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통로의 바닥을 확인하며 표정이 잔뜩 굳어진 산박은 석실 내부를 확인했다. 스무 마리의 근위 곧개미가 지키고 있었고, 보급도 빵빵했다. 밧줄 박스에 담겨있는 다양한 먹을 것들이 보였다. 추위가 강한 만큼 많은 식량을 미리 보급한 모습이었다.
‘많다.’
산박은 스무 마리나 되는 그 숫자에 압도되었다.
곧개미들은 던전 통로에서 소모를 많이 겪지 않았기에 시설 경비 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밖이 흔들리지 않으니 안이 단단한 건 당연한 이치였다. 무리 없이 거점 방어에 인력을 투입하는 결정을 할 여력이 남아 있었다. 통로에서 전투를 자주 걸지 않은 대가였다. 제단만 두 개 파괴한 것도 곧개미들이 제단을 지키게 하는 원인이 됐다.
“좁은 통로를 끼고 싸우면 처리는 쉬울 겁니다.”
이쪽에는 석궁이 있었다. 이대일인 셈이었고, 시은의 사격술은 수준급이었다. 적의 방호력이 낮은 곳에 높은 확률로 볼트를 꽂아 넣을 수 있었다. 스무 마리를 죽이기에도 넉넉한 볼트를 지니고 있었는데, 화살과는 다르게 몽땅하기 때문이었다.
“석궁을 좁은 곳에서 쓸 수 있겠습니까?”
“활보다 작으니까요. 조금 거리를 둬야겠지만, 충분해요.”
시은이 확답을 내줬다. 산박은 그 외의 모든 것을 한 번씩 생각해 봤다. 그리고 리스크를 거론했다. 단순한 소거법이었기에 누구나 할 수 있었다.
“내부에는 병정 곧개미가 없습니다. 병력 구성으로 봐도 이상하죠? 흙으로 빚은 화덕에 온화한 자수정이 쌓여 있는데, 그건 근위 곧개미에게는 필요가 없는 겁니다.”
“추가 증원이 있다는 것입니까?”
산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대에서 떨어져 나가 시설을 방어하는 분대는 최대한 다양성을 추구해야 했다. 일꾼 곧개미가 없는 것도 이상했다. 보급, 설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관리하려면 일꾼 곧개미가 있어야 했다.
“순찰을 돌러 갔든 일꾼 곧개미를 데려가는 등 무슨 다른 일이 있든, 병정 곧개미들의 증원이 언제 시작될지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통로에서 근위 곧개미와 전투를 시작한다면 후방에서 적이 나타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 굳이 멀리 갔을 리도 만무하고요.”
충호가 그 의견에 동의했다. 수틀리면 정말 끝장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제단이었으며, 이제 4일째였다. 내일이면 여왕 곧개미를 안전한 곳에 대피시키고 남는 잉여 전력이 이 잡듯이 침입자를 찾을 터였다.
‘다른 곳을 쳤다면 수를 조금 더 줄일 수 있었을까?’
글쎄요였다. 그만큼 곧개미의 숫자는 많았다. 식량 창고든 다른 곳이든 제법 중요한 곳에는 모두 스무 마리 이상 배정된 것이 분명했다. 상주하는 근위 곧개미 스무 마리, 돌아다니는 병정 곧개미 열에서 스무 마리로 예상됐다.
‘팀의 전력이 더 강했더라면…….’
산박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던전 통로에서 순찰을 도는 병정 곧개미를 급습하고 계속 싸웠다면 근위 곧개미는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다면 시설을 지키는 곧개미의 숫자는 자연스럽게 감소한다.
혹여라도 여왕 곧개미의 대피 흔적이 보이는 곳을 타격한다면? 벽을 메꾸는 일꾼 곧개미만 좀 죽여 놨어도 곧개미들의 전력은 여왕 곧개미에게로 많이 향했을 터였다.
수많은 후회. 날이 지나면서 획득한 정보들이 정리되며 더 좋은 전략이 세워졌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고 그걸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산박에게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만드는 힘이 있었으나 가진 씨앗이 전혀 없었다. 고로, 추가 보급책도 없었다.
‘이제 승부수를 던질 때다.’
가진 것이 없고, 강하지 않은 팀이다. 그런 존재는 리스크를 안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서 상황을 타개해야 했다. 별수 없는 일이었다. 꼬우면 돈으로 장비를 미리 처바르든가. 1억을 벌고 싶다면 3억 정도는 있어 줘야 했다. 그게 현실이었다.
산박은 일단 근위 곧개미를 절반으로 줄이고 싶었다. 그렇게 한다면 남은 두 개의 화염 물약으로 능히 우세를 점할 수 있고, 단기간에 제단을 점령할 수 있었다.
“제가 놈들을 이끌고 나가겠습니다. 그럼 절반은 따라올 겁니다. 기습으로 한 놈을 단번에 물어 죽이면 되니까요.”
그 위협도는 머리끝까지 바짝 오를 터였다.
“남은 놈들은 통로에서 싸우며 모아놓고 화염 물약 두 개를 단번에 투척해서 최대한 많이 태워 죽이세요.”
부산물은 얻을 수 없겠지만 사는 게 먼저였다.
“그럼 제가 다시 제단으로 들어오겠습니다.”
자리가 역전된다.
“버티고, 나머지는 제단을 부수면 됩니다. 그럼 던전 붕괴가 일어나고 저희는 돌아갈 수 있습니다.”
팀원들은 나쁘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산박이 스스로를 내던졌기 때문이었다. 호랑이가 지닌 도도하고 권위 있는 모습 때문에 걱정은 없었지만 적은 괴물이었다. 어떻게 될지 몰랐다.
“…다른 생각 있으신 분 있습니까? 있다면 지금 말씀하세요.”
산박이 조용한 분위기에서 대답을 재촉했다. 이러는 시간에도 병정 곧개미가 언제 나타날지 몰랐다. 그들까지 합쳐지기 전에 서둘러 제단을 점령하고 좁은 통로에서 수비 진형을 짜야 했다.
즉흥적으로 내뱉은 전략은 적을 분산시키고 분산된 적을 팀이 가진 최고의 화력으로 타격할 수 있었기에 완벽했다. 또한 아군의 숫자가 적기 때문에 그 단점을 최대한 줄일 방법이기도 했다. 단점은 줄이고 장점을 극대화했으며 현재의 급박한 상황을 단기에 끝낼 수 있었다. 전투는 끝나지 않겠지만 제단을 빠르게 파괴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그때, 시은이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말하세요.”
“주문을 쓰지 못하는 곧개미들인데, 주문으로 그들을 제압하는 게 어떨까요.”
“그런 강력한 주문은…….”
산박이 말하려고 했지만 시은이 이를 가로막았다.
“일단 제가 먼저 말할게요. 그만큼 매우 급하잖아요? 언제 병정 놈들이 올지 모르니까요.”
시은은 자신의 책략을 입에 담았다. 그녀는 손가락을 세 개 올렸다.
“제가 가진 검은 안개 주문, 팀장님의 호랑이, 거기에 입구 소란을 통한 화염병 투척.”
손가락을 올린 걸 접으면서 시은이 소리를 살짝 높였다.
“펑!”
“너무 도박 수예요.”
“팀장님이 떠나고 병정 곧개미가 올까 봐서 무서워서 그래요. 안전을 선택한다면 여기로 오고 있는 병정 곧개미부터 처리를 해야겠죠. 이쪽의 넓은 통로에서요.”
평지전이나 다름없었다. 옥시모론 팀이 선택할 수 있는 전장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한 번에 크게 싸우고 더 빨리 제단을 점령하자는 거예요. 치료수도 아직 좀 남아 있잖아요. 거기에 집중성탄 한 방이면 몰려있는 근위 곧개미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어요. 관통이 되잖아요.”
시은은 계속해서 산박을 설득했다.
“그러니까 화염 물약 두 병에 집중성탄까지, 저희에게는 다수를 피해 입히는 수단이 세 가지가 있으니 해볼 만하다는 거죠.”
산박은 충호와 탕만의 의견을 물었다.
“저는…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둘 다 좋은 것 같습니다. 체감이 안 된다고 해야 하나. 잘 모르겠습니다.”
탕만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가 중한지, 어떤 선택이 더 이득을 볼지 가늠하지 못했다.
“전 지금까지 잘 맞힌 팀장님 선택을 존중하고 싶습니다.”
충호는 깔끔하게 확률에 표를 던졌다. 전에 이놈이 이겼으니 다음에도 이놈이 이긴다는 무식한 표 선택이었다.
“어찌하실 거예요?”
시은의 말에 산박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책임을 미루는 팀원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불룩 튀어나왔다.
“…시은 씨의 전략대로 하겠습니다.”
산박은 최대한 전략대로 할 수 있게 자신의 의도를 모두 짚었다.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매우 복잡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통로로 진입했다. 탕만, 시은, 산박, 충호 순이었고, 대장삵은 통로 밖을 지켰다. 집중성탄을 사용하면 대장삵의 공격력은 크게 떨어졌다. 통로 전투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리치가 매우 짧기 때문이다. 차라리 병정 곧개미가 오는 걸 지켜보는 역할을 하는 게 좋았다. 그는 검은 안개(Black fog) 주문이 시작될 때 동원될 수 있었다.
쾅! 쾅! 쾅!
충호가 방패를 무기로 두드렸다. 큰 철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근위 곧개미들의 이목이 크게 쏠렸고, 단번에 울음소리를 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시은의 석궁 공격이 시작되었고, 매우 높은 천장 덕분에 산박의 슬링도 포물선을 그리며 공격할 수 있었다. 0레벨 던전에서 슬링을 매우 많이 썼기에 산박의 슬링 기술은 이제 묘기와도 같았다.
퍽!
근위 곧개미들은 가죽 갑옷을 입었기에 산박의 슬링은 썩 좋은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누적되면 무시할 수 없었고, 빈틈을 노린 곳에 맞으면 큰 수확을 올릴 수 있었다.
‘멀리 있는 놈을 최대한 노린다.’
그들이 뭉치게 만들어야 했다. 공격받으면 더욱 성이 나는 법이었다. 근위 곧개미들은 매우 용맹했고, 야만 전사들이었다.
“버티기만 하면 돼요!”
산박이 탕만에게 소리쳤다. 그는 고개를 굳게 끄덕였다. 막는 것이라면! 오로지 버티는 것이라면! 그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전과 다르게 자신이 붙어 있었다. 충호의 듬직함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쾅! 쾅! 휙!
무기가 내려쳐졌다. 탕만은 협소한 통로에서도 능숙하게 회피하고 막아냈다. 때로 뒷걸음질 치기도 했기에 시은은 그와 거리를 둬야 했지만 석궁을 쏘기 위해서 원래부터 거리를 두고 있어서 상관없었다.
‘두 번은 안 통한다.’
산박은 끈질기게 곧개미들의 진형을 살펴봤다. 충호가 앞에 있었다면 그 너머를 못 봤겠지만 탕만이 최전선을 맡았다. 쉽게 볼 수 있었다. 산박은 화염 물약을 슬링에 장전했다. 한 번에 두 개를 모두 쓸 생각이었다.
스무 마리가 잔뜩 통로에 몰렸다. 어떻게든 통로를 밀어버릴 생각인 듯했는데, 실제로 효과도 있었다. 무식하게 들이미는 탓에 탕만의 힘이 못 버텼다.
‘웃!’
“큭!”
탕만은 순식간에 뒷걸음질 쳤다. 맨 앞의 근위 곧개미가 죽든 말든 나머지 곧개미들은 상관하지 않았다. 최선두에 있던 근위 곧개미가 뒤에서 미는 힘 때문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탕만이 방패로 그를 받쳐 줬지만 무리였다.
쐐액!
석궁이 최선두에 있는 근위 곧개미의 턱에 그대로 꽂혔다. 피가 쏟아져 나왔다.
부르르르!
근위 곧개미가 몸을 떨었다. 그제야 탕만이 고함을 내질렀다.
“이, 이거어! 안 됩니다!”
더욱 무식하게 밀려들어 오는 근위 곧개미의 힘이 탕만의 방패로부터 팔로 전해졌다. 그는 끔찍하게 짓눌리는 미래를 상상했다.
‘지금이다!’
산박이 집중성탄을 쐈다. 단번에 통로로 밀고 나오던 곧개미들이 여럿 관통당했다. 그들이 쓰러지고 탕만이 다시 슬금슬금 안으로 밀고 들어가자 뒤에 있던 근위 곧개미들이 시체를 밟고 치우며 더욱 밀고 나왔다. 탕만이 통로를 재점령하자 화난 게 절로 느껴졌다.
“으윽!”
당연히 그렇게 성이 난 만큼 격렬함이 대단했다. 탕만이 뒷걸음질을 치려고 했다. 다시 생겨난 위태로움은 후방으로도 전해져 왔다. 산박은 제대로 보고 있었다.
“까라라라락!”
근위 곧개미가 울음소리를 냈다. 그들이 다시 잔뜩 밀착했을 때, 순차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화염 물약이 투척되었다.
쨍그랑!
화염이 거세게 타올랐다. 동시에 곳곳으로 번져 나갔다. 서로 몸이 뒤엉키며 불타는 액체가 옮겨붙어서였다.
“지금이에요!”
시은이 석궁을 버리고 양손을 모으며 단번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녀의 몸 중 앞면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점점 양이 많아졌다. 모든 힘을 주문에 쏟아부으며 주문이 강화되었다.
“대장삵! 앞으로 와!”
“알았다!”
그렇게 소리치며 산박은 다른 사람의 등을 밟고 앞으로 나아간 다음에 호랑이로 변했다. 탕만이 그걸 보며 한손검을 손에서 놓고 혁대에 맨 투척 단검 두 자루를 몽땅 꺼내서 바닥을 향해 던졌다.
번―쩍!
빛과 함께 호랑이와 대장삵이 차례대로 화염을 뚫고 석실 내부로 들어갔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가 석실의 앞부터 차근차근 뒤덮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탕만이 고함을 내질렀다.
“우오오오아아아아아아!”
“까다다닥!”
“궐궐!”
그 소리에 대응하듯이 살아남은 근위 곧개미가 소리를 냈다. 몇 마리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몇 마리가 화염에 뒤덮였는지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검은 안개 주문을 연달아 집중해서 쓰는 시은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