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270)
  • 39화

    “저희는 화공을 쓰겠습니다. 부산물도 가져가야 하고, 부싯돌도 있고, 또 몰리더라도 화염 물약이 있으니 능히 대처가 가능할 겁니다.”

    산박이 큰 줄기를 잡았다. 식량 창고를 태우고 곧개미 놈들이 약화하였을 때 적극적으로 여왕개미를 타격한다. 목표가 뚜렷했다.

    그때 탕만이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의견을 제시했다.

    “팀장님.”

    “예. 말씀하세요.”

    “후퇴할 수는 없습니까? 저희는 보급도 5일 치밖에 없지 않습니까.”

    식량 창고를 태우거나 여왕개미의 흔적을 발견하는 일은 말 그대로 복불복. 영원히 헤맬 수 있었다.

    “그때가 되면 도망치면 됩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돌아다녀야 합니다.”

    묘실 던전이든 무슨 던전이든 탈출은 던전을 어느 정도 공략해야만 가능했다. 몸을 돌린다고 지하철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또, 중도 포기를 할 수 없는 던전도 많았다. 곧개미의 굴은 그런 면에서 어느 정도 선택이 부여되는 편이었다.

    “조건이 뭔데요?”

    여왕개미를 죽이는 것 말고 던전에서 도망치는 법을 시은이 물었다.

    “제단 같은 걸 만나야 합니다. 곧개미들이 숭배하는 곳이기에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걸 세 개 무너뜨리면 던전에서 튕겨져 나옵니다.”

    “어찌 되었든 돌아다녀야 한다는 거네요.”

    다양한 목표가 존재했고, 집중을 해야 했다. 제단을 무너뜨리는 것 또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모두 하려고 하다가는 아무것도 못 한 채 죽을 수 있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제단은 파괴하지 않습니다. 위치만 표시하고 공략이 안 될 때 파괴할 겁니다.”

    탕만을 보며 산박이 경고하듯이 말했고, 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느낌이 안 좋아.’

    보급이 부족했다. 탕만은 오직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충호는 여기서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다행 아닙니까. 다른 던전은 중도 포기도 안 되지 않습니까.”

    “오로지 외길보다는 이런 던전이 나은 면도 있죠.”

    시은이 냉큼 받아치며 몇 마디를 떠들었다. 그때 대장삵이 짐승 소리를 냈다.

    “햐악! 온다.”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대장삵의 귀가 180도 돌아갔다. 그쪽으로 모두의 시선이 홱 돌아갔고, 엉금엉금 기어서 구덩이에서 움직였다.

    “고개 들지 마세요.”

    탕만이 보려는 걸 산박이 어깨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소리가 날 뻔했지만 충호가 몸을 밀착시키며 균형을 잃은 탕만으로 하여금 천천히 다시 자세를 갖추게 했다.

    “죄송합니다.”

    엄폐물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고개를 내민다면 확실하게 보일 뿐이었다. 내가 볼 수 있으면 적도 볼 수 있다. 그제야 탕만은 0레벨 던전을 위해서 교육을 받을 때가 생각났다.

    ‘나뭇잎 속의 눈동자가 되어라.’

    지금 땅에서 머리를 내민다면 검은 도화지에 놓인 노란 나비처럼 잘 보일 것이었다.

    “야영지에 오는 순찰조 같습니다.”

    “전투를 해야 합니다.”

    구덩이 야영지는 곧개미들에게나 좋은 야영지였다. 인간에게는 쓸데없이 깊은 구덩이일 뿐이었다. 나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던전의 굴에서 노출되기 쉬웠다. 차라리 여기에 들어올 곧개미를 기습하는 게 좋았다.

    “삭아, 너가 봐봐.”

    어두침침한 곳에서는 대장삵이 딱 어울렸다. 털 색깔도 흙과 비슷했다. 그는 머리만 아주 조금 내밀어 구덩이 야영지의 구석에서 적을 확인하고 다시 내려왔다. 인간보다 머리가 작은 게 아주 좋은 척후병이었다.

    대장삵의 눈에 병정 곧개미가 들어왔다. 구덩이에서 올려다보기 때문에 더더욱 덩치가 커 보였다. 인간보다 작은 삵의 눈에는 실로 거인과 같았지만, 대장삵의 눈에는 두려움 한 점 없었다.

    그는 캡틴이었다. 삵들의 우두머리이며, 싸늘한 송곳니라 불리는 늑대 무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몽모탄 구릉의 지배자로 살았다. 덩치가 크다고 해서 죽일 수 없는 놈은 없었다.

    거대한 개미의 앞으로 쭉 뻗어있는 네 개의 팔은 야만스러운 무기를 쥐고 있었다. 돌과 청동 그리고 황동으로 이루어진 도끼와 몽둥이였다. 원거리 수단으로는 돌들이 하나씩 묶인 밧줄이 있었는데, 간석기로 갈아져서 위아래로 뾰족한 투척 돌을 여럿 짊어지고 있었다.

    “몇 마리냐?”

    “두 마리. 헌데 뭔가 두꺼운 놈들이다. 굵직굵직하다.”

    산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찰하는 개미는 당연히 병정 곧개미였다. 몸이 두꺼운 게 당연했고, 이 야만 종족의 전사 계급이었다.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병정 곧개미는 특히나 눈이 좋습니다. 그들은 순찰을 빠짐없이 자주 하기 때문에 그렇게 진화했습니다. 이번에는 전술 1을 사용하겠습니다.”

    “너무 전력 아닙니까? 섬광 단검은 조금 더 아끼는 게…….”

    탕만이 아깝다는 투로 말했지만 그 외에는 모두 입을 다물고 이견을 내지 않았다. 그제야 분위기를 파악한 탕만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팀원의 영입부터 무료 아이템 지급까지 하는 산박의 의견은 웬만하면 받아들여야 했다. 또한 전술 1은 소수를 상대로도 좋았다.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 굳이 한 소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준비하세요.”

    “예.”

    모두 짧게 대답했다. 대장삵은 이시은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그녀가 작게 웃음 지었다.

    시은과 대장삵은 우측으로 이동했다. 상대는 화살을 좌측으로 맞게 될 것이고, 이는 큰 단점이었다. 매서운 공격은 항상 우익으로 쳐야 했다. 상대의 주 눈은 오른쪽이기 때문이다. 왼쪽에서 타격해야 상대가 조금이라도 느리게 반응할 수 있었다. 물론 이 방법이 괴물에게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그들은 좌시가 주 눈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은은 바닥에 볼트를 세 발 정도 살짝 박아놓고 석궁을 장전한 뒤에 때를 기다렸다. 사부작거리지 않고 조용히 숨어서 기척까지 지웠다. 숨도 길고 얄팍하게 내쉬었다. 대장삵은 언제든지 달릴 준비를 했다.

    할짝.

    대장삵은 거친 혀로 발톱을 다시 한번 날카롭게 만들었다. 그 모습을 시은이 힐끔 보며 잔혹하게 웃었다. 포식자인 삵과 시은은 어느 정도 공통된 면이 존재했다.

    그들과 반대편인 좌측에 있는 산박은 슬링을 할 준비를 마치고 왼손에 잡은 섬광 단검을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 첫수는 섬광 단검이 장식하고, 두 번째로 슬링이 쏘아질 것이었다.

    사박, 사박.

    흙을 내딛는 여러 개의 다리. 체중이 분산되기 때문에 실로 조용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싸늘한 침묵 속에서 확실하게 소리가 들려왔다. 구덩이 야영지에 곧개미가 그 큰 머리를 들이밀었다. 적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섬광 단검이 천장으로 쏘아지며 그들의 시야 밖으로 향했다. 섬광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검을 땅에 내려놓고 있던 탕만이 단번에 곧개미의 더듬이를 잡고 당겼다.

    병정 곧개미는 힘으로 버티고 무기를 휘두르려고 했지만 그 전에 충호의 칼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팔을 자르고 방패로 머리를 후려갈겼다. 곧개미는 휘청거림과 동시에 그대로 끌려 내려왔고, 충호와 탕만이 옆으로 비켜섰다. 탕만은 비켜서면서 땅에 내려 두었던 한손검을 냉큼 회수했다.

    퍽!

    산박이 던진 슬링이 끌려 내려온 병정 곧개미의 눈에 정확하게 박혔다. 흉측한 소리가 나며 소량의 체액이 튀었다. 돌이 박히면서 큰 출혈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측의 시야가 차단되었을 뿐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병정 곧개미는 무기를 휘둘렀다. 당연히 충호는 허우적거리는 공격을 피했다. 이를 맞은편에서 보고 있던 탕만이 고함을 꽥 내질렀다.

    “우오아아아아!”

    탕만은 방패를 들이밀며 그대로 돌진했다. 병정 곧개미의 시선을 끌기 위함이었다. 충호가 있는 쪽은 시야가 박살 났고, 무기를 휘두르며 허우적거렸음에도 성과가 없었다. 대신 탕만이 고함을 지르며 돌진하자 병정 곧개미가 그곳에 신경을 쓰는 그 순간.

    푸―걱!

    한 걸음 물러섰던 충호가 한손검으로 함몰된 눈을 그대로 찔러 머리를 꿰뚫었다. 세 명에게 협공당한 병정 곧개미는 순식간에 죽어 버렸다.

    그들이 싸움을 시작한 것처럼 시은과 대장삵도 싸움을 시작했다.

    번―쩍!

    ‘왔다!’

    시은은 벽을 등지고 있다가 빛이 터져 나오자 벼락같이 행동했다.

    타닥!

    미리 단검으로 구덩이 벽면을 훼손해 계단처럼 발을 쑤셔 넣을 곳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번개처럼 올라갈 수 있었다. 시은은 상체만 딱 밖으로 드러낸 상태로 장전해둔 석궁으로 빛에 눈이 멀어 있는 후방의 병정 곧개미를 노렸다.

    투웅!

    묵직한 소리를 내며 석궁이 발사되었다. 화살보다 날카로운 궤적 소리는 나지 않았다. 볼트가 짧았기 때문이었다.

    퍽!

    시은의 예측 샷은 정확하게 성공했다. 주춤거리며 비틀거리는 병정 곧개미의 갑각의 틈새에 볼트가 깊게 틀어박혔다. 놀라운 사격 솜씨였다.

    시은이 석궁을 쏘는 사이에 대장삵은 후방의 놈에게 내달렸다. 전방에 있었던 병정 곧개미가 허무하게 구덩이 안쪽으로 끌려가는 걸 봤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지 않았다. 앞 놈이 버티면 대장삵이 놈의 후방을 노리고 앞 놈이 무너지면 대장삵은 뒤의 놈을 노린다. 철저하게 약속된 전술이었다.

    사격이 성공적으로 후방의 적 타격에 성공했기에 시은은 위로 완전히 올라와서 석궁을 장전했다. 한 걸음 뻗어 나가며 허리를 굽혔던 것을 단번에 펴 순식간에 원시적 구조를 지닌 석궁을 장전했다. 대장삵이 뒤의 놈을 노렸기에 매우 안전했으므로 계속 원거리 타격에 임하는 것이었다. 특히 대장삵은 몸집도 작아서 석궁으로 적을 노리는 게 아주 편했다. 오인 사격률이 현격히 낮았다.

    “햐아아악! 캬아아!”

    대장삵이 짐승 소리를 거칠게 내며 병정 곧개미의 다리를 순식간에 지나갔다. 실로 민첩한 움직임이었고, 재빨랐다. 다친 병정 곧개미가 대장삵에게 무기를 내려쳤지만 좌우로 움직이면서 껑충 뛰어올라 등을 타고 가다가 다시 뛰어내려서 쏘옥 딴 곳으로 향해 버리는 대장삵을 무기로 잡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거기에 아직 멀어버린 눈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직 소리로만 대장삵을 쫓아야 했다. 대장삵의 거친 소리는 실로 위협적이었다. 병정 곧개미는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가 10kg도 안 되는 작은 놈이라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쐐액, 퍽!

    석궁이 다시 한번 발사되고, 병정 곧개미의 팔을 맞혀서 떨어뜨렸다. 팔 하나가 말 그대로 뜯겨 나갔다. 체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사이에 산박, 충호, 탕만이 위로 올라와서 마지막 남은 놈을 처리했다.

    “휴.”

    피해를 입은 팀원은 전무했다. 완벽에 가까운 기습이었다. 산박은 대장삵을 칭찬하며 명령했다.

    “잘해 줬다. 마법을 쓰지 말라고 하니 정말로 안 써줘서 고맙다. 망을 보고 있어라. 부산물을 취득해야 하니까.”

    “알았다.”

    대장삵이 망을 보는 사이에 산박은 다른 팀원을 모아서 곧개미가 가지고 있는 상품성 있는 신체 부위를 적출했다. 가장 먼저 체내에 존재하는 장기부터 꺼냈다. 껍질과 껍질 사이에 단검을 쑤셔 넣고 옆으로 비틀었다. 틈이 생기자 산박은 손의 방향을 바꿔서 껍질을 있는 힘껏 당겼다.

    쩍!

    단번에 배가 드러냈다.

    “느, 능숙해 보이십니다.”

    탕만의 말에 산박이 체액이 묻은 얼굴로 씨익 웃었다.

    “돈 주고 정보를 사서 그런 거죠. 대충 인공물로 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봤거든요.”

    “그런 걸 보고 그렇게 됩니까?”

    팀원이 놀라워했다. 당연히 안 된다. 산박은 살덩이를 자주 만져봐서 쉽게 할 수 있는 것뿐이었다.

    “여기가 아니네요.”

    물론 실수도 했다. 엉뚱한 곳을 갈랐다. 한 번 더 가르고 나서야 산박은 위장을 꺼낼 수 있었다.

    “그건 어디에 쓰이는데요?”

    시은이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었다.

    “연금 재료예요. 인챈트에 쓰이죠. 효과는 반발력 강화라서 백병전에 탁월한 효과를 가지고 있죠.”

    “좋네요.”

    반탄력, 반발력이 생긴다는 건 인간에게 큰 이득이었다. 괴물은 강하기 때문이었다. 당장 탕만이 병정 곧개미를 잡아당겨도 버틴 것만 해도 그렇다. 타격을 주거나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힘 싸움에서 절대 이길 수 없었다.

    그다음에는 아래턱 주위에 있는 더듬이 여섯 개를 챙겼다. 다른 사람이 묻기도 전에 산박이 술술 더듬이에 대해서 말했다.

    “던전 신소재의 재료로 쓰여요. 마법과 과학의 융합이죠. 1레벨 부산물이지만 2레벨 장비 이상에 쓰입니다.”

    “와우. 비싼 냄새가 나는데요.”

    “그건 아니죠. 작업자들이 작업을 해야 나오는 던전 신소재잖아요.”

    산박이 시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떨이로 팔아야 해요. 사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죠.”

    던전 신소재는 기업들의 담합이 심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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