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화 (51/270)

51화

상추 위에 깻잎 그리고 살짝 타서 바삭, 바삭한 고기를 무려 ‘두 점’. 쌈장과 함께 생마늘을 놓고 그대로 입에 넣는다……!

채소의 산뜻함이 가장 먼저 입과 혀를 담백하게 만들고, 살짝 질릴 무렵에 기름진 고기가 침투한다. 마치 무더운 여름날 마시는 차가운 맥주처럼 혀는 미친 듯이 그 기름진 동물성 기름을 갈구하게 된다.

쌈은 일부러 맛없는 채소를 통해서 고기의 가치와 맛을 한 단계 추켜올려 세우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자연히 매우 기름진 고기일수록 쌈과 잘 어울렸다.

팀원들은 순식간에 삼겹살을 비워냈다. 불판도 네 번을 갈았다. 술도 제법 돌았고, 온갖 이야기를 해대었다. 자신이 이번 던전에서 느낀 것들이 주요 화제였다. 이제 할 일들에 대해서도 말했다. 서로 관심 분야가 달랐기에 절로 술자리가 시끄러워졌다.

그 속에서 산박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원한 작은 그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그림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바로 산박의 꿈이고, 신념이었다.

물론 복기 또한 이어졌다.

“1레벨 던전은 장비 없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정말로요. 저도 느꼈어요.”

모두 자신이 지닌 힘에 대해 아쉬움과 부족함, 심하면 무력감마저 느꼈다. 당연히 이를 해결하려면 계속 1레벨 던전을 공략해야 했지만 이대로 아무 대비 없이 뛰어들었다간 언제 죽을지 몰랐다. 그만큼 위험천만했고, 위태로웠다. 이를 해결하려면 돈밖에 없었다.

“돈 벌려고 하는 짓인데 그렇게 돈을 써서 던전 공략을 하면 본말 전도라서 참, 곤란하죠.”

충호가 한마디 거들었다. 결국, 균형이 중요했다.

이것은 팀이 그만큼 경험을 쌓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무모한 1레벨 공략을 넘어서서 제대로 된 ‘1레벨 던전 공략’을 노리는 던전 사용자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배도 채웠고 불판도 식었다. 산박은 주제도 딱 알맞겠다, 앞으로 팀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해서 설명했다.

“그래서 생각보다 오래 팀을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예?”

폭탄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모두 놀라는 반면 시은은 예상하고 있다는 듯이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던전 클리어라고는 해도 여왕 곧개미를 못 죽였어. 이런 일을 겪고 똑같이 팀을 운영한다면 내가 산박을 잘못 본 것이지.’

시은의 생각처럼 산박은 이번 던전의 반성공을 쉽게 수긍하지 않았고 가볍게 넘어가지도 않았다. 팀의 장기적인 휴식을 선언했다.

“그, 그럼 언제 다시 하실 생각이십니까?”

충호가 살짝 말을 떨었다. 산박처럼 내외적으로 준수한 팀장은 정말 찾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던전에서 실력 있는 팀장은 밖에서 팀원들을 힘들게 한다. 대표적으로는 팀원들의 몫을 가져가거나, 다양한 갑질을 한다. 던전 사용자에게 있어서 던전 공략에 큰 도움이 되고 주도적인 팀장을 떠나기는 힘든 일이었다.

“전사들은 중보병급 전신 갑주를 입기 전까지는 저한테 연락할 생각도 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혹, 어느 정도 지원을 해주실 수 있습니까?”

산박이 몇 번 장비를 지원해 줬기에 충호가 기대하며 물었다. 그러나 산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팀 옥시모론은 보여줄 것은 다 보여줬다. 배려도 해줬다. 이제는 팀원 하나하나에 그 배려와 보답에 대한 대가를 원할 차례였다. 여기서 등을 돌리면 그걸로 끝인 인연이었다. 이 검증 방법은 꼭 필요했다. 산박은 굉장히 단결된 팀을 원하기 때문이었다.

“그렇습니까.”

지원 없이 0레벨 던전을 돌거나, 무리해서 1레벨 던전 공략을 하는 다른 팀에 용병처럼 속해서 가든가. 선택은 자유였다.

“저는요?”

“캐스터 풀 세트를 갖춰요.”

돈이 없을 리가 없는 시은이었다. 소비가 심하긴 해도 모으겠다고 마음먹으면 금방 모을 수 있었다. 화염 물약은 1레벨 던전 공격 소비품 중 수준급의 화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전까지는 팀은 활동하지 않습니다. 물론, 언제까지 기다려 주는 건 아닙니다. 제가 준비되면 똑같은 조건으로 팀원을 새로 모으고 1레벨 던전에 갈 겁니다.”

가혹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있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산박은 할 만큼 했다. 그리고 그는 계속 달려야 했다. 누구보다도 먼저 풀 세트를 맞출 게 산박이었다.

모두에게 과제가 남겨졌다. 어쩌면 다시 이 멤버로 던전을 공략하는 일은 없을 수 있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일행은 뿔뿔이 흩어졌다. 분위기를 살피던 시은도 조용히 돌아갔다.

그녀의 입술이 붉게 타올랐다. 택시에 올라탄 그녀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팀장은 그렇게 말했지만, 착실하게 기다릴 거야.’

강합? 탕만? 그 정도는 버릴 수 있었다. 가벼운 인연으로 취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충호는 아니다. 고통에 대해서 트라우마도 잘 겪지 않고 선천적으로 덩치도 크다. 기술로 신체가 강해져도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그 효율이 매우 클 수밖에 없었다. 어느 팀에서도 활약할 수 있었고, 선두에 설 수 있는 자였다. A급이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런 전사를 버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독하긴 독해.’

다른 팀장이었다면 충호에게만은 모든 걸 지원해 줬을 것이다. 하지만 산박은 똑같이 대우했다. 팀 자체가 좋다는 걸 충호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충호를 시험하는 것과 같았다.

실력이 좋다고 인성까지 좋은 건 아니다. 사람 마음속을 알려면 그런 상황이 찾아와야만 했다. 인성도 실력도 받쳐주는 전사를 팀에 기용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팀에 날개를 다는 일도 없었다.

‘개입할까?’

시은은 산박이 충호를 놓치게 하고 싶었다. 산박이 고난을 겪는다면 그가 꿈꾸는 것과 신념을 예측할 가능성이 커지고 그 빈틈을 엿볼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시은은 이내 포기했다. 충호는 실력 있는 전사였기에 산박이 남몰래 도와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만에 하나라는 게 있었다. 그리된다면 시은은 산박의 경계를 받게 된다.

‘탕만……? 바보 같은.’

잔혹함이 탕만에게 옮겨졌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탕만에게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건 등의 자상의 흉터다. 언제가 될지는 몰랐지만 탕만의 트라우마는 시은이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시은에게 있어서 하자가 있는 전사는 훌륭한 도구였다.

“저, 아가씨? 도착했습니다.”

“여기요. 거스름돈은 필요 없어요.”

“가, 감사합니다!”

택시에서 내린 시은이 앞 창문을 두드렸다. 택시 기사가 창문을 내렸다.

“예! 무슨 일이 남으셨습니까?”

시은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택시 기사는 왠지 모를 오싹함을 느꼈다.

“아뇨. 아무것도.”

해가 떨어진 저녁, 시은은 몸을 돌려 입술을 깨물었다. 손이 덜덜 떨렸지만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충동이 그녀를 흔들었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사냥감은 저런 놈들이 아니야. 내 사냥감은 이미 정했어.’

* * *

“왜 안 오시나 했습니다.”

장지건이 서둘러 산박을 맞이하며 악수를 청했다.

“던전 공략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산박의 주문을 부여받는 나무는 총 다섯 그루. 다른 나무보다 잘 성장했지만 자주 주문을 받지 않아서 엄청난 수준은 아니었다.

지건은 광활한 땅에서 농사일을 하지만 그에게 땅을 제공한 장 노인의 노림수는 그 농지를 점진적으로 모조리 드루이드의 나무로 채워 버리는 것에 있었다. 그 큰 목적을 생각하면 지건이 산박을 대단케 여기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실례합니다.”

지건의 부인인 윤다연이 다과상을 내왔다. 떫은 차와 달달한 카스텔라는 궁합이 좋았다.

“농사일은 잘되고 있습니까?”

“요즘 시대에 지력이 좋든 나쁘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하하하.”

지건이 웃었다. 땅 주인이 농사를 크게 짓는다. 망하기가 어려웠다. 다채롭게 심기 때문에 투자 실패를 할 수가 없었다.

“다름이 아니라, 드루이드 나무 때문입니다.”

그 말에 지건의 표정이 굳었다. 왠지 안 좋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당분간 나무에 주문을 집어넣어 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가 땀을 삐질 흘렸다. 손에서 땀이 쭉 나오는 걸 느꼈다. 그 모습을 보며 산박이 말을 이어 나갔다.

“계약할 때 저를 많이 배려해 주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길어도 세 달입니다. 그 이후에는 무조건 여기부터 살려 드리겠습니다.”

산박을 대신해서 드루이드 과수원을 관리하기로 한 지건이었다.

“그 확답을 혹시 녹음이나 서류로 남겨줄 수 있습니까?”

“알겠습니다.”

산박은 글을 썼다. 못해도 세 달 뒤에는 드루이드 과수원을 만드는 데 도움을 확실하게 주겠다고 적었다. 둘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아원은 산박의 짐이다. 아무리 거지 같은 가족이라도 못 버리는 이들이 있는 것처럼, 산박은 그들을 하나의 책임으로 느끼고 자립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싶었다. 밭을 빌려준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더는 없다. 나중에 쓸 만한 놈이 던전 공략을 하고 싶다고 오면 도와줄 요량은 있었지만 잠재력이 낮은 놈은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 정도의 선이다.

장지건은 장 노인의 가문에 속해 있었다. 그가 배신한다는 건 장 노인과 산박이 갈라선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전까지는 안전하게 과수원을 관리할 사람을 구한 것과 같았다.

‘맹신해서는 안 되지만, 그도 장 노인으로부터 잘하라고 들었을 터.’

그것만큼 강한 족쇄도 없었다. 열심히 일하게 될 수밖에 없었고, 허튼짓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가 허튼짓하면 피해는 장 노인이 받는다. 이것저것 사업을 제안하는 장 노인에게 산박은 중요 인물이었다. 이를 산박도 느끼고 있었다. 산박은 장 노인을 통해서 큰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그의 사람을 쓰기 때문이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예. 받아들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찾아와서 말씀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지건은 자세를 아주 낮췄다. 산박은 그가 맡은 바를 그 태도로부터 간파했다.

‘드루이드 과수원이 잘못되면 장 노인에게 버림받을 정도로 크게 압박을 받았나 보군.’

그가 쓴 확답은 장 노인에게도 읽힐 것이었다.

‘상관없다.’

사업은 던전 공략 다음이었다. 지금은 던전 공략에 집중해야 했다. 최대한 납품 수량을 줘서 돈부터 벌고, 그 탄알을 이용해서 장비를 사야 했다.

산박은 주문을 강화해 주는 옷과 목걸이, 반지만 갖추고 있었다. 다르게 살 것은 아직도 많았다. 그리고 주 장비를 제외한 다른 자잘한 장비는 제법 비쌌다. 남들은 주장비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놈들이지.’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것들이었다. 산박도 ‘곧개미 굴’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과 똑같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완전 무장을 하고 던전에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보고, 겪고, 배운다. 그리고 적용한다……. 산박은 결코 멍청이가 아니었다. 그는 바둑판에 바둑알 한 알, 한 알을 올리듯이 착실하게 집을 쌓고 길을 만드는 자였다.

* * *

“어디 사업을 물로 보고 있어! 내 너를 그렇게 보지 않았다!”

물론, 산박은 설마설마 장 노인이 창고에 와서 꼬장을 부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저도 사정이 있습니다.”

“안다. 그래서 계약도 적정선에서 유동적으로 해줬다. 다른 놈들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렇게 뒤통수 맞기 때문이다.”

장 노인의 뒤에서는 지건이 복잡한 눈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분명 자신들의 포지션은 을이기 때문이었다. 장 노인은 산박 같은 드루이드는 없다고 말한 바 있었다.

“적정선에서 천천히,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 줬으면 한다.”

“전처럼 말씀이십니까?”

“하루에 한 그루라도 한 번은 주문을 부여해라. 3개월같이 길게 늘어져서는 안 돼.”

자정을 넘긴 시간, 산박은 눈을 비볐다. 눈곱이 떨어져 나왔다. 굉장히 피곤했다. 억지로 머리를 돌렸지만 잘 돌아가지 않자 그는 몸을 일으켜 냉장고에서 캔 커피를 집어 들었다.

“음료수랑 커피가 있는데 드실래요?”

“차는 있나?”

“없어요.”

장 노인이 손사래를 쳤다. 대신 산박은 그냥 맹물을 조금 데워서 내어 왔다. 장 노인은 그걸 홀짝였다.

“…….”

“왜 그렇게 깊게 고민해. 그렇게 고민할 것도 아니잖나. 난 그저 부지런함이라도 챙기고 싶은 거다.”

“그렇습니까. 전 또 제 기를 죽이려고 오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반말이라도 지껄여야 하나 싶었죠.”

장 노인이 웃음소리를 냈다. 산박은 그의 방문을 ‘선을 넘었다’라고 여긴 듯했다. 하지만 하루 한 번 주문을 읊어 주라는 게 선을 넘은 것이냐고 하면 애매했다. 결국, 산박은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감성보다 확실히 지성이 강하다.’

이놈처럼 사업 같이하기 좋은 놈이 없었다. 신의를 보이면 신의로 대답하고 악의를 보이면 악의로 대답한다. 자신의 손익을 계산해서 대처한다. 이건 비즈니스기 때문이다.

다행이라면 장 노인이 자신의 의중을 먼저 드러냈다는 점이었다. 단추가 잘못 잠기기 전에 미리 장 노인의 손으로 직접 단추를 잠갔다. 그가 그만큼 산박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증거였다.

“…알겠습니다. 하루 한 번. 나무 하나.”

“좋다.”

장 노인이 서둘러 일어났다.

“늦었으니 어여 자라.”

그가 할 말은 아니었다. 대신 지건이 산박에게 깊게 사과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3개월 동안 드루이드 나무를 못 키울 생각을 하시니 물불을 안 가리셔서…….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괜찮습니다.”

장 노인과 장지건이 창고를 떠났다. 홀로 남은 산박에게 대장삵이 다가왔다.

“너무 호구처럼 당해주는 거 아냐?”

“적어도 뒤통수칠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그를 대체할 사람이 없어. 뭐든지 사람이야. 사람이 있어야 해. 그가 필요 없어지기 전까지는 이런 일을 몇 번이나 당할 수밖에 없지.”

산박은 잠이 확 달아났다. 몸은 피곤했지만 머리가 달아올랐다.

‘박조조는 어느 정도 넘어왔다. 장씨 쪽 사람들은 시도할 가치도 없다. 장 노인의 기가 너무 강하다.’

고아원? 인재가 없었다. 산박은 그걸 잘 알았다. 혹 잠재력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놈이 배출될 수 있었지만, 그러면 그때 가서 접촉하면 될 일이었다.

창고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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