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그림자 기사 서충호의 검에서 까마귀가 쇄도하여 돌진하려는 병정 곧개미를 밀어냈다. 그러나 잠깐의 시간을 번 것에 불과했다. 당초 직업 자체가 하이브리드 직업이었기 때문에 강력한 주문이 아니었다. 다른 직업에 비해서 주문을 두 번 사용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 귀중한 힘을 소모한 건, 그만큼 현재 전황이 빠르게 변하고 있어서였다. 전술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았기도 했다.
그의 분노는 정말이지 끔찍했다. 충호는 옆에서 얼쩡거리는 탕만의 뺨을 팔꿈치로 후려갈겼다. 방패와 검을 쥐고 있었기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억!”
탕만이 그대로 엎어졌다. 충호는 전에 없는 분노를 담아서 지껄였다. 그는 욕을 자주 하지 않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해야만 했다. 목숨이 달린 일이고, 사람이 죽을 수 있었다.
당장 곧개미의 굴 던전에서 크게 부상을 당했는데, 일이 이렇게 꼬여 버렸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을 보고 이성을 유지할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적어도 충호는 그런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물 때는 물 줄 알았다. 그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개새끼야, 너 지금 뭐 하는 거냐?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죽고 싶으면 혼자 뒈질 것이지, 왜 작전대로 안 하는 거야! 엉!”
그는 쓰러진 탕만에게 거칠게 고함을 질러대었다. 욕도 했다. 그럴 상황이었다. 인권자들은 하나같이 비난하고 비판했겠지만, 말을 할 여유가 되지 못했다. 폭력을 써야만 했다.
“일어나, 이 새끼야! 팀원이 너 대신 죽어도 넌 잘했다고 생각할 거냐?”
그가 윽박지르자 탕만이 서둘러 일어났다. 그의 입술은 피로 가득했다. 충호는 덩치가 큰 곰 같은 사내다. 평범한 수준의 스펙을 지닌 탕만으로서는 버티기 힘든 일격이었다. 고작 팔뚝에 맞았음에도 뺨과 입술이 거덜이 났다.
“으으, 으아아아아!”
탕만이 고함을 지르며 충호에게 달려들었다. 충호는 순무 칠난균을 이용해서 이성을 잃은 탕만의 균형을 무너뜨려 다시 한번 드러눕게 하였다. 검 끝이 목을 건드렸고, 피가 미약하게 흐르고 나서야 탕만이 침을 꼴딱 삼켰다. 목울대가 움직이자 피가 조금 더 많이 새어 나왔다.
“일어서서 싸워.”
으르렁거리는 충호의 말에 탕만이 다시 일어섰다. 무기를 병정 곧개미에게 돌렸다. 하지만 이미 기습의 효과는 사라지고, 뭉치고 있는 병정 곧개미의 모습이 보였다.
“섬과아아앙!”
탕만이 고함을 지르며 섬광 단검을 투척했다.
번―쩍!
빛이 터져 나왔다. 그 빛 속으로 탕만이 뛰어 들어갔다. 충호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떨어진 병정 곧개미들이 뭉치는 걸 막으려고 기를 쓰려는 모습이었다.
그사이에 산박은 대장삵과 연계를 시작했다. 기습으로 한 마리를 죽였지만, 그게 전부였다. 놈들 또한 야만 전사. 오히려 이런 종류의 날것 그대로의 상황에 익숙한 면이 있었다. 무엇보다 개개인이 지닌 호전성이 대단했다. 오로지 외적을 상대하기 위해서 태어난 병정 곧개미다웠다. 그렇기에 산박은 대장삵과 연계했다. 거미줄이 쇠심줄이 되기 전에 그 틈으로 함께 들어갔다.
촤아아악!
대장삵이 산박의 힘을 이용해서 물의 마법을 사용했다. 파도가 대장삵의 몸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형태를 이루며 짐승의 아가리가 되어 병정 곧개미를 향해 대장삵과 같이 뛰어들어 갔다.
쏴아아아!
점프를 즐기는 대장삵의 전투 습관이 어디서 나왔는지 확연하게 알 수 있는 모션이었다. 대장삵은 ‘파도 송곳니’ 마법을 통해서 안전성, 보장성, 돌진력과 파괴력 및 질량까지 확보했다. 물은 생각보다 대단히 무거운 액체였다. 거기에 후려쳐 맞으며 집어삼켜진 병정 곧개미 두 마리는 힘을 못 쓰고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그 속으로 산박이 연격을 쑤셔 넣었다. 파도에 밀려나는 두 마리 중 대장삵과 가까이 있는 놈을 노렸다. 안전을 추구했다. 그는 다른 팀원을 믿고 있었다.
‘한 명당 한 마리씩만 죽여도 상황은 호전된다.’
기습으로 인해서 일곱 마리가 세 마리가 되는 마법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거기에 자신이 두 마리를 죽였다. 그럼 남는 건 두 마리가 된다. 승리는 따놓은 당상이 되는 것이다.
고로, 산박은 무리하지 않았다. 굳이 대장삵으로부터 멀리 있는 한 놈을 잡고 나머지 한 놈을 대장삵과 자신이 앞뒤로 칠 생각을 안 했다. 흩어진다는 건 곧 약해진다는 의미와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한 마리를 죽인 시점부터, 무리하면 안 돼.’
두 마리의 공훈도 대단한 것이었다.
뿌득!
산박은 병정 곧개미의 목을 물어뜯었다. 그것으로 놈은 힘을 잃었다. 사지는 움직였지만 흐물흐물거렸다.
곧개미의 체액으로 흠뻑 샤워를 한 호랑이가 아래턱을 살짝 내렸다. 걸쭉한 침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덩치가 컸기에 조금만 격렬하게 움직여도 쉽게 지쳤다. 작은 호랑이의 몸을 지녔을 때와 확연하게 달랐다. 한 동작 한 동작에 무시무시한 체중과 힘이 담기기 때문에 지구력의 감소가 크게 체감되었다. 인간과는 달랐다.
제법 지친 산박은 주위를 둘러봤다. 파도에 휩쓸렸던 병정 곧개미는 다른 놈들과 합류한 상태였다.
‘뭐야? 왜 이렇게 적이 많이 남았어?’
산박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뭉친 병정 곧개미는 무려 네 마리에 달했다. 그중에 한 마리는 볼트도 많이 박히고 마녀의 손길이 목을 움켜쥐고 있어서 활동성이 많이 저하되어 있다고 쳐도 네 마리는 네 마리였다.
충호와 탕만은 섬광 단검을 투척하고 돌진했음에도 소득을 보지 못했다. 까마귀 쇄도로 적을 물리고 뒤로 물러난 상태였다. 곧개미들이 조밀하게 뭉쳐 있어서 접근이 어려웠다. 철통같이 서로를 지키고 공간을 무기로 휘둘러서 섬광 단검에 당해도 쉽게 부상을 입지 않았다.
그 속에서 탕만이 소극적으로 움직였기에 충호로서도 적극적으로 덤벼들지 못했다. 아주 개같은 상황이었다. 탕만 스스로 돌진해 놓고, 자기가 또 주저했기 때문이었다. 이성으로 어찌 될 그런 것이 아니었다. 0레벨 던전과 1레벨 던전은 체감 차이가 너무 컸다.
산박은 모든 걸 예측할 수 있었다. 누구나 알고 있을 터였다. 이 앞에는 끔찍한 전면전, 서로가 죽고 죽이는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병정 곧개미들은 오히려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발밑에 깔린 온화한 자수정을 발로 차 곳곳으로 흩뜨리며 시야를 밝게 유지했다. 던전의 순찰을 도는 척후병인 그들은 눈이 좋았고, 그렇기에 최대한 많은 범위를 보고 싶어 하는 특성이 있었다.
대치하는 충호는 곁눈질로 탕만이 물러서는 걸 볼 수 있었다.
‘X발.’
욕이 나왔다. 하지만 속으로 삼켰다. 한번 패서 안 되면 더 해봤자 부작용만 남는다. 때렸다고 덤비는 놈이었다. 지금 실랑이를 하면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었다.
곧개미들의 머리 위로 화염 물약이 투척되었다. 힘을 잃은 투척 단검이 물약을 정확하게 부쉈다. 하늘에서 화염이 떨어져 내리며 세 마리가 그대로 휩쓸렸다. 홀로 남은 놈이 덤벼들었지만 충호와 탕만이 버티는 사이에 다른 이들이 옆과 뒤를 쳐서 단번에 죽였다.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인간으로 돌아온 산박이 으르렁거렸다. 이에 충호가 말했다.
“탕만이 1인분도 하지 못했습니다.”
충호가 한 마리, 산박과 대장삵이 두 마리, 시은이 중경상 한 마리. 탕만은 한 게 없었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가득했다. 공포심을 이기려고 했지만, 보기 좋게 패배했다. 연전을 거듭한 전사처럼 정신이 탈진해 있는 상태였다.
“뭘 열심히 했다고 그렇게 땀을 흘려?”
충호가 반말을 하며 그를 말로 찔러 대었다. 탕만은 이를 악물었다. 뭐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현실이 그럴 상황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싸늘한 땀의 감촉처럼 머리가 냉정해져 있었다. 사리 분별이 가능해졌다.
충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를 다그쳤다. 너무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제가 정신 차리라고 팔뚝으로 때렸는데, 그러자마자 저한테 덤비지 않습니까. 그 상황에서 어떻게 말로 해결합니까? 완전 미친놈 아닙니까?”
“진정하세요.”
그제야 산박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또 충호가 너무 세게 나와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중재하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 충호는 그게 마음에 안 드는 듯했다.
“일단 정리하면서 조금 머리를 식힙시다. 이렇게 해봤자 누구한테도 도움이 안 됩니다.”
그가 충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제발 성질 좀 죽여 달라는 무언의 부탁이었다. 충호는 더는 탕만을 비난하지 않고 배운 대로 부산물을 취득하기 시작했다. 시은은 눈치를 보다가 피가 안 묻는 온화한 자수정을 주워서 꽉꽉 접어놓은 배낭에 담기 시작했다.
산박은 탕만을 다독거렸다.
“다른 사람은 1레벨을 여럿 경험했어요. 그러니까 너무 자신을 비하하지는 마세요. 누가 처음부터 잘합니까? …그리고 목숨이 걸린 일이라서 저렇게 강하게 나오는 거니 충호 씨에 대해서도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가 저렇게 하지 않았다면 제가 욕했을 겁니다. 아시겠죠?”
“예…….”
탕만이 힘없이 대답했다. 자신이 완전히 엉망진창이었음을 그도 인지하고 있었다. 부상의 공포가 생각보다 쉽게 잊히지 않았다. 몸은 치유되었지만 난도질당한 상황이 그의 몸에 각인되었다. 인간은 너무나도 나약했다.
일행은 부산물을 정리하고 배낭을 흙으로 덮어 두었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산박은 팀의 방향을 결정했다.
‘튀어야 한다.’
도망가는 게 답이었다. 제단 세 개만 호로록 파괴하고 헐레벌떡 던전에서 도망쳐야 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탕만 때문이었다. 자신보다 강한 괴물과 싸울 수 없는 전사는 의미가 없었다.
두 번째 이유는 화염 물약을 써버렸다는 점이었다. 도주할 때 쫓아오는 곧개미들을 다수 불태워서 통로를 막는 식으로 사용하려고 했는데 그게 불가능해졌다. 곧개미들이 지키는 곳을 타격할 수 없었다. 목숨을 지켜줄 수단이 하나 소모되었다. 고로, 다섯 곳에 달하는 식량 창고를 털 수 없었다.
세 번째 이유로는 1레벨 던전의 위험도가 계속 높아졌고, 현재 팀으로는 공략이 어렵다는 걸 깨달아서였다.
‘전원이 1레벨 장비로 잔뜩 무장해야 한다. 난 지금까지 외줄 타기를 했다.’
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산박은 팀의 해체까지 고려하고 있었다. 실력과 장비를 키워서 더 좋은 팀에 팀원으로 들어가야 할지도 몰랐다. 산박은 거기까지 생각할 정도였다.
1레벨 던전의 수준이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높았다. 듣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와 체감이 너무 달랐다. 지금까지는 그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팀 옥시모론은 1레벨 던전을 공략하면 안 되는 팀이다.’
만전을 기하기 전에는 다시는 이 사람들과 함께 던전에 갈 수 없었다. 그만큼 모든 게 위태로웠다. 앞으로도 1레벨 던전을 공략하기에 불안불안했다.
“말할 게 있습니다. 모두 모이세요.”
팀원들이 모였다.
“던전 클리어를 포기하고, 제단만 처리하고 던전을 붕괴시키겠습니다.”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상 던전 공략의 역량이 없다는 것을 산박이 말해서였다. 그건 자신들의 실력과 장비 탓이었다.
“죄송합니다.”
탕만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충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그 사과를 받아들였다.
“나도 심한 말을 해서 죄송했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탕만이 울먹거렸다. 보통 일이 아닌, 이런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1인분을 하지 못했다. 그게 너무 분했다. 자신에게 정말 실망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친하게 지내는 사촌 형이 주선해준 사람들이었다. 정말 잘하고 싶었다. 근데, 잘되지 않았다. 너무 분하고 정말 미안했다. 탕만은 살면서 이렇게 중요한 자리에 서본 적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곳에서 느껴지는 막중한 책임감은 그를 대역 죄인으로 만들었다.
“왜 울먹거리세요. 진짜, 저희들은 괜찮아요.”
시은이 그를 다독였다.
“정말 잘해보고 싶었는데, 잘하려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산박도 괜히 마음이 약해졌다. 그는 괜히 다른 변명거리를 내뱉었다.
“비단 탕만 씨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래서 내린 결정도 아니고요. 화염 물약을 써버렸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쓸 아이템이 아니었습니다. 또, 1레벨 던전이 생각보다 강합니다. 전원 장비가 미흡했어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산박의 말에 담긴 함의를 알아차린 건 시은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표정은 태연했다. 트럭 상인 박조조를 통해서 산박과 또 다른 연결 고리가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