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산박은 힘겹게 지하철 계단을 밟고 올라왔다. 5일 동안 던전의 음울한 빛 속에서 살았기에 햇빛의 따사로움이 순간적으로 뜨거웠고 눈이 부셨다. 대장삵 또한 기지개를 켰다.
위로 올라가자 상황을 정리한 시은과 박조조가 같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산박이 다가가자 시은이 손을 작게 흔들었다.
“두 사람은요?”
산박이 시은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물론 박조조에게 살짝 눈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모두 응급실로 실려 갔어요. 연락처를 남겨 놨으니까 정리하고 가면 돼요.”
“그래요?”
시은은 아무래도 부산물 때문에 따라가지 못한 듯했다. 또 생각보다 산박이 늦게 나오자 미리 박조조를 부른 듯했다.
‘언제 박조조의 연락처를 받았지……. 이거 참.’
방심할 수 없는 여자였다. 물론 이번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부산물을 처리하고 두 사람의 상태를 확인하러 갈 수 있었다. 편법, 잘못된 것이라도 자신에게 이득이 되면 용인하는 법이었다. 산박은 그녀를 경계하면서도 일단은 넘어갔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물건은 다 봤겠죠?”
“예. 다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팀원들이 중상을 입어서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들이 꼭 쾌유했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람이 다쳐도 거래는 하고 가야 했다. 박조조는 가장 먼저 스크롤을 집었다.
“감정하려면 장당 5천 원은 까는 거 아시죠?”
“예.”
산박은 담담하게 말했다. 마법 스크롤인지 주술 스크롤인지 혹은 성법 스크롤인지 누가 봐도 몰랐다. 그걸 감정하는 직업은 따로 있었다. 당연히 수수료가 상당히 비쌀 수밖에 없었다. 담합하기 때문이었다. 감정사들이 자기들 밥그릇 싸움을 하기 전까지는 감정료가 꾸준히 올랐고 이제는 장당 5천 원을 받고 있었다.
‘개새끼들.’
향상심을 가지고 던전에 들어가 1레벨이 되었지만 돌아온 건 생산직이었고, 그들은 빠르게 던전 사용자의 길을 접은 뒤 가게를 차리고 협회를 만들었다. 이제 그 힘은 상당히 강하다고 해도 무방했다. 돈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희들 사이가 어떻습니까? 보통 사이는 아니잖습니까? 장당 2만 5천 원에 모시겠습니다.”
그 말에 산박의 눈이 커졌다. 보통은 만 5천 원을 부르기 때문이었다. 박조조가 굉장히 후하게 쳐준 것이었다. 상인답지 않았다.
“시중에 많이 해봤자 3만 5천 원인데 장당 5천 원만 가져가시려고?”
“제가 가져가는 건 제가 알아서 합니다. 좋게 쳐줘도 난리요, 태 사장님. 해줄 때 받아 가쇼.”
“예. 하하하.”
산박이 크게 웃었다. 장당 1만 원을 더 받았으니 총 35만 원을 더 번 것이나 다름없었다. 충호와 강합에게 줄 몫이 늘었다. 팀장으로서 면이 서는 것이다. 유통업의 갑질이 매우 심하다는 걸 생각한다면 이는 큰 복이었다.
‘역시 사람은 베풀 줄 알아야 한다.’
그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면 내치고 다른 사람을 구해야 했지만 이렇게 잭팟이 터지면 아주 감사한 일이었다. 이익이 있는 만남이 이어질 것이었다.
트럭 상인에게 수십만 원 돈을 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조금 더 편하게 던전 물품을 팔기 위함이었다. 박조조도 산박과 오래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것이었다. 그게 처음 표면으로 나타났다.
“금 장신구는 많이 쳐줘도 20만 원입니다. 던전 자체가 금이 잘 나오는 곳이라…….”
예전과 같이 금은 으뜸이었고 신뢰도도 뛰어났지만 가격의 변동이 많았다. 던전 때문이었다. 전체적인 수량은 많았지만 매일매일의 공급에는 등락이 있었다. 고로 날마다 가격이 달랐다.
“금은 그냥 서로 나누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안 돼요.”
시은의 말에 산박이 고개를 저었다. 던전에 들어가는 던전 사용자의 집은 강도질하기 좋았다. 0레벨은 당일치기할 수 있었지만 1레벨부터는 장기간 집을 비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산박에게는 따로 금을 둘 곳이 없었다. 그러니 깔끔하게 처리할 수밖에.
“…뭐 그런 이유를 드시면 어쩔 수 없죠.”
시은은 아쉬워했다. 그 모습에 산박이 시은에게 줄 금을 떼어 주겠다고 했지만 그녀가 거부했다. 확고한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다음은 고서였다. 수련하고 공부한다면 네크로맨서의 주문과 기술에 큰 이점을 얻을 수 있었다. 레벨 업에 필요한 카르마가 객체마다 다른 것도 한몫했다. 레벨 업에 장기간이 걸리기에 산박은 이런 고서가 충분히 팔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긁적.
박조조가 옆머리를 긁적거렸다. 팔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네크로맨서의 숫자는 드물었다. 던전에서 확실하게 머릿수를 늘리게 해주지만 악하게 여겨지는 탓이었다. 미신을 믿는 인간의 숫자만큼 네크로맨서는 배척받기 마련이었다. 그러면서도 얼굴을 돌려 그들에게 돈을 받고 시체를 팔지만 실상 평판은 썩 좋지 않았다.
“권당 5천 원에 매입하겠습니다.”
“너무 싸잖아요.”
“언제 팔릴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가치 있는 것들이에요.”
“1레벨 네크로맨서들이 사는 거 아닙니까? 가치보다는 그들의 구매력을 생각한 겁니다.”
권당 5천 원. 고서는 여든 권이 있었고, 40만 원 돈이었다. 조금만 돈이 오르는 것만으로도 박조조가 지급해야 할 돈이 천정부지로 커졌다.
산박은 턱을 손으로 문대었다. 잘만 하면 3만 원을 받을 거라 생각했지만 던전 수익의 6~8할 정도 되는 비용을 들여서 책을 사기는 힘든 던전 사용자가 많을 터였다.
박조조는 그걸 들어서 권당 5천 원을 불렀다. 판다면 8천, 사람에 따라서 만 원 이상에 팔 터였다. 그것도 제법 발품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서점 주인과 마진을 두고 거래한다면… 그의 손에 떨어지는 건 2천 원 안팎이었다.
‘완판한다면 그것도 많지만…….’
“좋습니다. 5천 원.”
“오케이! 땡큐! 5천 원!”
박조조가 고서가 든 가방을 트럭에 두었다. 그리고 손을 비볐다. 오늘 산박에게서 받을 물품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 아직 남아 있었다.
“피 묻은 기사의 목패. 이건 정말 핫합니다.”
산박 또한 그걸 알고 있었다. 던전 사용자들은 기사의 목패라고 이름 지었지만 실제로는 민병대 기수의 신분 패였다. 전방에 서는 직업이라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하는 목패였다. 필수 보조 장비로 취급받고 있을 정도였다.
효과는 무기술의 정교함을 증가시켜 주는 것이었다. 소폭이지만 그런데도 체감은 컸다. 맞지 않을 것도 맞기 때문이었다. 탁월한 효과를 지녔기에 돈이 많지 않은 던전 사용자는 2레벨이나 3레벨이 되어서도 피 묻은 기사의 목패를 계속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경매가가 변동이 심하다고 들었는데요.”
시은의 말에 박조조가 중지와 엄지로 딱 소리를 냈다.
“정확하십니다. 10만 원에서 60만 원, 어떨 때 경쟁이 붙으면 100만 원까지 호가합니다. 1레벨 던전에서 나오는 물품 중에서 경쟁이 엄청 치열해서 당진 경매장에서만 구할 수 있습니다.”
다른 도시까지 가서 경매에 참가해서 물어 와야 했다.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갔다. 소수라고 해도 3레벨 던전 사용자까지 지니고 다니는 아이템이었다.
‘거기에 전방 직업 관련 아이템이기도 하지.’
던전에서 가장 많이 다치는 직업이 전방 직업이었다. 1레벨 던전을 제법 다닌 전사라면 눈에 불을 켜고, 제3은 죽어도 아니더라도 제2금융권 대출을 받아서라도 살 것이었다.
“이건… 보류하겠습니다. 저희 팀에 전사가 두 명이라.”
“아, 그러시다면야…….”
박조조가 입맛을 다셨다.
그렇게 해서 박조조에게 받은 돈은 147만 5천 원이었다. 두당 36만 8,750원씩 받게 되고, 5일을 지냈으니 일급으로 치면 7만 3,750원이었다. 엄청난 금액이고, 절로 행복해지는 액수였다. 물론 생산품을 파는 산박에게는 아쉬운 금액이었지만, 그는 강해져야 하기에 어쨌든 던전으로 향해야 했다.
“시은 씨는 어떡할래요?”
현금을 받아 든 시은이 품 안에 돈을 넣으며 산박의 물음에 대답했다.
“같이 가야죠. 그래도 팀원인데요.”
두 사람은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택시에 돈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혹자는 택시도 대중교통이라고 말했지만 그러기에는 택시는 너무 비쌌다. 프리미엄, 편해서라고 하기에는 지급해야 할 돈이 많았다.
덜컹, 덜컹.
“앉아요.”
자리가 한 자리 남은 곳을 산박이 양보했고, 시은은 거부하지 않았다. 꼴에 예쁜 건 알아서 배려를 받는 모습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종합 병원은 굉장히 부산스러웠다. 간호사들은 하나같이 피곤한 표정이었고, 카운터를 보고 있는 간호사들의 옷에는 핏자국이 조금조금 보였다. 오늘 묻은 피인 걸 산박과 시은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던전 0레벨을 공략하며 자연스럽게 사냥꾼 같은 면모를 키운 두 사람이었다.
“충호 환자분은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겼어요. 강합 환자분은 지금 수술 중이에요.”
던전 사용자는 무조건 살리고 본다. 돈 하나는 확실하게 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산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확률로는 그런 듯했다.
‘내 팀이 재수 없는 걸지도 모르지.’
썩 마음에 드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허나 그 통계는 강합을 곧바로 수술대에 오르게 했다. 강합은 누구보다 우선되어서 수술대에 올랐다.
사회 계층, 그중에서 중산층과 상류층이 던전 사용자가 되며 외과 의사들의 수익이 엄청나게 뛰어올랐다. 그 명성 또한 무시 못 할 정도로 커졌다. 그 결과 외과를 공부하는 의사 비율이 대단히 높아졌고, 그 숫자만큼 외과 의사들의 피로도도 줄어갔다. 그렇기에 강합도 곧바로 수술대에 오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충호부터 살폈다. 그러나 뇌진탕 증세를 앓고 있었기에 면회가 허락되지 않았다. 아쉬운 일이었다. 워낙 바쁜 터라 면회가 중지되기 전의 정보만 가지고 있는 간호사 때문에 두 사람은 길을 되돌아가야 했다.
“시은 씨는 돌아가세요. 수술도 언제 끝날지 모른대요.”
“아, 전 괜찮은데…….”
시은은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지만 산박이 두 번 권유하자 가벼운 발걸음으로 종합 병원을 벗어났다.
충호와 강합은 모두 가족이 있었지만 그들에게 연락이 닿아도 오는 이는 없었다. 그렇기에 던전 사용자가 된 것일지도 몰랐다. 무슨 사정이 있어 보였다.
“…….”
산박은 강합의 수술에 대해서 생각했다. 팀장이었기에 제법 상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랜스에 박힌 다리는 물약으로 치료하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물약 치료를 병행해야 하는 건 당연한 소리였다. 어깨를 크게 다쳐도 회복이 가능한 게 물약의 힘이었다. 하지만 박살 난 뼈가 문제였다. 산산조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걸 다 빼내야 했다. 아니면 치유 주문으로 해결을 해야 했다.
팀원을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집중성탄을 쓴 산박은 당장 대장삵을 통해 치료해줄 수 없었다. 하루가 지나야 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오기 전에 응급실로 가버렸으니, 여기서 수술실에 난입할 수도 없었다.
‘치료가 끝나면 바로 퇴원할 수 있게 치유 마법을 써줘야지.’
라이트 랜스에 관통당한 허벅지 뼈는 그만큼 흉악한 상처를 줬다. 만약 랜스를 뺐다면 응급실에 오기도 전에 출혈로 죽었을 정도였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자정이 지나고 새벽이 되어서 강합이 나오자 산박은 곧바로 대장삵을 이용해서 치료 마법을 사용했다. 그다음 날에 충호도 치료해서 두 명 모두 퇴원할 수 있었다. 치료사를 빽으로 두고 있다는 건 엄청난 이점이었다. 남들은 큰돈 써야 할 것을 공짜로 얻을 수 있었다.
* * *
3일째 날에 네 명이 다시 모여 삼겹살집에서 뒤풀이를 했다.
“괜찮아요?”
“환통(幻痛)은 남아 있어서 아무 때고 다리가 들썩이기는 해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강합이 호탕하게 말했지만 그 순간에 다리가 크게 들썩이며 테이블을 쳤다. 자기도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정신은 그렇게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당분간 푹 쉬세요. 그래야 다시 1레벨 던전을 공략해서 2레벨에 올라서죠.”
산박은 담담하게 말했다. 강합은 최소 한 달, 심하면 3개월까지 1레벨 던전 공략을 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일단 잡아둬야 할 사람이었다. 전방에 설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예, 그래야죠.”
전투할 때 허벅지에서 환통이 시작되면 감당할 수 없었다. 그걸 알고 있는 강합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잘못하면 죽었다.’
산박이 무조건 피하라고 했기 때문에 산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피하지 않았다면? 복부, 심하면 상체의 위쪽이나 재수 없으면 목에 박혔을 터였다. 그때는 뒤가 없었다.
‘팀장님이라도 살려 줬을지 못 살려 줬을지 모르지.’
한 방에 던전 사용자를 무력화시켰다. 그런 상황에서 강합에게 박힌 랜스를 뽑아내고 필요한 처치를 한다? 힘들다. 인정이 넘치는 짓거리 때문에 몰살당할지도 몰랐다.
강합은 소주를 입 속에 들이부었다. 아직 고기가 구워지지도 않았는데 술이 당겼다.
“충호 씨는 괜찮아요?”
“예. 멀쩡합니다. 다음 주라도 던전 공략에 나갈 수 있습니다.”
그가 가슴을 탕탕 쳤다. 둔감하기 짝이 없는 정신은 해골 기사와의 싸움 이후에도 멀쩡함을 보여줬다. 산박은 절로 충호를 아끼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술이 조금 돌고, 모두는 안주를 집어 먹고 고기를 먹으며 떠들었다. 불판을 바꿀 때 산박이 목패를 꺼냈다.
“두 분 중에 한 분은 무조건 가져가실 거로 생각합니다. 이 패의 가격을 가장 높게 부르는 사람에게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얻은 돈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남은 세 명에게 균등하게 배분됩니다.”
세 명이 눈을 반짝였다. 시은 또한 석궁과 환도를 쓰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필요했다. 앞에 설 두 사람보다는 약했지만, 그녀 또한 자격이 있었다.
“30만 원요.”
시은이 가장 먼저 말했다. 시작부터 높은 금액을 턱 말하자 강합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