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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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박은 아침 일찍 샤워를 끝내고 몸무게를 측정했다. 78kg. 더 찌워야 했다. 85~90kg이 전사다운 몸체였다.
그간 활동하는 것에 비해서 많이 먹었지만, 그것보다 더 먹어야 했다. 고기가 질리고 밥맛이 더러워도 먹고, 틈틈이 간식으로 단것도 먹어 치워야 했다. 그 식비는 어마무시했다. 그런데도 그 식비를 더 높게 만들려는 게 산박의 목표 중 하나였다.
오늘은 납품을 조금 덜 하고 동물 변신 주문을 할 힘을 남겨 뒀기에 산박은 순식간에 작은 호랑이로 변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체중을 측정했다. 동물의 놀라운 균형 감각이 있었으므로 작은 체중계에 발 네 개를 모두 놓을 수 있었다.
93.6kg. 확실히 체중이 증가해 있었다. 사족 보행을 하는 데다 호랑이는 움츠려서 은밀하게 걸을 수도 있었기에 작아 보일 뿐이었다. 몸길이는 인간 형태의 키보다도 조금 더 길었다. 팔다리도 인간의 팔다리와 비교하기에는 무례할 정도로 굵기가 두툼했다.
‘이제 당진 지구에 가볼까.’
다른 던전 사용자들과는 다르게 산박은 전방에서 호랑이로 기습하고 후방에서 주문으로 타격하면서도 물약을 만들어 팔 수 있었다. 전천후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 산박은 우월한 지혜 능력치로 인해서 다른 드루이드는 가지고 있지 않은 ‘대장삵 소환(Captain Leopard Cat Summon Spell)’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덕에 강력한 치료 활동까지 가능했다.
아쉬운 건 힘이 제한되어 있어서 한 번에 몇 인분은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한 분야에서 일 인분 내지는 0.5인분만 가능했다. 이 때문에 산박은 주문 강화(Spell reinforcement) 1레벨 아이템을 구매할 생각이었다.
당연히 다른 곳에 가지 않고 곧바로 당진 도시로 향했다. 그곳은 외국 기업이 터를 닦으며 시작한 곳이었고 다른 한국 기업들도 합류하면서 강력한 기업 정치가 땅을 지배하고 있는 곳이었다. 대한민국 속의 또 다른 공화국이었다.
산박은 깊숙한 곳에 발품을 팔지 않았다. 적어도 주문 강화 1레벨 아이템은 무조건 큰 기업의 손을 들어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다른 부무장이나 짜투리 장비와 비교하면 이건 제법 중요하지.’
자기 몸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허투루 가성비만 생각해서는 결코 이득을 볼 수 없었다. 아끼다가 똥 되는 것이다.
‘군산 던전 산업’. 당진의 10대 기업에 들어가는 큰 회사였다. 특히나 후방 직업을 표적으로 투자하고 있기로 유명했다. 실제로도 고레벨 던전 사용자 중에서 주문 사용자들의 방어구는 죄다 군산 던전 산업의 제품들이었다.
산박 또한 군산 던전 산업의 제품을 구매할 생각이었다. 특히나 그는 브랜드 방어구를 찾아야 했다.
‘동물 변신 때문이지.’
신축성이 있는 천 옷을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최근에 깨달은 것인데, 동물 변신을 하면 옷도 동물의 피부로 융합되었다. 고로 되도록 단단한 갑옷을 입는 게 좋았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하면 주문 강화나 지혜 혹은 지능의 강화를 부여한 아이템을 사용할 수 없었다.
‘장단점이 모두 있다. 하지만 나는 천 옷이다.’
안 그래도 주문 피해가 적은 게 드루이드였다. 집중성탄이라는 훌륭한 관통력 주문이 있지만 만전의 상태에서 단 한 번 사용할 수 있었다. 되도록 그 한 방을 더 키워야 했다.
15층짜리 빌딩 앞에 산박이 택시에서 내렸다. 인력거를 끄는 노인들은 보기 힘든 게 당진 도시였다. 그 노인들이 어디로 갔는지 산박은 몰랐다.
빌딩의 입구 밖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있었다. 각 층의 내부에도 두 명의 경호원이 있었으며 유기적으로 층을 오고 가는 순찰 팀도 많았다. 그들 대부분이 1레벨 던전 사용자들이었다. 힘의 상승을 포기한 자들이었다. 산박은 그들을 탓하는 표정은 짓지 않았다.
‘1레벨 던전은 0레벨 던전과는 확실하게 다르니까.’
당장 산박의 팀만 하더라도 1레벨 던전에서 중상자와 사망자를 냈다. 그런 상황에서 2레벨을 노리는 건 매우 힘들었다.
모든 이들이 호전적이고 정신력이 강한 게 아니었다. 또한 현실에서는 1레벨 던전 사용자라고 해서 약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뒤에는 10대 기업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그들의 장비가 가장 큰 무서움이지.’
입장 대기 줄에 선 산박은 경호원들의 장비를 살폈다. 던전에 들어갈 때나 해당 던전 레벨의 장비 이상을 소지하지 못하는 것이지 현실에서는 1레벨 던전 사용자든 일반인이든 강력한 고레벨 장비를 사용하는 게 가능했다. 고로 누구든지 저 경호원에게 까불거리면 안 될 것이었다. 고레벨이라도 조심해야 했다.
겨우 매장에 들어온 산박에게 직원이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구경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따로 찾고 계신 게 있으십니까?”
“천 옷 방어구와, 주문 강화나 지혜 상승 방어구를 찾습니다. 안내를 좀 해주세요.”
“예!”
목소리에 힘이 넘치도록 교육을 받은 직원이 쾌활하게 대답하며 앞장섰다. 산박은 매장 안을 두리번거렸다. 족히 500평에 15층 건물을 모조리 쓰고 있었다. 그중에서 1레벨 던전 상품은 당연히 1층에 있었다.
산박의 눈에 따로 안내를 받으며 지정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바로 상층으로 향하는 고레벨 던전 사용자가 들어왔다. 고객은 한 명이었지만 직원이 두 명이나 붙어 있었다. 얼마나 가게에 돈을 가져다주면 저런 대우를 받는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고속 엘리베이터가 순식간에 위로 올라갔다. 투명한 엘리베이터를 통해서 그가 매장을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특권 계층의 권위를 누리는 기분은 실로 짜릿할 터였다. 자신의 존재 자체의 격을 드높이는 것이고, 자존감의 완충이다.
“손님,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네.”
산박은 그를 따라갔다. 직원이 그에게 가장 값이 나가는 것들을 보여 줬지만 산박은 냉큼 거절했다.
“요즘 나온 신상 말고 울트라 드라이 커버요.”
“아……. 예.”
직원이 시무룩하게 대답하며 다시 다른 구역으로 산박을 안내했다. 직원 마진이 가장 높은 곳을 떠나야 했기에 순간적으로 고객에게 본심을 보였다. 두 번, 세 번 오래 만날 사람이 아니었기에 산박은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갔다. 싸워봤자 시간 낭비였다. 그리고 도움도 되지 않았다.
기업 앞에서 산박이라는 개인은 처참할 정도로 나약한 존재였다. 바보처럼 진짜로 기업과 싸워보고 나서야 깨달을 필요도 없었다. 세상은 잔혹하다는 걸 산박은 잘 알았다. 수틀리면 해병대라도 살려고 튀고 경찰도 뒷돈을 좋아한다는 걸 이제 어엿이 알고 있는 게 산박이었다. 고아라는 이유로 사람 고기를 퍼먹으며 살았기에 알 수 있었다.
“찾으시는 게 울트라 드라이 커버라면 여기에 있습니다.”
‘주문 강화 울트라 드라이 커버(Ultra Dry Cover for Spell Enhancement)’.
“이게 그 주문력을 상승시켜 주는 것 맞죠?”
“네. 범용성이 대단하죠. 지능이든 지혜든 사용자에 맞게 1의 수치 상승을 확실하게 보장해 주는 장비입니다.”
지능의 상승이 필요한 직업은 지능의 보정을 받고 지혜가 필요한 직업은 지혜를 받는다. 중복은 일어날 수 없었다. 산박의 경우 지혜가 오를 것이었다.
“일단 이 방어구의 가장 큰 특이점은 급소 부위에 탄소 섬유를 안감으로 추가했다는 겁니다. 물론 거기에는 연금 내구력 코팅 처리를 했기 때문에 평범한 탄소 섬유보다도 뛰어난 보강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직원은 술술술 입을 움직였다.
“그것뿐만이 아니죠. 특수 신소재를 사용했기 때문에 완벽하게 방수가 가능합니다. 혈액부터 살 조각까지 남김없이 미끄러지듯이 털 수 있습니다. 또한 보온 효과도 지니고 있어서 어느 환경에서도 체온을 빼앗기지 않고 최대한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탁월한 점은 신축성입니다. 늘어나기 때문에 둔기 같은 것에도 잘 찢어지지 않고, 잘못 베인다면 방어구로서의 효과를 모든 부위에서 충분히 얻을 수 있습니다.”
“네네, 알고 왔습니다. 5만 원 맞죠?”
“20% 할인 판매 기간이라서 4만 원입니다.”
매우 착한 가격이었다. 산박은 검은색 일색의 옷을 치수에 맞게 가져갔다. 공장제였기에 딱 맞는 치수는 없었다. 이 장비를 맞춤형으로 사려면 적어도 세 배는 더 쳐줘야 했다. 또 팀 단위로 맞춰야 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주문을 받아 주지도 않을 터였다.
산박은 바로 상하의를 구매하고, 그다음에는 똑같은 세트인 은목걸이 하나와 은반지 두 개를 구매했다. 모두 지혜를 뜻하는 블루 사파이어가 박혀 있었다. 이를 통해서 더욱 높은 지혜 보정치를 획득했다. 여윳돈이 있고 사업을 하고 있어서 자신에게 더욱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었다.
‘반지도 열 개 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던전에 힘이 담긴 반지를 두 개다 많이 소지하고 들어가면 무작위로 두 개 외에는 모두 소실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물론 현실에서는 열 개 모두 소지가 가능하며 심지어 효과도 받을 수 있었다. 다만 보기에 썩 좋지 않기 때문에 ‘무형 반지’가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반지는 실로 현실의 패션에 매우 유용했다. 무엇보다 범죄에도 쓰기 좋았다. 물론 그 값이 천정부지로 높았기에 산박은 구매할 수 없었다. 빈익빈 부익부. 악독한 상황 속에서 가진 자들은 더욱 배를 채울 뿐이었다.
당진에서 돌아온 산박은 다시 한번 호랑이로 변했다. 전과 다르게 확연하게 다른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체중은… 124.8kg.’
이제 더는 작은 호랑이가 아니었다. 보다 더 강력한 체급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고, 발톱으로 고통을 주며, 갈비뼈를 체중으로 찍어 눌러 그 뼈를 부러뜨리고, 흉악한 이빨로 상대의 목을 움켜쥐는 호랑이가 되었다. 방심하는 상대를 어둠 속에서 뛰쳐나와 단번에 물어 죽일 수 있어 보였다.
‘이거지.’
산박은 다시 인간으로 돌아와서 웃음 지었다. 강해지는 맛. 그것 때문에 그는 목숨 걸고 던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빌딩에서 빠져나온 산박은 예의 그 상점으로 향했다. 무식하게 섬광 단검을 쌓아둔 그 상점이었다. 산박은 이번에 가게 이름을 확인하고 머리에 새겨 넣었다.
‘벼이삭 상점.’
글씨체가 추수를 기다리는 벼의 색깔이었고, 날림으로 있어서 읽기가 매우 불편한 간판이었다.
“어서 오세요.”
그를 쳐다도 보지 않고 대답하는 직원의 응대는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싸게 파는 물건 있습니까?”
“저기 단검요.”
“저거 말고는요? 사장님이 대량으로 들여온 게 분명 있을 텐데요.”
“네. 저기 안쪽으로 들어가 보세요.”
매우 불명확한 답변이었지만 산박은 더 대꾸하지 않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은 선반도 많고 얹어진 것도 많아서 미궁 같았다. 산박은 그곳을 빠짐없이 확인하고, 먼지가 소복하게 앉아있는 가죽 주머니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라벨을 확인했다.
[화염 진득액. 100g. 10,000원.]
간단한 설명도 적혀 있었다. 산박의 눈이 빠르게 설명을 훑었다.
‘불꽃과도 같은 가루가 검에서 타오름. 온도는 최소 300에서 최대 650도. 불규칙성이 크다.’
어쨌든 강력한 화력이었다.
‘무기에 가루를 묻히면 단번에 타오른다. 가루는 불이 붙으면 끈적한 상태의 액체로 변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바르는 것 또한 가능. 공격하면 알아서 붙겠어.’
생명체에 강할뿐더러 언데드의 뼈에 바를 수 있다면 그 또한 강력하게 쓰일 수 있었다. 상대에게 묻힐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화염을 적에게 묻힌다는 건 그냥 화염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큰 이점이었다.
‘근접 소이탄이나 다름없네.’
무식한 짓거리였지만 최고였다. 구매 욕구가 활활 타올랐다.
또 전사들에게 특히나 큰 힘이 되어줄 수 있었다. 전사들이 몇 번이나 다치고 중상을 입고 있었기에 이를 막지 않으면 임시 전사를 몇 명이나 구해야 할지 까마득했다. 충호같이 무덤덤한 이는 정말 드물었다.
‘몇몇 단점들도 있네.’
확실하게 인지하라는 뜻에서 붉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
‘철과 만나야지만 가루가 액체가 되며 불이 붙고, 한번 불이 붙으면 물로는 끌 수 없다. 마법적인 불꽃이기 때문이다.’
가루는 한번 털어내면 그걸로 끝이었다. 절반을 덜어서 쓸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파괴력이 반감되기 때문에 어떨까 싶었다. 한 번 쓸 때마다 만 원이 날아가는 식이었다.
‘1레벨 아이템. 1레벨 던전 100g 소지 가능.’
1인당 100g의 한계도 지니고 있었다. 말 그대로 조커 카드였다.
‘우리 팀이 네 명이니까 한 번 던전 갈 때 4만 원.’
터무니없다. 하지만 전사들의 피해를 생각한다면 구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괴물을 빨리 죽일수록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몸은 치유되어도 트라우마는 확실하게 남는다. 강합이 언제 합류할지 까마득했다.
‘전방 직업들에만 지급한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수 있었다. 산박은 당연히 묶음으로 다섯 개를 샀다. 개당 1만 원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구매할 때는 다섯 개를 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