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화 (38/270)
  • 38화

    <곧개미>

    새로 영입한 방패 전사 탕만 때문에 훈련을 매우 빈번하게 실행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로 인해서 생길 불만이 있을 수 있었고, 팀장으로서 이를 가만히 둬서는 안 되는 게 상식이었다.

    ‘문제가 생기고 나서 해결하는 것과 예방하는 것에는 큰 온도 차이가 있다.’

    인간은 감성적인 존재였다. 한번 적이 된 사람과는 불화가 계속 생기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불만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상대에게는 크게 여겨질지도 몰랐다.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모두 힘을 추구하고 2레벨이 되고 싶어 하는 건 똑같았지만 그 속에서 생계를 꾸려 나가야 하고 돈을 조금이라도 더 원하는 자들은 0레벨 던전을 자주 돌 수 없었기에 불만이 불룩 튀어나올 수 있었다. 훈련에 참가하는 만큼 그날은 공을 쳐야 했다. 3~6만 원 손실이 아닌지요?

    다행이라면 산박은 던전 공략에 제법 돈을 투자하고 있었고, 더 확실하고 안전한 던전 공략을 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첫 훈련 때 탕만의 눈이 튀어나오는 것으로 효과를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이게 정말로 공짜로 지급되는 겁니까? 그냥 같은 팀원이니까?”

    “예.”

    탕만이 매우 의심스러워하며 산박에게 물었다. 그 모습에 다른 이들 또한 미소를 지었다.

    베풀 줄 아는 팀장을 만나는 건 실로 은혜로운 일이었다. 아니, 극히 드문 일례였다. 산박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짓을 하고 있었다. 바닥에서부터 인재를 끌어와서 순식간에 개개인의 포텐셜을 뛰어넘는 팀을 만드는 것은 대단히 칭송받을 일이었다.

    그런 산박에게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팀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해서도 안 되었다. 그런다면 은혜도 모르는 사람인 걸 증명하는 꼴이었다.

    산박은 진정으로 가만히 있어도 떠받들어질 팀장이었다. 지급 장비를 받지 못하더라도 믿고 따라야 할 팀장인데 그런 장비까지 주니, 말 그대로 보기 힘들고 드문 팀장이었다. 바닥부터 팀을 이끌어 와서 큰 성과를 내는 것만으로도 팀원들은 이 팀에서 계속 지내고 싶어 했는데(비록 불만이 있더라도) 오로지 더 안전하고 확실한 던전 공략을 위해서 아이템까지 지급해 주니 억 소리가 절로 나왔고 매우 의심스럽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강합 씨한테서 못 들었습니까?”

    “예, 전혀……. 아! 이제 기억납니다. 죄송합니다.”

    강합은 생각보다 꼼꼼한 성격이 아니라 아무렇게나 떠들었을 터였다.

    산박은 탕만에게 섬광 단검 두 자루, 투척 단검 두 자루 그리고 화염 진득액 가죽 주머니 하나를 지급했다. 거기에 시은의 화염 물약까지 추가되니 놀랄 노 자였다.

    또한 산박은 저번 던전에서는 들고 오지 않은 드루이드 빛 무리 치료수도 한 병씩 더 얹어줬다. 치료 행위의 필요성이 생각보다 컸다. 힘을 소모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는 물약은 무조건 더 있는 게 좋았다.

    그 모든 걸 받은 탕만은 절로 손을 떨었다.

    ‘소비 아이템만 본다면 기업 팀과 비슷하다.’

    물론 다른 방어구나 무기가 1레벨 아이템이 아니라서 형편없었지만……. 감히 불만 하나 나오지 않았다.

    반면 산박은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1레벨 던전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아서였다. 더 많은 장비, 더 많은 아이템을 준비하고 갖춰 나가야 했다. 언제 죽을지 몰랐다. 그게 두려웠다. 허나 그는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꿈이 있기 때문이었다.

    ‘1레벨 던전 수준을 생각하면 아직도 부족하지.’

    정신력의 회복이나 트라우마 완화의 스크롤은 너무 비싸서 구매하지 않았다. 차라리 임시 팀원을 모집하는 게 이득이었다.

    * * *

    그 뒤로 일정을 잡았고, 던전 공략에 임했다.

    ‘장비를 새로 산 사람은 없네.’

    산박은 하나둘 모이는 팀원들의 전신을 훑었다. 산박이 지급해준 것 외에는 전혀 추가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준비되었으면 들어가겠습니다.”

    “예!”

    산박의 말에 일제히 대답했다.

    그들은 전과 같이 똑같은 지하철로 향하여 어둠으로 들어갔다. 부산물을 넣기 위한 배낭을 욱여넣은 배낭을 짊어지고, 5일 치 식량을 메고 걸음을 옮겼다. 어둠이 그들을 집어삼켰다.

    눈을 뜨기도 전에 충호는 코를 찌르는 악취를 맡았다. 마치 신경계를 침범하는 독극물이 코로 들어오는 듯한 감각이었다. 섬뜩했다.

    또한 그런 악취와 함께 시리도록 차가운 공기가 폐로 들어왔다가 밖으로 나갔다. 입에서 입김이 자욱하게 튀어나왔다. 인간은 물론이고 온혈 동물의 체온 유지는 엄청난 칼로리를 소비한다. 이번 던전은 생명체에 대한 적의를 더욱 드러내는 곳이었다.

    “으으, 추워!”

    시은이 몸을 떨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한순간에 기후가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악취 때문에 얼굴도 잔뜩 찌푸려졌다.

    땅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마치 현무암처럼 보였지만 발로 비벼보니 그냥 흙이었다. 산박은 횃불을 들이밀어 땅을 자세히 확인했다. 동그란 곳이 검게 타있었다. 태워지고 녹은 것이었다.

    ‘미친.’

    등골이 절로 서늘해졌다. 흙을 녹일 정도라면 사람도 녹일 수 있었다.

    킁킁.

    바닥의 흙의 냄새를 맡아 보았지만 코를 찌르는 악취는 맡아지지 않았다. 악취는 땅에서 나는 게 아니었다.

    “윽. 이게 뭐야?”

    다른 이들이 질색했다. 벽이 액체로 가득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점성이 매우 대단했다. 괴물의 일종인 슬라임을 벽에 펴 바른 듯한 모습이었다. 그곳에서 실로 끔찍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제기랄.”

    초록색의 두꺼운 점막 속에 생명체가 들어가 있었다. 그건 동물 혹은 괴물로 보였다.

    산박은 슬링을 하기 위해서 거꾸로 매어 두었던 환도를 뽑아 들어 단번에 점막을 잘라냈다. 점액이 늘어지며 찢어졌고, 생명체가 썩은 액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 두개골이 기괴하게 발달한 멧돼지였다.

    “으윽.”

    “웩.”

    너도나도 헛구역질했다. 반면 충호와 산박은 무덤덤하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멧돼지를 키우는 걸까요?”

    “두개골이 마치 공룡처럼 발달한 게 돌진하는 데 특화된 괴물 같습니다.”

    “뿔은 없네요.”

    가축으로 사용될지도 몰랐다.

    의문을 해소하고 정보를 획득한 산박의 팀은 시체를 은폐하고 움직였다. 악취 때문에 후각이 완전히 마비된 건 매우 무서운 일이었기에 전방과 후방을 탄탄히 하고 소리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해야만 했다.

    전방에서 걷던 충호가 주먹을 말아 쥐었다. 모두 걸음을 멈추었다. 급하게 멈추지는 않았다. 그러면 흙을 긁으면서 소리가 크게 날 터였다.

    산박이 충호의 뒤에 바짝 붙었다. 충호가 이를 느끼고 입을 열었다.

    “앞에 불빛이 있습니다.”

    작은 속삭임. 산박은 무리에서 이탈하여 몸을 낮춘 채 살짝 코너를 돌아 보았다. 그리고 다른 팀원을 불렀다. 적은 없었다. 그저 흔적만 있을 뿐.

    “야영지 같은데요.”

    시은이 둘러보고 말했다. 그곳은 길목을 턱 하니 막고 있었다. 허나 막고 있다고 하기에는 조금 어폐가 있었다. 장애물이 없기 때문이었다. 막고 있다고 여긴 건 단지 땅이 푹 패있어서였다.

    파인 공간은 약 열 명이서 지낼 수 있을 정도로 제법 컸다. 그곳에는 온갖 도구들이 있었고, 수많은 흔적이 존재했다.

    “천천히 내려가세요. 경사가 제법 되네요.”

    “괴물들의 야영지라서 그런지 사람이 내려가기는 힘드네요.”

    충호와 산박만 야영지로 내려가기로 했다. 가까이서 확인해 보니 ‘구덩이 야영지’의 깊이가 상당했다. 괴물들이 쓰는 곳이기에 당연할지도 몰랐다.

    “이 정도면 몸을 숨기기에도 좋겠어요.”

    불빛이 아니었다면, 혹은 이곳에서 괴물이 쉬고 있었다면 큰 곤욕을 치렀을 터였다. 자신들이 먼저 발견하더라도 방심했을 수밖에 없었다.

    미약한 빛 속에서 멀리 봤던 것과 가까이서 보는 건 큰 차이가 있었다. 탁월한 눈이 아니면 가늠하기 힘들었다.

    가장 먼저 산박은 빛을 내는 화덕으로 향했다. 보랏빛을 내는 곳에 도달하니 추위가 아닌 온화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화덕의 표면을 만졌다.

    ‘흙이다.’

    흙을 쌓아두고 말리고 다시 덮어두고 말리고를 반복해서 만들어진 단단하기 짝이 없는 화덕이었다.

    산박은 그곳에 모여있는 자수정을 하나 집어 들었다. 온기가 느껴졌다. 자수정의 속에는 뭔가 자그마한 벌레 같은 게 꿈틀거리며 맥동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 나서야 산박은 이 던전을 파악할 수 있었다.

    ‘곧개미의 굴이다.’

    산박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일반 던전이긴 하지만 상당히 위험한 축에 들기 때문이었다.

    일반과 특수 던전의 차이는 오직 빈도수뿐이었다. 그리고 곧개미의 굴은 일반 던전이었다. 자주 걸린다는 뜻이었다. 물론 엄청난 숫자의 통계 속에서 상당한 선택을 받는 던전 형식일 뿐이었다. 수많은 일반 던전 중 하나였기에 곧개미 굴만 생각할 수는 없었다.

    “뭐예요? 이 보라색 같은 건?”

    “온화한 자수정이에요. 제법 잘 팔리는 던전 상품이죠.”

    산박은 자수정을 배낭에 담았다. 그리고 이 던전에 대해서 언급했다.

    “던전 클리어를 하려면 여왕개미를 죽여야 합니다. 괴물 중에서도 가장 나약한 존재입니다. 알만 낳는 존재이기에 전투할 생각도, 할 감각 기관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퇴화하고 오로지 알만 낳는 기계였다.

    “쉽겠네요. 저번 묘실 던전에서는 보스 괴물이 엄청난 실력자였지 않습니까.”

    충호가 쉽게 말했다. 다그닥거리는 소리는 아직도 악몽으로 꾸기도 했다. 그런 놈을 상대로 하다가 전투 능력이 없는 보스 괴물을 만나는 건 너무나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산박은 본격적으로 이 던전의 위험성을 논했다.

    “무서운 건 그 보스 몬스터를 만나러 가는 길 자체가 힘들다는 거예요.”

    산박은 몇 가지 곧개미들의 방해 방식을 거론해 나갔다.

    “가장 대표적으로 하는 일은 통로 막기입니다. 흙벽을 쌓아서 통로를 막아 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그걸 뚫거나 되돌아가야 합니다.”

    “허.”

    황당한 짓거리였다.

    “적이 제법 근접해 오면 여왕개미를 옮길 준비를 합니다. 피난을 가는 것이죠.”

    비대한 몸체에 걸을 수 없어도 꿈틀거리며 몸을 억지로 움직여서 도망칠 터였다. 많은 곧개미가 여왕개미를 받쳐주고 밀어줄 것이었다.

    “방 하나만 공략하는 게 아닙니다. 도망치는 여왕개미를 잡아야 하죠.”

    “혹시 던전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아십니까?”

    불안함에 탕만이 물었다.

    “아무도 모를 정도로 광활한 지하 공간입니다. 헤매고 헤매고 계속 헤맬 정도죠.”

    “…….”

    꿀꺽.

    “표시해도 힘들죠. 통로가 곧개미들 때문에 막히니까 착각을 한번 해버리면 지도도 무용지물이 됩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착각해 버리니까요.”

    “아직 들키지 않았을 때 최대한 조심해야 하겠네요.”

    시은이 정론을 말했지만 아쉽게도 그런 건 통하지 않았다.

    “언제까지 들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죠. 또 만나는 족족 완벽하게 죽이고 은폐하더라도 호르몬을 분비해 버립니다.”

    호르몬은 엄청난 속도로 다른 곧개미들에게 적의 등장을 알릴 것이었다.

    “해결 방법은 뭡니까?”

    “세 가지 공략 방법이 있습니다.”

    산박이 손가락 세 개를 들어 올리며 말했고, 하나씩 접어 나갔다.

    “곧개미의 식량 창고 다섯 곳을 파괴해서 곧개미를 굶겨 죽이는 겁니다.”

    식량이 없으면 곧개미는 굶어 죽는다. 보통 개미가 아니고 괴물 개미였기에 그들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덩치가 크기 때문이었다.

    “약화된 곧개미를 죽이면서 여왕개미를 찾아서 던전을 클리어하면 됩니다. 가장 안전한 방법인데, 여왕개미와는 다르게 식량 창고는 도망치지 않기 때문이고, 곧개미의 식량 소비 수준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곧개미란 놈은 어떻게 생긴 놈이죠?”

    1레벨 던전의 정보에 크게 투자하지 않은 이들이기에 질문투성이였다. 적은 돈을 투자해서는 수많은 일반 던전과 소수의 특수 던전(잘 걸리지도 않는)에 대한 극소수의 정보만 얻을 수 있을 뿐이었다. 정보를 움켜쥐려면 목돈을 들여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준비하는 던전 사용자는 많지 않았다.

    “이족 보행 하는 야만 종족이 곧개미입니다. 개미가 서서 다닌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체고는 130~170으로 다양합니다.”

    개미의 거대화. 매우 징그러운 놈들이었다.

    “도구를 쓴다는 말씀이시죠?”

    “예. 그리고… 숫자가 제법 됩니다. 몰려서 다니기를 좋아하는 놈들이고 무리를 없애면 없앨수록 그 덩치가 커집니다. 처음엔 한두 마리씩밖에 안 뭉쳐서 다니는 놈들이 나중에는 열다섯까지도 몰려다닐 수 있습니다. 그때가 올지도 모르니 화염 물약은 사용을 제한하도록 하겠습니다.”

    말로만 들어서는 이 던전에 대해서 체감이 잘 안 올 수 있었다.

    “다시 되돌아가서, 두 번째 공략 방법은 여왕개미를 추적하는 일입니다. 딱 한 번만 여왕개미가 대피했던 흔적을 찾아내면 역추적을 통해서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도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곧개미의 숫자에 집어삼켜질 수 있습니다.”

    가장 단기간에 끝내는 방법이었고, 가장 위험한 방법이었다. 던전 사용자들이 거의 쓰지 않는 방법이었다. 부산물을 획득할 시간조차도 없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방법은 화공입니다. 장작으로 쓸 만한 것을 최대한 모은 뒤 불을 지르고 도망치기를 반복하며 가능한 한 많은 곧개미를 죽이고 여왕개미를 처리하는 방법입니다. 사전 준비가 어려워 시간이 가장 많이 걸려서 리스크는 비슷비슷합니다.”

    “팀장님은 어떤 선택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 말에 산박이 입을 열었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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