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화 (43/270)
  • 43화

    “신체를 소폭 강화해 줍니다. 1레벨 야만의 장비라고 불리고,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그 효과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보조 무기네요.”

    “예.”

    1레벨 던전에나 나오는 야만 종족이었다. 그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보다 더 강한 힘이었고, 그렇게 봤을 때 야만 신의 힘이 깃든 장비는 궁합이 나쁜 건 아니었다. 야만적인 문화를 생각했을 때, 힘을 주니까 오히려 더 대단한 신으로 받아들여졌을 터였다.

    “단검에 힘을 부여받고 가져가면 제법 돈이 될 겁니다.”

    산박은 제단에 꽂힌 채 붕괴되어 가는 시체를 끌어냈다. 다른 이들도 도와서 새로운 시체를 제단 정상에 있는 키메라상에 꽂았다.

    산박이 무기를 찌르려고 했는데, 가슴이 답답해졌다.

    ‘으.’

    이상한 감각, 마음? 위장? 뭔가 답답해졌다. 결국 산박은 창을 찌르는 걸 포기하고 충호에게 이를 맡겼다.

    “왜요? 괜찮으세요?”

    “조금 답답해져서요. 대신 해주세요.”

    산박의 말에 충호는 무리 없이 단검을 찔렀다. 단검은 순식간에 변화했다. 곳곳에 화염과 칼날 같은 형상이 돋아났다.

    “성공했습니다. 쏠쏠하겠는데요.”

    부무장으로 인기 있는 아이템이라면 분명 개당 1~2만 원 정도는 받을 수 있을 터였다. 상당한 이득이었다.

    팀원들이 돈 욕심에 펄펄 날아다니며 붕괴되는 시체를 제단 아래로 떨어뜨리고 새로운 시체를 키메라상에 꽂고 야만의 은총을 받는 모습을 보며 산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답답했는지 알 수 있어서였다.

    ‘빛의 신 팔라딘 때문이다.’

    산박은 그의 은총을 받고 있었다. 빛의 제단도 있었고, 청철 훈장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자가 야만 신의 은총을 받으려고 한다? 팔라딘이 좋아할 것 같지는 않았다. 신과 관계를 맺는다는 건 무조건 이득을 보는 게 아니었다.

    ‘강제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뜻을 거스른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깨닫게 해준다.’

    답답함을 이겨내고 투척 단검을 시체에 찌르는 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빛의 제단이 사라질지도 몰랐고, 청철 팔라딘 훈장이 힘을 잃을 수도 있었다.

    빛의 신 팔라딘으로부터 힘을 빌려 쓰는 주제에 다른 신을 숭배한다는 것은 배신행위이며 변절자가 된다는 뜻이었다. 다신교적 특성을 지닌 산박에게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빛의 신이 주는 혜택은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하였다.

    일행은 야만 힘을 받은 투척 단검을 배낭에 넣어 제단의 구석에 숨겼다. 던전이 붕괴되거나 클리어된다면 지하철로 이동될 것이었다.

    “정리할게요.”

    팀원이 정리하는 사이에 시은은 일꾼 곧개미를 네크로맨시로 일으켜 세웠다. 병정 곧개미나 근위 곧개미는 일으켜 세울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음흉한 발루악 때문이었다. 그녀의 해골 일으키기 주문은 오로지 발루악을 통해서 배운 것이기에 기본적인 라이즈 스컬 주문보다도 약했다. 이 때문에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발루악이 걸어놓은 장치였다. 이 약화된 주문은 그녀가 카르마의 선택을 통해서 다른 네크로맨서 주문을 획득할 때까지 계속 그녀를 괴롭힐 것이었다.

    물론 그녀는 몰랐다. 다른 네크로맨서를 모르기 때문이고, 팀으로도 만난 적이 없어서였다. 폐쇄적인 네크로맨서 사회에서는 무조건 가입해야지만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은 산에 있는 폐쇄된, 버려진 대학교를 거점으로 잡고 있었기에 염탐이나 첩보를 통한 정보 획득도 불가능했다.

    흐더더덕. 뿌지이이익!

    일꾼 곧개미의 피와 살덩이가 뭉쳐서 밖으로 빠져나왔다. 갑각 피부 사이의 부분마다 쭈르륵 흘러내려서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살과 피가 뒤섞여 마치 원자가 분해된 것처럼 묽은 죽이 되어 있었다. 시체 자원이 바짝 빨린 살덩이와 피, 내장은 본래의 형태를 가지지 못했다.

    체중이 쏙 빠진 해골 곧개미는 외관상으로는 변한 게 전혀 없었다. 그들의 갑각 피부가 뼈인 셈이었다. 해골 곧개미에게는 네 개의 뒷다리와 두 개의 앞다리가 존재했다. 일꾼 곧개미였기에 다른 곧개미보다 약하고 다리의 개수도 적었다.

    “창을 쥐게 하죠.”

    산박이 의견을 제시했고, 모두 동의했다. 피와 살, 내장이 쏙 사라진 곧개미는 힘 싸움도 못할 게 분명했다. 견제가 최선이었다. 해골 곧개미는 앙상한 앞다리 두 개에 모두 창을 쥐었다. 후방에서 압박, 견제, 보호 활동을 하게 될 터였다.

    “근위 곧개미를 일으키죠. 일으킬 거면 그게 좋지 않나요?”

    탕만의 말에 시은이 바로 대꾸했다.

    “안 돼요. 힘이 부족해서요. 시도해 봤는데 강한 반발력만 느꼈어요.”

    아쉬운 일이었다.

    그들은 복기를 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피해가 컸다. 은신처를 나왔음에도 다시 되돌아가서 쉬어야 할 판이었다. 산박이 힘을 모두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근위 곧개미에게 왜 주문을 쓰지 않았습니까?”

    산박이 시은을 타박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미 다 써버렸는데 어떻게 써요? 일꾼 곧개미한테 다 썼어요. 한 마리라도 놓치면 바로 지원군이 올 텐데, 그랬으면 지금 이러고 있을 수도 없었겠죠. 부산물을 챙기는 것도, 야만의 힘을 단검에 부여하는 것도 못 했을 거예요.”

    도망치듯이 떠나야 했을 터다.

    모조리 죽였다는 건 매우 훌륭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녀의 손길 주문을 모두 써야 했다. 곧개미들은 눈이 회복되자마자 모조리 탈출구로 내달렸고, 그걸 정면으로 막기에는 일꾼 곧개미가 지닌 힘이 두려웠다. 싸우지는 않아도, 신체 능력으로 능히 인간을 찢어발길 수 있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만, 이제 근위 곧개미를 상대로는 주문을 아끼지 말아야겠습니다.”

    산박이 매우 진중하게 말했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의견에 찬성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산박을 제외하고 모조리 중상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산박이 그렇게 말한 것이 대단할 지경이었다. 그는 다치지 않았기에 얼마든지 곧개미를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산박이 지닌 팀장으로서의 능력치가 높음을 알 수 있었다.

    “이대로 은신처로 돌아가서 힘을 회복하고 가겠습니다.”

    하루를 공치는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허나 알고 있음에도 모두의 표정에 그늘이 졌다.

    산박은 시은에게 제단의 위치를 상세하게 기록할 것을 주문했고, 은신처로 돌아가는 내내 몇 군데에 걸쳐서 표식을 했다. 제법 과할 정도였다.

    다시 은신처 굴로 들어간 그들은 휴식하는 도중에 불청객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사박, 사바박.

    “구덩이 야영지에 곧개미가 들어왔어요.”

    “조용히 하면 괜찮아요. 인기척 내지 말고. 어차피 여기에 있다는 거 몰라요.”

    산박이 눈에 낀 눈곱을 떼며 조곤조곤 속삭였다. 신경 쓰이는 상태에서 일행은 오랜 시간을 휴식해야 했다. 자정이 되고 나서 산박과 시은의 힘이 돌아오자마자 팀은 움직일 준비를 했다.

    “…….”

    “좀 북적북적해요. 소란스럽고.”

    나가면 바로 구덩이 야영지였다.

    ‘한다면 지금이다.’

    “작전 설명할게요.”

    ‘까딱 잘못하면 전멸이다.’

    그의 머리는 퇴각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걸 말하지 않은 이유는 아직도 두 개의 제단을 더 찾아야 하기 때문이었고, 혹시 상황이 반전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더 강해지고 싶은 마음이 빠른 도망을 선택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었다. 또한 리더로서 쉽게 목표를 변경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대장삵, 네가 물의 마법을 다양하게 사용해라. 내 집중성탄은 관통력은 좋지만 상황이 받쳐줘야 여럿을 상대할 수 있어서 이번 던전에서는 안 좋아.”

    “알았다. 나만 믿어! 한 마리는 반드시 쉽게 처리할 수 있으니까.”

    물의 마법은 효율성이 좋은 계통이었다. 모든 상황에서 능히 대처할 수 있었다.

    “전 호랑이로 변해서 크게 휘젓거나 대장삵과 연계하겠습니다.”

    체중이 0.1t 이상이 될 수 있는 상태였다. 더는 작은 호랑이라고 할 수 없었다. 모두 아이템, 장비의 힘이었다.

    ‘역시 돈이다.’

    돈이 최고였다. 돈이 많으면 더 쉽게 강해질 수 있고, 더 쉽게 던전 공략을 할 수 있었다. 모든 게 쉬워졌다. 그것만큼 재밌는 인생도 없었다.

    “시은 씨는 강해 보이는 놈, 덩치가 큰 놈 위주로 주문을 써서 방해를 해주세요.”

    “네.”

    산박은 충호와 탕만을 바라보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뭐든지 강하게 밀어붙여야 합니다. 이건 기습입니다. 기습은 기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알아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호랑이로 변해 그냥 돌파해서 휘젓기 때문에 두 사람이 특히나 더 공격적으로 나오셔야 합니다. 그래야 제가 편하고, 두 분도 편해집니다. 곧개미가 결코 혼란을 잡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산박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각개 격파. 곧개미마다 다른 팀원을 노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격력을 한껏 낮출 수 있었다.

    산박은 호랑이로 변했다. 흙을 조심스럽게 걷어내어 얇게 되었을 때 산박부터 그대로 흙을 뚫고 질주했다.

    구덩이 야영지에는 일곱 마리의 병정 곧개미들이 있었다. 그들은 온화한 자수정 화덕을 여럿 준비해 놓고 보급품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군사 활동을 시작한 곧개미들의 후방 보급책이었다.

    제법 북적북적했다. 그 소란스러움 덕분에 흙이 무너지고 호랑이가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보초를 서고 있는 병정 곧개미 두 마리는 양쪽의 구덩이에 걸쳐서 머리만 쏙 내밀어 밖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마른 애벌레가 잔뜩 들어가 있는 상자를 옮기는 병정 곧개미를 호랑이가 그대로 덮쳤다.

    쿵!

    괴물과 야수가 무너지는 소리는 제법 컸다. 놈은 저항하지 못했다. 무기는 너무 길었고, 개미의 앞다리 또한 너무 길었다. 몸과 몸이 들러붙은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밀어내는 힘도 보잘것없었다. 팔뚝이 굽혀져 있어서 제대로 된 힘조차 내지 못했으며, 기습을 당했기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그저 몸에 힘을 주는 본능적인 대처밖에 할 수 없었다.

    콰득!

    산박은 곧개미의 목을 물어뜯었다. 고갯짓을 할 필요도 없었다. 뼈가 있지도 않았고, 이빨이 박히는 순간 이미 모든 게 끝났다.

    “컹!”

    호랑이가 소리를 지르며 질주했다. 산박은 짐을 무너뜨리고 몸으로 자수정이 담긴 화덕을 엎었다.

    와르르!

    큰 소란이 안에서 일어났다. 시선은 단번에 그곳으로 몰렸다. 곧개미들이 다른 곳을 보는 사이에 충호와 탕만이 돌진했고, 시은이 사위를 훑었다. 사수(射手)의 눈은 단번에 상대의 이모저모를 파악했다. 그리고 충호와 탕만이 당장 감당해야 할 놈들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서 주문을 사용했다.

    “마녀의 손길.”

    시은의 손에서 거무튀튀한 자줏빛의 손이 튀어나와서 상대를 향해 날아갔다.

    “그롹!”

    충호의 가까이서 호랑이를 보고 있던 병정 곧개미의 목을 마녀의 손길이 강하게 움켜쥐었다. 고통과 불편함을 느낀 병정 곧개미가 네 개의 앞다리로 마녀의 손길을 움켜잡아서 떼어내려 했지만 쉬울 리가 없었다. 한 마리가 그대로 마녀의 손길과 아웅다웅했다. 죽일 수는 없었는데, 악력이 부족해서였다.

    그사이에 시은은 석궁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틈틈이 마녀의 손길을 적재적소에 이용하기도 했다. 또한 가장 느린 해골 곧개미도 은신처에서 나와 싸우기 위해서 움직였다.

    “이야아아아!”

    충호가 거칠게 덤볐다. 그는 쓰러진 짐을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다른 곧개미가 도움을 주려면 짐을 돌아서 오거나 건너도록 유도했고, 한 놈을 거칠게 노렸다. 시은의 정확한 원호가 특히나 충호가 단기간 내에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무엇보다 기습이 매우 유효했다. 알고 행동하는 것과 갑작스러운 일을 대처하는 일은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프로그램이 아니며 인적 오류를 가진 존재에 불과했다. 모든 상황에 매뉴얼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그건 괴물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촤아악!

    단번에 앞다리 두 개가 잘렸다. 충호는 곧개미의 다리를 베서 균형을 무너뜨리고 힘 싸움에 들어갔다. 인간 전사가 괴물을 상대로 힘으로 우위를 보였다.

    다리 세 개가 잘린 병정 곧개미는 균형을 가누지 못했고 원하는 곳에 힘을 집중할 수도 없었다. 허무하게 밀려났고, 그대로 목에 검이 박혔다. 몸은 계속 움직였지만 그 어떤 위협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의미한 발악에 불과했다. 끔찍하고 덧없으며 구질구질한 죽음이었다.

    “뭐 해, 이 새끼야!”

    그렇게 곧개미를 죽인 충호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계속 자신의 옆에서 얼쩡거리고 있는 탕만 때문이었다.

    “으…….”

    탕만은 충호의 껌딱지처럼 따라와 있었다. 당초 전술과는 달랐다. 그는 범처럼 날뛰어야 했다. 이 혼란이 얼마 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인데, 탕만은 애새끼마냥 충호와 함께하고 있었다. 자신보다 강한 괴물과의 전투에서 끔찍한 패배를 맛보았고, 그 충격이 아직 정신과 영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탕만은 위축되어 있었다. 그리고 모든 전황이 다시 뒤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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