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 * *
임시로 전사 한 명을 영입하기 위해서 광고를 해야 했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제가 한 명 압니다. 사촌 동생이고, 최근에 1레벨이 된 전사입니다. 정확히는 방패 전사고요.”
“가족과 연락 안 되는 거 아니었어요?”
병원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 강합의 가족들이었다.
“예. 근데 저랑 같이 던전 사용자가 되겠다고 한 동생과는 연락을 자주 합니다. 던전에 들어가서 연락을 못 받았다고 하네요.”
부재중 전화를 보고 부랴부랴 왔다고 했다. 강합이 어찌나 사촌 동생을 감싸는지 누가 보면 아들이라고 착각할지도 몰랐다.
“한번 보자고 하세요. 서류도 미리 제 휴대폰으로 보내 주시고요.”
“예.”
강합은 적극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임시라고는 해도 전방 직업을 받는 일이다. 그로 인해서 경쟁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혈육이라면 적어도 서로 끝장을 보지는 않을 수 있었다.
또한 산박도 무리해서 한 명을 내치지 못할 터였다. 내친다면 두 명 다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강합은 자신의 사촌 동생을 추천하는 것만으로도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안전하게 팀에 계속 있을 수 있고, 경쟁의 위험도를 낮췄다.
산박에게도 나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런 인간을 만나보지 못했지만, 책임감이 없는 팀원을 만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었다. 두 명의 살인자와도 팀원으로 만났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했다. 지인을 소개받으면 그걸 확 낮출 수 있었다.
‘방심하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조금 안심이 된다.’
“그 친구는 1레벨 던전을 공략한답니까?”
“아뇨. 1레벨에 올라섰지만 아직 0레벨 던전을 전전하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팀을 만나지 못해서요.”
“일단은 한번 와보라고 하세요. 서류도 미리 제 휴대폰으로 보내 주시고요.”
“예.”
산박은 그를 보기를 원했다.
* * *
만남은 으레 그렇듯 카페에서 이루어졌다. 강합의 사촌 동생은 평범한 인상에 평범한 체격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었다. 조금 약해 보이는 인상도 가지고 있었다.
‘방패 전사라길래 기대했는데, 직업과 체격은 연관이 없으니까. 아쉽긴 하다.’
“반갑습니다.”
산박은 속으로 아쉬워했지만 겉으로는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길탕만(吉蕩輓)이라고 합니다.”
“길강합 씨와 같이 해평 길씨입니까?”
“예. 형님에게서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예. 제가 강합 형님이라고 하기에 혹여나 싶어서 말씀을 드린 것뿐입니다.”
조금 딱딱하게 대답한 듯싶어서 산박이 덧붙여서 말했다.
“열 살 차이도 안 나는데 형처럼 대한다면 제가 노안인 것 아닙니까?”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기에 탕만도 웃음소리를 냈다.
다섯 살 차이 나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열 살 차이가 나면 형처럼 대하고, 그 배라면 어버이처럼 섬겨야 하는 법이었다.
“열 살 차이는 안 나지만 망년지우(忘年之友)는 상팔하팔(上八下八)이라고 합니다. 서로 친구가 된다면 강합 형님이 매우 놀랄 겁니다.”
탕만은 산박의 농담을 잘 받아줬다. 여덟 살 차이 안쪽이니 망년지우로서 친구를 먹어도 예에 어긋나지 않았다.
“그러면 형 대접을 받아야지요.”
“형님이니 형 노릇 한다는 뜻에서 여기 커피는 쏘시는 겁니까?”
“아뇨. 전 형 노릇 하기 싫습니다. 팀장이면 됩니다.”
그것으로 호칭에 대한 것은 끝이 났다.
“기술과 무위에 대해서는 들었습니다. 상당히 좋은 기술과 장무를 가지고 계시더군요.”
“예. 감사합니다.”
기본 방패술, 기본 검술, 장탄박투(長坦搏鬪), 유원족역(流圓足域).
‘최상급이나 다름없지.’
방패 전사는 버티는 전사다. 제법 강력한 괴물을 상대로도 홀로 어느 정도 버티는 게 가능하다. 팀원까지 들러붙는다면 전투가 끝날 때까지 전방에 설 수 있다. 그렇게 타고난 직업이었다.
장탄박투는 길게 보고, 평평한 박투 싸움을 끈덕지게 이어 가는 무위였다. 직업이 방패 전사인 탕만에게는 완벽에 가까운, 1레벨 무위 중에서도 최고로 궁합이 좋은 무위였다.
유원족역 또한 다를 바 없었다. 하체, 골반을 중심으로 발끝이 닿는 영역 내에서는 실로 부드러운 발놀림을 보여주기 때문에 균형이 무너지는 일이 잘 없었다.
선두에 서기에는 이만한 자가 없었다. 돌격 대장이라기보다는 선두 방패병과 같았다.
“솔직히 저희 팀에는 너무 과분할 정도입니다. 저희 팀에 대해서 알아보고 오셨습니까?”
“예. 겉으로 드러난 것만 봤습니다. 팀 옥시모론. 1레벨 던전을 세 번이나 클리어한 곳 아닙니까? 기간을 생각하면 상당합니다.”
“부지런히 달리는 거야 누가 못 합니까.”
“팀 내적으로 분란이 없는 게 마음에 듭니다. 팀장이 바르다는 소리니까요. 거기에 수륵이라는 전사가 죽었을 때, 강합 형님에게 돈도 찔러 주시지 않았습니까? 돈독 오른 팀장이 아닌 것만으로도 대단하죠.”
“흠. 그런 소리까지…….”
강합과 탕만은 생각 이상으로 허물이 없는 듯했다. 많은 걸 미리 이야기해 줬고, 탕만도 미리 알고 싶어 한 듯했다. 하기야 팀이 마음에 안 든다고 강합이 대놓고 산박에게 말해 줬으니 안 하는 게 이상했다.
‘조금 불쾌하네.’
차라리 탕만이 예의 없이 굴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그는 선을 딱 지켰다. 산박이 1절을 하면 2절로 받아주고, 산박이 3절을 하지 않는 이상은 더 나아가지 않았다.
“팀 운영비로 자잘하게 거두어 가는 것도 잘 없고, 있어도 짜투리 돈이고. 본인 사비를 털어서 섬광 단검도 지급해 준다면서요?”
“싸게 보이는 거 찾아서 지급한 것뿐입니다.”
“강합 형님이 들어갈 땐 제가 빠지고, 강합 형님이 못 들어갈 때 제가 들어가 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1레벨 던전 경험도 없으시니 저희 팀에서 경험을 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예. 좋은 팀입니다. 나중에 2레벨 던전에서는 저도 정식 팀원이 되고 싶을 정도네요.”
“그때가 되면 더 좋은 팀원을 영입해야죠.”
산박이 농담을 하며 기분 좋게 웃자 탕만도 지지 않았다.
“저도 더 실력 있는 팀원이 되어있을 겁니다. 공짜로 아이템도 주는 팀인데, 안 들어가는 게 이상한 것 아닙니까?”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기술과 무위가 이렇게 좋으신 1레벨 방패 전사에게 그런 소리를 듣다니, 처음 있는 일입니다.”
“아유……. 절대 그런 소리 하지 마십시오.”
사회생활을 한 두 사람은 칭찬 일색으로 만남을 마무리해 나갔다.
산박은 그렇게 임시 팀원인 탕만을 영입했다. 강합이 정신적 피해를 치유하기 전까지 탕만이 임시적으로 팀 옥시모론의 전방을 담당할 터였다.
“몇 번 훈련을 해야 하는데 괜찮으시죠?”
“예. 0레벨만 다니고 있어서요. 날짜만 말해 주시면…….”
“예, 예. 그때 제가…….”
산박은 식당 밖에서 잊고 있던 것까지 확실히 매듭지었다.
* * *
조용한 정오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대한 제국 건국 2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나현 씨도 주변에서 말 많이 듣죠?
―말도 마세요. 어느 정도냐면요, 오늘 여기 오면서 현수막으로 광명천지(光明天地)라는 것도 봤어요.
―아… 그건…….
“흐음!”
대장삵이 근엄하게 소리를 냈다. 그걸 산박은 드러누워서 지켜봤다.
대장삵은 요즘 부쩍 창고 마당에서 키우는 사과나무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잠도 거기서 자고, 밥도 거기서 먹었다. 밥은 당연히 고기였다.
“요즘 왜 그렇게 거기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거냐.”
산박이 대장삵을 살짝 떠봤다. 캡틴 레오파드 캣은 줄줄 변명을 늘어놓았다.
“여기서 사과나무가 자라고 있잖아. 그것도 드루이드가 키우고 있는 나무라고. 그렇게 공을 들이고 있는데 누가 부러뜨리면 안 되잖아. 이걸 보라고, 아직 묘목이라서 금방 똑 부러질걸?”
“쓸데없는 일이야. 누가 부러뜨린다고……. 그리고 부러져도 새로 씨앗 뿌리면 돼.”
“흥. 매일같이 회복되는 힘이라도 총량으로 보면 결국 잃는 것임을 모르는군. 힘을 다루는 자로서는 마음가짐이 실격이다.”
“그래서 너는 강가에 가끔 가서 물을 퍼붓냐?”
산박이 자신의 안일함을 꾸짖는 대장삵의 취미를 꼬집었다.
“크흐흠……. 그렇게 많이 뿌리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취미 생활이다!”
“매일같이 내 힘이 바닥나 있는데 그게 취미라고? 미쳤어?”
“쪼잔하기는.”
산박과 대장삵은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묘목이 된 사과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느새 조용해졌다. 날씨는 화창했고, 늘어지기 좋았다. 세종시에서 산을 넘어야 있는 부동 지구는 한적한 시골이나 다름없었다. 안으로 들어오는 길은 아스팔트 도로도 아니었다. 시멘트 도로였다.
‘따사롭다.’
산박은 이 따뜻한 고요함에 정신이 흐물흐물해지는 것 같았다.
묘실 던전을 클리어하고 3일. 산박은 쉬지도 않고 곳곳을 누볐지만 0레벨 던전을 공략하지는 않았다. 전투 무기력증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들도 연락 하나 없었다. 모두 지쳐 있었고, 피곤에 절어 있었다. 야외, 던전에서 5일을 보낸다는 건 정신력을 크게 소모하는 일이었고, 하루 이틀 쉰다고 해서 회복되는 게 아니었다. 피로도가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었다.
산박도 그가 가진 ‘신념’이 아니었으면 바쁘게 사회 활동을 하지 않았을 터였다. 탕만과 만나는 것도 3일 혹은 4일 뒤였을 터였다. 그만큼 산박의 왕성한 활동은 비정상적이었다.
“잘 자라긴 잘 자란다.”
꾸준히 없는 힘 있는 힘 모아서 썼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사과나무는 제법 잘 자라고 있었다. 벌써 1년은 자란 나무처럼 보였다. 3일에 1년이면 5년수가 되는 데 15일. 2주밖에 걸리지 않았다.
‘큰 재산이다.’
그 데이터를 확보하자마자 산박은 과수원을 준비했다. 질병에도 강하기 때문에 그냥 친환경으로 기르면 그만이었다. 괜히 주문으로 커진 나무가 아니었다. 확실한 강점을 보유했다.
나무에 쓴 주문만큼 그 효력은 강했다. 주문을 오래 자주 꾸준히 쓴다면 산불에도 살아남을 정도로 보였다.
‘물론 당장은 불가능하지만.’
돈이 없었다. 지금 벌여둔 일을 해결하고 돈을 축적한 다음에 해야 할 일이었다. 그 전까지는 이렇게 창고 마당에 한 그루 키우는 게 고작이었다.
반면 대장삵에게는 진짜 목적이 존재했다.
‘나무에는 정령이 깃들기 좋지.’
그릇은 있는데 영혼은 없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영혼이 생길 가능성이 존재했다. 그게 나무 정령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거기에 대장삵이 비집고 들어갔다. 사과나무의 묘목이 지닌 작은 그릇에 물의 힘이 담겼다. 그건 대장삵의 힘이었다. 이는 나중에 가면 분명 대장삵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알아차리지는 않았겠지.’
대장삵은 산박이 어떠한 제재도 하지 않자 신이 났다. 아예 대놓고 묘목에 털을 비비기도 했다.
묘목 주위를 계속 서성거리는 대장삵을 보며 산박은 속으로 웃었다. 드루이드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그가 대장삵의 노림수도 모르면 바보였다.
그걸 그대로 두는 이유는 막을 이유가 없어서였다. 대장삵은 최근 얌전하게 지내고 있었고, 산박 또한 어느 정도 대장삵을 대우해 주고 있었다. 대장삵이 산박의 힘을 받지 않고 이 현실에 존재하는 사과나무를 통해서 더 큰 힘을 소유한다면 그건 산박의 이익이기도 했다.
‘버르장머리가 조금만 더 없었어도 칼같이 끊고 나무 정령이 탄생하기를 기다렸겠지만…….’
엉뚱하게 죽었던 전과 다르게 해골 기사와의 싸움에서 꿋꿋이 생존한 대장삵이었다. 그는 산박의 충고를 확실하게 따를 수 있었다.
* * *
밤이 찾아오자 장 노인은 창문을 열었다. 한옥의 1층 창문은 누구나 들어오기 쉬울 정도로 넓었다. 곧 올 블랙으로 차려입은 자가 창문으로 들어왔다. 그는 목에도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는데, 유사시에 코와 입을 가리기 위함이었다.
“어떻더냐?”
“어떻고 자시고, 그냥 평범한 드루이드입니다. 농사에는 제법 쓸 만하지만 던전에 대한 향상심이 대단하여 소용이 없을 듯합니다.”
“다른 건 없고?”
“예.”
장 노인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혀를 끌끌 찼다.
“그런 놈이 물약 팔고 트럭 상인 하나 돈으로 확실하게 관계를 다지고 있느냐?”
“어르신, 직업 중에서도 드루이드는 특성으로 인한 제약이 존재합니다. 무분별한 환경 파괴를 보면 기분이 ‘자동적’으로 나빠지는 게 드루이드라는 직업입니다.”
“내가 그걸 모를 줄 알고? 원만한 해결도 좋아하지. 그리고 강제되는 것도 아니고, 개체마다 다 그 정도가 다르지 않으냐.”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를 이용해서 돈을 크게 벌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넌 아무리 생각해도 판단력이 너무 흐려. 그래서 내가 널 크게 못 쓴다.”
“어르신이 듣고 싶은 말만 어찌 합니까? 전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
그가 품에서 3일간 산박이 한 것들을 적은 걸 건넸다. 장 노인은 이를 확인했다.
“어이고, 부지런하기도 하다. 남들은 골골거리기 바쁜데…….”
던전 갔다 오고 하루도 집에 박혀있지 않은 산박은 실로 굉장한 노력을 하는 자였다. 그렇기에 장 노인은 산박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한번 터지면 따라갈 수 없다. 확실하게 마크하고 그 파도에 편승해야 한다.’
‘때’가 올 것이었다. 그때를 잡는 게 장 노인의 목표였다.
“나무를 키워?”
“예. 그 소환한 삵이 아주 애지중지하고 있어서 보고서에도 적었습니다.”
“무슨 나무인데?”
“그건 저도 잘…….”
“그런 걸 허투루 심을 리가 없잖아.”
“성장이 빠르긴 빠르더군요. 3일 만에 떡잎에서 묘목이 되었으니.”
“드루이드 주문으로 그런 게 있어?”
“못해도 열 가지는 넘을 겁니다.”
“다 조사해서 가져와. 돈이라면 산박도 사족을 못 쓰니까 분명 사업에 쓰려고 할 거야.”
“예, 알겠습니다.”
정보원이 깊이 다루지 않은 걸 장 노인은 단박에 잡아냈다. 모두 대장삵 덕분이었다. 고기 아니면 신경도 안 쓰는 놈이 나무를 신경 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