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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41/270)

41화

팀 옥시모론은 흩어져 양쪽 구석에 숨었다. 횃불이 꺼졌다. 새하얀 입김이 어둠 속에서 응어리졌지만 알아차리기 매우 힘들었다. 괜히 구석을 주시하는 이가 있을 리 없었다.

매서운 추위가 바람 한 점 없이 가라앉은 이 던전에 온화한 자수정을 앞세우며 곧개미들이 나타났다.

‘보통내기가 아니다.’

평범한 놈들이 아니었다. 그건 놈들의 장비에서 알 수 있었다.

병정 곧개미는 순찰병들이고 척후대의 일원이다. 순찰을 돌기 때문에 경장비가 기본이고 방어구조차 안 입은 야만스러운 병사들이었다. 매우 넓고 복잡한 곧개미의 굴에서 활동하는 병정 곧개미였기에 불가피한 일이었다.

허나 제단에 들어온 곧개미는 달랐다. 온화한 자수정이 휘황찬란하게 박힌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다. 틈새는 많았지만, 중요한 건 온화한 자수정 덕분에 따뜻하게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행동 하나하나에 활력이 넘쳤다.

무기 또한 철로 된 무기를 쓰고 있었다. 기괴한 것은 검이든 창이든 망치든 공격할 수 있는 부분에 칼날 같은 장식이 자연스럽게 들러붙어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판타지에서 볼 법한 휘황찬란한 무기들이었다.

“가르르르르.”

근위 곧개미가 소리를 냈다. 다른 곧개미에게는 없는 발성 기관이 그들에게는 존재했다.

산박은 공격 사인을 내리지 않았다. 적들이 모두 들어와야 모조리 처리할 수 있었다. 좁은 통로에서 상대가 모두 들어오지 않은 상태에서 기습한다면 밖으로 나갈 수 없을지도 몰랐다. 서로 반대편에서 버티기 쉬운 지형이기 때문이었다.

‘위험을 안고서라도 모두 석실로 들어오게 해야 한다.’

두 마리의 근위 곧개미를 뒤이어서 일꾼 곧개미가 큰 짐을 싣고 들어왔다. 거친 밧줄을 엮어서 만든 포대기였다. 이를 바닥에 놓고 펼치자 야만스러운 무기가 잔뜩 나왔다. 나무창, 돌도끼, 돌망치 등등.

두 마리의 일꾼 곧개미의 뒤를 이어서 일곱 마리의 일꾼 곧개미가 시체 일곱 구를 가져왔다. 그 시체는 동물, 대형 벌레, 동족의 시체 등 다양했다.

마지막에 한 마리의 근위 곧개미까지 들어왔다. 후방을 담당하던 자였다.

‘뭘 하려는 거지?’

산박은 드루이드였고, 시은도 마녀였다. 두 사람 모두 이 곧개미들이 준비한 것에 흥미를 느꼈다. 자연스럽게 공격 사인은 나오지 않았다.

충호와 탕만만이 답답하게 산박과 곧개미들을 지켜봤다. 온화한 자수정의 빛에서 아슬아슬하게 벗어나 있었기에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들은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아 답답함만 길어졌다.

일꾼 곧개미는 체구도 앙상했고 무기도 들고 있지 않았다. 몇몇 공구만 허리춤에 매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두 마리씩 짝지어서 시체를 한 구씩 들고 제단의 꼭대기에 있는 키메라상 위에 꽂아 넣어 그 상을 가렸다.

제단에 피가 흘러내렸고, 곧 서서히 빛을 내기 시작했다. 음울한 검붉은빛이었다. 야만적이고 사악했으며 불길했다. 특히 육감이 좋은 충호는 기이한 존재가 이 석실에 들어섰음을 느낄 수 있었다. 혹은 뭔가가 주시하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미쳐버릴 것 같은 감각이었다.

반면 산박은 직감적으로 이곳의 용도를 알 수 있었다.

‘무기에 초월의 힘을 담아내는 곳이다. 시체를 공양 삼아서.’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근위 곧개미가 자신의 무기를 뒤쪽으로 놓고 포대에 있는 나무창을 들어서 제단을 올라갔다. 그러고는 흉악한 상에 꽂힌 시체에 나무창을 찔러 넣었다. 아주 천천히, 하지만 깊게.

곧 나무창의 재질이 철로 변하며 창날에서 화려한 칼날이 사방으로 솟아났다. 근위 곧개미가 지닌 무장과 똑같은 특성을 보이는 무기가 순식간에 태어났다. 그걸 확인하자마자 산박이 신호를 보내며 단번에 섬광 단검을 허공으로 던졌다.

번―쩍!

“꾸르라라락!”

근위 곧개미가 기습에 고함을 질렀다. 섬광 단검의 빛에 눈이 멀었지만 자신의 무기를 단번에 뽑았다. 실로 능숙함과 노련함이 돋보였다. 그들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야만 전사들이었다.

모두 근위병을 노렸지만 단 한 명, 시은은 근위병이 아닌 일꾼 곧개미들에게 관심이 갔다. 약자를 죽이고 괴롭히고 밟는 걸 좋아하는 시은에게 삽시간에 패닉 상태에 빠져서 도망치려는 일꾼 곧개미는 성욕보다도 더 강한 쾌락을 선사해줄 도구이자 수단이었다.

‘멍청한 놈들!’

그녀의 입꼬리가 잔혹하게 말려 올라갔다. 퇴로는 하나인데 곧개미들이 사방팔방 도망쳤기 때문이었다. 눈이 멀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말 살고 싶어서 악착같이 버둥거리며 삶을 구걸하는 처절한 행동이었다.

그게 시은을 더욱 자극했다. 전투력으로 따진다면 용맹하게 기습에 대처하는 근위 곧개미를 합심해서 죽여야 했지만 그녀의 석궁은 일꾼 곧개미로 향했다.

쐐액!

푹!

일꾼 곧개미의 갑피 내구력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너무나도 쉽게 부서졌다. 그걸 확인한 시은은 석궁을 버렸다. 단시간 다수를 상대로는 석궁은 썩 좋은 무기는 아니었다. 특히나 도망치는 놈들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방향을 잘 맞춘 놈에게 석궁 한 발을 먹여서 퇴로에 시체를 하나 쌓은 시은은 벽에 부딪히며 머리를 돌려 퇴로로 향하는 일꾼 곧개미에게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촤악!

시원한 소리를 내며 일꾼 곧개미의 몸이 환도에 갈라졌다. 약자를 죽이면서 오는 쾌락, 그 우월함. 살인으로 완성되는 고양감과 평온은 시은의 모든 것을 불사르게 하였다.

시은은 일꾼 곧개미를 발로 차서 옆으로 쓰러뜨린 뒤 다리를 자르고 그냥 지나갔다. 죽이지 않았다. 버둥거리는 일꾼 곧개미의 움직이는 소리가 귓가로 들리며 시은의 귀를 간지럽혔다. 그것은 시은에게 마치 혀가 귀를 핥는 듯한 쾌락을 주었다. 거침없이 달려들며 도망만 치는 일꾼 곧개미를 죽이는 일은 시은에게 몇 없는 행복한 일이 되었다.

그사이에 세 명의 팀원은 호위 병정 곧개미를 노렸다. 물론 대장삵 또한 병정 곧개미 전투에 참가했다. 그는 용맹한 삵이었다. 가장 멀리 있는 놈을 노렸는데, 시간을 끌기 위해서였다.

제단 위에서 빛에 노출되어 눈이 멀어버린 근위 곧개미가 곧장 내려오고 있었다. 계단을 잘못 밟아서 비틀거리기도 했지만 착실하게 아군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방금 ‘의식’을 마친 무기는 시체에 그대로 꽂아두고 자신에게 익숙한 무기를 뽑은 상태였다.

찰박.

후웅!

아주 작은 소리였음에도 근위 곧개미가 창을 휘둘렀다. 허나 창은 허공을 갈랐다. 대장삵은 정말 작은 동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삵 중에서도 대장인 대장삵이라도 그건 매한가지였다.

‘이거 마법을 안 쓰면 못 이기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대장삵은 물러나지 않았다. 발소리로 교란하며 근위 곧개미가 아군에게 합류하지 못하게 버텼다. 대장삵 때문에 놈은 네 개의 다리로는 계단을 더듬거리고 상체에 있는 네 개의 다리로는 무기를 더 많이 쥐어서 방어 태세를 취했다.

찰박.

대장삵은 마치 기회를 포착하려는 듯이 조신하게 굴었다. 난잡하게 발소리를 많이 내지 않았다. 그렇게 한다면 상대 야만 전사는 대장삵이 원하는 것을 알아차릴 공산이 컸다. 그리된다면 곧개미는 자잘한 피해를 입더라도, 넘어져서라도, 데굴데굴 굴러서라도 제단을 내려갈 터였다. 전투는 항상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타격을 입더라도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 게 더 중요할 때가 있었다.

대장삵이 근위 곧개미를 효과적으로 붙잡고 있을 때, 충호와 탕만 그리고 산박은 두 마리의 근위 곧개미와 전투를 시작했다.

산박은 거침없이 집중성탄을 사용했다. 지금이 아니면 틈이 생기지 않을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소리를 내는 근위 곧개미 두 마리가 단번에 서로 몸을 맞대며 수비 태세를 취했기 때문이었다. 떨어져 있는 근위 곧개미에게로 향하는 대장삵을 봤기에 뭉쳐있는 놈 중에 한 놈을 노렸다. 특히나 근위 곧개미의 합류 속도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산박은 자신의 영혼을 자극했다. 영혼의 극히 일부분이 완성되어 가는 주문에 스며드는 게 느껴졌다. 두 눈에서 광채가 줄줄 흘러내렸다. ‘작은 별의 힘’ 또한 산박이 적에 대해서 큰 위협을 느끼며 극도의 집중 상태에 도달했기에 보다 빠르게 별빛탄 주문을 응축시켰다.

파아아앗!

빛이 터져 나오며 그대로 쏘아졌다. 빛은 수비 태세를 취한 채로 수동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던 근위 곧개미의 가슴을 정확하게 꿰뚫고 지나갔다. 강력한 관통력!

“꾸르륵.”

근위 곧개미가 단번에 전신의 힘을 잃으며 허망하게 무릎 꿇고 머리부터 바닥에 처박았다. 부르르 떠는 사지는 죽음이 얼마나 허망하고 잔혹한지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우오아아아아아!”

그 강력한 주문 피해를 본 탕만이 고함을 내지르며 충호보다 앞서 나갔다.

“멍청아!”

충호가 소리를 꽥 질렀다. 서로 호흡을 맞추면 맞출수록 강력한 이득을 볼 수 있는 게 전사였고 백병전이라는 전투 환경이었다. 아군의 호쾌한 기세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뛰쳐나가 버린 탕만은 팀 단위의 실전을 겪어보지 않은 애송이 그 자체였다. 훈련 때는 착실하고 어느 정도 수준으로 보였지만 훈련과 실전은 달랐다.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 소리에서 나오는 고양감과 흥분. 진짜, 현실이라는 날것의 감각. 생피를 뚝뚝 흘리는 듯한 소름 끼치도록 바짝 올라선 피부. 그 모든 것이 탕만이 기세에 잡아먹히도록 만들었다. 이성은 본성에 굴복하고 지성은 분노에 잠식되었다.

근위 곧개미는 아릿아릿한 시야 속에서도 자신이 범(虎)이라고 착각하고 거친 기세를 내뿜으며 포효하는 탕만의 존재를 인식했다. 온화한 자수정이 뿜어내는 빛에 서슬 퍼렇게 빛나는 탕만의 검과 방패를 볼 수 있었다.

완벽하게 보지 않아도 적의 무기를 파악했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맹공뿐이었다. 동료가 있다면 버티고 역공을 노리는 게 정석 중 정석이다. 비겁함을 논하기에는 전쟁터의 냉혹함은 차갑고 매섭다. 하지만 동료가 죽었다. 죽어가는 그 소리를 들었기에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뒤는 없었다. 그렇다면 적을 하나라도 죽이는 게 야만 전사로서 옳은 일이었다.

목숨을 도외시한 맹공은 가장 먼저 네 개의 앞다리로부터 시작되었다. 네 개의 무기를 지닌 근위 곧개미에게 홀로 먼저 뛰어든 탕만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비슷한 체격을 가지고 있어도 던전에 서식하는 놈들은 모두 ‘괴물’이라 불린다. 0레벨은 기습과 원거리 수단 그리고 던전 내에 존재하는 던전 식물을 이용해 함정으로 능히 사냥이 가능했지만 1레벨은 사정이 달랐다. 첫 1레벨 던전에 입성한 탕만은 제대로 신고식을 치렀다.

근위 곧개미는 뒷다리 두 개를 제외하고 다리를 모두 들어 올렸다. 단번에 서로 간의 체고가 크게 차이가 났다. 족히 40cm 이상 곧개미의 몸이 순간적으로 높아졌다. 탕만은 자신의 시야를 가득 뒤덮는, 갑작스러운 자세 변화를 통한 거대함에 압박감을 느꼈다.

근위 곧개미의 ‘쇄도 공세 전투술’이었다. 악명 높은 전투술이었는데, 갑자기 체고가 높아지면서 마치 계단 위에서 적을 상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악명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평지에서도 위에서 내리꽂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정말 불합리한, 그저 다리 개수가 많기에 가능한 전투 우위 전술이었다. 그 결과는 끔찍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잘못됐다.’

퍼버버벅!

말 그대로 한순간이었다. 네 개의 앞다리에 쥐고 있는 칼날 무기가 탕만을 내려쳤다. 방패의 가드? 소용없었다. 쭉 뻗어있던 방패가 쑥 내려졌고, 그대로 탕만의 머리를 내려쳤다. 균형을 잃은 탕만은 돌진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앞으로 형편없이 엎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충호가 이를 악물고 쫓아와서 근위 곧개미에게 칼을 찔렀다. 거리 때문에 휘두르면 닿지 않아서였다.

캉!

무기와 무기가 부딪쳤다. 근위 곧개미의 다른 앞다리가 휘릭 돌아가며 탕만의 등을 찔렀다.

“아아악!”

탕만이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일어서려고 했지만 근위 곧개미의 아래 다리 네 개가 그를 짓눌렀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유리한 위치에서 백병전으로 붙어도 힘에서 달리는 괴물과의 전투다. 그런데 누워서 곧개미의 다릿심을 이겨낸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불가능했다.

탕만의 등판이 난도질당하기 시작했다. 산박이 쫓아오고 있었지만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그 반대편에서는 시은이 도망치는 일꾼 곧개미의 아래턱을 잡아당기며 쓰러뜨리고 있었다.

충호가 방패를 들이밀었지만 무기 두 개가 겹겹이 치며 막았고 들러붙었다. 충호의 검과 근위 곧개미의 도끼가 서로 부딪치며 불똥을 튀게 하였다.

카가각……!

힘 싸움에서 밀리자 충호가 몸을 뒤로 뺐다가 다시 부딪쳐 왔다. 방패가 살짝 뒤로 빠지면서 공간이 생긴 곳에 부딪쳤다. 제법 충격을 받았음에도 근위 곧개미는 건재했다.

산박이 슬링을 던졌지만 근위 곧개미는 가볍게 피했다. 시야가 회복되었기 때문이었다. 정면에서 쏘는 돌팔매질? 형편없었다. 화살보다 무겁지만 느리기 때문이다.

“끄으으…….”

등을 칼로 난도질당한 탕만은 더는 크게 고함을 지르지도 못했다. 다 죽어가는 소리가 나오고 나서야 산박이 도착했다.

산박은 모든 힘을 소모했기에 동물로 변할 수 없었다. 환도를 빼어 든 산박이 우측으로 찔러 들어갔다. 그제야 근위 병정이 탕만에게서 물러섰다.

“까드르르륵!”

마치 그들을 비웃듯이 근위 병정이 소리를 냈다. 굵은 아래턱을 딱딱거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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