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병정 곧개미로부터 적출할 것을 적출하는 것으로 시체에 대한 것은 모두 마무리했다.
뚝! 콰득!
팀은 야만적인 무기 중에서 나무 부분을 떼어내고 부러뜨리고 뜯어서 장작으로 쓸 수 있게 만들었다. 지금도 호르몬이 분비되고 있을 병정 곧개미의 몸은 반드시 태워야 했다. 적어도 갑각 피부라도 타게 만들어야 했다.
나무 손잡이의 나뭇조각을 하나 똑 떼어내고 잘게 다진 다음에 그곳에 부싯돌을 부딪쳐서 불똥을 집어넣었다. 순식간에 불이 붙고, 시체가 타올랐다.
“이제 빠집시다.”
산박의 팀은 뒤로 빠졌다.
순수한 후방 포지션을 잡은 시은이 지도 제작을 맡았다. 최대한 종이의 정중앙부터 시작해서 지도를 작게 그렸다. 얼마나 많이 헤맬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시은은 능숙하게 이를 맡았다. 그녀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평소에도 피나는 노력을 했고, 모르는 게 거의 없을 지경이었다. 그녀가 지닌 위화감을 재능으로 지우고 남을 편하게 하는 것으로 희석시켜야 했다. 평범한 사람은 자신을 편하게 하는 자에게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의 이기적인 심리를 시은은 잘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았는데, 횃불의 불빛 때문에 기습을 당하기도 했다. 야만적인 곧개미는 도구를 쓰지만 후퇴하여 더 큰 무리로 덤빈다는 비열한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소리 없이 용맹한 병정 곧개미가 달려들었다. 병정 곧개미는 바닥과 벽에 다리를 하나씩 걸치고 덤벼들었다.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기습 포지션이었기에 허를 찔리는 감이 없잖아 있었으며, 구석을 노렸기에 시야에서도 조금 늦게 발견되었다.
“웃!”
선두에 있던 충호가 덤비는 놈을 보고 몸을 돌리며 반대편에 있는 방패를 움직이려고 했지만 놈은 실로 매서웠다. 운 좋게 충호의 우측을 파고들었다는 것도 주효했다. 방패가 왼쪽에 있었기에 충호는 몸을 틀어야 했고, 이는 매우 수동적인 행동이었다.
“정신의 망치!”
공짜 주문이 튀어나왔다. 또한 산박의 양쪽 눈에서 광채가 흘러나왔다. 영혼 자극 기술로 주문을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청철 팔라딘 훈장에서 황금빛 기류가 쏟아져 나왔고, 포물선을 그리며 기습을 감행한 병정개미를 노렸다.
쿵!
병정개미의 돌도끼와 정신의 망치가 부딪쳤다. 돌이 깨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크게 팔이 휘둘려졌고, 다른 무기와 부딪쳤다. 그 덕에 충호는 병정개미를 향해서 방패를 단단히 곧추세울 수 있었다.
쐐액!
석궁이 병정개미의 팔을 하나 맞혔다. 본래는 몸을 노린 것이지만 예측 샷에 실패했다. 병정개미는 실로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난잡하게 이놈, 저놈 건드리며 위협했다.
‘굉장히 산만한 놈이군!’
간을 보는 듯한 전투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이쪽이 방패를 두 명이나 소지하고 있었고 첫 기습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허망하게 죽어야 했다.
“휴!”
충호가 땀을 닦았다. 그는 재능 있는 전사였기에 방금 전이 얼마나 아찔한 순간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만약 피해를 입었다면 놈은 그대로 밀고 들어오며 이놈, 저놈 건드렸을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후방 포지션을 잡은 이들까지 건드리게 된다. 진형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리면 서로 손과 발이 얽히기 마련이었다. 생각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조심하세요. 이 녀석들 벽에 들러붙어서 단번에 덤비네요.”
마치 까치발을 서듯이 발로 땅을 밟고 나머지 몸체와 다른 다리는 벽에 최대한 밀착해서 오다가 그대로 덮치는 식이었다. 실로 끔찍한 기습 방법이었지만 성공적으로 그 정보를 취득했다는 게 매우 중요했다.
산박의 팀은 첫날 대단히 긴 거리를 주파할 수 있었고 병정개미 열한 마리를 죽이는 데 성공했다.
“이제 좀 쉴 곳을 찾겠습니다.”
소수 상대지만 일곱 번의 싸움을 겪었다. 전투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초고도의 집중을 해야 하는 근접 전투를 펼쳤다. 이제는 쉬어야 할 때였다.
“어디에서 쉬죠?”
“땅을 파야죠. 벽은 일꾼 곧개미가 슬라임 같은 거로 덮어 놨으니.”
횃불이 바닥에 꽂히고, 삽질이 시작되었다. 서로 번갈아 가며 삽질을 했다. 사람 하나가 기어서 들어갈 정도의 입구면 족했고, 내부의 흙을 퍼 올리는 데에는 한 명이 더 투입되어야 했다.
대장삵은 그사이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주변에 적은 없어. 아무래도 아직 발견을 안 당한 것 같은데.”
“모르지. 어찌 되었을지는.”
산박은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제법 그럴듯한 은신처가 만들어졌지만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네 명이 들어가서 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은폐는 쉬웠다. 숨 구멍을 최대한 많이, 다양한 곳에 놓고 나머지를 메꾸면 그만이었다.
“으, 답답해.”
다만 충호는 땅을 더욱 파서 벽 안쪽으로 올라가 구멍을 더 만들었다. 덩치가 커서 그런지 밀폐된 곳에서 버티는 게 고단해 보였다. 다른 이들도 힘들었지만 모두 그렇게 힘들어하지는 않았다.
시은은 곧바로 눈을 감고 조용히 잠에 빠져들었다. 추웠기에 산박의 옆에 딱 달라붙었다. 산박은 밀어내지 못했는데, 체온 유지는 꼭 필요해서였다. 그녀에게 명분이 있는 셈이었다. 일행은 끼리끼리 뭉쳐서 휴식을 취했다.
가장 먼저 일어난 건 시은이었다. 후방에서 활약했기에 남들보다 피곤함이 덜했다. 반면 충호와 탕만은 침까지 흘리며 자고 있었다.
꼼질꼼질.
시은이 산박의 몸을 더듬거리자 산박이 눈을 천천히 뜨며 그녀를 노려봤다.
“뭐 하세요?”
“성희롱요.”
산박이 눈을 찌푸리자 시은이 손길을 거두었다. 그러면서 살짝 변명했다.
“허벅지랑 옆구리 좀 만진 걸로 유세는.”
잠깐의 장난이 있었지만 모두 몸을 풀고 관절을 움직였다. 대장삵이 가장 먼저 밖으로 나갔다. 적은 당연하게도 없었다. 그들 또한 광활한 던전 통로를 이 잡듯이 뒤져야 하는 입장이었다. 혹은 아직 걸리지 않은 걸지도 몰랐다.
산박은 밖으로 나가기 전에 청철 팔라딘 훈장을 손으로 쥐었다. 주문의 힘은 보충되지 않은 걸 확인했다. 아직 하루가 지나가지 않은 것이었다. 오래 휴식한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듯했다.
‘타임 어택이니까.’
계속 나아가야 했다. 여왕개미를 토벌하기 전까지는 무조건 빨리 움직여야 했다. 그런 마음이 알게 모르게 팀원들을 더욱 재촉했을 터였다.
산박은 이를 감안해서라도 휴식 시간을 많이 가지고 싶었지만 은신처는 하나뿐이었다. 쉬려면 다시 되돌아가야 했고, 이를 반복한다면 시간만 많이 날릴 뿐이었다.
“조금 더 쉬다가 갈까요?”
“아뇨. 괜찮은데요.”
“저도 펄펄 날 것 같습니다.”
산박이 한번 권유해 봤지만 모두 팔팔하다고 말했다. 얼른 진행도를 높이고 싶어 했다. 그는 이를 거부하지 않고 던전 공략을 시작했다.
“여기 좀 보세요.”
탕만이 방패를 드높였다. 방패의 앞으로 묶어진 횃불이 벽을 환하게 밝혔다. 그곳에는 누군가가 슬라임 내부에 있던 시체를 가져간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허둥지둥 가져갔네요.”
산박은 슬라임의 난잡한 잔해를 손으로 적당히 훑으며 견적을 봤다. 큰 행동, 큰 동작이 있어야지만 이렇게 난잡하고 넓은 범위의 슬라임 잔해를 만들 수 있었다.
“저희들이 온 걸 알아챘어요.”
그게 아니라면 녹이던 식량을 허둥지둥 꺼내서 가져갈 리가 없었다.
“나쁜 소식만은 아니죠. 여길 지나갔다는 건 저희 은신처가 있는 통로를 지나왔다는 것이 되지 않습니까?”
충호의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은신처는 앞으로도 안전하게 쓸 수 있을 듯했다. 등잔 밑이 어두운 것처럼 적이 자신들이 확인한 곳을 또 확인할 공산은 적었다. 시간이 축적되고 똑똑한 놈이 있다면 은신처가 있는 곳을 깨닫겠지만, 글쎄였다. 실로 야만적인 종족이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할 만하지 않습니까? 무기도 형편없고…….”
탕만이 희희낙락해 했다. 1레벨 던전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거침없는 발언이었다. 수륵이 죽고 강합의 허벅지가 랜스에 한순간에, 정말로 빠른 순간에 한 방에 박살 나고 그대로 기절한 것을 보지 못한 사람의 태도다웠다.
“방심하지 마세요. 정말 훅 갑니다.”
“네. 알겠습니다.”
탕만이 산박의 경고에 대답했지만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돌발 행동은 하지 않겠지.’
산박은 더는 다그치지 못했다. 과민 반응이라고 여길 수 있어서였다. 산박이 말하지 않아도 탕만은 앞으로의 전투를 통해서 깨우치게 될 것이었다. 곧개미들의 무서운 물량 공세를.
그들 팀은 그 뒤로 한 시간 동안 병정 곧개미를 만나지 못했다.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은 던전 안은 폭풍 전야나 다름없었다.
“잠시 쉽시다.”
산박이 일행을 멈춰 세웠다. 이렇게 추운데도 최전방에 선 충호와 탕만이 땀을 흘리고 있어서였다.
팀원들이 쉴 때 탕만이 산박에게 다가왔다.
“팀장님, 어제랑 왜 이렇게 분위기가 다르죠? 개미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뭉쳐서 다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날에 말했지 않습니까. 점점 만나기는 힘들고, 만나면 적의 숫자는 계속 늘어날 겁니다.”
여왕개미를 죽이기 전까지.
지금은 정말 마라톤의 첫 출발선을 지난 것에 불과했다. 5일간 그들은 여왕개미를 잡아야만 했다. 그게 아니라면 제단을 세 개 부수고 던전에서 도망치게 될 것이었다.
일행은 다시 탐색을 시작했다. 양쪽 벽은 산액으로 뒤덮여 있었고, 때때로 그곳의 시체가 뜯겨나가 어디론가로 운반되고 있었다. 이는 식량 창고일 공산이 컸다. 팀은 그곳을 추적해 나갔다.
‘이상한데.’
수십 분의 추적. 흔적은 꾸준했지만 적은 만나지 않았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산박이 팀의 목표를 바꿀 생각을 했을 때, 그제야 충호가 멈췄다. 전방에 뭔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적은 아닙니다.”
그건 석상이었고, 깃발이기도 했다. 매우 협소한 통로의 사이에 석상이며 깃발인 것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곳으로 시체가 끌려간 흔적이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 협소한 틈은 천장이 끝도 없이 위로 올라가 있었고 횃불의 불빛으로는 천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꿀꺽.
그 거대한 스케일, 그 끝없는 천장의 구멍 틈새는 탕만이 마른침을 삼키게 하였다.
전사들이 그 끝없는 하늘의 어둠에 관심을 가지고 감성을 지녔을 때 드루이드와 마녀는 석상이며 깃발인 것을 확인하기 바빴다.
“특이한데요.”
“정보에 없는 거라서, 돈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시은의 말을 산박이 받았다. 그는 아직도 멤버십 등급이 올라가지 않았다. 던전 정보 상인들의 뒷배는 대단했고, 제법 돈을 찔러 줬음에도 요지부동이었다. 참을성을 잃게 하는 놈들이었다. 혹은 그냥 배가 불러서 서민들의 목돈 수준으로는 멤버십 업그레이드를 못 하는 건지도 몰랐다.
‘다른 정보원을 찾아야 할지도.’
기업이 아닌, 개인에게 접촉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주술과 신앙……. 분명 제단인 것 같은데…….”
제단에 깃발을 끼워 넣은 듯한 형상이었다. 늑대, 까마귀, 쥐와 괴물, 고블린부터 트롤까지 기괴망측한 모든 것들이 뒤엉켜 있는 상에 깃발이 꽂혀있는 식이었다. 실로 야만적인 제단이었다. 피가 잔뜩 묻은 깃발은 용케 만들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들고 갈 수는 없겠어요.”
잡광석이라 너무 무거웠다. 덩치도 큰 인공물이었다.
충호는 옆으로 몸을 틀어야 협소한 통로를 지나갈 수 있었다. 그렇기에 가장 마지막에 들어가기로 했다. 대장삵이 가장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다.”
그제야 탕만부터 시작해서 산박, 시은, 충호가 들어갔다. 내부는 그렇게 넓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주 공들여서 만들어진 석실이었다. 반들반들하게 비벼서 맨들맨들하게 만든 돌들로 벽과 바닥, 천장을 메워 놓았다.
그 중심에는 제단이 존재했다. 계단식 제단이었고, 사람 키보다 조금 높았다. 제단의 꼭대기에는 포효하는 키메라가 그려져 있었다. 실로 흉측한 생명체였다.
“이게 그 제단입니까?”
“예. 이걸 세 개 부수면 됩니다.”
그 말에 탕만이 혀를 찼다.
“이게 부서지기는 합니까? 철 덩어리인데…….”
부수기 매우 힘들어 보였다. 어느 정도 부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크게 훼손이라도 시켜놔야 했다.
“그래서 제단을 부수는 데 시간이 제법 소모됩니다. 선택과 집중을 잘해야 하지요.”
못해도 세 시간 이상은 걸릴 게 분명했다. 특히 재질이 철이라는 것부터 매우 인위적이었다. 야만 종족이 만들 수 있는 제단이 아니었고, 그런 석실도 아니었다. 실로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었다.
팀 옥시모론은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대장삵의 귀가 쫑긋거렸다.
“누군가 온다.”
입구는 좁았고, 나갈 수 없었다.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산박의 손짓에 두 명 두 명으로 나누어졌다. 대장삵은 시은에게 찰떡같이 붙었다. 석궁을 다루는 그녀는 지킬 가치가 있는 사격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