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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31/270)
  • 31화

    산박과 마갑을 입은 좀비 말이 넘어진 채 버둥거렸다. 시은이 일으켜 세웠던 물먹은 좀비 중보병이 아슬하게 좀비 말이 있었던 곳을 내려쳤다.

    쾅!

    멍청한 짓거리에 시은이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하급 네크로맨시로 하급 병졸을 제어하는 건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과 같았고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너무나도 모호한 감각이었기에 적응하지 못한 것도 컸다. 해골 발루악이었다면 몰라도 좀비 중보병은 수분이 너무 많았기에 둔하기도 둔했다.

    그사이에 좀비 말이 일어나서 해골 기사의 옆에 섰다. 해골 기사가 기병검을 뽑았다. 기병검의 손잡이 위에서 붉은 천이 흘러내렸다. 붉은 천은 검을 뽑는 손길에 의해 크게 늘어져서 움직였는데, 마치 바람에 휘날리는 것처럼 보였다. 백골에 낡고 닳은 강철 갑옷과 가죽 갑옷이 혼재된 복장 속에서 한 줄의 붉은 천은 실로 멋이 났다.

    부웅.

    한 바퀴 휘두르는 기병검에서 묵직한 공기 소리가 났다. 검 끝이 두툼해서 도끼처럼 둔중하고 위력적이었다. 상대를 위협하는 모션이었고, 그건 실제로도 통했다. 평범하지 않은 검임을 누구나 깨달았다. 팀원들도 제법 검을 휘둘러 봤기에 자신들의 검은 저런 묵직한 소리가 안 난다는 걸 알았다.

    ‘날이 있는 둔기나 다름없다.’

    피 때문에 날이 무뎌져도 상대의 골통을 부숴 버리는 기병검이었다.

    딱, 딱!

    그때, 해골 기사가 독특하게 아래턱을 움직여 특정한 소리를 내자 좀비 말이 순식간에 도망쳤다.

    ‘이건 좋다!’

    산박은 얼씨구나 싶었다. 전술을 짰던 대로 어떻게 흘러가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장삵은 오히려 달려가는 좀비 말을 공격했다. 산박이 짧게 소리를 질렀지만 그는 듣지도 않았다.

    ‘기수에게 중요한 건 말!’

    대장삵은 냉병기를 쥔 적에 대한 경험이 많았다. 라이트 랜스 차징을 깔끔하게 적에게 박아 넣은 기수가 좀비 말을 도망치게 놔둔다? 분명 특수 전술을 쓸 것이었다. 그걸 막아야 했다.

    압도적 다수인 산박의 팀은 공세를 펼칠 것이고, 그 덕에 수비력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포위진을 가장 쉽게 뚫는 방법은 외부에서 찌르는 것이었다.

    ‘결과부터 점찍어 나가면 좀비 말은 살짝 뒤로 빠졌다가 다시 돌진해서 자신의 기수를 구할 터다!’

    좀비 말의 듬성듬성한 말 꼬리털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부여잡은 대장삵은 위아래로 흔들리는 반동을 이용해서 단번에 펄쩍 뛰어 좀비 말의 몸통을 잡았다. 그리고 기어가서 그 머리를 움켜잡았다. 좀비 말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투레질을 하며 몸을 흔들었다. 대장삵이 주륵 미끄러졌다.

    콱!

    대장삵은 아슬하게 좀비 말의 아가리에서 벗어났다. 이빨과 이빨이 섬뜩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대장삵의 날카로운 이빨이 좀비 말의 눈 한쪽을 물어뜯었다. 하지만 좀비는 고통에 둔감했다.

    덩치 차이가 워낙 났기 때문에 대장삵은 좀비 말을 상대로 큰 피해를 줄 수 없었다. 하지만 방향 감각을 잃게 하고 귀찮게 하는 건 할 수 있었다. 대장삵은 좀비 말을 엉뚱한 곳으로 유도했고, 최대한 멀리 달리도록 만들었다. 그런 대장삵을 물어뜯으려고 좀비 말이 발악했다. 썩은 냄새가 나는 말의 혓바닥이 대장삵의 엉덩이를 핥았다.

    “캬악!”

    그때마다 대장삵이 들썩거렸다. 실로 큰 굴욕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좀비 말의 머리에서 떨어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것은 삶과 죽음의 전투였다. 엉덩이가 치욕을 당해도 살아남는 게 승리자였다.

    날카로운 발톱이 좀비 말의 눈을 할퀴고 파고들어 갔다. 시력을 잃은 좀비 말이 날뛰었다. 무엇도 보이지 않았기에 좀비 말은 기수의 명령을 그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훨씬 더 멀리 갔다. 몸을 홱 돌아서 달렸지만 해골 기사에게 도착할 수 없었다.

    마갑을 입은 좀비 말은 엉뚱한 기둥을 위험하게 스치고 지나가기도 했다. 그때마다 철 소리가 흉측하게 들렸고, 대장삵의 고막을 크게 때렸다. 대장삵은 귀에서 큰 통증을 느꼈다. 하지만 일시적인 것뿐이라 참을 수 있었다.

    대장삵이 산박의 명령을 어기고 큰일을 해내고 있을 때, 산박과 다른 이들은 해골 기사와 싸우고 있었다.

    붉은 천을 기병검으로부터 늘어뜨린 해골 기사는 왼 주먹에 붉은 천을 말아 쥐고 팽팽하게 당겼다가 다시 기병검을 양손으로 잡았다. 장검보다는 짧고 한손검보다는 긴 기병검은 실로 독특한 병기였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 되지 않은 기병검에는 망치질한 흔적이 고스란히 보였다. 누군가는 조잡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대장장이 하나가 매우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전사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합!”

    충호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방패를 앞세웠지만, 해골 기사는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았다. 그 또한 자신이 살도, 피도, 근육도 없는 해골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좌로 움직이며 충호와의 거리를 벌림과 동시에 충호의 무기보다 긴 기병검으로 방패를 내려쳤다.

    쾅!

    큰 충격이 충호를 때렸다. 체중은 부여되지 않았지만 힘 자체는 뛰어났다. 충호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집중해요!”

    산박이 소리쳤지만 이미 해골 기사는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좌로 움직였기에 시은과 산박은 포위를 하기 위해서 그대로 움직였다. 당연히 이것은 매우 수동적인 판단이었다.

    해골 기사가 순식간에 다시 앞으로 나아가며 기병검을 찔렀다. 충호의 눈이 크게 떠진 채로 방패가 움직였다.

    카가각!

    기병검은 아슬하게 방패의 끝을 긁었고, 허공을 찔렀다. 절호의 기회로 생각한 충호가 소리를 지르려고 배에 힘을 꽉 주며 입에서 소리를 짧게 냈을 때, 갑자기 충호의 방패가 훅 당겨졌다.

    그의 시야에 붉은 천이 방패의 윗부분에 걸려있는 게 보였다. 찌른 기병검은 오른손으로 잡고 천을 묶은 왼손을 다른 쪽으로 움직여 방패 안쪽에 천을 덧대는 데 성공한 해골 기사가 단번에 방패를 잡아당겼다. 공격에 실패한 해골 기사 때문에 돌진하려고 마음먹고 체중을 앞으로 기울인 상태인 충호는 허망할 정도로 크게 앞으로 넘어졌다.

    충호의 체중을 해골 기사가 간파하여 이용했다. 해골 기사에게는 실로 무시무시한 경험치가 축적되어 있었다. 홀로 네 명을 상대해야 하는 언데드다웠다. 덩치가 큰 충호였기에 체중을 앞으로 기울이며 돌진하려는 그 순간을 노렸고, 충호는 안면부터 바닥에 처박을 정도로 크게 당했다.

    그가 서둘러 일어날 수 있게 시은이 석궁을 한 발 쏘고 그대로 환도를 뽑고 달려 나갔다.

    캉!

    민병대에서 시작해서 홀로 숲에서 게릴라를 하며 그의 애마와 전선을 누볐던 해골 기사는 그런 볼트를 막을 생각도 안 했다. 볼트는 갑옷에 튕겨 나갔다.

    퍽!

    해골 기사의 발이 충호의 머리를 가격했다. 충호가 그대로 출렁거렸다. 산박이 하단을 노리려고 달려갔지만, 기병검이 그저 스윽 작은 호랑이의 머리가 이동하는 곳을 선점하여 내밀어졌다.

    ‘젠장.’

    산박은 기습을 할 수 없으면 작은 호랑이 형태가 매우 전투에 적합하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 순식간에 인간으로 돌아왔다. 그는 똑같이 검을 뽑고 시은과 호흡을 맞춰서 해골 기사에게 동시에 치고 들어갔다.

    기병검은 당연히 둘 중에 덩치가 작은 시은을 노렸다. 모든 전투의 기본은 선 약자, 후 강자의 논리를 따르는 게 정석이었다. 야생에서의 생존 경쟁 또한 마찬가지였다.

    쐐액!

    기병검이 휘둘러졌다. 시은의 위쪽 상체를 베고 지나가는 궤적이었다. 호쾌하게 달려들던 시은이 환도를 휘둘러서 맞받아쳤다. 돌진력까지 생각하면 이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골 기사는 환도가 휘둘러지는 방향으로 똑같이 이동해 시은의 돌진력을 받아들이며 저항하지 않았다. 기병검이 시은의 환도를 위에서 아래로 짓눌렀다.

    섬뜩함이 한 줄기 지나갔지만 시은의 목을 베지는 못했다. 산박이 있어서였다. 산박의 근접 공격은 닿을 수 없었지만 그에게는 잡금속을 녹인 슬링용 탄환이 있었다.

    땅!

    왼손으로 던졌지만 정확하게 해골 기사의 손목을 맞혔다. 시은의 머리카락이 살짝 잘려 나가고 두피가 긁혀서 피가 흘러내렸다.

    퍽!

    해골 기사는 산박에게서 멀어지면서 발로 충호의 머리를 한 번 더 가격했다. 충호는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강철로 뒤덮인 부츠에 의해서 얼굴을 두 번이나 가격당했다. 군화로 정강이를 얻어맞는 것보다 엄청나게 위험한 공격이었다.

    카가가각!

    그러고 나서 해골 기사는 기병검으로 땅을 살짝 긁어 소음을 발생시키며 빠르게 물러났다. 산박과 시은은 충호의 상태가 너무나도 신경 쓰여서 감히 그를 추적하여 전투를 이어 나가지 못했다.

    딱딱딱!

    해골 기사가 사위를 훑으며 빠르게 아래턱을 움직여 소리를 냈다. 하지만 달려와야 할 자신의 애마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불규칙한 기둥 때문에 해골 기사 또한 시야가 많이 제한되어 있었다. 회백색의 안광이 주위를 둘러봤지만, 그의 애마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해골 기사가 생각했던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산박과 일행은 몸을 추슬렀다. 충호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엄지로 한쪽 코를 막고 숨을 세게 내쉬자 약간 응고된 코피가 왈칵 쏟아져 내려왔다.

    후두둑.

    그 피는 제법 굵직한 물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으…웩!”

    비틀거리며 충호가 그대로 안의 것을 게워냈다. 눈물이 피와 함께 뒤섞여서 흘러내렸다. 왼쪽 눈썹이 크게 찢어졌고 코뼈가 비틀어져 있었다.

    “괜찮겠어요?”

    “헉헉. 헉.”

    산박의 말에 충호가 숨을 헐떡였다. 현기증 때문에 온몸이 아찔해졌고, 아릿아릿하고 오감이 멀어지는 감각이 생겼다가 다시 통증이 진해지며 현실로 돌아왔다.

    “…예. 제가 빠지면… 뭐가 됩니까?”

    강합은 랜스 차징 한 방에 꿈쩍도 안 하고 있었다. 허벅지 뼈가 관통당하는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 쇼크사했는지 기절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죽은 듯이 널브러져 있었다.

    스윽.

    산박의 팀이 삼면에서 해골 기사를 압박했다. 해골 기사는 기둥을 등지고 그들을 맞이했는데, 계속 턱을 세 번 딱딱거렸다.

    곧 좀비 말이 해골 기사의 소리를 듣고 겨우 그의 근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좀비 말의 두 눈은 대장삵에 의해서 패어 있었다. 마갑을 입어서 그 이외의 상처는 없었다.

    “이놈을 조져! 기수에게 말이 향하면 엄청나게 불리할 뿐이야!”

    내달리는 상태에서 대장삵이 고함을 꽥꽥 질러댔다. 산박은 갈등했다. 전술과는 다른 오더였기 때문이었다.

    찰나의 순간 산박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단 한 번의 참격으로 한 명을 리타이어시킨 해골 기병의 위험성이 그의 경종을 울렸다. 또한 마갑을 입은 좀비 말은 해골 기사보다 체중도 무겁고 크기도 컸다.

    “뒤로 물러나요! 말부터 노립시다!”

    그 말을 하자마자 충호와 시은이 뒤로 물러났다. 그와 다르게 산박은 해골 기사의 정면에 서면서 뒷걸음질을 슬금슬금 쳤다. 기병검이 휘둘러져도 산박은 그저 뒤로 갈 뿐이었다.

    캉, 캉캉!

    시은과 대장삵 그리고 충호가 좀비 말을 가차 없이 공격했다. 충호가 몸을 부딪쳐서 좀비 말을 넘어뜨리는 모습에 결국 해골 기사가 산박에게 돌진을 감행했다.

    산박이 옆으로 살짝 비키고 검을 휘둘렀지만 해골 기사는 그를 무시하고 그대로 지나갔다. 산박의 환도가 아슬하게 해골 기사의 투구를 건드렸고, 투구가 벗겨졌다. 반들반들한 해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이 갑니다! 조심해요!”

    아쉽게도 충호는 귀가 먹었는지 이를 듣지 못했다. 그는 크게 피로해진 상태였다. 귀가 먹먹해지고, 오직 숨소리만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시은이 충호를 거칠게 잡아당겨서 겨우 해골 기사에게서 멀어질 수 있었다.

    해골 기사가 좀비 말을 지키듯이 섰다. 그의 발이 매우 섬세하게 좀비 말을 건드렸다.

    “히히힝.”

    좀비 말이 가래가 들끓는 소리를 냈다. 일어서고 싶어도 일어설 수 없었다. 네 개의 다리 관절이 다 박살 난 지 오래였다. 검 면으로 후려 팼기 때문에 순식간이었다. 눈이 먼 상태로 몰매를 맞아 실로 무력하게 당했다.

    “그.”

    해골 기사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 그, 아아아아!”

    짐승 소리를 내며 해골 기사가 그대로 달려들었다. 끝없는 증오가 그 외침 속에 들끓었다.

    “들러붙어요!”

    산박이 고함을 질렀고, 세 명이 모두 광분한 해골 기사를 향해 덤벼들었다. 대장삵이 산박의 허리를 타고 단번에 어깨 위에 올라서서 그대로 공중 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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