산박은 그 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유나가 당혹해하는 소리가 났다. 자연스럽게 그녀도 일어났다. 160도 안 되는 작은 키였다. 저런 체격으로는 1레벨 던전은 뭔 짓을 해도 돌파 불가능할 것이었다. 당장 후방 포지션을 잡은 시은만 해도 여자 주제에 원시적 석궁을 다룬다. 주문이고 자시고 최소한의 스펙은 있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막대한 돈을 들이든가 영향력 있는 자의 자식이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자식은 이제 던전에 들어가지 않는다. 고레벨의 힘을 부여받은 강력한 아이템을 돈으로 교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가신다고요?”

    “예. 제가 움켜쥐기에는 너무 큰 것 같습니다. 1레벨 던전 정보로 끝냅시다.”

    산박은 그대로 도망치듯 빠르게 사라졌다. 그 모습을 멍하게 보던 송유나가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었다.

    ‘아앙! 어떡해! 저렇게 좋은 공략 팀은 잘 없는데.’

    너무 많은 카드를 열어 버렸다. 그 결과 산박은 놀라서 도망쳐 버렸다. 현재 그의 역량으로는 유나와 관계를 깊게 다질 수 없었다. 일이 틀어져 버리면 매장되는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도망치지만, 힘을 가지면 송유나를 취한다.’

    그녀는 훌륭한 정보원이었다. 고레벨 던전 정보, 그것도 누락 없이 정보를 소지하고 있었다. 그녀를 포기할 산박이 아니었다. 다만, 현재 상황으로서는 빤스런 치는 게 최고의 선택이었다. 약간의 가능성조차 유나에게 주지 않았다. 아예 잊게 만들어야 했다. 지금 이 만남을.

    * * *

    “네 이노오오오오옴!”

    대장삵이 포효했다. 널브러져서 자던 산박의 배를 양 앞발로 꾹꾹 눌렀다. 산박은 손톱을 숨긴 삵의 말캉말캉한 발이 아니라 대장삵의 포효에 눈을 떴다.

    “뭐 하는 거야.”

    “어제는 왜 고기를 주지 않았지!”

    “줬던 것 같은데…….”

    “지금 나보고 생고기를 먹으란 말인가! 그 피가 뚝뚝 떨어지는 걸 어떻게 먹어!”

    “……?”

    산박은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맛있게 구워주고 갔어야지! 소금장도 없고!”

    “고양이는 소금이 몸에 안 좋은 거 아냐? 너 그러다가 단명한다.”

    “개소리 지껄이지 말고 어제분만큼 더 많은 고기를 내놓아라! 더 농밀한 소금장을 대령해라! 계약을 준수하라!”

    산박이 이불을 뒤집어썼지만 대장삵은 이불을 긁으면서 방해 공작을 펼쳤다. 결국 산박은 한숨을 깊게 내쉬고 눈곱을 떼며 일어나서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네 시 십 분. 해조차도 뜨지 않은 시각이었다.

    ‘이런 제기랄.’

    절로 화딱지가 나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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